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한반도평화 연구 (박사전공>책소개)/5.한국전쟁 6.25

기밀문건 속 한국전쟁 (2024)

동방박사님 2024. 7. 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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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개전전야와 전쟁발발에서부터 정전조인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김일성-모택동-스탈린 간 주고받은 ‘공개·미공개’ 암호전보와 극비서한 등 총504건을 날짜별 시간 순으로 짚는 모음집이 국내 처음으로 나왔다.

‘항미원조’로 출병을 결단, 압록강을 건너는 모택동과 김일성의 남침을 용인한 스탈린의 의중을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 당시 이 세 명의 정책결정자들 간에 오고간 기밀문건들을 통해 국내에 그동안 간헐적 공개에 그쳤던 중국과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정책결정 과정과 내막을 사안별 집중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도대체 왜, 한국전쟁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걸까? 소련 기록보관소와 중국 문헌 속에서 찾아낸 문건 대상 한국전쟁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션즈화 교수의 편저, 북경대 김동길 교수와 중앙대 이강범 교수의 번역 등 수 년 간 노력의 결과물인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목차

머리말 대신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결정’
편저자 서문
역자 서문(1)
역자 서문(2)

Ch.Ⅰ 개전 전야의 3국(북-중-소)
(1949. 5. 15 ~ 1950. 6. 20)

#001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의 북평회담 상황통보 (1949년 5월 15일)
#002 코발료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모택동이 김일과의 회담상황 통보 (1949년 5월 18일)
#003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 보내는 전보:
조선평화통일계획에 관하여 (1949년 6월 5일)
#004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 보내는 전보:(극비)
남측의 북측 진격에 관한 정보 (1949년 7월 13일)
#005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 보내는 전보:
38선 형세에 관한 긴급통보 요구 (1949년 8월 3일)
#006 툰킨이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 옹진반도 탈취 준비 (1949년 9월 3일)
#007 비신스키가 툰킨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남북 쌍방의 군사력을 조속히 파악할 것 (1949년 9월 11일)
#008 툰킨이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의 남조선 진격에 관한 구상 (1949년 9월 14일)
《중략》
#032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남조선 공격문제는 엄격히 비밀로 (1950년 2월 2일)
#033 비신스키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
주은래와의 회담 상황 (1950년 2월 3일)
#034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3개 보병사단 신설 요청 (1950년 2월 7일)
#035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이 제기한 각 항의 요구에 동의함 (1950년 2월 9일)
#036 비신스키가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이 소련차관을 앞당겨 사용하는데 동의함 (1950년 3월 12일)
#037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은 필요한
군수장비를 최대한 빨리 운송해주기를 희망함 (1950년 3월 16일)
#038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인민군에 필요한 장비제공에 동의함 (1950년 3월 18일)
#039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스탈린과 회담을 희망함 (1950년 3월 21일)
#040 김일성이 소련에 도움을 요청한 문제 목록
(1950년 3월 23일)
#041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의 소련방문 일정안배 (1950년 3월 24일)
#042 스탈린과 김일성,박헌영의 회담기록
(1950년 4월 10일)
#043 이그나티예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모택동이 이주연을 회견한 상황 (1950년 4월 10일)
#044 주은래가 불가닌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주문한 군사용품 발송 재촉 (1950년 4월 13일)
#045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공군장비 및 자재구매에 관하여 (1950년 4월 13일)
#046 중앙에서 이부춘 등에게 보내는 전보:
군수품 주문 등 문제에 관하여 (1950년 4월 14일)
#047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의 소련방문 고지 (1950년 5월 3일)
#048 주은래가 왕가상에게 보내는 전보:
군수품 주문과 공군고문 초빙 (1950년 5월 6일)
#049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중국방문 계획을 말함 (1950년 5월 12일)
#050 주은래가 불가닌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 측에 주문한 군수품 발송 재촉 (1950년 5월 13일)
《중략》

Ch.Ⅱ 남침과 미군 참전, 그리고 중국 지원군 파병
(1950. 6. 26 ~ 1950. 12. 31)

