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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교신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다.
기독교 역사가인 지은이의 관점으로 김교신의 삶과 생각을 톺아본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김교신은 “조선인을 성서적ㆍ도덕적으로 다시 세우는 것”을 자신의 역사적 과제로 삼았다. 이 책은 그가 삶의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면한 문제들을 향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자 애쓴 삶을 그린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사의 인물 김교신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때로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했던 대목도 여가 없이 소개한다. 이로써 김교신의 삶과 사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기독교 역사가인 지은이의 관점으로 김교신의 삶과 생각을 톺아본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김교신은 “조선인을 성서적ㆍ도덕적으로 다시 세우는 것”을 자신의 역사적 과제로 삼았다. 이 책은 그가 삶의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면한 문제들을 향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자 애쓴 삶을 그린다. 그러나 지은이는 역사의 인물 김교신을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때로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했던 대목도 여가 없이 소개한다. 이로써 김교신의 삶과 사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목차
추천사 4
머리말 11
제1장 일가문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다 21
엄격한 유가적 분위기에서 자라다 26
함흥농업학교 시절 3 · 1운동에 참여하다 30
제2장 일본 유학으로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가 되다 33
도쿄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가다 34 교회 신자에서 무교회주의자로 42
십자가 대속 신앙을 붙들다 47 「성서조선」 동인(同人) 51
방학 중 조선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 55
제3장 「성서조선」 창간 : 조선을 성서 위에 세워야 59
조선인이라는 철저한 자기 인식을 갖다 60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가르치다 63
「성서조선」, 숙명이 되다 67 아! 조선아 72
제4장 기독교와 유교가 조화를 이룬 집 79
공덕리 활인동으로 이사오다 80 아버지 김교신 82
공덕리의 특이한 집 86
제5장 양정학교에서 ‘양칼’이라는 별명을 얻다 91
사직서를 품고 연회를 베풀다 95 인문학적 지리박물학 선생 97
양정학교에서 물에산에 모임을 시작하다 106 생활신학, 자전거 신학 108
우리는 조선에서 온 양정이다 111 학생들이 붙여 준 별명 115
제6장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생(生)의 기독교 119
성서만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 123 조선교회의 비판적 인식 126
자연이 우리의 예배처 129 생(生)의 기독교 131
제7장 조선산 기독교: 조선인은 조선인의 신앙을 137
조선인의 민족적 정서를 담아낸 조선산 기독교 139
성서 vs 서구 기독교 143 조선산 기독교와 기독교의 토착화 145
제8장 김인서와 벌인 논쟁: 무교회주의는 잘못된 신앙인가 147
우치무라는 영적 제국주의자이다 150
언제 일본인에게 복음을 듣지 말라 하더냐 152
논쟁의 핵심: 무교회주의에 대한 불신 155
제9장 장도원과 벌인 논쟁: 성서조선운동에 대한 노선의 불일치 159
교회와 협력하자.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162
교회에 대한 근본 개념에 차이가 있다 167
논쟁의 핵심: 성서조선운동에 대한 노선의 불일치 169
제10장 최태용과 벌인 논쟁: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입장 차이 171
무교회주의의 사명은 기성 교회를 공격하는 데 있지 않다 177
무교회주의의 핵심은 교회 안의 비진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179
무교회주의의 본질은 진리를 천명하며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다 180
논쟁의 핵심: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입장 차이 182
제11장 일본인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187
소록도 한센인들을 “우리 문둥아”라고 부르다 188
류석동, 「성서조선」을 떠나다 194 공덕리를 떠나 정릉으로 이사가다 196
교회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갖다 198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 202
『상록수』가 아쉬워 『최용신 소전』을 출판하다 209
제12장 성서조선사건: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213
