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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편리한데 불편하고, 쾌적한데 불쾌하고, 효율적인데 위험천만하다!”
피임약부터 수세식 변기, 아파트, 에어컨, 플랫폼 노동, 비행기까지
혁신의 끝판왕들이 펼치는 아찔한 사회사
우리 삶은 놀랄 만한 혁신에 기대고 있다. 수세식 변기, 플라스틱, 스마트폰, 에어컨, 플랫폼 노동, 비행기 등 이 책에서 살펴보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은 현대 문명의 거대한 쳇바퀴를 구성하는 일부다. 안락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끈하게 돌아가는 그 쳇바퀴 위에서 쉽게 내려올 수 없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장밋빛 미래를 선사한다는 기술과 사물 앞에서, 개인들은 그저 편리함에 감탄하기 바쁘다. 단순한 기대와 감탄 수준이 아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이거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현대적 삶을 떠받치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의 이면을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가로지르는 책이다. 일상 속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추적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꾸준히 써 온 사회학자 오찬호가 이번에는 ‘혁신’을 키워드로 여러 질문을 던지며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기술과 사회, 개인의 복잡한 관계를 짚는다.
‘왜’ 그것은 혁신인가? 불편함이 줄었으니, 편리함은 늘었을까? 편리해지면서 불편해진 것은 없을까? 혁신 이후 ‘모두’가 좋아졌을까? 불평등과 차별, 혐오의 맥락은 어떻게 변했을까? 저자는 편리함과 안락함 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 쉽게 간과되는 것들에 시선을 두고, ‘혁신’을 향한 사회적 열광에 우려스러운 지점은 없는지 짚는다.
피임약부터 수세식 변기, 아파트, 에어컨, 플랫폼 노동, 비행기까지
혁신의 끝판왕들이 펼치는 아찔한 사회사
우리 삶은 놀랄 만한 혁신에 기대고 있다. 수세식 변기, 플라스틱, 스마트폰, 에어컨, 플랫폼 노동, 비행기 등 이 책에서 살펴보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은 현대 문명의 거대한 쳇바퀴를 구성하는 일부다. 안락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끈하게 돌아가는 그 쳇바퀴 위에서 쉽게 내려올 수 없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장밋빛 미래를 선사한다는 기술과 사물 앞에서, 개인들은 그저 편리함에 감탄하기 바쁘다. 단순한 기대와 감탄 수준이 아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이거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은 현대적 삶을 떠받치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의 이면을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가로지르는 책이다. 일상 속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추적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꾸준히 써 온 사회학자 오찬호가 이번에는 ‘혁신’을 키워드로 여러 질문을 던지며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기술과 사회, 개인의 복잡한 관계를 짚는다.
‘왜’ 그것은 혁신인가? 불편함이 줄었으니, 편리함은 늘었을까? 편리해지면서 불편해진 것은 없을까? 혁신 이후 ‘모두’가 좋아졌을까? 불평등과 차별, 혐오의 맥락은 어떻게 변했을까? 저자는 편리함과 안락함 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 쉽게 간과되는 것들에 시선을 두고, ‘혁신’을 향한 사회적 열광에 우려스러운 지점은 없는지 짚는다.
