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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이야기한다 (2024) - 20세기 한국 민중 서사

동방박사님 2024. 8. 12.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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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중은 이야기한다”
사회학자 김경일 교수의
《한국 사회사》 가운데 두 번째 ‘민중’ 편

중상층 위주의 주류 근대화 서사 너머
한국 근대화의 심층을 관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한국 근대화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산업화 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하고 민주화 대오에서 과거의 악습을 척결하는 데 앞장섰던 이들일까. 이들은 근대화의 적극적 추진자, 최대 수혜자 그리고 사회 주류층으로서 발전되고 민주화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하고 굳건한 한국 근대화의 주류 서사를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화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층 민중들의 자아 인식과 자의식 문제를 탐구한다. 전통 시대에는 백성이나 민(民), 서민이나 서류(庶流), 하층, 기층 그리고 최근에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이나 소수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역사에서 호명되어온 이들이다. 대체로 생애 주기 전반을 통해 생존에의 집요한 의지나 삶에 대한 능동성을 가지고 근대를 살아간 실체였으되, 억압과 한으로서의 민중 지향은 있을지언정, 일정한 목적의식과 가치가 함축된 민중 개념에 흔히 따르는 사회 현실 비판이나 저항의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존재들이다. 가난하고 고되며, 소외되고 억압받던 주변인의 일상이 늘 이들을 지배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민중자서전’이나 ‘민중열전’ 등으로 기획된 르포, 인터뷰 속 민중 구술 자료들을 전거 삼아 평범한 사람들이 털어놓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근대화 이면의 서사를 재구축한다. 그리고 세대ㆍ성ㆍ계급/계층이란 세 변수를 주요 지표로 상정해, 근대화의 시기를 살아온 민중 각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구현해왔는지, 그러한 경험과 기억이 투사하는 시대상과 사회상의 실제는 어떠했는지 심층 분석해나간다. 무엇보다 이렇게 재구성된 대안의 민중 서사는 기존의 주류 서사 및 연구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걸어온 근대화 과정을 되짚어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한국 근대화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는지. 『근대를 살다: 한국 근대의 인물과 사상』과 함께 《한국 사회사》 2부작을 구성하는,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마흔네 번째 책이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제1부 구술사와 민중 생애사

1. 민중 개념과 계보
2. 민중 생활과 구술 생애사

|제1장| 시대 배경과 공간 조건
1. 시공간의 제약
2. 일과 생계
3. 재생산과 교육 기회
4. 빈곤과 결핍

|제2장| 가족과 젠더
1. 가족의 해체와 이산
2. 아버지의 부재
3. 가족주의와 가부장제
4. 남녀 차별과 젠더

|제3장| 성과 사랑, 결혼
1. 성과 인종, 계급, 권력의 교차
2. 자유로운 성과 친밀함의 이상과 역설
3. 결혼의 실제와 양상

|제4장| 의식의 형태와 층위
1. 전통과 신성: 미신
2. 전통과 신성: 속설ㆍ통념
3. 전통과 신성: 전설과 설화
4. 근대와 세속: 종교
5. 근대와 세속: 신념과 윤리
6. 근대와 세속: 이념과 정치

제2부 근대화 초기 기록 서사와 민중

1. 기록 서사의 형성과 전개
2.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기록 서사와 르포

|제5장| 근대화 초기 기층 민중의 현실과 빈곤
1. 기층 민중의 내용과 서민의 얼굴
2. 빈곤의 효과와 집단 심성

|제6장| 기층 민중의 생계와 가족의 생존 전략
1. 가계와 빈곤의 실상
2. 결핍과 빈곤에서 살아남기
3. 가족의 생존 전략과 젠더 불평등

|제7장| 민중 생활에서 노동과 기술
1. 기술의 내용과 특성
2. 기술의 동기와 계기
3. 민중 기술의 현실과 생계
4. 기술의 이중성과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참고자료|찾아보기
수록 도판 크레디트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총서 ‘知의회랑’ 총목록

저자 소개

저 : 김경일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덕성여대 교수, 미국의 뉴욕주립대 Binghamton와 프랑스의 파리 인간과학연구소Maison des Sciences de L'Homme에서 후기박사과정, 일본 동경대학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미국 버클리대학, 워싱턴대학 교류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사회사와 사회사상, 역사사회학, 동아시아론...

