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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도서출판 뉴스타파]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의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초토화 폭격 장면을 집대성한 사진집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초토화폭격]을 출간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 전례없는 전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에 기항한 미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호에 승선해 잠망경을 보는 퍼포먼스 등을 연출했다. 여러 언론은 켄터키호가가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SLBM) 20여 기를 탑재해 북한 전역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초토화’는 한국전쟁을 떠올릴 때 뺄 수 없는 단어다. 북한은 핵잠수함 켄터키 입항을 전후해 대륙간 탄도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했다. 전쟁이 나면 ‘초토화’는 북한에 그치지 않는다. 70여 년 전 한국전쟁은 이미 그것을 한반도 전역에서 증명했다.
[도서출판 뉴스타파]가 7월 27일 펴낸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초토화폭격]은 한반도 ‘초토화’라는 궤멸적 결과를 초래한 미군의 폭격 양상을 280여 장에 이르는 사진 자료를 토대로 재현했다. 책에 수록한 사진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해외 사료 수집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와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등에서 3년 이상 검색 작업을 해 입수했다.
[도서출판 뉴스타파]가 7월 27일 펴낸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초토화폭격]은 한반도 ‘초토화’라는 궤멸적 결과를 초래한 미군의 폭격 양상을 280여 장에 이르는 사진 자료를 토대로 재현했다. 책에 수록한 사진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해외 사료 수집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와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등에서 3년 이상 검색 작업을 해 입수했다.
목차
프롤로그
1장. 미 폭격기, 한반도 상공 날다
2장. 지옥도
3장. 악마의 무기, 네이팜
4장. 폭격과 학살
5장. 지도에서 지워지다
에필로그
1장. 미 폭격기, 한반도 상공 날다
2장. 지옥도
3장. 악마의 무기, 네이팜
4장. 폭격과 학살
5장. 지도에서 지워지다
에필로그
출판사 리뷰
프롤로그는 미군 폭격으로 인한 전쟁의 참상을 다양한 사진 자료를 통해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1장. 미 폭격기, 한반도 상공을 날다’는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바로 다음날인 8월 16일부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 함재기가 한반도 상공 곳곳을 날며 항공정찰 활동을 한 사실을 보여주는 정찰 사진 10매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담았다. 아래 사진은 1945년 8월 16일 아침, 미 해군 에식스급 항공모함 인트레피드(USSINTREPID)에서 출격한 급강하폭격기 SB2C 헬 다이버가 서울 한강 마포나루 일대를 정찰비행하는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에 헬다이버 날개가 찍혔다. 좌측 위쪽에 또 다른 SB2C 3대가 날고 있다.
‘2장. 지옥도’는 미군 폭격으로 인한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 ‘월미도 폭격’ 사건을 다룬다. 아래 사진은 미군이 1950년 9월 10일 월미도를 네이팜탄 등으로 초토화 폭격하기 한 달여 전인 7월 24일, 미 5공군이 촬영한 월미도와 인천항 항공사진이다. 왼쪽 위로 월미도가 보인다.
‘3장. 악마의 무기, 네이팜’은 비인도적 무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네이팜탄이 탄생한 배경과 한국전쟁 때 네이팜탄이 어떻게 사용됐고,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생한 사진과 영상 자료로 다룬다. 아래 사진은 1951년 7월, 미 5공군 18전투폭격비행단 기지 활주로 옆에 네이팜탄이 쌓여있는 장면이다. 그 뒤로 한국전쟁 당시 네이팜탄을 가장 많이 투하한 미 공군 F-51 머스탱 전폭기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래 사진은 미군이 1951년 5월 10일 북한 한천의 한 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한 장면이다.
‘4장. 폭격과 학살’은 미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 뉴스타파가 진실화해위원회의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8천 여명이다. 이 수치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이 접수된 사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어서 실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실제 민간인 희생 사건의 5-10% 정도만 진실 규명 신청이 들어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미군 폭격으로 인한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충북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 당시 네이팜탄 등을 투하한 기종과 동일 기종인 F-80 슈팅스타 제트전투기다. 이 사진은 1951년 1월 2일, 미 극동공군 F-80 슈팅스타 제트전투기가 75갤런짜리 네이팜탄을 양 날개에 한 발씩 장착하고 비행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는 “젤리 형태의 가솔린 함유물이 담긴 탱크는 기폭 장치가 연결돼 있어 땅에 닿는 순간 폭발하고 광범위한 지역을 맹렬한 죽음의 지옥불로 뒤덮는다” 라는 설명이 달렸다. 이 사진이 찍힌 날로부터 18일 뒤인 1951년 1월 20일, 같은 기종인 F-80 전투기 8대가 충북 단양 곡계굴 일대에 네이팜탄 등을 퍼부어 수백 명의 무고한 피난민을 살상했다. F-80은 한국전쟁 기간에 F-51 머스탱 전투기 다음으로 많은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5장. 지도에서 지워지다’는 미군의 융단 폭격, 초토화 폭격으로 도시 기반 시설이 거의 파괴돼 버린 남한과 북한의 주요 도시를 사진으로 담았다. 아래 사진은 1950년 7월 16일 미 공군의 서울 용산 조차장 폭격 장면이다.
