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3.일본근대사

메이로쿠 잡지 (2021) - 문명개화의 공론장

동방박사님 2024. 3. 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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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메이지 6년과 고종 10년의 시간은 무엇이 달랐던 것인가. 문명 개화와 계몽은 어떻게 다른가. 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메이로쿠 잡지는 일본의 유학파 지식인들이 메이지 유신의 혼란 속에서 창간한 동북아 최초의 학술잡지이다. 학술단체 메이로쿠샤의 기관지로 1874년에 만들어진 이 잡지는 해외의 학회와 학술지를 의식해서 만든 것이며 다루는 내용도 해외의 학술 동향과 정치, 사회문제에 관한 주장을 많이 담았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학술이 분과학문으로 나누어지기 전이어서 다양한 분야가 섞여 있었으며 제안이나 주장, 토론에 가까운 것들도 섞여있다.

후쿠자와 유키치, 나카무라 마사나오, 니시 아마네 등 동시기의 가장 유명한 지식인들이 참여했으며 출간 족족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지식인들의 견해가 환영받은 당시 분위기를 타고 다양한 지면을 통해 재배포되어 문명 개화를 누구나 언급하게 만들었다. 문자를, 정치체계를, 헌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쌓아야 할 것인가에 모두 관심을 가졌으며 메이로쿠샤 지식인들은 이 문제들을 다루는 최전선에 있었다.

책에 실린 논문을 읽어보면 일단 재미가 있다. 뭔가 초보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우리가 고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그때부터 하고있었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이 물밀듯이 유입되던 당시, 번역어와 새로 만들어진 어휘들이 지식인 사회에 범람했고, '강습담론'의 전통과 '스피치'라는 새로운 형태의 논의 방식을 혼합해 자유로운 토론이 오고 갔다. 이들이 살던 세상은 7년 전만 해도 '학문'이라고 하면 유학 경서 공부를 가리키던 세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 선출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툭하면 논어 맹자를 인용하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조선은 대원군 섭정이 종료되고 고종 친정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메이로쿠 잡지를 읽으며 동시기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격차에 아찔해진다. 그것만으로도 메이로쿠 잡지는 바로 지금 읽을 가치가 있다.

목차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

제 1 장 메이로쿠 잡지의 전말 . . . . . . . . . . . . . . . 15

1.1 메이로쿠샤 제1회 임원 개선에 관한 연설 . . . . .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5
1.2 메이로쿠 잡지 출판을 중지하자는 의안 . . . . . . . . . . . . . . . . . (후쿠자와 유키치) 21

제 2 장 국어 및 문자 개혁 . . . . . . . . . . . . . . . . . 27

2.1 서양 글자로 국어를 쓰는 일에 관한 논설 . . . . .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27
2.2 개화의 정도에 따라 문자도 바꿔야 한다는 설 . . .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46
2.3 히라가나의 설 . . . . . . . . . (시미즈 우사부로) 50
2.4 질의일칙 . . . . .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55

제 3 장 「학자직분론」과 논평 . . . . . . . . . . . . . . . 59

3.1 학자직분론 . . . . . . . . . . (후쿠자와 유키치) 59
3.2 후쿠자와 선생의 논설에 답하다 (가토 히로유키) 70
3.3 학자직분론에 대한 평 . . . . . . (모리 아리노리) 71
3.4 학자직분론에 대한 평 . . . . . . . (쓰다 마미치) 73
3.5 비학자직분론 . . . . . . . . . . . (니시 아마네) 74

제 4 장 민선의원 설립 논쟁 . . . . . . . . . . . . . . . . 79

4.1 민선의원설립건백서 . . . (이타가키 다이스케 외) 79
4.2 민선의원설립 건언서의 평 . . . (모리 아리노리) 86
4.3 블룬츨리『국법범론』발췌역:민선의원 불가립의론 . . . . . . . . . . . . . . . . (가토 히로유키) 88
4.4 정론 3 .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91
4.5 민선의원을 세우려면 먼저 정체를 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문 .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97
4.6 민선의원의 때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논의 . . . . . . . . . . . . . . . . . . (간다 다카히라) 105
4.7 망라의원의 설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06