「성서조선」에 대한 검열과 폐간 문제 214
양정중학교를 사직하고 미국 유학을 생각하다 216
조선 기독교계에 “우리를 이용하라”고 외치다 219
우치무라 선생 10주기 기념강연회로 구로사키 고키치가 오다 220
경기중학교에 부임하다 222 ‘성서조선사건’으로 수감되다 227
수감생활, 인생의 대학이자 최고 학부 233
제13장 흥남 일본질소비료회사에 취업하다 243
석방 후 만주 도문에서 일하다 244
서본궁 조선인 노동자 사택촌의 관리계장이 되다 248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이 세상을 떠나다 255
제14장 김교신, 한국 기독교에 어떤 유산을 남겼나 263
성서로 조선을 다시 세우다 267 참된 에클레시아 268
일상의 영성: 세속 성자 271 기독교는 복음적이고 예언적이다 274
한국적인 기독교를 꿈꾸다 276 김교신의 한계를 생각하다 279
참고문헌 283
연표 292
머리말 11
제1장 일가문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다 21
엄격한 유가적 분위기에서 자라다 26
함흥농업학교 시절 3 · 1운동에 참여하다 30
제2장 일본 유학으로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가 되다 33
도쿄고등사범학교에 들어가다 34 교회 신자에서 무교회주의자로 42
십자가 대속 신앙을 붙들다 47 「성서조선」 동인(同人) 51
방학 중 조선에서 전도 활동을 하다 55
제3장 「성서조선」 창간 : 조선을 성서 위에 세워야 59
조선인이라는 철저한 자기 인식을 갖다 60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가르치다 63
「성서조선」, 숙명이 되다 67 아! 조선아 72
제4장 기독교와 유교가 조화를 이룬 집 79
공덕리 활인동으로 이사오다 80 아버지 김교신 82
공덕리의 특이한 집 86
제5장 양정학교에서 ‘양칼’이라는 별명을 얻다 91
사직서를 품고 연회를 베풀다 95 인문학적 지리박물학 선생 97
양정학교에서 물에산에 모임을 시작하다 106 생활신학, 자전거 신학 108
우리는 조선에서 온 양정이다 111 학생들이 붙여 준 별명 115
제6장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생(生)의 기독교 119
성서만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 123 조선교회의 비판적 인식 126
자연이 우리의 예배처 129 생(生)의 기독교 131
제7장 조선산 기독교: 조선인은 조선인의 신앙을 137
조선인의 민족적 정서를 담아낸 조선산 기독교 139
성서 vs 서구 기독교 143 조선산 기독교와 기독교의 토착화 145
제8장 김인서와 벌인 논쟁: 무교회주의는 잘못된 신앙인가 147
우치무라는 영적 제국주의자이다 150
언제 일본인에게 복음을 듣지 말라 하더냐 152
논쟁의 핵심: 무교회주의에 대한 불신 155
제9장 장도원과 벌인 논쟁: 성서조선운동에 대한 노선의 불일치 159
교회와 협력하자.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162
교회에 대한 근본 개념에 차이가 있다 167
논쟁의 핵심: 성서조선운동에 대한 노선의 불일치 169
제10장 최태용과 벌인 논쟁: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입장 차이 171
무교회주의의 사명은 기성 교회를 공격하는 데 있지 않다 177
무교회주의의 핵심은 교회 안의 비진리를 비판하는 것이다 179
무교회주의의 본질은 진리를 천명하며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다 180
논쟁의 핵심: 무교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입장 차이 182
제11장 일본인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187
소록도 한센인들을 “우리 문둥아”라고 부르다 188
류석동, 「성서조선」을 떠나다 194 공덕리를 떠나 정릉으로 이사가다 196
교회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갖다 198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다 202
『상록수』가 아쉬워 『최용신 소전』을 출판하다 209
제12장 성서조선사건: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213
「성서조선」에 대한 검열과 폐간 문제 214
양정중학교를 사직하고 미국 유학을 생각하다 216
조선 기독교계에 “우리를 이용하라”고 외치다 219
우치무라 선생 10주기 기념강연회로 구로사키 고키치가 오다 220
경기중학교에 부임하다 222 ‘성서조선사건’으로 수감되다 227
수감생활, 인생의 대학이자 최고 학부 233
제13장 흥남 일본질소비료회사에 취업하다 243
석방 후 만주 도문에서 일하다 244
서본궁 조선인 노동자 사택촌의 관리계장이 되다 248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이 세상을 떠나다 255
제14장 김교신, 한국 기독교에 어떤 유산을 남겼나 263
성서로 조선을 다시 세우다 267 참된 에클레시아 268
일상의 영성: 세속 성자 271 기독교는 복음적이고 예언적이다 274
한국적인 기독교를 꿈꾸다 276 김교신의 한계를 생각하다 279
참고문헌 283
연표 292
책 속으로
이 책은 단편적으로만 다루어왔던 김교신의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 욕구에서 출발하였다. 나는 김교신을 역사적·신앙적으로 살펴보려 노력하였다. 한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또 김교신은 신앙적 접근을 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기독교 신앙을 제외하고 그를 그려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김교신에게 기독교 신앙은 삶을 움직이는 실체였기 때문이다.
