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3.프랑스이해

프랑스식 전쟁술 (알렉시 제니 장편소설)

동방박사님 2022. 11. 1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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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실,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했어”

전쟁의 야만성을 환상 없이 그려낸 20세기 프랑스의 오디세이아!
우리가 간과한 본질적 가치 훼손에 대한 뼈아픈 고백
2011년 공쿠르상 수상작


2011년 공쿠르상 수상작 알렉시 제니의 장편소설 『프랑스식 전쟁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알렉시 제니는 사십대 후반에 이 작품을 출간하기 전까지 리옹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문학적 이력이 없던 신인작가가 1903년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며, 마르셀 프루스트와 앙드레 말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파스칼 키냐르 등이 수상한 권위 있는 공쿠르상을 거머쥔 것이다. 모두가 놀란 이변이었지만, 치밀하게 잘 짜인 완성도 높은 구조와 글을 다루는 원숙한 기량은 이 작품의 공쿠르상 수상이 행운 덕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가 현대사에서 수행했던 전쟁의 부당함을 묘사하고, 식민주의 전쟁에서 저지른 야만적 행위에 대한 신랄한 고발을 담은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0년대부터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현재의 화자 ‘나’가 바라보는 걸프전과 2005년 리옹 폭동까지 다루고 있어, 1940년대부터 오늘까지의 프랑스를 그려낸 ‘거대한 벽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역사를 체험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차별과 배제와 폭력이 난무하는 프랑스를, 우리 세계를 성찰하게 한다.

명백히 ‘손자병법The Art of War’을 연상시키는 책 제목 ‘프랑스식 전쟁술The French Art of War’은 거대한 환멸과 패배로 귀착한 ‘프랑스식 병법’을 냉소하는 제목이다.

 

목차

주석 Ⅰ 걸프로 출발하는 발랑스 출신 기병들
소설 Ⅰ 쥐들의 일생
주석 Ⅱ 좋았던 시절들이 있었는데 그 시절들을 흘려보냈다
소설 Ⅱ 4월에 관목지대에 오르다
주석 Ⅲ 야간 약국에서 진통제 처방
소설 Ⅲ 알제리 보병 행렬의 시의적절한 도착
주석 Ⅳ 이곳과 그곳
소설 Ⅳ 최초의 경험들, 그로 인한 결과
주석 Ⅴ 눈〔雪〕의 허약한 질서
소설 Ⅴ 핏빛 정원에서의 전쟁
주석 Ⅵ 오래전부터 그녀를 보았네, 하지만 결코 감히 그녀에게 말할 수 없을 거라네
소설 Ⅵ 세 개로 분열된, 육각형의, 십이면체의 전쟁―자기를 먹는 괴물
주석 Ⅶ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죽은 자들의 파세오를 보았네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알렉시 제니 (Alexis Jenni)
 
1963년 리옹에서 태어났으며, 작가가 되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쳤다. 문학적으로 별다른 이력이 없었으나, 2011년 첫 작품 『프랑스식 전쟁술』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메디치상과 페미나상 최종심까지 오르고 공쿠르상을 거머쥔 이 작품은, 역사책과 다큐멘터리, 르포르타주 등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하고 이에 탄탄한 구성을 더해 현대사에서 프랑스가 수행한 전쟁의 의미와 역할에 ...
 
역 : 유치정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아폴리네르와 블랑쇼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상상력과 문화’를 강의하며 신화와 바로크, 그로테스크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읽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며, 가르치는 일을 소중하게 여겨 삶으로 미래로 가져갈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즐겁고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프랑스문학산책』(공저)이, 옮긴 책으로 『빈센트...

 

책 속으로

그들은 집단으로 죽었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이름조차 없었다. 이 전쟁에서 비가 내리듯 죽었고, [……] 이 집단 살해의 당사자 모두 자신이 누구를 죽였는지, 어떻게 그를 죽였는지를 보지 못했다. 시체들은 멀리 있었다. 미사일의 궤도 끝에, 이미 떠나버린 비행기 날개의 저쪽 아래에 있었다. 그것은 살인자의 손에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은 깨끗한 전쟁이었다. [……] 말은 무력하고, 사람들은 이 전쟁에 대해 말하는 법을 전혀 모른다. --- p.27~28

제국주의 전쟁에서 우리는 적들의 사망자 수를 세지 않는다. [……] 그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수를 헤아리지 않는다.
[……] 기계로 사람의 신체를 파괴하는 일에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혼의 소거가 따르게 마련이다. 흔적 없는 살인이 행해지면 살인 자체가 사라진다. 유령들의 수가 축적되고,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 p.31

