53.문화예술 입문 (독서)/5.예술미학

예술이란 무엇인가 (2023)

동방박사님 2024. 1. 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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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예술은 아름다움과 쾌락이 아닌 인간을 결합시키기 위한 것이다”
톨스토이가 15년에 걸쳐 완성한 예술 이야기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바다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톨스토이 사상 선집’의 여덟 번째 책이다. 집필에서 완성까지 15년이 걸린 이 저작에서 톨스토이는 고대 그리스부터 당대 유럽의 다양한 미학이론과 예술사조를 자세히 검토한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본질과 현대 예술이 어떻게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는지 명쾌히 밝히고, 진정한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상업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 예술 경향의 대척점에 서서 인간 삶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독특하고 민중지향적인 예술론을 경북대 이강은 교수의 더 명료하고 가독성을 높인 새 번역으로 만난다.

바다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톨스토이 사상 선집’의 여덟 번째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톨스토이의 엄격하고 민중지향적인 예술관을 육성으로 오롯이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저작이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작가로 올라선 후 불현듯 찾아온 정신적 위기. 삶과 문학의 의미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서 톨스토이는 신앙과 예술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착수한다. 종교에 대한 그의 대답이 『고백』(1880)과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1883)였다면, 예술에 대한 그의 대답이 바로 이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집필을 시작했으나 완성까지 무려 15년이 걸린 이유는 고대 그리스부터 당대 유럽의 다양한 미학이론과 예술사조를 빠짐없이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그의 결론이 위선적 교회기독교를 거부하고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듯이, 예술에 대해서도 톨스토이는 예술의 본질과 현대 예술이 어떻게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명쾌히 밝히고, 진정한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상업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 예술 경향의 대척점에 서서 인간 삶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톨스토이의 독창적인 예술론을 경북대 이강은 교수의 더 명료하고 가독성을 높인 새 번역으로 만나보자.

목차

1. 현대 예술의 어리석은 짓거리
2. 예술이 어찌 미의 표현일 수 있는가
3. 미를 정의하려는 미학의 온갖 몸부림
4. 형이상학적 예술 정의의 문제
5. 형이하학적 예술 정의의 오류
6. 참된 종교의식의 타락과 헛된 미의식
7. 진·선·미 삼위일체론의 허구
8. 상류계급 예술의 기만
9. 자존심과 성욕, 권태에 빠진 예술
10. 갈수록 난해하고 기묘한 배타적 형식과 내용
11. 진정한 감정의 전달과 무관한 모조 예술의 기법들
12. 예술의 직업화와 비평, 예술학교
13. 모조 예술의 전형 ?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14. 참된 예술적 감동
15. 예술은 감염이다
16. 좋은 예술의 내용
17. 왜곡된 예술의 치명적 결과
18. 종교의식에 기초한 참된 예술
19. 미래의 예술과 예술 활동
20. 결론: 위대한 예술이 나아갈 길

옮긴이 해설__예술과 문화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참된 예술을 향한 격정
레프 톨스토이 연보

저자 소개

저 : 레프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
 
역 : 이강은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혁명의 문학 문학의 혁명-막심 고리키』, 『변혁기 러시아문학의 윤리와 미학』, 『반성과 지향의 러시아 소설론』, 『러시아 소설의 형식적 불안정과 화자』, 『바흐친과 폴리포니야』 등이 있고 역서로 막심 고리키 소설집 『은둔자』, 『대답없는 사랑』, 『세상 속으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