#060 슈티코프가 그로미코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외무성에 전달한 통보 (1950년 6월 26일)
#061 트리그브 리가 소련 외교부에 보내는 전보:
안보리결의 통보 (1950년 6월 26일)
#062 슈티코프가 자하로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인민군의 순조로운 진격 (1950년 6월 26일)
#063 모택동, 중앙인민정부 제8차 회의에서 연설:
전쟁준비 (1950년 6월 28일)
#064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은 반드시 단호하게 계속 공격해야 (1950년 7월 1일)
#065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미국 간섭 후 조선의 정치정서 (1950년 7월 1일)
#066 소련군 총참모 작전관리총국의 보고:
조선인민군 손실상황 (1950년 7월 3일)
#067 스탈린이 로신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은 중국군대에 공중엄호를 제공할 예정 (1950년 7월 5일)
#068 스탈린이 슈티코프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에 무기제공 등 문제에 관하여 (1950년 7월 6일)
#069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지도자와 군대상황 (1950년 7월 7일)
#070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전선에 소련고문 파견요청 (1950년 7월 8일)
《중략》
#203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내는 서한:
서울 진격 연기를 건의함 (1950년 12월 9일)
#204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지원군은 반드시 38선을 넘어 싸워야 함 (1950년 12월 13일)
#205 주은래가 오수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담판에 대한 중국의 태도 (1950년 12월 13일)
#206 라주바예프가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은 중국에 불만임 (1950년 12월 13일)
#207 소련공산당중앙정치국 결의:(극비)
정전문제에 관한 지시 (1950년 12월 14일)
#208 주은래가 오수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유엔에서 정전문제의 원칙 (1950년 12월 16일)
#209 팽덕회가 중앙군사위원회에 보내는 전보:
조선전쟁은 여전히 상당히 장기적임 (1950년 12월 19일)
#210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전쟁은 반드시 장기계획을 세워야 (1950년 12월 21일)
#211 유엔총회의 정전문제 결의99) 통과에 관한
중국성명에 대한 모택동의 수정 (1950년 12월 22일)
#212 모택동이 팽덕회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제3차 전역 후
전군 후방철수 및 휴식과 정비 (1950년 12월 26일
#213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보내는 전보:
전군휴식과 정비 후 춘계공세 준비 (1950년 12월 29일)
#214 라주바예프가 모스크바에 보내는 전보:
조선은 중국의 작전계획에 불만 (1950년 12월 30일)
#215 라주바예프가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내는 전보:
김일성, 38선 넘는 공격을 말함 (1950년 12월 31일)

Ch.Ⅲ 한·미군 북진, 전투 속 정전회담
(1951. 1. 2 ~ 1951. 12. 28)

#216 주은래가 모택동과 강청에게 보내는 편지:
모안영의 희생보고 (1951년 1월 2일)
#217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제3차 전역의 진전 상황 (1951년 1월 4일)
#218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서울 점령 후의 작전계획 (1951년 1월 7일)
#219 중국정부가 소련정부에게 보내는 비망록:
정전협상에 관한 문제 (1951년 1월 11일)
#220 스탈린이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에 관한 중국정부 제안에 동의 (1951년 1월 13일)
#221 유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ygve Lie)가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정전에 관한 유엔 방안 (1951년 1월 13일)
《중략》
#319 그로미코가 라주바예프에게 보내는 전보(초안):
조선의 정전호소에 관한 문제 (1951년 11월 20일)
#320 모택동이 이극농에게 보내는 전보: 우리가 적들보다
더 급하다는 내색을 하지 말 것 (1951년 11월 20일)
#321 모택동의 친필 소견:
성탄절 이전에 정전가능성이 극히 높다 (1951년 11월 20일)
#322 그로미코가 라주바예프에게 보내는 전보:
미군에게 38선 철수요구 문제 (1951년 11월 21일)
#323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협상 7개항 원칙의 수정 (1951년 12월 13일)
#324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포로송환에 관한 협상대책 (1951년 12월 23일)
#325 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서:
정전협상 성명발표에 관하여 (1951년 12월 25일)
#326 모택동이 이극농 등에게 보내는 전보:
다시 비교적 긴 시간 지연에 준비할 필요 (1951년 12월 28일)

Ch.Ⅳ 공방 속 정전회담 ‘교착’과 세균전 폭로?
(1952. 1. 2 ~ 1952. 12. 30)