제 5 장 남녀관계와 여성의 역할 . . . . . . . . . . . . . . 111

5.1 처첩론 1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11
5.2 처첩론 2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13
5.3 처첩론 3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15
5.4 처첩론 4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18
5.5 처첩론 5 . .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19
5.6 남녀동수론 . . . . . . . . . . (후쿠자와 유키치) 122
5.7 부부동권의 유폐론 1 . . . . . . (가토 히로유키) 123
5.8 부부동권의 유폐론 2 . . . . . . (가토 히로유키) 125
5.9 부부동권변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127
5.10 첩설에 관한 의문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129
5.11 교육담 . . . . . . . . . . . . . (미쓰쿠리 슈헤이) 140
5.12 좋은 어머니를 만드는 설 . . (나카무라 마사나오) 144

제 6 장 종교를 이해하는 방식 . . . . . . . . . . . . . . . 149

6.1 교문론 1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49
6.2 교문론 2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52
6.3 교문론 3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57
6.4 교문론 5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59
6.5 교문론 6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62
6.6 교문론 7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167
6.7 교문론 의문 1 . . . . . . . (카시와바라 타카아키) 172
6.8 교문론 의문 2 . . . . . . . (카시와바라 타카아키) 176
6.9 교문론 의문 3 . . . . . . . (카시와바라 타카아키) 179
6.10 개화를 진전시키는 방법을 논하다 (쓰다 마미치) 183
6.11 삼성론 .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186
6.12 인민의 성질을 개조하는 설 . (나카무라 마사나오) 188

제 7 장 문명개화와 인민 . . . . . . . . . . . . . . . . . . 191

7.1 개화 제1화 . . . . . . . . . . . (모리 아리노리) 191
7.2 진언일칙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192
7.3 개화의 진행은 정부에 의하지 않고 인민의 중론에 의한다는 설 . . . . . . . . . . . (미쓰쿠리 린쇼) 194
7.4 서양 개화는 서행한다는 설 . . . . (쓰다 마미치) 197
7.5 서양 단어 열두 개에 대한 풀이 : 문명개화 해석 . . .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199
7.6 정부와 인민은 이해를 달리한다는 논 . . .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203

제 8 장 자유에 대한 이해 . . . . . . . . . . . . . . . . . . 209

8.1 출판의 자유를 바라는 글 . . . . . (쓰다 마미치) 209
8.2 리버티에 대한 논설 1 . . . . . . (미쓰쿠리 린쇼) 212
8.3 리버티에 대한 논설 2 . . . . . . (미쓰쿠리 린쇼) 215
8.4 신문지론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219
8.5 서양 단어 열두 개에 대한 풀이 : 자주자유 해석 . . .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221

제 9 장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 . . . . . . . . 227

9.1 애적론 .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227
9.2 존이설 . . . . . .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231
9.3 적설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236
9.4 대만정벌의 강화회의에 대한 연설 . . . . . . . . . . . . . . . . . (후쿠자와 유키치) 241
9.5 중국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는 논설 . . . . . . . . . . . . . . . . (나카무라 마사나오) 246
9.6 존왕양이설 . . .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251

제 10 장 사회와 국가 제도 . . . . . . . . . . . . . . . . . . 261

10.1 인간 공공의 설 1 . . . . . . . . . . . (스기 코지) 261
10.2 인간 공공의 설 2 . . . . . . . . . . . (스기 코지) 264
10.3 인간 공공의 설 3 . . . . . . . . . . . (스기 코지) 267
10.4 인간 공공의 설 4 . . . . . . . . . . . (스기 코지) 269
10.5 수신과 치국은 두 갈래 길이 아니라는 논의 . . . . . . . . . . . . . . . . . (니시무라 시게키) 271
10.6 조세의 권을 상하 공공으로 해야 한다는 설 . . . . . . . . . . . . . . . . . (사카타니 시로시) 276
10.7 재정변혁의 설 . . . . . . . . . . (간다 다카히라) 280
10.8 고문론 1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286
10.9 고문론 2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288
10.10 사형론 . . .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294