책 속으로

한국의 경우를 보면, 예컨대 전통 시대에 대한 역사 서술의 주류는 지배 계급과 양반 문화 혹은 유교 같은 사회 상류층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왔다. 공식 역사나 지배 계급의 역사 서술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선별하여 강조하는 ‘빛나는 과거 유산’이나 전통은 이들 상류층에 속하는 것이었지, 결코 민중이나 하층민의 것은 될 수 없었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두 가지 주요 계기, 즉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란 거대 서사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주요 인물들에서 이들 민중의 역할이나 그에 대한 의미 부여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경향은 전 지구 차원에서 한류가 융성하고, 팬데믹 이후 도리어 한편에선 자본의 풍요가 온오프 미디어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인간의 생존 조건은 시공간의 특정 맥락에 제약 받는 숙명을 지닌다. 민중 구술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개인에게 주어진 사회ㆍ경제 조건에 따라 자신이 위치한 시공간 범위와 성격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 「제1장 시대 배경과 공간 조건」 중에서

이처럼 가난은 정치 영역에 대한 본능적인 기피와 무관심을 초래하였다. 보통 특정한 시대 조건은 그 시대 정치 무관심을 결정하며, 거꾸로 그 시대의 정치 무관심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 시기 정치 무관심은 정치 과정으로부터의 소외와 그에 따른 일정한 피해의식을 반영하여 정치에 대한 고의적인 외면과 회피를 수반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회의와 부정과 도피로서의 성격이 짙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정치 무관심은 개체와 그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 동기에 압도되었다. 산업화 문턱에서 가계 기반 자체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의 기층 민중은 생존 전략의 하나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때로는 가장되기도 한정치적 무관심을 행사했다.
--- 「제5장 근대화 초기 기층 민중의 현실과 빈곤」 중에서

그러나 이제 이 시대의 민중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복잡한 대상들과 마주하고 있다. 국가의 억압은 더 이상 명시적이지 않으며, 자본은 분화ㆍ변용되거나 계열화ㆍ중층화하면서 전 지구적 차원의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더구나 기후 위기, 자연 재해, 감염병 팬데믹처럼 계급 중립의 부정형 도전들이 출현하고 있다. 불평등, 차별, 수탈, 배제 등이 짐짓 가상의 풍요 뒷전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대상 자체에 대한 인식이 파편화하고 다기화하고 있다.
--- 「맺음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기층 민중에 의한
대안의 근대화 서사


주류 서사와 다른 20세기 한국 민중 서사의 재구성은 한국 근대화의 성격과 의미를 심층 차원에서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근대화와 사회 변동의 와중에 사회 하층민으로서 민중의 현실에 대한 재인식 작업은 역사에 대한 대안의 시각과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국 근대화 서사는 중상층이 주축인 주류 서사 중심이었다. 유감스럽지만 이러한 주류 서사가 사회 하층민의 현실과 내부 경험을 억압하거나 은폐ㆍ무시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구성되는 기층 민중의 서사는 주류 서사에 대한 대안 서사이자, 흔히 단선적으로 이해되어온 근대화 서사에 균열을 내는 도전적 시도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류와 다른 차원을 준거 삼는 대안적인 근대화 서사의 발굴과 검토는 한국 근대화 과정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리고 그 모순과 갈등의 양상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근대화의 최저변에서 생활해온 민중이 특정한 시대 맥락에서 당면했던 여러 쟁점과 문제들을 검토함으로써 하층민의 시각에서 본 당대 현실과 사회 상황을 함께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근대 한국 사회라는 드라마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과 일제의 식민 지배, 민족 이산과 해방, 전쟁과 혁명 그리고 군사 쿠데타와 독재처럼 수많은 사건들이 압축된 채로 숨 가쁘게 전개되어왔다. 그리고 각 시기별 사건들은 그 시대에 고유한 문제들과 쟁점들 그리고 과제를 함께 제시해왔다. 따라서 시간에 따른 민중 생활의 변동을 추적하면서 각 시대 현실의 고유성과 독특함까지 동시에 파악해볼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 근대의 민중 개념이 진보와 변혁 및 지배와 독재라는 두 계보의 흐름으로 이어져왔다면, 이 책은 이러한 지배와 저항이 교차하는 시공간에서 경합하기도 하고 중첩하기도 하면서 점차 진화해온 민중의 삶과 의식의 현상태(現象態)에 주목하고자 했다. 역사 속에서 지배와 저항이 교차하고 경합하는 시공간을 살아온 민중 개념의 복합성과 모순을 염두에 두는 차원에서다.

