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4.대한제국사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2023)

동방박사님 2024. 3. 2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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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격동의 시기에 마지막 황실은 어땠을까
대한제국 왕녀가 들려주는 특별한 가족 이야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은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자신을 비롯한 황실 가족의 삶을 회고한 책이다. 저자는 세 살 때부터 궁에 살면서, 예절과 법도를 중시하는 궁궐 생활과 개화된 바깥세상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왕녀로 지낸 시간과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학창 시절, 해방을 거쳐 6·25전쟁까지의 혼란 등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더불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의 숨겨진 역사를 황실 가족의 일생을 통해 재조명했다.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황실의 일가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 가야만 했다. 또한 의친왕, 덕혜옹주, 이우 공 등 많은 황실의 가족이 망국의 설움과 더불어 비운의 삶을 살다 갔다. 한국 근현대사 속 격랑의 시대를 모두 거쳐낸 이해경 왕녀의 생생한 회고담을 통해 황실 사람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자.

목차

머리말 ┃ 대한제국을 회상하며 ·5

제1부 궁에서 보낸 어린 날과 학창 시절

부모님의 만남, 생모와의 이별 ·15
인형 같이 살았던 어린 시절 ·23
노래를 잘 부르는 붕아붕붕 아씨 ·29
사동궁, 어린 시절 나의 집 ·37
굴레에 매어 살던 나날들 ·43
왕실 법도에 갇히고 전쟁으로 얼룩진 학창 시절 ·53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의 약혼 소동 ·61
약혼자 아버지와 담판을 짓다 ·69
읽을거리 ┃ 대한제국의 흥망 ·77

제2부 내 삶을 휘저어 놓은 6·25전쟁

실감할 수 없었던 전쟁 ·83
공포와 굶주림에 떨었던 적 치하의 삶 ·88
인민군 협주단에서의 탈출과 도피 ·94
공산 부역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 ·100
국군 위문단으로 평양에서 맞은 1·4후퇴 ·107
생모와 살면서 미군 부대에서 근무 ·114
읽을거리 ┃ 대한제국의 상징물 ·121

제3부 80달러 들고 떠난 미국 유학

우연히 찾아온 미국 유학의 기회 ·127
아버지께 끝내 알리지 못한 미국 유학 ·134
자유롭고 행복했던 미국의 대학생 시절 ·144
귀국과 성악의 꿈을 접다 ·148
19년 만의 귀국과 엄청난 실망 ·155
30여 년의 염원 끝에 이룬 부모님의 합장 ·162
읽을거리 ┃ 대한제국의 예법 ·178

제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

빛바랜 역사책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참된 모습 ·185
기구한 출생과 양녕대군 같은 운명 ·188
모함과 스캔들에 시달렸던 미국 유학 시절 ·197
일본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의친왕 ·209
삼엄했던 일제의 감시 ·217
실패로 끝난 상하이 탈출 시도 ·229
탈출 실패 후 갇혀버린 의친왕 ·240
일본의 귀족이 아닌 조국의 평민으로 살겠다 ·247
해방 후에도 그치지 않은 고난의 삶 ·255
읽을거리 ┃ 대한제국의 황제릉 ·261

제5부 나의 어머니 의친왕비

궁중의 법도와 결혼한 어머니 ·267
너희 아버지 곁에 묻힐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275
읽을거리 ┃ 대한제국의 사람들 ·282

마무리하면서 ·288
부록 ┃ 역사 속 사진들 ·291
참고 자료 ·295
 

저자 소개

저 : 이해경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녀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 근현대사의 풍파를 겪으며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구한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암약했던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이자 목격자로서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열다섯 살에도 전담 유모를 두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목욕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지만,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으며 남들..