제 11 장 외국인의 국내여행 . . . . . . . . . . . . . . . . . 297

11.1 내지여행 . . . . . . . . . . . . . . (니시 아마네) 297
11.2 내지여행론 . . . . . . . . . . . . (쓰다 마미치) 306
11.3 내지여행에 관한 니시 선생의 주장을 논박하다 . . . . . . . . . . . . . . . . . (후쿠자와 유키치) 311

해제 1 ‘문명개화’와『메이로쿠 잡지』. . (이새봄) . . 321
해제 2 메이로쿠샤 지식인들 논의에 나타난 다양성과 공존의 문제 . . . . . . . . . . . . . (이새봄) . . 357
해제 3 자유민권운동 발흥을 향한 메이지 유학자의 시선 . . . . . . . . . . . . . . . . . . . (이새봄) . . 381
해제 4 메이로쿠샤 지식인의 religion 이해의 맥락 . . . . . . . . . . . . . . . . . . . . (이새봄) . . 407
해제 5 메이지 일본의 ‘양처현모’론 탄생의 맥락 . . . . . . . . . . . . . . . . . . . . (이새봄) . . 431

부록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57
참고 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71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79

저자 소개

등저 : 후쿠자와 유키치 (Fukuzawa Yukichi,ふくざわ ゆきち,福澤諭吉)
 
에도시대 막부 말기에 해당하는 1835년에 나카쓰 번中津藩 하급무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5세부터 유학을 배웠고 19세부터 난학蘭學을 배웠으며 이후 영?미 사상을 공부하게 된다. 1858년 번의 명령으로 에도에 난학숙蘭學塾을 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게이오대학교慶應義塾의 전신이다. 1860년과 1861년에 막부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을 두루 살펴보고 쓴 [서양사정]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명성을 얻었...

역 : 이새봄

1980년 출생. 세이케이(成蹊)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 도쿄대학에서 19세기 일본사상사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自由」を求めた儒者-中村正直の理想と現實』(中央公論新社, 2020)를 출간했다. 저역서로 『메이로쿠 잡지』(빈서재, 2021), 와타나베 히로시(渡邊浩)의 『동아시아의 왕권과 사상』 한국어 번역본(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3)이 있다.

책 속으로

근자에 우리는 모여서 사리를 논하거나 이문을 얘기함으로써 학업을 연마하고 머리를 상쾌하게 하였다. 그러한 논의 내용을 적은 바가 쌓여서 책자를 이루게 되었기에 이를 인쇄하여 출판함으로써 동호인에게 나누고자 한다. 얇은 소책자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식이 열리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첫문장」중에서

대저 읽기 쉽고 알기 쉬운, 언문일치의 문장을 통해 세상에 뜻을 펼치고 인민의 지식을 진보하게 하는 것은 원래 학자와 교사의 임무이다. 그런데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고 그 배운 바에 익숙한 나머지 이상한 글자나 새로운 어휘를 삽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자는 자신의 직무를 크게 태만히 하는 자이다. 삼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가타가나를 아는 사람도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히라가나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로마자로 일본어를 표기하자는 주장에 대해 한자까지도 버리고 히라가나를 쓰자고 주장한 시마즈 우사부로의 발언」중에서