《중략》
#335 섭영진 보고에 대한 모택동의 친필 소견:
적군의 세균곤충 투하에 주의 (1952년 2월 19일)
#336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조선전장에서 미국이 세균무기 사용 (1952년2월 21일)
#337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보:
미국세균전에 대해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 (1952년 2월 23일)
#338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내는 서신:
세균전 방어개요에 관한 의견 (1952년 2월 23일)
#339 모택동이 이극농등에게 보내는 전보:
자원송환 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 (1952년 3월 1일)
#340 그로미코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보고:
김일성의 타스통신사 기자회견 공표 (1952년 3월 5일)
#341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의:
김일성의 기자문답 발표에 관하여 (1952년 3월 7일)
#342 주은래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세균전문가 파견요청 (1952년 3월 7일)
#343 그로미코가 로신에게 보내는 전보: 미군에게
군사행동을 취하는 문제에 관하여 (1952년 3월 8일)
#344 주은래가 이극농에게 보내는 전보:
적의 세균전 진행을 폭로할 것 (1952년 3월 9일)
#345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국부적 전투진행 문제에 관한 해석 (1952년 3월 10일)
#346 주은래가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유행병 예방약품 제공을 요청함 (1952년 3월 10일)
#347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에 공군 1개 사단 증파를 요청 (1952년 3월 11일)
#348 스탈린이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중국에 소련전문가와 백신 제공 (1952년 3월 14일)
《중략》

Ch.Ⅴ ‘포로’쟁점 일단락, 마침내 ‘정전’조인
(1953. 1. 17 ~ 1970. 10. 10)

#385 바실레프스키 등이 스탈린에게 제출한 보고:
지원군으로부터 군사고문 소환문제 (1953년 1월 17일)
#386 중국평화보위위원회가 소련위원회에 보내는 서한:
미국의 세균전 죄상 폭로 (1953년 1월 18일)
#387 바실레프스키 등이 불가닌에게 제출한 보고:
조선의 정세 (1953년 1월 21일)
#388 정치협상회의에서 모택동의 연설:
항미원조는 계속 강화돼야 (1953년 2월 7일)
#389 주은래가 김일성에게 보내는 전보:
세균전에 관한 미군포로의 자백 방송 (1953년 2월 18일)
#390 라주바예프가 모스크바에 보내는 전보:
부상포로 교환에 관한 클라크의 서한 (1953년 3월 14일)
#391 소련외교부 제1극동국 보고:
유엔의 조선문제 토론 (1953년 3월 14일)
#392 소련부장회의 결의:
전쟁포로 송환문제에 관한 지시 (1953년 3월 19일)
#393 주은래가 모택동에게 보내는 전보: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전방안 제안 (1953년 3월 21일)
#394 주은래가 모택동에 보내는 전보:
소련은 전쟁포로 문제에 있어서 타협 준비 (1953년 3월 21일)
#395 모택동이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
제안된 전쟁포로 교환방침에 동의 (1953년 3월 22일)
#396 모택동이 정국옥에게 보내는 전보:
부상포로의 우선교환에 동의 (1953년 3월 23일)
#397 쿠즈네초프 등이 몰로토프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문제에 대한 조선의 입장 (1953년 3월 29일)
#398 몰로토프가 소련부장회의 의장단에 제출한 문서:
조선문제에 관한 성명 (1953년 3월 31일)
#399 글루호프가 베리야에게 보내는 편지:
미국의 세균무기 사용문제 (1953년 4월 13일)
#400 셀리바노프가 베리야에게 보내는 편지:
세균전 문제에 관한 상황설명 (1953년 4월 14일)
《중략》
#424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의장단 결정:
정전협정 서명문제에 대한 건의 (1953년 7월 24일)
#425 말렌코프가 김일성에게 보내는 전보:
정전협정 서명을 축하 (1953년 7월 27일)
#426 쿠즈네초프가 소련외교부에 보내는 전보:
정전문제에 대한 모택동의 발언 (1953년 7월 29일)
#427 유딘이 모스크바에 보내는 전보(개요):
조선전쟁 발발에 관한 모택동의 발언 (1956년 4월 20일)
#428 조선전쟁 배경에 대한 소련 외교부의 보고서(극비)
(1966년 8월 9일)
#429 모택동과 김일성의 대화록: 중국 출병상황의 회고
(1970년 10월 10일)

저자 소개

편저 : 션즈화 (沈志華)
중국 상해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종신교수이며, 국제냉전사와 한국전쟁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이다. 주요 연구업적으로는 『최후의 천조: 모택동 김일성과 중조관계(最後的天朝: 毛澤東, 金日成與中朝關系(1945?1976)』(中文大學出版社, 2017),『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 『모택동, 스탈린과 조선전쟁(毛澤東, 斯大林與朝鮮戰爭)』(廣東人民出版社, 2013), 『After Leaning to One Side: Ch...