출판사 리뷰

쾌락이 예술의 목적일 수 없다

책의 서두에서 톨스토이는 어느 오페라 리허설을 참관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무대 위의 가수와 무용수,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무대 뒤에서 말없이 땀 흘리는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총감독이 쏟아내는 모욕적인 욕설을 견디며 몇 시간이고 같은 장면을 반복하고 있었다. ‘예술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런 야만적인 잔혹함을 보며 톨스토이는 묻는다. “이것이 예술이고, 예술은 그런 희생을 치를 만큼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많은 예술이 끔찍할 정도의 노동과 생명과 도덕의 희생을 바탕으로 존재함에도, 정작 예술은 사람들의 의식에서 점점 모호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데, 각종 유파마다 예술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미의 표현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1750년 바움가르텐에 의해 미학이 수립된 지 150년이 지난 당대까지도(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해결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4장에서 톨스토이는 바움가르텐, 빙켈만, 칸트, 헤겔 같은 저명한 독일 철학자들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크고 작은 미학자 수십 명의 미학이론을 개괄한다. 이들의 미에 대한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미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으로서 관념이나 정신, 신의 발현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미란 주관적인 만족, 우리가 사심 없이 받아들이는 특수한 종류의 쾌라는 경험적인 정의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을 인식하고 발현해냄으로써 일정한 쾌를 얻는다는 점에서, 미에 대한 두 정의는 결국 미란 쾌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현존하는 미학에서 얻을 수 있는 대답들은 모두, 예술은 미이고 미는 거기서 얻는 쾌이며, 예술에 의한 쾌는 매우 중요하고 훌륭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동어반복으로, 쾌는 쾌이기 때문에 좋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미학이론이 말하는 것은 “예술의 정의가 아니라, 예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민중의] 희생과 현존하는 예술의 에고이즘적인 쾌와 비도덕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간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톨스토이에 따르면, 쾌나 만족이 예술의 목적일 수 없다. 우리는 음식을 취하며 음식의 가치가 그것이 주는 쾌락, 입맛(취향)의 충족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될 때 비로소 음식의 진정한 가치가 영양에 있음을 깨닫게 되듯이, 예술의 목적을 미(즉 쾌)라고 여기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예술은 감염이다

톨스토이는 이제까지 미학이론을 혼란에 빠뜨렸던 미의 개념에서 벗어나 예술을 인간 삶의 조건 중 하나로 바라본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예술이란 사람들 사이에 감정을 전달하는 소통수단이다. “예술이란, 인간이 의식적으로 일정한 외적 기호를 이용해 자신이 체험한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 감정에 전염되고 그 감정을 체험하도록 만드는 인간의 활동이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의 같은 감정으로 결합해줌으로써, 개별 인간과 인류 전체의 삶과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소통의 수단이다.” ‘예술은 감염이다’라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테제는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이자 진정한 예술과 모조 예술을 구별해주는 주요 특징이다.

그러나 오늘날 상류계급은 쾌를 제공하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예술로 인정한다. 기만적인 교회를 믿지 않고 진정한 그리스도 정신을 따르지도 않는 그들이 개인적 쾌락만을 추구한 결과 예술은 거의 파멸의 지경에 이르렀다. 상류계급 예술은 심오한 종교적 내용을 거세해버린 채 낡고 진부한 감정들 즉 허영과 성욕, 권태에 빠져버렸으며(내용의 빈약화), 형식미에 치중한 나머지 대중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 되었고(형식의 난해화), 무엇보다 예술은 진실함을 잃어버리고 인위적으로 꾸며낸 지적 산물이 되어버렸다(예술의 모조품화).
현대 예술의 난해화를 비판하는 10장에서 톨스토이는 당시에도 “거의 위인급이 된” 보들레르, 베를렌, 말라르메 같은 상징주의와 데카당파 시인들의 작품을 예로 든다. 이들은 “천박한 에고이즘으로 점철된 세계관을 이론화하여, 구름처럼 모호한 미의 개념으로 도덕성을 대체하고, 미를 끝없이 인위적인 것으로 대체해버리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순박함과 진실성, 소박함이 결여되어 있고, 인위적 기교와 기괴한 독창성, 회의주의에 가득 차 있다.”