우리나라 인민은 오랫동안 압제의 정치 아래 굴복해왔고, 인간 본성의 자유로운 기상이 꺾였다. 이 기상이란 것은, 나라의 원기이다. 나라의 원기가 위축되어 떨치지 못하고, 국위를 떨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지금 이것을 떨쳐 일으켜 왕성하게 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민으로 하여금 나랏일에 간여하게 하는 것이다. 인민으로 하여금 나랏일에 간여하게 하려면 민선의원을 만드는 일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쓰다 마미치가 민선의원 설립을 옹호하며 쓴 글」중에서

혹은 이 얘기도 아직 이르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면, 첩을 두는 일도 게이샤를 사는 일도 조용히 허락하자. 다만 이를 비밀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숨겨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숨긴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첫 단계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스스로 꺼리는 첫길이다. 이로써 동권의 첫 단계가 세상에서 행해지고, 몇 년 후에는 지금의 결말이 나지 않는 논의도 어떻게든지 낙착될 것이다.
---「남녀동권 토론 와중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차라리 기계적 남녀동수제가 낫다고 얘기하면서 마무리짓는 문장」중에서

형제가 재산을 두고 다투어 서로 싫어하는 일, 같은 관리끼리 권한을 두고 다투어 서로 싫어하는 일, 같이 학문하는 사람끼리 논리를 다투어 서로 싫어하는 일, 동료끼리 일을 두고 싸워서 서로 싫어하는 일, 같은 장사끼리 이익을 두고 다투어 서로 싫어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관계를 생각해보면 친밀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해야 할 상대와의 관계가 아니라면 상대를 싫어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 미워하는 사람이란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니시 아마네가 쓴 애적론」중에서

출판사 리뷰

싸우더라도 미래는 준비했다

막말이라는 시기엔 모든 것이 애매했다. 언제부터인지 확정지어야 할 것인지도 애매했지만 막부는 본격적으로 서구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 접촉의 순간마다 국내외로 도전을 받아야 했다. 막부가 뭔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전은 격해졌고 막부가 분명 여러가지로 우위에 있었음에도 도전자인 삿초 세력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정치적 격변은 짧게 서술할 수가 없지만 어쨌거나 구체제가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던 시기였음은 분명하다.

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막부는 1860년 만엔 원년 미국 파견 사절을 보냈고 1862년 분큐 유럽 파견 사절을 보냈고 1863년 요코하마 쇄항 담판 사절단을 보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1860년과 1862년 사절에 동행하여 미국과 유럽을 살펴봤다. 니시 아마네와 쓰다 마미치는 1862년 사절을 따라갔다가 네덜란드에 눌러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도전자인 삿초 측도 지방정부였지만 유럽을 배우기 위해 돈을 들여 학생을 보냈다. 1863년 초슈는 영국에 유학생을 보냈고 이들은 초슈오걸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그 안에 이토 히로부미와 이노우에 카오루가 있었다. 1865년 사쓰마는 영국 유학생을 보내는데 모리 아리노리도 멤버중 하나였다.

서로 목을 걸고 투쟁하는 와중에 돈이 좀 있던 막부도, 돈에 쪼들리던 삿초도 유학생을 보내 유럽을 배웠다. 이 두 세력 외에도 다수의 번이 서양 자문단을 부르거나 서양 무기를 구입하며 서양을 알고자 했다. 그렇게 싸우다가 1868년 일단 삿초 세력이 승리하여 메이지 신정부를 만들게 된다. 막부측은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죽거나,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잔존세력으로 신정부와 대립하는 등 시대가 전환되기 시작한다.

시대가 바뀌고 시대정신도 드러났다

메이지 신정부는 천황에게 권력을 돌렸지만 역시 애매했다. 혁명의 명분은 과거로 돌아가자였지만 새로운 시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태정관제같은 옛날 제도를 되살린다거나 신정국가로 돌리려는 시도까지 하는 등 혼란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새 시대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문명이었고, 이미 서양의 과학과 산업을 접한 많은 일본인들은 그 문명이 먼저 열린 것이 서양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서양 지식을 갈망했고, 서양 유학파 지식인들이 일본에 돌아와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양에서 새로운 것을 보았고 그 변화를 문명개화라고 불렀다. 비록 막부측이 패배했지만 신정부는 막부를 인수인계 받으면서 막부측 지식인들 또한 중용했다. 사실 서양을 접한 지식인은 신정부보다는 막부측에 더 많았다.