역 : 이강범연세대 중문학과 졸업, 국립대만대학교 석사와 연세대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중앙대 아시아문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22년말 정년퇴임 후 중앙대 명예교수 및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한국연구재단 어문학단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EBS 중국어 강좌의 유명 진행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현재 공자, 사마천, 조조, 두보 등의 중국고전 인물과 동북군벌, 서안사변, 문화대혁명 등의 사건을 주제로 한 각종 외부강연에 열심...

역 : 김동길중국 북경대학교 역사학과 종신교수이며, 북경대학교 한반도연구센터의 소장이다. 주요 연구업적으로는 『민국시기중소관계(民國時期中蘇關系)』(中共黨史出版社, 2009)와 번역서 3권 등이 있으며, Diplomatic History, Cold War History,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등 영어권 및 한국에 약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책 속으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전쟁발동 문제에서 조선은 소련과 함께 중국을 인질로 삼았으며, 모택동은 아주 원하지 않은 상태로 기정사실이 된 하나를 받아들였다. 모택동이 후에 말한 바와 같이 “(남쪽을) 치면 안 되며, 제국주의가 간섭할 것을 예측해야 한다고 나는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미 치기로 결심했다’고 하였고, 스탈린도 동의하였다. 양국이 이미 동의한 이상, 나는 결연히 반대하였지만 또한 불가능했다.”
---「머리말 대신한...」중에서

1월 28일 스탈린은 이러한 중국의 요구에 동의한 후, 1월 30일 김일성에게 전보를 보내 김일성의 무력남침 요구에 동의를 표시하였다. 더 나아가 2월 2일 자신이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동의했음을 중국인들에게 비밀로 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는 《중소우호동맹호조조약》 체결과정과 스탈린의 한국전쟁 동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한국학계에 원문 전문이 아직까지 소개되지 않았으며, 본 책에서 처음 소개되고 있다.
---「역자 서문①」중에서

1950년 12월부터 1951년 1월 중순 중국이 최종적으로 유엔의 제안을 거부할 때까지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소련, 중국, 미국, 유엔 및 인도 간 정전에 관한 정책결정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문건들을 본 책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역자 서문①」중에서

아마도 인류역사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아마 시도하기 불가능한 실험, 즉 같은 핏줄에 같은 전통과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거의 완벽한 단일민족 수천만 명을 왕래도 대화도 일체 못하도록 철저하게 나누어 놓고, 절대 악으로 서로를 대하면서 70년이 넘으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거대하고도 잔인한 이 실험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고대한다.
---「역자 서문②」중에서

김일성은 그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요구한 무기와 탄약들이 이미 기본적으로 다 운송됐으며, 무기는 새로 편성된 사단으로 나누어 운송되어 6월 1일까지 모두 병사들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어서 김일성은 새로 조직된 이들 사단에 가서 그들의 군사훈련 과정을 시찰했으며, 6월 말까지 이 사단들은 전투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본다고 알려주었다.
---「#056 슈티코프가 비신스키에게 보내는 전보:(극비) 김일성이 공격발동 날짜를 말함 (1950년 5월 30일)」중에서

4개 군 및 3개 포사단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조선에 들어가 참전하기로 결정, 내일(19일) 저녁 안동-집안(輯安) 선에서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할 것임.비밀을 엄격히 지키기 위해 도하부대는 매일 황혼에 도하를 시작해 이튿날 새벽 4시에는 정지하며, 5시 이전에 은폐를 마치는 동시에 철저하게 점검해야함. 경험을 얻기 위해 첫날밤(19일 저녁)에 2~3개 사단이 도강(渡江)준비를 하고, 둘째 날 저녁에 다시 늘리거나 줄일 것, 다시 상황을 고려해 나머지는 고강과 팽덕회가 대면보고할 것.
---「#161 모택동이 등화 등에게 보내는 전보: 지원군 내일 저녁 출국, 참전하기로 결정 (1950년 10월 18일)」중에서

