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3.프랑스역사문화

프랑스의 과거사 (2008) - 청산 숙청과 기억의 역사, 1944~2004

동방박사님 2024. 6. 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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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벌어진 프랑스의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 문제를 분석한 연구서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너무 많은 것에 비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청산의 성과는 너무나도 적은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책이다.

프랑스의 사례가 우리에게 귀감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의 철저함에 있을 것이다. 단 4년간의 점령기에 대해 해방 이후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무려 60년이나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36년 동안 벌어졌던 변절, 전향, 오판, 체념, 광기, 도취 등이 프랑스에서는 4년간 압축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방 직후 최소한의 친일파 단죄도 이루지 못한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당시 최고위급 인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10만 명의 나치부역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오늘날 프랑스에서 그 시절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저자는 프랑스의 반세기에 걸친 과거사 청산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동일한 과거의 기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변하며, 후대의 정리된 인식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과거 체험과 기억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청산해야 할 과거: ‘암울했던 시절’(1940~1944)

1부 해방 전후의 과거사 청산
1. 숲 속과 거리에서의 응징 / 2. 재판을 통한 처벌 / 3. 공직자 숙청 / 4. 숙청에 들어간 사회 / 5. 평가

2부 반세기 만의 과거사 청산
1. 반민족행위에서 ‘반인륜범죄’로 / 2. 반인륜범죄의 발견: 벨디브 사건 / 3. 레지스탕스 기억과 유대인 기억의 충돌: 바르비 재판 / 4. 사법적 논리와 역사적 진실의 충돌: 투비에 재판 / 5. 최후의 독일강점기 재판: 파퐁 재판 / 6. 평가

3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여론과 기억(1944~2004)
1. 해방 직후의 여론 / 2. 분열된 기억 / 3. 기억의 매체 / 4. 맺음말

부록 : 주(註)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이용우
196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프랑스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과 역사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경인교육대학교, 한신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1997)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주요 저서로 『20세기 프랑스 대파업 연구― 1947년 11~12월 파업을 중심으로』(2005)와 『세계의 과거사 청산』....

관련 자료

제1부 『해방 전후의 과거사 청산』 : 프랑스판 과거사 청산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해방 전후의 대독협력자 숙청’ 자체를 다루었다. 실제 대부분의 부역자 숙청은 해방 직후 몇 년간(1944~1946)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195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 숙청 과정은 약식처형, 부역 여성 삭발식 등의 ‘초법적 숙청’, 재판소에서의 사법처리라는 ‘사법적 숙청’, 부역 공직자 징계에 해당하는 ‘행정 숙청’,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서의 자체 숙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부문에서 극히 다양한 방식으로 벌어졌다. 이 책은 일면 프랑스 과거사 숙청에서 백서(白書)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많은 각종 수치 문제(‘10만 명의 약식처형자’가 대표적)에 대해서는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여 통계에 엄밀성을 기했다.

제2부 『반세기 만의 과거사 청산』 : 최초의 숙청이 있은 후로부터 약 반세기 만인 1980~1990년대에 벌어진 반인륜범죄 재판을 다루었다. 비록 부역죄가 아니라 반인륜범죄라는 새로운 죄목으로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이 재판들은 독일강점기(1940~1944)의 동일한 범죄행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해방 직후의 과거청산과 연속성을 보인다. 게다가 해방 직후 처벌되지 않은 자들이 반세기 만에야 해방 이전의 행위로 법정에 섰다는 면에서, 1부에서 다룬 내용보다 어쩌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최근에 그러한 재판(1997~1998)을 받은 모리스 파퐁은 해방 후 줄곧 정계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예산부장관까지 지낸 인물이기에 파퐁 재판을 둘러싼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로서 좀 더 적실하다 하겠다.

제3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여론과 기억』 : 프랑스인들 스스로는 자국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특히 1부에서 다룬 해방 직후의 대독협력자 숙청 문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1부와 2부에서도 물론 분석과 평가를 수행했지만 그보다는 서술과 소개에 더 역점을 두었다면, 3부에서는 철저히 분석으로 일관했다. 해방 직후 숙청이 한창 벌어질 때 대표적인 찬반논쟁이었던 카뮈―모리악 논쟁(1944~1945)에서부터 2004년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프랑스인의 여론과 기억의 문제를 분석했다.

출판사 리뷰

프랑스의 나치독일 부역자 처벌, 1944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과 프랑스의 최대공통점은 둘 다 해방 후에 점령국에 대한 ‘자국민 협력’ 문제가 주된 청산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협력자들(부역자 혹은 친일파)이 처벌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데 있다. 투철한 신념에 따른 협력, 기회주의적 협력, 신분 상승욕에서 비롯된 협력, 물욕이 빚은 협력, 살아남기 위한 협력, 공포감으로 인한 협력, 강요된 협력, 상명하복에 따른 협력, 공무원으로서의 충실한 의무수행이 낳은 협력, 위장된 협력 등 모든 종류와 모든 동기의 협력이 두 나라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에서 36년 동안 벌어졌던 변절, 전향, 오판, 체념, 광기, 도취 등이 프랑스에서는 4년간 압축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부역자 숙청 문제, 그 기억의 역사
부역자 숙청에 대한 프랑스인의 여론과 기억은 숙청이 한창 진행되던 해방 직후이든, 부역자재판소가 문을 닫은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이든 그다지 좋지 않다. 실망과 불만, 분노와 환멸이 숙청 당시와 그 직후의 반응이었다면 무관심과 침묵, 그리고 일부의 극단적 기억들이 오늘날의 주된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부역이라는 수치스러운 이유 때문에 자국민이 자국민을 처벌했다는 행위를 어떤 기억으로 갈무리해 후대에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해방 이후 60년이 지난 프랑스의 2004년도 역사교과서는 극히 적은 지면에 할애되었던 기존의 몇몇 건조한 서술에서 벗어나 겨우 부역자 숙청의 ‘사진’도 싣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그만큼 숙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은 집단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 기억’을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지배적 기억’ 역시 망각과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몇몇 ‘신화’에 가까운 극단적 기억들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국가가 자국민의 숙청이라는 과거사에 대해서 어린 구성원들에게 전수하고자 하는 모종의 기억보다는 도리어 기억의 전수 자체를 꺼리게 되어버리는 숙청 이후의 후유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부역자 숙청 작업과 한국의 친일파 청산 작업
한국과 프랑스가 처한 역사적 조건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제국일본은 한국(조선)을 명백히 ‘식민지’로 지배했던 반면, 나치독일은 그저 프랑스를 영국과의 전쟁에서 우호적인 ‘협조국’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일제의 한국 지배기간은 36년이었지만 나치독일은 단 4년간만 프랑스를 점령했을 뿐이다. 한국의 해방은 광복군의 개입 이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갑자기 이루어진 반면, 프랑스의 해방은 연합군과 프랑스 국내외의 레지스탕스 전투를 통해 여러 달에 걸쳐 얻어낸 산물이라는 점도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들 때문에 두 나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든가, 프랑스의 사례가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