민중은 ‘이야기한다’

문자에 의거한 공식 역사를 통해 기록되거나 보존 혹은 성화(聖化)되는 지배 계급의 서사와 달리, 민중 이야기는 역사가 아닌 기억과 구술에 주로 의존해왔다. 사실 지배 계급의 역사 서술과 구분되는 민중 구전이나 구술 전통은 일찍부터 주목받아왔다. 해방 이후에 한정해보면, 한국 사회의 최저변에 위치한 민중에 대한 관심은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된 1960년대 중후반 이후 르포나 논픽션, 수기 혹은 다큐멘터리 등의 기록 서사, 구술이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한 생애사 형태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연구 방법론 차원에서 이 책은 근대 형성기 민중에 의해서거나 민중에 대해 산출된 구술 자서전, 민중 자서전, 르포, 심층 인터뷰 자료처럼 사사(私事)로서 개인의 내면 의식을 드러내는 자료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이러한 미시 자료들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위와 상호작용, 관계, 사건들, 에피소드 등을 그것이 배태된 역사ㆍ사회 구조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거시적인 사회 구조의 궤적 안에서 그것이 지니는 역동성을 함께 분석해나갔다. 이론과 방법론 차원에서 이 책은 이러한 시도들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기존 연구에서 공식화ㆍ정형화된 형태로 제시되어온 민중에 대한 인식을 재정향하고, 그에 대한 대안 서사를 탐색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구술 생애사의 주요 자료는 1960년대 서민 생활에 대한 르포의 하나로 기획된 「오늘을 사는 한국의 서민」 연속 기획(「서민 연재」)과 1980년대 나온 『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민중자서전』) 그리고 2000년대에 간행된 『한국민중구술열전』(『민중열전』)이다. 제1부에서는 『민중열전』과 『민중자서전』의 전체 인물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나이와 성 그리고 계층/계급 변수에 따른 차이를 고려한 생애사 연구를 통해 한국의 민중 서사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제2부에서는 주로 계급/계층 변수에 초점을 맞춰 「서민 연재」를 분석해나가면서 근대화 캠페인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되어온 기층 민중들의 빈곤과 가계, 기술 등의 쟁점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들의 내면과
한국 근대화의 심층


무엇보다 이 시기 기층 민중은 가난과 궁핍에 지배당했다. 가난 이야기는 거의 모든 민중 구술에서 빠지지 않는다. 가난은 민중의 삶의 모든 차원에 스며들어 있었으며, 어떤 형태로든 이들의 일상과 의식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민중은 시대의 밑바닥에서 그 결핍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그렇게 민중 서사의 중심엔 늘 가난과 빈곤의 서사가 가로놓여 있었다.