목차
프롤로그: 타임머신은, 없다
첫 번째 이야기: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Chapter 1. 마려우면 싼다, 마려워도 못 싼다: 수세식 변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Chapter 2. (女) 괜찮을까? (男) 괜찮잖아!: 피임약은 여성을 해방시켰는가
Chapter 3. 본성일까, 예속일까: 화장품 강국이면 마냥 좋은가
Chapter 4. 편리해졌고, 끔찍해졌다: 지금처럼 일하면 플라스틱 못 줄인다
Chapter 5. 약 주고, 병 주고: 진통제를 먹었는데, 왜 마약에 중독되나
두 번째 이야기: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상을 파고든
Chapter 6. 찍혀서 안심이고, 찍히니 불안하다: : CCTV, 그다음은 무엇일까
Chapter 7. 진화해서, 퇴보하다: : 스마트폰이 인간의 생각 회로를 바꾸다
Chapter 8. 가게 주인인데, 가게 주인이 아니다: 프랜차이즈가 동네를 점령하다
Chapter 9. 비쌀수록, 차별하는: 사람 위에 사람 있다, 아파트 요지경
Chapter 10. 건강을 챙길 때, 건강이 강박이 될 때: 헬스장 광고는 왜 무례한가
세 번째 이야기: 엄청나게 빠르고, 믿을 수 없게 편리한
Chapter 11.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다: 에어컨 덕분에, 에어컨 때문에
Chapter 12. 음식을 통제하고, 음식에 당하다: 냉장고에 코끼리가 곧 들어갑니다
Chapter 13.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위험하다: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입니다
Chapter 14. 소비자는 편해지고, 노동자는 무너지고: 플랫폼 노동,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는다
Chapter 15. 갈 곳이 많아지고, 간 곳은 파괴되고: 하늘에 비행기가 빼곡해지니
에필로그 : 혁신적이고, 파괴적이다
첫 번째 이야기: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Chapter 1. 마려우면 싼다, 마려워도 못 싼다: 수세식 변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Chapter 2. (女) 괜찮을까? (男) 괜찮잖아!: 피임약은 여성을 해방시켰는가
Chapter 3. 본성일까, 예속일까: 화장품 강국이면 마냥 좋은가
Chapter 4. 편리해졌고, 끔찍해졌다: 지금처럼 일하면 플라스틱 못 줄인다
Chapter 5. 약 주고, 병 주고: 진통제를 먹었는데, 왜 마약에 중독되나
두 번째 이야기: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상을 파고든
Chapter 6. 찍혀서 안심이고, 찍히니 불안하다: : CCTV, 그다음은 무엇일까
Chapter 7. 진화해서, 퇴보하다: : 스마트폰이 인간의 생각 회로를 바꾸다
Chapter 8. 가게 주인인데, 가게 주인이 아니다: 프랜차이즈가 동네를 점령하다
Chapter 9. 비쌀수록, 차별하는: 사람 위에 사람 있다, 아파트 요지경
Chapter 10. 건강을 챙길 때, 건강이 강박이 될 때: 헬스장 광고는 왜 무례한가
세 번째 이야기: 엄청나게 빠르고, 믿을 수 없게 편리한
Chapter 11.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다: 에어컨 덕분에, 에어컨 때문에
Chapter 12. 음식을 통제하고, 음식에 당하다: 냉장고에 코끼리가 곧 들어갑니다
Chapter 13.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위험하다: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입니다
Chapter 14. 소비자는 편해지고, 노동자는 무너지고: 플랫폼 노동,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지 않는다
Chapter 15. 갈 곳이 많아지고, 간 곳은 파괴되고: 하늘에 비행기가 빼곡해지니
에필로그 : 혁신적이고, 파괴적이다
책 속으로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기대와 감탄을 반복했다. 우리는 “이런 게 개발되면 좋겠다.”라거나 “우와, 별 게 다 있네. 세상 좋아졌다.”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뱉으면서 살아간다. 기술 하나로 당장 생활이 편리해지는 걸 느끼니, 짜릿하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물건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겠는가. 과학기술과 혁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엉켜서 부유하는 이유일 거다. 혁신이란 단어는 어감부터가 긍정적 의지와 궐기가 듬뿍 느껴진다. 영어 단어 ‘이노베이션(innovation)’에서는 신선함과 경쾌함이 동시에 분출된다. 그래서 쉽사리 고결하게 규정된다. 이는 혁신적인 것에는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운으로 이어진다. 이 공기 아래서 개인들은 그저 편리함에 감사하기만 바쁘다. 정말로 혁신적인가를 따져 묻지 않는다. 편리한 현재에 대한 질문과 고민은 기술 발전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성찰하고 개선하자는 의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프롤로그: 타임머신은, 없다」 중에서
피임약 덕분에 여성은 성에서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피임약 때문에 여전히 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약만 먹으면 걱정 없다’는 표현이 당연해지니, 여성이라면 꼬박꼬박 피임약을 챙겨 먹으며 임신을 스스로 예방해야 하는 것도 당연해졌다. 여성이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걱정하면 상대 남자는 누구이고, 그 남자는 피임을 왜 안 했냐, 가임기라 불안하다고 말했는데도 관계를 원한 것 아니냐 등등의 질문이 나와야 하는데 “피임약 왜 안 먹었어?”라는 추궁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성은 당연히 스스로 임신할 수 없다”.