물론 톨스토이는 새로운 예술을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이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갈수록 대중에게는 점점 더 불가해한 것이 되고 있으며, 대다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이 훌륭한 예술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이 훌륭하긴 한데 이해가 안 된다”라는 말은 “음식이 아주 훌륭한데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좋은 예술의 척도가 감염력이라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감동받을 수 없는) 예술은 나쁜 예술이거나 전혀 예술이 아닐 것이다.

모조 예술 대 진정한 예술

오늘날 소위 예술가들은 옛 예술작품에서 모티프를 빌려오거나(차용), 현실을 극단적으로 세세히 묘사하거나(모방),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묘사로 효과를 높이거나(충격), 시대나 직업을 상세히 묘사하거나 구성을 복잡하게 꼬아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흥미 끌기) 등의 기법을 이용하여 진정한 예술과 유사한 사이비 예술, 모조 예술을 생산해낸다. “모든 예술 분야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의 모조품들이 미리 만들어진 처방에 따라 생산되고 있고, 오늘날의 상류계급 사람들에 의해 진정한 예술로 대접받고 있다.”

톨스토이는 지나치게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된 예술가의 전문직업화, 본래 불필요하고 대중의 취향을 왜곡할 뿐인 예술비평(“말로 예술작품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예술에 감염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애초에 가르칠 수 없는 감염력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예술학교가 이러한 가짜 예술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톨스토이는 그리스 비극 작가들부터 단테, 밀턴, 셰익스피어, 괴테, 오스카 와일드, 입센, 라파엘로와 인상파 화가들, 후기 베토벤, 리스트, 베를리오즈, 브람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누구보다 바그너를 이러한 모조 예술, 머리로 짜내고 꾸며낸 예술로 비판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두 작품 〈코카서스의 포로〉와 〈신은 진리를 보고 계시다〉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도 나쁜 예술에 속한다고 자평한다.) 물론 톨스토이는 “우리 사회에서 예술 혹은 좋은 예술로 여겨지는 거의 모든 것이 실제로는 진정한 예술도 좋은 예술도 되지 못하며 예술이기는커녕 모조 예술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주장이 진지하게 검토되거나 수용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의 감정에 감염되는 경험은 평범한 사람이나 어린아이도 느낄 수 있으며, “남의 기쁨에 같이 기뻐하고 남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는, 그리하여 타인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과 모조 예술을 구별해주는 특징임은 명백하다. 이러한 연민과 사랑, 형제애로 만인을 결합시키는 예술이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예술이다. 톨스토이는 민중의 명랑함과 온유함이 묻어나는 민요와 민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을 그린 디킨스, 위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은 밀레, 랭글리, 레르미트의 그림을 예로 든다.

톨스토이는 예술이 지금처럼 상류계급만의 오락거리가 아닌 모든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일 예술이 전 민중의 예술이 되지 못한다면, 그 예술은 사람들이 내세우듯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거나,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그 예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미래의 예술은 유한계급에만 통용되는 감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형제애적 결합으로 이끄는 감정, 만인을 결합하는 범인류적 감정을 전하는 작품들이 이끌 것이며, 민중 전체가 예술 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예술가는 “내용 부재를 은폐하기 위한 기술적 완성도만을 추구하는 그 어떤 타락”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참을 수 없는 내적 요구를 느낄 때만 예술 활동에 임할 것”이다.

결국 톨스토이의 예술론은 그의 사회사상과 표리 관계에 있다. 톨스토이는 인류가 폭력의 왕국 대신에 사랑의 왕국을 세우기를, 만인이 행복하고 하나 되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데 이성의 영역에서는 학문이, 감정의 영역에서는 예술이 함께 기여하기를 요청한다. “예술은 쾌락이나 위로, 오락이 아니다. 예술은 위대한 일이다. 예술은 사람들의 합리적 의식을 감정으로 전이할 수 있는, 인류의 삶의 기관이다. … 예술의 과제는 거대하다. 과학의 조력 아래 종교의 지도를 받는 참된 예술이 해야 할 일은, … 인류의 평화로운 공동생활이 사람들의 자유롭고 즐거운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 오로지 예술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