이 지식인들 집단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강했던 단체가 메이로쿠샤이다. 미국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젊은 모리 아리노리가 모임을 추진하고 서양에 관심가져온 여러 지식인을 끌어모아 만든 일본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그들은 토론과 기관지를 발행하며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눈으로 확인한 문명개화의 현장을 전달하고자 했다.

일신이생 남자들의 관심사

청년기까지는 막부라는 근세시대에, 중장년기는 메이지라는 근대를 살아간 이 사람들은 스스로 일신이생이라고 불렀다. 한 몸으로 인생을 두번 살았다는 의미이다. 영어와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구사한 일신이생 남자들의 관심사는 이 책의 목차에 잘 드러나있다. 이들은 가나라는 일본 문자체계를 버릴 것인가부터 민과 관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 종교-자유-세금-헌법은 무엇인가, 국회는 어떻게 열어야 하나, 교육-유통-남녀관계-지진-화학-요괴...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게걸스럽게 서양을 읽고 소화하여 말하고 글로 적었다.

조선인이 서양을 읽고 한문과 조선어의 두가지 언어체계가 섞인 글로 자신들이 배운 바를 적는다면 그 책이 얼마나 흥미로울까. 물론 과거에도 드물게 그런 순간들은 있었다. 조선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이라거나, 마테오 리치같은 천재적인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남긴 저작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섞임이 대규모로 벌어지기 시작한 시공간은 바로 막말/메이지 초기의 일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문헌이 바로 메이로쿠샤의 기관지인 메이로쿠 잡지, 바로 이 책이다. 번역총서의 1권이 메이로쿠 잡지에 할당되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 뿐 아니라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이 메이로쿠 잡지이다.

한국어판 첫 독자의 감상

편집자는 강제로 책의 첫 독자가 된다. 메이로쿠 잡지는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읽고싶은 텍스트였고, 편집하면서 여러번 읽었다. 첫 독자가 되어 최고 전문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출판인이 가진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서남전쟁의 기운이 차오르고 있던 불안한 정국의 신생 국가 지식인들이면서도 이들이 원했던 것은 이상사회였다. 서양조차 그 이상사회로 가는 과도기 혹은 길잡이로 보고있었고 이들은 문명개화라는 이상을 지향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이들은 번역을 선택했다. 자기 언어로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번역이다. 이들은 길을 찾기위해 번역이라는 가장 근대적인, 가장 모던한 방식을 선택했고, 특유의 근면성을 발휘해 번역대국을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이라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가장 어린데도 과감한 얘기를 툭툭 던지는 모리 아리노리,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고 또 항상 훈계조로 말하곤 하는 사카타니 시로시, 짧은 글에서도 예리함을 감추지 못하는 후쿠자와 유키치, 여러가지 사안들에 너무 관심이 많은 니시 아마네, 당당하게 남자들이 잘못한게 뭐가 있냐며 오히려 여성 상위시대 아니냐는 투로 얘기하는 가토 히로유키 등 단독 저서에서는 감춰져있던 개성이 여기서는 서로 충돌한다. 실명비판을 하며 본격 충돌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요즘의 학회가 저 시대의 메이로쿠샤보다 제대로 토론하고 있는가에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그 와중에 스스로를 반성하는 구절이 많다는 점도 재미있다. '일본은 모방을 잘한다'(니시 아마네)라거나 '저들이 우리를 거대한 음란국으로 보아도 할 말이 없다'(모리 아리노리)는 내용을 보면 본질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변동기의 텍스트다운 엉성함과 열린 해석의 여지가 잘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