--- 「Chapter 2. (女) 괜찮을까? (男) 괜찮잖아!」 중에서
아마존의 환경 파괴를 세상에 알리다가 농장 지주에게 암살당한 노동자이자 환경 운동가 시쿠 멘지스(Chico Mendes)가 말하지 않았던가. 계급투쟁 없는 환경 운동은 단지 정원 가꾸기에 불과하다고(Environmentalism
without class struggle is just gardening). 과격한가? 계급, 투쟁이란 단어를 붙들고 해석하진 않겠다. 중요한 건, 불평등에 찬성하고 경쟁을 찬양하면서 환경을 걱정해 봤자 효과가 없다는 거다. 불편한 자본주의와 싸우는 게 불편하다면, 차라리 이 모든 환경 걱정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믿는 게 솔직하다.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어도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본인이 종이컵 사용을 자제할 순 있지만, ‘그러면서’ 일회용품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건 망상이다.
--- 「Chapter 4. 편리해졌고, 끔찍해졌다」 중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 앤 케이스(Anne Case)가 제시한 절망사(deaths of despair) 개념은 한국 사회가 오피오이드 문제를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준다. ‘절망사’는 사람들이 죽는 선택, 혹은 죽을 수도 있는 나쁜 선택을 하는 원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고자 한다. 저자들은 저학력 백인 하층 노동자의 생애에 주목한다. 이들은 제조업이 버텨 줄 때는 그럭저럭 먹고살지만,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당연함 다음에 ‘오피오이드 중독’이 이어진다. 중독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 의지의 문제지만, 그 의지는 절망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쪼그라든다. 그래서 사회적이다. 저자들은 절망사를 다룬 책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한국어판에서 한국의 자살률과 미국의 절망사는 배경이 비슷하다며 이렇게 묻는다. 한국인들이 ‘사회적 안식처(social mooring)’로부터 단절되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런 게 존재는 하냐고. 당신에겐 있는가?
--- 「Chapter 5. 약 주고, 병 주고」 중에서
스마트폰은 매해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30만 화소 카메라가 휴대폰에 달렸다고 신기해하던 게 20여 년 전인데, 지금은 2억 화소다. 용량도 어마어마하다. 사진, 동영상, 문서 등 휴대폰에 쌓인 온갖 데이터를 컴퓨터에 케이블을 연결해 전송할 필요도 없다. 몇 번 이것저것 누르면 알아서 어딘가에 저장된다. 이 깔끔함은 가끔 친환경적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진만 보더라도, 과거처럼 종이가 필요 없다. 두꺼운 앨범에 모으지도 않는다. 그러니 환경을 덜 파괴했을 거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디지털 인프라를 둘러싼 국가, 기업, 환경문제 간의 지정학』의 저자 기욤 피트롱(Guillaume Pitron)은 그건 다 착각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다. 이 책의 원제는 ‘디지털 지옥(L’Enfer numerique)’인데 한국어판 제목에서 지옥의 의미가 훨씬 잘 드러난다. 지옥은, 지옥인 줄 모르는 사람들 덕택에 더 뜨거워지니까 말이다.
--- 「Chapter 7. 진화해서, 퇴보하다」 중에서
그러니까 아파트는 사회문제지만,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기어코 아파트를 선호하는 터라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설움에 복받친 이들은 ‘당해 보니 부동산이 답’이라면서 이 악순환의 선순환에 적극 뛰어든다. 똘똘한 아파트를 구해야 한다, 이왕이면 브랜드가 좋아야 한다, LH는 절대 안 된다 등등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아파트는 이 글을 보고 비웃을 거다. 아파트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구절처럼.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다.”
--- 「Chapter 9. 비쌀수록, 차별하는」 중에서
운동은 그 덕택에 일상을 나태하지 않게 보낼 확률을 효과적으로 높이지만, 그게 반대쪽의 나태함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운동을 하는 이에게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 ‘고통을 이겨 내고 정신승리 한 사람’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곤 한다”. 운동으로 몸을 바꾸면, 많은 관심과 칭찬이 쏟아진다. 달콤하다. 이 달콤함이 선을 넘게 한다.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니, 운동의 효능은 다른 효능에 비해서 사람에게 더 맘대로 말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유독 운동 권유만큼은 사람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예의를 건너뛸 때가 많다. (…) 운동의 효과를 말하고픈 이들의 들뜬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운동 때문에 정신이 맑아졌다는 간증이, 운동을 안 하는 이들은 정신이 맑지 않다는 ‘맑지 않은’ 논리로 이어져서야 되겠는가.