“나는 그림을 빨리 그립니다. 시간이 날 때면 하루에도 여러 장을 그리죠. 그렇지만 또 많이 잃어버리기도 했고, 잘못 두기도 했고, 잊기도 했고, 버리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퇴각하면서 많은 수색을 벌였죠. 그때는 짐을 꾸릴 여력이 없었고, 짐을 다 가져가지 못해 버리기도 했지요.”
나는 그의 수묵화에 찬탄했다. [……]
“살라뇽 선생님, 제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지요?” --- p.53~54

“전쟁 이후의 침묵은 여전한 전쟁을 뜻하지요. 우리는 사람들이 애써 잊으려고 하던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치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것과 같았지요. 전쟁이 끝난 이후에 태어났다고 해도 그 징후들이 남아 있는 동안 성장한 것이잖아요.” --- p.56

버린 표 때문에 제재를 당한 청년은 흑인이었다. 역이 불탔다.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종은 역이 불타오르기 위해서, 아무런 공통점을 지니지 않는 수백 명의 사람이 피부색으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부족함 없이 존재한다. --- p.221

“[……] 마리아니 안에는 광기 같은 게 있어. 아시아에서 그는 사고를 겪었고, 내면이 찢겨 선이 하나 끊겼지. 계속 고국에 살았다면 아마 그는 온화한 사람이었을 거야. [……] 그것은 그의 영혼에 구멍을 만들었어, 그리고 구멍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그는 구멍을 통해서만 보았는데, 인종 차이도 구멍으로 본 것이지. 우리가 그곳에서 겪은 것은 가장 질긴 천도 찢어놓을 수 있었지.”
“선생님은 아니고요?”
“나는 그림을 그렸지. 그것은 갈기갈기 찢긴 것들을 다시 꿰매는 것과 마찬가지였어.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자문하는 것이기도 해. 내 안의 일부는 언제나 완전히 그곳에 있지 않았어. 내가 그곳에 두지 않았던 부분, 나는 그곳에 삶을 빚지고 있어. 그, 그는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했어. 나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충실한데, 그것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야.” --- p.308~09

드골은 대단한 거짓말쟁이에 뛰어난 소설가로, 우리는 그가 쓴 단 한 문장, 단 한 단어에 의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데도 우리가 승리자인 것처럼 믿었다. 문학적 힘을 지닌 표현으로 그는 우리의 굴욕을 영웅주의로 변형시켰다. 누가 감히 그를 믿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를 믿었다. 그는 말을 너무나 잘했다. 그것은 너무나 적합한 말이었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아주 굳건히 믿었다. 그리고 승리자의 테이블에 앉으려고 왔을 때 우리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개를 데리고 왔고, 우리 힘을 보여주기 위해 개에게 발길질을 했다. 개는 끙끙거렸고, 우리가 계속 개를 때리자 개가 우리를 물었다. --- p.407

독일 군인은 프랑스어로 질문했고, 베트남 독립동맹원은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그중 어느 누구도 프랑스어가 모국어는 아니었지만, 통킹 만에서 프랑스어는 심문을 던질 때 통용되는 언어였다. 이것은 살라뇽에게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을 주었다. 피와 죽음은 현재로선 그와 무관했지만, 그러한 폭력에 자신의 모국어가 쓰이는 일은 무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었고 이러한 폭력을 말하기 위한 단어들은 사라져버릴 수 있었다. 그는 그날 사람들이 그런 단어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를, 침묵이 형성되기를 희망했다. --- p.517

너무나 폭력이 만연하고, 희생자가 넘치고, 사형집행인도 넘쳐나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역사는 불안정하다. 국가는 파괴되고 있다. 만약 국가가 의지와 자부심이라면, 우리의 국가는 굴욕으로 망가졌다. 만약 국가가 공통된 추억이라면, 우리의 국가는 부분적인 추억들로 분해되었다. 만약 국가가 공유하는 삶에 대한 의지라면, 우리의 국가는 구역과 분양지들이 만들어지고 서로 섞이지 않는 소그룹들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분해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서서히 괴로워하면서 죽어간다. --- p.608