현재 미국은 조선에서의 실패로 인해 급히 출구를 찾고 있으며, 최선은 ‘명예로운 정전’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제한적인 전쟁’ 뿐이다. 그러나전자는 우리가 허용할 수 없고, 후자는 영국?프랑스?인도 및 아랍집단이 두려워하고 있다.
---「#224 중국정부가 조선정부에 보내는 비망록: 조선정전협상에 관한 문제 (1951년 1월 14일)」중에서

만일 적이 양보하지 않거나 [협상이] 결렬될 경우 우리는 적과 전쟁을 계속할 결심을 하고,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을 전쟁 중에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계산과 방침이 적절한지 필리포프 동지에게 전보를 보내 그의 의견을 구할 것이며, 그의 답변을 받으면 통보하도록 할 것이다.
---「#366 모택동이 김일성에게 보내는 전보: 적의 포로송환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1952년 7월 15일)」중에서

모택동은 적이 정전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이유로 제국주의 진영의 군사적인 모순과 조선전쟁에 반대하는 세계의 사회여론의 중대한 역할을지적하였다. 경제적인 원인으로 모택동은 전쟁 초기 2년 동안 미국의 독점집단은 군수품 주문과 납품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정전협상이 중단되고 동시에 조선전쟁의 정전운동이 강화되면서, 그들의 이익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모택동은 설명하였다.
---「#426 쿠즈네초프가 소련외교부에 보내는 전보: 정전문제에 대한 모택동의 발언 (1953년 7월 29일)」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전쟁은 1950년 발발에서 1953년 정전까지 김일성에 의한 남침, 인천상륙작전, 중국참전, 그리고 한·미군 북진, 정전회담 결렬과 속개 등 당시 냉정으로 얼어붙은 국제정세와 맞물려 피비린내 속 참혹한 민족상잔의 장면 장면의 연속이었다.

미국의 맥아더는 무슨 마음으로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출병, 중공 땅을 코앞에 둔 압록강까지 북진을 강행했던 것일까. 여러 실증자료와 학문적 의견들이 많지만, 더 많은 연구와 자료공개가 있어야 할 대목이다. 이와 견줘, 모택동과 스탈린의 당시 머릿속 계산은 바빴을 터 그 궁리와 의중에 대한 연구 또한 미국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책은 바로 모택동과 스탈린, 물론 중간에 김일성이 낀 삼자 구도 속 이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 하나를 열었다. 그동안 국내 언론이나 연구서에서 간헐적으로 소개되었던 당시 중국(이하 모택동의 중공을 칭함)과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주요 정책결정 과정과 그 내막을 러시아 기록보관소와 중국 문헌과 자료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어 책은 없었고, 이 책이 그 첫 사례가 되는 셈이다.

김일성-모택동-스탈린 간에 주고받았던 암호전보와 극비서신 등 총504건을 사안별 시간 순으로 정리한 모음집 형태의 이 책은 이미 공개된 것 외 ‘미공개’ 자료로서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학문적 가치에 무게의 경중을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그 일례로, 우선 김일성의 무력남침 요구에 동의를 하면서도 스탈린은 중국에게는 비밀로 할 것을 지시하는데, 이는 집요한 중국의 요구를 들어준 《중소우호동맹호조조약》 체결과정과 스탈린의 한국전쟁 동의 사이에는 밀접한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읽어낼 수 있는 자료들은 한국 학계에 원문 전문이 아직까지 소개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것 역시 이 책의 출간 의의를 더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로, 중국이 최종적으로 유엔의 ‘정전’ 제안을 거부할 때까지(1950년 12월~1951년 1월 중순)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소련, 중국, 미국, 유엔 및 인도 간 정전에 관한 정책결정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문건들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는 부분 역시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중국, 소련은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과 진행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항미원조’ 명문으로 출병한 중국과 남침 용인 하에 무기지원을 한 소련, 이들의 정책결정 과정과 내막에 대한 역사적 실체를 기밀문건, 그 과거 시간 속으로 들어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