--- 「Chapter 10. 건강을 챙길 때, 건강이 강박이 될 때」 중에서
사회가 불평등하면, 에어컨을 언제든지 틀 수 있는 사람의 ‘틀지 않겠다’는 다짐과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 수 없는 사람의 푸념이 공존한다. 이 본질을 외면하고, 에어컨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만 부각되어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 ‘친환경적’이라며 주목받는 식으로는 지구의 기온을 되돌릴 수 없다. (…) 그러니 답은 에어컨에 없다.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왜 에어컨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는지’다. 나아가 불평등에 둔감하면 아무것도 해결될 것은 없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답답해할 거다. 그 답답함도 에어컨의 맥락에 담자는 거다. 에어컨을 파괴하자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쾌적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어 ‘위대한 발명품’이란 표현만 남발할 때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지는 걸 경계하자는 거다.
--- 「Chapter 11.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다」 중에서
플랫폼 노동으로 먹고살면서 부당함에 항의하고 개선을 바라는 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선택지는 하나만 남는다. 일을 하든가 말든가. 그런데 이 끔찍한 현실이 종종 ‘논리’로 둔갑해 이런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토론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학생도, 심지어 중학생도 이런다.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요. 누가 강제로 시켰나요?” (…) 혁신이란 말이 넘쳐 나면서 노동은 더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분명해졌다. 소수의 누군가가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면, 다수의 노동자들은 전보다 더 통제받으며 밥벌이를 한다. “싫으면 하지 마!”는 이런 구조를 외면하는 빈정거림에 불과하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Chapter 14. 소비자는 편해지고, 노동자는 무너지고」 중에서
비행기가 없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해외(海外)’는 한자 그대로 바다 저 멀리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지 않았겠는가. 코로나 이전,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탑승한 사람은 45억 명에 육박했다. 관광 목적으로 해외를 방문하는 사람은 14억 명인데, 이 중 58퍼센트가 항공기를 이용했다. 지구촌 곳곳이 연결되니, 선순환만 있었을까? 연간 3,000만 명이 방문하는 바르셀로나에는 “Tourism kills the city(여행이 도시를 죽인다)”, “Tourist go home!(관광객은 집에 가라!)” 등의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다. 가우디성당이 잘 보이는 구엘공원 전망대 근처의 큰 돌에는 “Tourist: your luxury trip my daily misery”라는 글귀가 쓰여 있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누군가의 팔자 좋은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불행이라는 거다.
--- 「프롤로그: 타임머신은, 없다」 중에서
피임약 덕분에 여성은 성에서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피임약 때문에 여전히 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약만 먹으면 걱정 없다’는 표현이 당연해지니, 여성이라면 꼬박꼬박 피임약을 챙겨 먹으며 임신을 스스로 예방해야 하는 것도 당연해졌다. 여성이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걱정하면 상대 남자는 누구이고, 그 남자는 피임을 왜 안 했냐, 가임기라 불안하다고 말했는데도 관계를 원한 것 아니냐 등등의 질문이 나와야 하는데 “피임약 왜 안 먹었어?”라는 추궁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성은 당연히 스스로 임신할 수 없다”.
--- 「Chapter 2. (女) 괜찮을까? (男) 괜찮잖아!」 중에서
아마존의 환경 파괴를 세상에 알리다가 농장 지주에게 암살당한 노동자이자 환경 운동가 시쿠 멘지스(Chico Mendes)가 말하지 않았던가. 계급투쟁 없는 환경 운동은 단지 정원 가꾸기에 불과하다고(Environmentalism
without class struggle is just gardening). 과격한가? 계급, 투쟁이란 단어를 붙들고 해석하진 않겠다. 중요한 건, 불평등에 찬성하고 경쟁을 찬양하면서 환경을 걱정해 봤자 효과가 없다는 거다. 불편한 자본주의와 싸우는 게 불편하다면, 차라리 이 모든 환경 걱정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믿는 게 솔직하다.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어도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본인이 종이컵 사용을 자제할 순 있지만, ‘그러면서’ 일회용품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건 망상이다.