빈곤은 간단없는 노동의 시련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민중은 빈한한 가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절박함 속에 연고나 우연을 통해 일자리로 들어서곤 했다. 전통적 분야였든 근대적 분야였든, 영세한 환경에서 별다른 기술 없이 되풀이되는 단순한 작업들로 채워진 곳이었다. 그마저도 짧게만 유지되는 불안정성 탓에 대부분의 민중은 전 생애 주기를 걸쳐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살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자리를 계절 따라 전전해야 했다. 이들에게 노동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굴레였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시련은 자신에게서만 그치는 것도 아니어서 생계 활동에 가족 전 구성원을 동원시키면서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이토록 고단한 삶의 여정은 민중의 자아 정체성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기층 민중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곧 가족의 빈곤을 의미했다. 그 아버지들은 가족 자체를 돌보지 않거나 아예 버리곤 했던 탓에, 생계는 남은 구성원인 아내와 자식들이 도맡아야 했다. 이 와중에도 가부장제의 권능은 굳건해서 부재하는 아버지의 다른 한편에 군림하는 아버지의 전제(專制)마저 엄존했다. 이러한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중, 조상 숭배와 가계의 계승, 남아, 특히 장자에 대한 선호와 우대, 부모 역할의 전통과 유지, 아내의 시집살이와 수절 등과 같이 다양한 쟁점들을 포함하는 가족주의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민중의 빈곤과 비참한 노동 현실은 그대로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세대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대부분의 민중 구술자들은 공식적으로 무학이거나 초등학교 중퇴나 졸업 정도의 학력에 머물렀다.

애당초 지식과 교육으로부터 배제된 예외의 존재였기에 알다시피 한국 사회가 교육에 대해 강한 열망을 분출해간 만큼 이들의 좌절과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교육 기회의 박탈로 빈곤이 대물림되고 계층 상승의 가능성마저 차단당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가망 없는 배움에 대한 한을 품고서 이들은 노동 현장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노동과 기술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빈곤에 대항하려 했다. 결국 피지배 하층민, 육체노동, 산업화의 영역에 속한 노동과 기술의 이러한 삶의 과정은 상층 엘리트, 지식인, 정신노동, 민주화로 표상되는 지식과 교육에 의한 지배와의 지난한 만남과 포섭 그리고 예속과 갈등을 반영하기에 이른다.

복합적인 민중 의식 너머

이 시기 민중 의식은 복합적이었다. 책에서는 그 형태와 층위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보았다. 개인의 전 생애 과정 차원에서 바라보면, 각 유형에 대한 태도나 평가가 일관되지 않으며, 모순되고 복합적인 양상을 보였다. 적어도 자료에서 드러난 바로는 미신, 억견, 팔자, 운명처럼 전근대적ㆍ수동적ㆍ보수적인 내용이 우세해 보수/체제를 옹호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속된 전쟁과 냉전으로 극소수의 목소리만 살아남아 전해졌기에, 이른바 민중론의 주류로 표방되어온 주체, 진보, 저항, 혁명 같은 요소들은 드물었다. 지배, 수탈, 억압에 상응해 강인한 생명력, 현실 비판, 풍자, 해학처럼 민중 의식으로 흔히 지목되어온 속성들과도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이렇게 방어적인 의식은 직접적으로 그 자신과 가족의 생존이 주목적인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였다. 산업화의 문턱에서 혹은 근대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불안정한 가계 상황에서 다수의 기층 민중은 오직 생존을 위한 일상에 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처지는 장기적으로 바라보아 식민 지배와 군사 독재 같은 수탈과 억압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운동처럼 특정 계기를 통해 분출된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불만은 일상에서 극도로 억압당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민중은 생존 전략의 하나로,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때로는 가장되기도 한 정치적 무관심을 행사했다.

저자는 책을 이렇게 맺는다. “역사 국면에서 실체 자체가 모호한 현실에 맞선 저항이 다시 민중의 이름으로 호명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민중 아닌 다른 형태와 양상의 저항 주체가 새로 등장한다면, 민중은 역사적 개념이 되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의 불평등과 모순과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이 추구했던 다양한 삶의 전략과 경험, 자기 정체성 모색 그리고 삶의 이상에 대한 기억과 전통은 살아남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