“[……] 내가 겪은 인도차이나는 끝을 내는 방법들의 박물관이었어. 사람들은 머리에 총을 맞거나 몸을 관통하는 기관총에 죽고, 빠져나가면서 얼굴을 찢는 포탄 파편 때문에 죽고, 지뢰에 다리를 잃어 죽고, 목표에 명중한 박격포의 일격으로 갈기갈기 찢겨 죽기도 해. 뒤집힌 전차의 고철에 눌려 죽고, 철갑탄 공격에 타버린 은신처에서 죽고, 독이 든 덫에 찔려 죽고, 심지어 더 단순하게?어쩌면 신비롭게도?피로와 열 때문에 죽었어. 나는 모든 것을 겪고 살아남았지.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어. 결국 나는 그다지 책임이 없었던 거야. 나는 마침 모든 것을 피했던 거야. 나는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림이 내가 그럴 수 있게 도왔다고 생각해. 그림이 나를 숨겨주었어.”--- p.569

먹을 가지고 그리는 일은 특별한 감정을 선사한다. 먹은 너무나 잘 번져, 아주 작은 몸짓도 거기에 영향을 끼치고, 한 번의 숨결도 그것을 혼란스럽게 한다. 마치 음료를 마시는 사람의 숨이 잔의 표면을 흔들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배웠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들, 내 삶을 일련의 사건으로 만든 분노들을 이용한다. 나는 서툴지만 힘 있게 그린다. 내가 그린 것은 닮지 않았다. 내 보잘것없는 재능과 붓에 스며든 검은 액체로는 내가 보는 것과 비슷하게 그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먹으로 그리는 그림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고, 존재한다. 각각의 선에서 우리는 그려진 사물의 그림자와 그린 사람의 분노가 담긴 붓질을 본다. --- p.762~63

“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자랑스럽지 않아. 나는 내가 한 일을 해온 셈이고, 그 무엇도 그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어.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정말로 몰랐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지.”
--- p.787~88
 

출판사 리뷰

“빅토리앵 살라뇽은 내게 그림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그 보답으로 그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매사에 무기력하고, 그냥저냥 다니던 회사에서마저 해고당한 뒤 광고지를 돌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는 매일 드나들던 동네 비스트로에서 늘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신문을 보는 괴팍한 노인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예술가들의 장터에서 ‘나’는 그가 파는 그림에 넋을 잃는다. 푼돈에 팔겠다고 내놓은 수많은 수묵화는 전쟁 장면, 전사들의 면모, 각기 다른 시기와 나라의 풍물, 분위기, 삶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 놀라운 그림을 그린 이는 바로 그 모든 전쟁 (1942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과의 전쟁부터 1962년 알제리에서 막을 내린 프랑스 식민전쟁까지 20년간의 전쟁들)에 참전했던 이 노인, 살라뇽이었다.

영광과 치욕이 한데 얽힌 살라뇽의 과거는 곧 프랑스의 현대사로, 그의 이야기는 프랑스가 현대사에서 수행했던 전쟁의 부당함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신랄한 내부 고발이다.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의 야만성에서 구원할 예술의 힘을 믿고 스스로 도움받았던 살라뇽은 화자인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나’는 살라뇽의 추억이 담긴 노트를 토대로 그의 일생을 글로 정리한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시간을 오가며 교차되는데, ‘소설’에서는 전쟁과 모험으로 가득한 살라뇽의 삶이 그려지고, ‘주석’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화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러한 역동적인 구조는 화자와 독자가 거리를 두고 질문을 던져 더 깊은 성찰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빅토리앵 살라뇽’ (소설roman) - 수묵화를 그리는 퇴역 군인

살라뇽은 열일곱 살에 항독 무장단체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이후에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다. 집을 떠나 긴 전쟁을 겪고 귀향한 그는 오디세우스의 모습과 닮았고 그 여정은 프랑스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살라뇽이 만난 여러 나라의 병사들, 프랑스의 전쟁 방식, 강철 장비로 무장한 독일의 전쟁 방식, 첨단 기술이 도입된 미국의 전쟁 방식, 어느 날 전쟁터에 던져져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앳된 젊은이들, 그들이 겪은 참담한 부조리, 처절한 생존을 위해 음식만큼이나 필요했던 성찰과 철학적 언어들…… 살라뇽은 20년간 다양한 전쟁을 보면서, 또 병사로 싸우면서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었고 순간순간을 화폭에 실었다. 전쟁 중 손쉽게 지닐 수 있던 도구 먹과 붓으로.