--- 「Chapter 4. 편리해졌고, 끔찍해졌다」 중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과 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 앤 케이스(Anne Case)가 제시한 절망사(deaths of despair) 개념은 한국 사회가 오피오이드 문제를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준다. ‘절망사’는 사람들이 죽는 선택, 혹은 죽을 수도 있는 나쁜 선택을 하는 원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고자 한다. 저자들은 저학력 백인 하층 노동자의 생애에 주목한다. 이들은 제조업이 버텨 줄 때는 그럭저럭 먹고살지만,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 당연함 다음에 ‘오피오이드 중독’이 이어진다. 중독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 의지의 문제지만, 그 의지는 절망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쪼그라든다. 그래서 사회적이다. 저자들은 절망사를 다룬 책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한국어판에서 한국의 자살률과 미국의 절망사는 배경이 비슷하다며 이렇게 묻는다. 한국인들이 ‘사회적 안식처(social mooring)’로부터 단절되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런 게 존재는 하냐고. 당신에겐 있는가?
--- 「Chapter 5. 약 주고, 병 주고」 중에서
스마트폰은 매해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30만 화소 카메라가 휴대폰에 달렸다고 신기해하던 게 20여 년 전인데, 지금은 2억 화소다. 용량도 어마어마하다. 사진, 동영상, 문서 등 휴대폰에 쌓인 온갖 데이터를 컴퓨터에 케이블을 연결해 전송할 필요도 없다. 몇 번 이것저것 누르면 알아서 어딘가에 저장된다. 이 깔끔함은 가끔 친환경적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진만 보더라도, 과거처럼 종이가 필요 없다. 두꺼운 앨범에 모으지도 않는다. 그러니 환경을 덜 파괴했을 거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디지털 인프라를 둘러싼 국가, 기업, 환경문제 간의 지정학』의 저자 기욤 피트롱(Guillaume Pitron)은 그건 다 착각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다. 이 책의 원제는 ‘디지털 지옥(L’Enfer numerique)’인데 한국어판 제목에서 지옥의 의미가 훨씬 잘 드러난다. 지옥은, 지옥인 줄 모르는 사람들 덕택에 더 뜨거워지니까 말이다.
--- 「Chapter 7. 진화해서, 퇴보하다」 중에서
그러니까 아파트는 사회문제지만,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기어코 아파트를 선호하는 터라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설움에 복받친 이들은 ‘당해 보니 부동산이 답’이라면서 이 악순환의 선순환에 적극 뛰어든다. 똘똘한 아파트를 구해야 한다, 이왕이면 브랜드가 좋아야 한다, LH는 절대 안 된다 등등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아파트는 이 글을 보고 비웃을 거다. 아파트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구절처럼.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다.”
--- 「Chapter 9. 비쌀수록, 차별하는」 중에서
운동은 그 덕택에 일상을 나태하지 않게 보낼 확률을 효과적으로 높이지만, 그게 반대쪽의 나태함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운동을 하는 이에게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 ‘고통을 이겨 내고 정신승리 한 사람’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곤 한다”. 운동으로 몸을 바꾸면, 많은 관심과 칭찬이 쏟아진다. 달콤하다. 이 달콤함이 선을 넘게 한다.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니, 운동의 효능은 다른 효능에 비해서 사람에게 더 맘대로 말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유독 운동 권유만큼은 사람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예의를 건너뛸 때가 많다. (…) 운동의 효과를 말하고픈 이들의 들뜬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운동 때문에 정신이 맑아졌다는 간증이, 운동을 안 하는 이들은 정신이 맑지 않다는 ‘맑지 않은’ 논리로 이어져서야 되겠는가.
--- 「Chapter 10. 건강을 챙길 때, 건강이 강박이 될 때」 중에서
사회가 불평등하면, 에어컨을 언제든지 틀 수 있는 사람의 ‘틀지 않겠다’는 다짐과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 수 없는 사람의 푸념이 공존한다. 이 본질을 외면하고, 에어컨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만 부각되어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 ‘친환경적’이라며 주목받는 식으로는 지구의 기온을 되돌릴 수 없다. (…) 그러니 답은 에어컨에 없다.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왜 에어컨 없이 살 수 없게 되었는지’다. 나아가 불평등에 둔감하면 아무것도 해결될 것은 없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답답해할 거다. 그 답답함도 에어컨의 맥락에 담자는 거다. 에어컨을 파괴하자는 게 아니라, 순간적인 쾌적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어 ‘위대한 발명품’이란 표현만 남발할 때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지는 걸 경계하자는 거다.