--- p.12
일본에서 김교신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앙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닦아 주었던 스승 우치무라를 만났다. 김교신은 1920년 4월 18일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이 신앙의 영적 생일은 우연히도 그의 생일과 동일했다.
--- p.42
김교신은 신앙 초기에 내세의 문제보다 현생의 문제에 천착했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완전에 이를 수 있을지가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 p.48
일본인과 조선인이 참 형제라는 인식도, 모든 사람이 사해동포라는 생각도 내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철저한 자기 인식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 p.63
김교신을 비롯한 동인들이 「성서조선」을 편찬한 이유는 조선을 성서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에게 조선은 살 중의 살이자 뼈 중의 뼈였다. 특히 김교신의 조선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은 그의 생각을 지배했다. 송두용은 “김교신은 예수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류석동은 “조선 사랑이 김교신의 적혈구 전부까지 점령했다”고 말했다.
--- p.67
김교신이 인물지리학과 역사지리학에 천착한 이유가 있다. 그는 먼저 지리학의 중심적인 관심은 각지의 산물인데 그 중 최고의 산물이 사람이라고 보았다.
--- p.97
김교신은 매우 엄격한 선생이었다. 그는 개학 첫날에 모든 학생들을 출석하도록 해 전학기의 학업 기강을 세우려고 하였고 학생들에게 조퇴하지 말라고 엄하게 훈계하였다.
--- p.100
김교신에게 있어서 무교회주의는 성서만을 통해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신념이다.
--- p.125
김교신은 12,000일을 산 소감에서 “하루는 일생이요, 일생은 하루”라고 말한다.
--- p.133
‘조선산’ 이라는 단어도 ‘조선에서 난’, 혹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김교신은 「성서조선」 창간 동인들이 조선에서 났기 때문에 조선산 육용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 p.141
김교신은 현 조선교회의 교직자들 중 사역을 밥벌이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교회가 이권화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그들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김교신은 이미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수없이 밝혔다.
--- p.167
김교신의 조선 사랑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정치적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었다.
--- p.207
역사 안에서 이단시 되었던 사상이 때로는 신앙의 본질에 더 충실했을 때가 있다.
--- p.266
김교신은 신앙대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하루살이’를 추구하였던 만큼 기독교 신앙은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p.12
일본에서 김교신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신앙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닦아 주었던 스승 우치무라를 만났다. 김교신은 1920년 4월 18일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이 신앙의 영적 생일은 우연히도 그의 생일과 동일했다.
--- p.42
김교신은 신앙 초기에 내세의 문제보다 현생의 문제에 천착했다.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완전에 이를 수 있을지가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 p.48
일본인과 조선인이 참 형제라는 인식도, 모든 사람이 사해동포라는 생각도 내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철저한 자기 인식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 p.63
김교신을 비롯한 동인들이 「성서조선」을 편찬한 이유는 조선을 성서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에게 조선은 살 중의 살이자 뼈 중의 뼈였다. 특히 김교신의 조선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은 그의 생각을 지배했다. 송두용은 “김교신은 예수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류석동은 “조선 사랑이 김교신의 적혈구 전부까지 점령했다”고 말했다.
--- p.67
김교신이 인물지리학과 역사지리학에 천착한 이유가 있다. 그는 먼저 지리학의 중심적인 관심은 각지의 산물인데 그 중 최고의 산물이 사람이라고 보았다.
--- p.97
김교신은 매우 엄격한 선생이었다. 그는 개학 첫날에 모든 학생들을 출석하도록 해 전학기의 학업 기강을 세우려고 하였고 학생들에게 조퇴하지 말라고 엄하게 훈계하였다.
--- p.100
김교신에게 있어서 무교회주의는 성서만을 통해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신념이다.
--- p.125
김교신은 12,000일을 산 소감에서 “하루는 일생이요, 일생은 하루”라고 말한다.