책 속으로

내가 어린 시절, 황실 어른들께서는 창덕궁과 운현궁, 사동궁에 살고 계셨다. 대궐이라 불리던 창덕궁에는 순종 황제의 계비인 윤 대비 마마께서 사셨고 운현궁에는 흥친왕비, 영선군 군부인 아주머니, 나의 둘째 올케 이우 공 비 박찬주 언니가 사셨다. 내가 살던 사동궁에는 어머니 의친왕비가 계셨고 아버지 의친왕은 가끔 들르시는 정도였다. 고종 황제의 후궁 광화당, 삼축당, 보현당, 정화당 할머니들도 계셨다. 나는 연말연시가 되면 이분들께 묵은 세배, 신년 세배를 하러 다리가 아플 정도로 돌아다녀야 했다.
--- p.31

김 상궁을 만난 날, 그녀를 따라 수강재로 들어가서 옹주 아씨와 첫 대면을 했다. 어머니 의친왕비께서는 덕혜옹주를 옹주 아씨라고 부르셨다. 어머니는 옹주 아씨 얘기를 하실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끔 도쿄에 다니러 가는 것은 건(나의 큰오빠)이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목적은 옹주 아씨를 뵙는 것이다. 내가 가서 웃겨드려야 그분이 미소를 지으시거든.”
--- p.32

“나는 하루에 100년을 뛰었습니다.” 누가 나에게 어린 시절 얘기를 해보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던 궁과 다니던 학교 사이에는 시대적인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 안의 삶은 여전히 옛 풍습을 지키는 봉건 시대였고, 학교에는 날로 변화하는 개화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양쪽의 풍조에 다 발을 맞춰야 했다. 아침이면 봉건 시대에서 개화 시대로 건너갔다가 학교가 끝나면 개화 시대에서 봉건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날마다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었다.
--- p.42

1936년 소학교에 입학한 나는 왕족으로서 특별 대우를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나는 자유롭게 마음껏 뛰어노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 틈도 없이 자동차를 타고 곧바로 궁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간 후에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난 여전히 친구들과 마음껏 놀지 못했다.
--- p.53

궁에서 살 때 황실 가족들은 자신의 머리도 스스로 빗지 않았다. 그런 분들이 궁색한 피란살이를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머니 의친왕비에게는 부산 피란 시절 고생을 낙으로 삼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어머니의 결혼 생활을 통틀어 아버지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낸 때였을 것이다.
--- p.113

영주권을 얻은 후 불법 체류자 신세를 벗어난 나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 동양학 사서로 취직하였다. 미국으로 가기 전 미군 부대에서 잠시 도서관 사서로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미국 유학을 허락받기 위해 문교부에서 치른 국사 시험에 번번이 떨어질 정도로 우리 역사 실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내가 이국땅인 미국에서 해묵은 우리나라의 역사책을 뒤적이며 분류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것이야말로 숙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154

내 부모님 의친왕과 의친왕비는 드디어 홍유릉 능역에 안장되었다. 홍유릉은 금곡릉이라고도 불리는데, 고종 황제의 홍릉과 순종 황제의 유릉을 합한 이름이다. 그곳에는 홍유릉과 부모님의 묘소뿐만 아니라, 영친왕 부처의 묘소인 영원, 그 아들 이구 황세손의 묘소인 회인원, 덕혜옹주의 묘소도 있다. 이제 아버지 의친왕은 당신의 부모와 아내, 형제와 조카까지 함께 모여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 p.175

아버지는 이 세상에 태어나신 후부터 돌아가신 그날까지 항상 역사의 그늘 속에 사셨다. 그 쓰라린 좌절의 생애를 마치셨지만 오늘날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왕족이면서 항일 운동을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명백히 남아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만 받은 채 1955년 8월 15일 실의와 울분으로 점철된 좌절의 생애를 마치셨다.
--- p.185~186

나도 한때 의친왕의 딸로서 긍지보다는 갈등과 부담을 느끼며 살았다. 물론 이 못난 딸은 지금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뒤늦게나마 아버지 의친왕의 항일 운동 행적과 기록이 공개되어 불명예를 씻을 수 있다면 나의 모든 후회와 부끄러움이 한순간 다 사라질 것 같다. 이제 잘못 알려진 아버지의 참된 면모를 널리 알려 그 분의 영혼을 뒤늦게나마 위로하고 싶다.
--- p.187