아래 사진은 1951년 1월 3일 미 공군의 평양 폭격 장면이다.
아래 사진은 1950년 8월 24일 미 공군의 북한 원산 폭격 장면이다. 미군의 원산 폭격은 그 양태가 워낙 극심해 ‘원산폭격’이라는 체벌 이름의 어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1951년 4월 20일, 미 해군 순양함 세인트폴에서 발사한 백린탄(White phosphorus shells)이 북한 원산 갈마반도에서 폭발하는 장면이다. 긴 백사장이 명사십리다. 백린탄은 네이팜탄과 함께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는 미군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까지 출격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련 사진 자료로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정전 협정 체결결 하루 전인 1953년 7월 26일, 미 항공모함 레이크샘플레인(USS Lake Champlain, CVA-39)에서 출격한 F2H-2 밴시 제트전투기 2대가 흥남시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이다.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초토화 폭격』은 사진과 도면 자료 뿐만 아니라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에서 수집한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는 큐알 코드도 수록해. 미군의 폭격 양상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장. 지옥도’는 미군 폭격으로 인한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 ‘월미도 폭격’ 사건을 다룬다. 아래 사진은 미군이 1950년 9월 10일 월미도를 네이팜탄 등으로 초토화 폭격하기 한 달여 전인 7월 24일, 미 5공군이 촬영한 월미도와 인천항 항공사진이다. 왼쪽 위로 월미도가 보인다.
‘3장. 악마의 무기, 네이팜’은 비인도적 무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네이팜탄이 탄생한 배경과 한국전쟁 때 네이팜탄이 어떻게 사용됐고,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생한 사진과 영상 자료로 다룬다. 아래 사진은 1951년 7월, 미 5공군 18전투폭격비행단 기지 활주로 옆에 네이팜탄이 쌓여있는 장면이다. 그 뒤로 한국전쟁 당시 네이팜탄을 가장 많이 투하한 미 공군 F-51 머스탱 전폭기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래 사진은 미군이 1951년 5월 10일 북한 한천의 한 마을에 네이팜탄을 투하한 장면이다.
‘4장. 폭격과 학살’은 미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 뉴스타파가 진실화해위원회의 민간인 학살 진실 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8천 여명이다. 이 수치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이 접수된 사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어서 실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실제 민간인 희생 사건의 5-10% 정도만 진실 규명 신청이 들어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미군 폭격으로 인한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충북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 당시 네이팜탄 등을 투하한 기종과 동일 기종인 F-80 슈팅스타 제트전투기다. 이 사진은 1951년 1월 2일, 미 극동공군 F-80 슈팅스타 제트전투기가 75갤런짜리 네이팜탄을 양 날개에 한 발씩 장착하고 비행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는 “젤리 형태의 가솔린 함유물이 담긴 탱크는 기폭 장치가 연결돼 있어 땅에 닿는 순간 폭발하고 광범위한 지역을 맹렬한 죽음의 지옥불로 뒤덮는다” 라는 설명이 달렸다. 이 사진이 찍힌 날로부터 18일 뒤인 1951년 1월 20일, 같은 기종인 F-80 전투기 8대가 충북 단양 곡계굴 일대에 네이팜탄 등을 퍼부어 수백 명의 무고한 피난민을 살상했다. F-80은 한국전쟁 기간에 F-51 머스탱 전투기 다음으로 많은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5장. 지도에서 지워지다’는 미군의 융단 폭격, 초토화 폭격으로 도시 기반 시설이 거의 파괴돼 버린 남한과 북한의 주요 도시를 사진으로 담았다. 아래 사진은 1950년 7월 16일 미 공군의 서울 용산 조차장 폭격 장면이다.
아래 사진은 1951년 1월 3일 미 공군의 평양 폭격 장면이다.
아래 사진은 1950년 8월 24일 미 공군의 북한 원산 폭격 장면이다. 미군의 원산 폭격은 그 양태가 워낙 극심해 ‘원산폭격’이라는 체벌 이름의 어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사진은 1951년 4월 20일, 미 해군 순양함 세인트폴에서 발사한 백린탄(White phosphorus shells)이 북한 원산 갈마반도에서 폭발하는 장면이다. 긴 백사장이 명사십리다. 백린탄은 네이팜탄과 함께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는 미군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까지 출격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련 사진 자료로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정전 협정 체결결 하루 전인 1953년 7월 26일, 미 항공모함 레이크샘플레인(USS Lake Champlain, CVA-39)에서 출격한 F2H-2 밴시 제트전투기 2대가 흥남시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이다.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초토화 폭격』은 사진과 도면 자료 뿐만 아니라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에서 수집한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는 큐알 코드도 수록해. 미군의 폭격 양상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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