--- p.133
‘조선산’ 이라는 단어도 ‘조선에서 난’, 혹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김교신은 「성서조선」 창간 동인들이 조선에서 났기 때문에 조선산 육용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 p.141
김교신은 현 조선교회의 교직자들 중 사역을 밥벌이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 교회가 이권화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그들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김교신은 이미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수없이 밝혔다.
--- p.167
김교신의 조선 사랑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정치적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었다.
--- p.207
역사 안에서 이단시 되었던 사상이 때로는 신앙의 본질에 더 충실했을 때가 있다.
--- p.266
김교신은 신앙대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하루살이’를 추구하였던 만큼 기독교 신앙은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p.271
출판사 리뷰
성서와 조선을 사랑했던 사람
김교신에게 성서와 조선은 융합되어 있다. 그는 평생 민족혼과 성서라는 두 축을 잡고 산 사람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다시 새로워지기 위해 성서와 도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그는 동인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펴낸다. 그가 바라본 조선의 문제는 정치나 경제가 아닌 영적인 것이었다. 조선에 성서를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면 조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지고 갱신될 수 있다고 믿은 그의 생각을 살펴본다. 아울러 조선적 기독교, 김치냄새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상세히 설명한다.
세속을 사는 성자,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일상의 영성’. 김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을 만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일요일이라는 특별한 시간에, 예배당과 같은 구별된 공간에서만 하나님을 대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지은이는 그를 ‘세속 성자’라 부른다. 김교신의 삶에는 성과 속의 구분이 없다.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장소가 된다. 하여 그는 제도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기존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동시에 제도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곳이든 그의 일상은 영성을 일구는 무대가 된 것이다.
김교신에게 성서와 조선은 융합되어 있다. 그는 평생 민족혼과 성서라는 두 축을 잡고 산 사람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다시 새로워지기 위해 성서와 도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그는 동인들과 함께 〈성서조선〉을 펴낸다. 그가 바라본 조선의 문제는 정치나 경제가 아닌 영적인 것이었다. 조선에 성서를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면 조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지고 갱신될 수 있다고 믿은 그의 생각을 살펴본다. 아울러 조선적 기독교, 김치냄새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상세히 설명한다.
세속을 사는 성자,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일상의 영성’. 김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말이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을 만나는 지점이라고 믿었다. 일요일이라는 특별한 시간에, 예배당과 같은 구별된 공간에서만 하나님을 대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지은이는 그를 ‘세속 성자’라 부른다. 김교신의 삶에는 성과 속의 구분이 없다.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거룩한 장소가 된다. 하여 그는 제도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기존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동시에 제도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곳이든 그의 일상은 영성을 일구는 무대가 된 것이다.
추천평
연구 대상에 대한 주관적 존경심과 애정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객관적 거리감을 두고 비평적인 전기를 작성하는 일은 실현이 지극히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일을 훌륭히 해낸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고유하고 독특한 조선산 기독교인 김교신에 대한 최신이자 최선의 연구 중 하나로, 이 책은 반드시 언급되고 인용되고 읽혀야 한다.
- 이재근 (광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이재근 (광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한국 교회는 김교신이 외쳤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환골탈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세상과 세대가 급변하고 있는데, 이를 한탄하는 어리석은 푸념을 버리고 변화와 흐름에 맞추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실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의 『김교신 평전』은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이다.
- 김용재 (강서대학교 총장)
- 김용재 (강서대학교 총장)
우리 아버지 김교신이 한국교회의 지침으로 부활한다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비로소 아버지가 한국교회에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부활시킬 만큼 한국교회가 어려워져 버렸나 하는 한숨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오랫동안 한국교회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참 교회를 회복하려고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라고 믿고 있다. 허울뿐인 교회 말고 성서가 말한 영적 공동체, 참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 말이다. 이 한마디에 김교신 선생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
- 김정옥 (김교신의 넷째 딸)
- 김정옥 (김교신의 넷째 딸)
아직도 선교지에서 이해하기 힘든 서양산 기독교를 퍼뜨리고 있는 선교사들은 왜 성경이 미전도종족에게 불필요한 문화의 짐을 지우지 말라고 하는지, 왜 100년 전 김교신 선생이 조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하자고 했는지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 이계절 (선교사, 인도 예수전도단 최전방선교학교SOFM 교장)
- 이계절 (선교사, 인도 예수전도단 최전방선교학교SOFM 교장)
'47.기독교-개신교 (독학>책소개) > 2.한국기독교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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