--- 「Chapter 11.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다」 중에서
플랫폼 노동으로 먹고살면서 부당함에 항의하고 개선을 바라는 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선택지는 하나만 남는다. 일을 하든가 말든가. 그런데 이 끔찍한 현실이 종종 ‘논리’로 둔갑해 이런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토론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학생도, 심지어 중학생도 이런다.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요. 누가 강제로 시켰나요?” (…) 혁신이란 말이 넘쳐 나면서 노동은 더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분명해졌다. 소수의 누군가가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면, 다수의 노동자들은 전보다 더 통제받으며 밥벌이를 한다. “싫으면 하지 마!”는 이런 구조를 외면하는 빈정거림에 불과하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Chapter 14. 소비자는 편해지고, 노동자는 무너지고」 중에서
비행기가 없었다면, 많은 이들에게 ‘해외(海外)’는 한자 그대로 바다 저 멀리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지 않았겠는가. 코로나 이전, 전 세계에서 비행기를 탑승한 사람은 45억 명에 육박했다. 관광 목적으로 해외를 방문하는 사람은 14억 명인데, 이 중 58퍼센트가 항공기를 이용했다. 지구촌 곳곳이 연결되니, 선순환만 있었을까? 연간 3,000만 명이 방문하는 바르셀로나에는 “Tourism kills the city(여행이 도시를 죽인다)”, “Tourist go home!(관광객은 집에 가라!)” 등의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다. 가우디성당이 잘 보이는 구엘공원 전망대 근처의 큰 돌에는 “Tourist: your luxury trip my daily misery”라는 글귀가 쓰여 있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누군가의 팔자 좋은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불행이라는 거다.
--- 「Chapter 15. 갈 곳이 많아지고, 간 곳은 파괴되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은 정말 위대할까?
‘세상을 놀라게 한 사물’은 정말 경이로울까?
“진보는 언제나 이겨.”(빅터 호스킨스)
“그럼 한 번쯤 진보가 지면 되겠네.”(오웬 그래디)
―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 오류가 축적되면서 생겨났고, 인간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에어컨을 비롯해 냉장고·스마트폰·CCTV 같은 각종 전자 기기는 물론이거니와 피임약·화장품·진통제·플라스틱 같은 화학 제품, 나아가 수세식 변기 같은 비교적 단순한 도구부터 원자력발전·비행기 같은 거대과학(big science)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삶을 구성하는 이 기술들에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혹은 ‘세상을 놀라게 한 사물’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 처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혜가 고스란히 들어갔으며, 등장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류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을 통해 삶의 많은 조건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분명 우리의 현재는 과거보다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하지만 “빛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저자는 “혁신이란 단어는 어감부터가 긍정적 의지와 궐기가 듬뿍 느껴진다”며 과학기술과 혁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엉켜서 부유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혁신적인 것에는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순간적인 쾌적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어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표현만 남발하면, 미래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는 지극히 ‘혁신적’인 동시에 극도로 ‘파괴적’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던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이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된 상황, ‘스마트하다’는 기계(스마트폰)가 엉터리 뉴스 하나 못 거르는 세상, 세련되어 보이는 디지털 시스템이 여전히 화석 에너지를 쓰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 등을 우리는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 책은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놓칠 수밖에 없는 이면이 반드시 존재한다면서, 과거보다 나아졌으니 모든 걸 긍정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편리한 현재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의 필요와 욕망으로 뒤덮인 세계
“우리는 편리, 효율, 풍요를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이 책은 혁신적 기술이 작동하는 폭넓고 복잡한 배후를 파고들며, 우리의 안락한 현재를 만든 혁신의 도구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부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에서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는 현대인의 유용한 사물들을 불러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도와주는 수세식 변기, 덜컥 임신하지 않도록 해 주는 피임약, 자존감을 유지시켜 주는 화장품, 아픈 나의 어제와 오늘을 견디게 해 주는 진통제, 간편한 소비 생활에 필수적인 플라스틱 등 별탈 없는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사물들이다. 저자는 너무도 사소하면 그 당연함에 덮인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 둔감해진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항상 만나는 물건을 주제 삼아 편리함에 중독된 세계의 이면을 뜯어본다.