‘나’ (주석commentaires) - 20세기 잉여 인간

회사도 결근하고 여자 친구 집에서 빈둥대며 텔레비전으로 프랑스군의 걸프전 출정식(1991년)을 보는 ‘나’.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회사에서도 해고된 ‘나’는 무작정 리옹으로 가 전단지를 돌리고 술집을 들르는 것으로 소일하며 지낸다.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살라뇽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살라뇽에게 그림을 배우며 프랑스의 과거와 오늘을 고찰한다. 오늘날 ‘나’는 살라뇽이 들려준 전쟁터의 폭력을 일상에서 접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담긴 폭동은 리옹 변두리의 일상적 모습이 되었다.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게릴라전에 투입된 전사들의 모습이다. ‘나’가 보는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은 살라뇽이 겪은 과거의 이야기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모습은 프랑스만의 모습이 아니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 폭력과 인간성 상실


이 책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전쟁에서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묘사하며 전쟁의 본질과 야만성을 환상 없이 그린다. 생명의 가치와 개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전쟁의 논리로 돌아가는 전시의 모습, 고독, 공포, 평범한 사람의 내면에 감춰진 적의 등이 신랄하고 예리하게, 심오한 통찰과 함께 묘사된다. 이러한 성찰과 반성은 본질적인 가치의 훼손에 대한 뼈아픈 고백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전쟁터의 참상만이 아니다. 전쟁은 당대의 파괴를 넘어, 개인과 사회의 영혼에 남긴 상흔으로 사람들을 옥죄며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전쟁에서 차별과 폭력이라는 부패한 정신에 감염된 사람들은 다른 폭력을 재생산한다. 휴전 상태일 뿐만 아니라, ‘전쟁 트라우마’가 깊숙이 스며들어 사회 여러 부분에서 작동하고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 우리의 현실은 작가의 통찰이 현재 진행 중임을 증명하는 좋은 표본이다.

또한 작가는 전쟁과 같은 거대한 야만과 폭력뿐 아니라, 일상에서 평범한 우리가 행하는 폭력에도 경종을 울린다. 가장 조악하고 위험한 폭력으로서 ‘인종주의’를 예로 들며, 집단적 동질성을 강조하고 차이를 격화시키는 것의 기저에는 식민주의를 만든 야만이 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질서와 안전의 가치를 왜곡된 형태로 내면화한다. 그러나 질서 유지나 사회적 안정성을 강조하며 ‘다른’ 것들을 인정하고 않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나치즘, 파시즘, 폭력의 다른 얼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살라뇽이 지키고 싶었던 인간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평화의 실현, 폭력에 대한 거부이다. 작가는 폭력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폭력을 거부하고 줄여가는 노력을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제시한다. 살라뇽의 삶을 통해 우리는 폭력과 차별은 ‘함께 존재하는’ 기쁨을 망가뜨리며, 외모와 혈통 등, ‘다름’을 본질적인 차이로 만들어 싸우는 일의 부조리함과 무의미를 깨닫는다.

예술과 사랑-전쟁터 같은 삶에서 우리를 구원할 가치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살라뇽의 마지막 선택은 ‘그림을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었다.

제목 ‘프랑스식 전쟁술L’Art francais de la guerre’의 ‘art’는 전쟁술에서는 책략에 불과하지만, ‘예술art’의 세계는 살라뇽을 구원했다. 전쟁터에서 죽음 곁을 서성이던 살라뇽은 그림을 그리며 견디고 살아남았다. 그는 모두의 영혼이 상처입고 소멸되는 전쟁터에서 그림이 자신을 “숨겨주었”고, 그림이 갈기갈기 찢긴 것들을 “꿰매”주었다고 말한다. 그림(예술)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살라뇽을 회복시켜준 구원의 가치이며, 사물의 진실한 가치를 보여주는 세계였다.

살라뇽이 수묵화를 그리는 것은 도구 휴대의 용이함 때문이겠지만, 수묵화라는 그림의 특성에서도 작가의 함의가 짐작된다. 전쟁이 소유와 욕망, 그로 인한 충돌과 힘의 논리가 야만으로 치달은 결과라면, 수묵화는 그 대척점에서 관조와 여백을 추구하는 그림이다. 살라뇽은 수묵화를 그림으로써 ‘비어 있음이 가득 찬 것보다 더 좋다’는 역설을 이해하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며 깊은 사유를 통해 평정에 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터라는 상황에서도 살라뇽에게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 것은 한 여인이었다. 전쟁터에서 만난 운명적인 사랑 에우리디케. 살라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계에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알제리 전쟁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에우리디케를 구출한다. 그리고 더 이상 과거의 치욕과 고통을 돌아보지 않고 그녀 곁에서 충만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작가는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우리를 구원할 가치들은 ‘예술’과 ‘사랑’임을 재확인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