아버지께서는 나라가 기울어 가는 것에 대해 늘 한탄하셨다. 궁궐에서 부황인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나오시는 날이면 피를 토하며 대성통곡하셨다고 한다. 그때 고종 황제께서도 나라를 위한 걱정에 “어떡하면 좋을까”라고 하시며 침수 드는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밤을 지새우셨다고 한다.
--- p.213

손병희 선생과 사전 회합을 가졌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최초로 낭독했던 요릿집 태화관이 사동궁 바로 근처였던 것을 봤을 때 아버지께서는 3·1운동을 사전에 알고 계셨고 생각보다 깊숙이 관여하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앞의 보고서에서 본 바와 같이 당시 일제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도 비밀에 붙였다. 아버지 의친왕까지 독립 만세 운동에 나섰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태가 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p.221~222

출판사 리뷰

황실 가족은 왜 비운의 삶을 살았나
조국마저 외면한 궁궐 속 숨은 역사


‘대한제국’은 일제의 국권 침탈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대한제국은 근현대사 역사책에나 나오는 시절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이 책은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녀인 저자의 일생과 아버지 의친왕, 어머니 의친왕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동안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인식은 무능하여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 없이 유약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궁궐 안에서의 삶을 그대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져 사동궁에 살면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을 받았다. 유모, 나인, 상궁같이 시중드는 사람이 늘 옆에 있었고,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가까운 학교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황실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도 없고,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엄격한 예법의 굴레에 매인 궁중 생활을 답답해하며 자랐다. 여고 시절에는 일제의 전쟁 준비에 동원되는 근로 봉사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며, 해방 이후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미군 부대의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1956년 단돈 80달러만 가지고 유학을 떠났다. 성악가가 되리라는 꿈은 못 이뤘지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일하며 구한말 조선 왕조 역사에 남다른 애착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의친왕비에게 친자식은 없었지만, 의친왕은 여러 후실에게 많은 자녀를 얻었다. 하지만 의친왕비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고, 후실에게 얻은 자녀 중 생모가 일찍 죽거나 사정이 있어서 생모가 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주었다. 이혜경 왕녀 또한 세 살 때부터 궁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길러졌고 그녀에게 의친왕비는 생모 이상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 한 분이다. 저자가 의친왕비에게 직접 들은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 이야기며, 고종 황제의 후궁들에 대한 평가는 실제의 황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역사책에서 찾은 의친왕은 주색잡기에 빠진 무기력한 황자가 아니었다. 나라가 기울어가는 것을 한탄하였고, 호방한 품성으로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도 호통을 치고, 데라우치 총독에게도 거침없이 권총을 겨누는 등 일제 권력자 앞에서 늘 당당하였다. ‘거창군지’에서는 경남 거창에서 뜻있는 우국 청년들과 의병을 양성하기 위해 막사의 터와 훈련장으로 사용할 땅을 사들이다가 일본 헌병에게 탄로 나 호송되다시피 서울로 돌아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한일합방 후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였고, 대동단에서는 ‘대한민족대표 의친왕 등의 독립선언서’를 공표하였다. 대동단의 독립운동가 김가진은 의친왕에게 함께 상하이로 망명할 것을 권하였고, 1919년 11월에 탈출을 위해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가다 의친왕이 체포되었다. 탈출 사건 이후 일본은 의친왕을 감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하였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배일사상을 고수하는 등 일제에 저항하였다.

기개 있는 대한제국의 황자로 독립운동에 뜻을 펼치고자 상하이에 망명하려 했던 아버지 의친왕의 업적이 인정받고, 참된 면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기억을 더듬어 쓴 이 책을 통해 정치적으로 폄하된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역사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