2부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상을 파고든’에서는 획기적이라고 찬사받는 현대적 생활양식의 놀랍도록 균질한 속살을 들여다본다. 물질문명의 세례를 풍족하게 누리는 세상은 자유와 개성이 넘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전국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고, 똑똑하다는 스마트폰으로 남들 다 하는 것에만 접속하고, 헬스장을 드나들며 타인과의 비교로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이 모두의 하루는 예외 없이 CCTV에 찍힌다. 우리의 일상은 더 똑똑해졌을까? 우리의 권리는 더 보장받고 있을까? 저자는 무덤덤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사회의 무서운 법칙을 짚어 본다.
마지막으로 3부 ‘엄청나게 빠르고, 믿을 수 없게 편리한’에서는 효율성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신기술의 이면을 다룬다.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를 잔뜩 쌓아 두고, 에어컨으로 더운 여름을 거뜬히 나고, 원자력발전소 덕택에 값싸게 전기를 쓰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는 우리의 빠르고 편리한 삶을 되짚으며, 삶의 편의를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전진이 마냥 좋은 것인지 질문한다. 챕터마다 주제에 대한 사회적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이 제공된다. 이슈와 연관된 설문 조사 결과, 각종 통계 자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년도, 언론에 보도된 사건, 관련 연구 데이터 등을 직관적이고 압축적인 이미지로 보여 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는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감각을 키워 주는 한편,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세계의 모습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혁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술의 힘과 속도에 압도되지 않는 자세다. 저자는 “수백 년간 끙끙거렸던 고민을 해결하면서, 수천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거리를 만들어” 내는 인류의 모습에 시선을 두고 “더 잘사는 시스템과 더 못사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하는” 혁신의 역설을 예민하게 드러낸다. 기발하다는 ‘수세식 변기’를 발명해 놓고 일하다 똥도 제대로 못 싸는 이들 앞에서 눈감는 사회, 여성해방의 기폭제가 된 ‘피임약’이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전가하는 근거가 되어 버린 모순적인 현실, ‘화장품’ 바르는 행위를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라 칭송하면서 정작 화장 안 할 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진통제’의 중독성을 제때 제어하지 못한 사회는 쏙 빼 놓고 약물 남용을 오롯이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현실 등을 가로지르며 혁신의 급류를 탄 세상의 이면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불평등과 차별, 혐오에 예민한 사회학자의 감각이 시종일관 책을 관통한다. ‘혁신’의 꼬리표를 단 것들은 하나같이 매끈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등장하지만, 한 겹만 벗겨내도 불평등의 사례가 끝없이 펼쳐진다. 사회적 불평등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사물 하나로 단숨에 해결이 불가능한 근본 모순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기업과 투자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다수의 노동자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몬 ‘플랫폼 노동’의 등장이 이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범죄 예방의 탁월한 도구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은 CCTV 역시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에 기초한 감시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삶 곳곳을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오는 기술의 위세에 휘말리지 않고, 혁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사물’은 정말 경이로울까?
“진보는 언제나 이겨.”(빅터 호스킨스)
“그럼 한 번쯤 진보가 지면 되겠네.”(오웬 그래디)
―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 오류가 축적되면서 생겨났고, 인간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에어컨을 비롯해 냉장고·스마트폰·CCTV 같은 각종 전자 기기는 물론이거니와 피임약·화장품·진통제·플라스틱 같은 화학 제품, 나아가 수세식 변기 같은 비교적 단순한 도구부터 원자력발전·비행기 같은 거대과학(big science)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삶을 구성하는 이 기술들에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혹은 ‘세상을 놀라게 한 사물’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 처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혜가 고스란히 들어갔으며, 등장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류는 혁신적 기술과 사물을 통해 삶의 많은 조건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분명 우리의 현재는 과거보다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하지만 “빛만 있는 건 아닐 거다”. 저자는 “혁신이란 단어는 어감부터가 긍정적 의지와 궐기가 듬뿍 느껴진다”며 과학기술과 혁신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엉켜서 부유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혁신적인 것에는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순간적인 쾌적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어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표현만 남발하면, 미래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는 지극히 ‘혁신적’인 동시에 극도로 ‘파괴적’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던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이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된 상황, ‘스마트하다’는 기계(스마트폰)가 엉터리 뉴스 하나 못 거르는 세상, 세련되어 보이는 디지털 시스템이 여전히 화석 에너지를 쓰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현실 등을 우리는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 책은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놓칠 수밖에 없는 이면이 반드시 존재한다면서, 과거보다 나아졌으니 모든 걸 긍정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편리한 현재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의 필요와 욕망으로 뒤덮인 세계
“우리는 편리, 효율, 풍요를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이 책은 혁신적 기술이 작동하는 폭넓고 복잡한 배후를 파고들며, 우리의 안락한 현재를 만든 혁신의 도구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부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에서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는 현대인의 유용한 사물들을 불러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도와주는 수세식 변기, 덜컥 임신하지 않도록 해 주는 피임약, 자존감을 유지시켜 주는 화장품, 아픈 나의 어제와 오늘을 견디게 해 주는 진통제, 간편한 소비 생활에 필수적인 플라스틱 등 별탈 없는 하루를 위해 꼭 필요한 사물들이다. 저자는 너무도 사소하면 그 당연함에 덮인 문제를 직시하는 것에 둔감해진다고 지적하며, 우리가 항상 만나는 물건을 주제 삼아 편리함에 중독된 세계의 이면을 뜯어본다.
2부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상을 파고든’에서는 획기적이라고 찬사받는 현대적 생활양식의 놀랍도록 균질한 속살을 들여다본다. 물질문명의 세례를 풍족하게 누리는 세상은 자유와 개성이 넘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전국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고, 똑똑하다는 스마트폰으로 남들 다 하는 것에만 접속하고, 헬스장을 드나들며 타인과의 비교로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이 모두의 하루는 예외 없이 CCTV에 찍힌다. 우리의 일상은 더 똑똑해졌을까? 우리의 권리는 더 보장받고 있을까? 저자는 무덤덤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사회의 무서운 법칙을 짚어 본다.
마지막으로 3부 ‘엄청나게 빠르고, 믿을 수 없게 편리한’에서는 효율성과 편리함으로 무장한 신기술의 이면을 다룬다.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를 잔뜩 쌓아 두고, 에어컨으로 더운 여름을 거뜬히 나고, 원자력발전소 덕택에 값싸게 전기를 쓰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는 우리의 빠르고 편리한 삶을 되짚으며, 삶의 편의를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전진이 마냥 좋은 것인지 질문한다. 챕터마다 주제에 대한 사회적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이 제공된다. 이슈와 연관된 설문 조사 결과, 각종 통계 자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년도, 언론에 보도된 사건, 관련 연구 데이터 등을 직관적이고 압축적인 이미지로 보여 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는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감각을 키워 주는 한편,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세계의 모습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혁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술의 힘과 속도에 압도되지 않는 자세다. 저자는 “수백 년간 끙끙거렸던 고민을 해결하면서, 수천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거리를 만들어” 내는 인류의 모습에 시선을 두고 “더 잘사는 시스템과 더 못사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하는” 혁신의 역설을 예민하게 드러낸다. 기발하다는 ‘수세식 변기’를 발명해 놓고 일하다 똥도 제대로 못 싸는 이들 앞에서 눈감는 사회, 여성해방의 기폭제가 된 ‘피임약’이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전가하는 근거가 되어 버린 모순적인 현실, ‘화장품’ 바르는 행위를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라 칭송하면서 정작 화장 안 할 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진통제’의 중독성을 제때 제어하지 못한 사회는 쏙 빼 놓고 약물 남용을 오롯이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현실 등을 가로지르며 혁신의 급류를 탄 세상의 이면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불평등과 차별, 혐오에 예민한 사회학자의 감각이 시종일관 책을 관통한다. ‘혁신’의 꼬리표를 단 것들은 하나같이 매끈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등장하지만, 한 겹만 벗겨내도 불평등의 사례가 끝없이 펼쳐진다. 사회적 불평등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사물 하나로 단숨에 해결이 불가능한 근본 모순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기업과 투자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다수의 노동자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몬 ‘플랫폼 노동’의 등장이 이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범죄 예방의 탁월한 도구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은 CCTV 역시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에 기초한 감시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삶 곳곳을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오는 기술의 위세에 휘말리지 않고, 혁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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