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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화적 이야기와 죽음에 가려진
인간 정몽주의 입체적 삶을 복원하다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한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고려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 상징적이었기에 정몽주는 ‘충신’으로서 신화가 되었고, 반면 그 후광은 그의 치열한 삶을 가려버렸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려 말 혼란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섰던 그의 역동적인 생애와 입체적 면모가 왜곡되고, 묻힌 것이다. 그 탓에 우리는 정몽주의 존재와 그 죽음의 의미만 기억할 뿐,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정몽주 다시 읽기》는 정몽주의 탄생과 성장과정부터 최후의 순간까지를 재조명하며 그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정몽주에 대한 후대인들의 상반된 시각과 논쟁점을 소개해 그의 생애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을 벗긴 뒤에, 기록을 따라 정몽주가 탁월한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서 고려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혁’에는 앞장섰지만 ‘혁명’에는 반대했던 그를, 나라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으로서 재해석한다. 정몽주의 인간적 면모가 엿보이는 그의 시를 다수 수록한 점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인간 정몽주의 입체적 삶을 복원하다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한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고려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 상징적이었기에 정몽주는 ‘충신’으로서 신화가 되었고, 반면 그 후광은 그의 치열한 삶을 가려버렸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려 말 혼란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섰던 그의 역동적인 생애와 입체적 면모가 왜곡되고, 묻힌 것이다. 그 탓에 우리는 정몽주의 존재와 그 죽음의 의미만 기억할 뿐,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정몽주 다시 읽기》는 정몽주의 탄생과 성장과정부터 최후의 순간까지를 재조명하며 그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정몽주에 대한 후대인들의 상반된 시각과 논쟁점을 소개해 그의 생애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을 벗긴 뒤에, 기록을 따라 정몽주가 탁월한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서 고려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혁’에는 앞장섰지만 ‘혁명’에는 반대했던 그를, 나라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으로서 재해석한다. 정몽주의 인간적 면모가 엿보이는 그의 시를 다수 수록한 점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목차
머리말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
2장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몽주 인식과 평가
3장 정몽주의 출생과 성장
4장 성리학자 정몽주
5장 군사 행정가 정몽주
6장 외교 전문가 정몽주
7장 개혁과 혁명의 갈림길에서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 기존 인식의 재검토와 새로운 이해 모색
보론: 정몽주와 선죽교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
2장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몽주 인식과 평가
3장 정몽주의 출생과 성장
4장 성리학자 정몽주
5장 군사 행정가 정몽주
6장 외교 전문가 정몽주
7장 개혁과 혁명의 갈림길에서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 기존 인식의 재검토와 새로운 이해 모색
보론: 정몽주와 선죽교
책 속으로
정몽주는 1389년(창왕 1)에 흥국사에 모여서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기로 결의한 아홉 명의 공신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아홉 공신 중에는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 혁명을 추진했던 이성계, 정도전 등과 맞서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정몽주가 그전에 그들과 함께 창왕을 폐위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학자들도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중에서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역사 속의 위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잘했고 칭송받을 만한 업적도 있지만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비판받을 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위인들이 세운 공적과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훨씬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단점이나 잘못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적 위인의 삶이 신화화되는 순간 비판이나 이견이 용납되지 않고,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도 위인의 업적을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매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중에서
정몽주가 창왕 폐위를 주도했다는 것은 창왕이 왕씨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성계 세력이 정권 장악을 위해 창왕을 신돈의 자손으로 몰아 폐위할 때 정몽주가 항거하지 않고 동조한 것이 된다. 둘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정몽주를 충신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장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몽주 인식과 평가」중에서
주희의 해석에 비추어 본다면 ‘달가’는 “천리에 통달하여 세상에 시행할 만하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정몽주의 자 ‘달가’는 《맹자》의 이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이 또한 명확한 관련 기록이 없어서 확언하기 어렵다. 만약 이 추측이 맞는다면, ‘달가’라는 자에는 도에 통달하고 도를 세상에 펼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장 정몽주의 출생과 성장」중에서
이색은 정몽주의 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달가의 횡설수설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횡설수설은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임”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즘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예전에는 자신의 논리를 종횡으로 거침없이 유창하게 설파하는 것을 ‘횡설수설’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색의 평가는 정몽주의 강의가 성리학 이론을 설파하는 데 전혀 막힘이 없었으며 그 내용이 모두 이치에 부합했다는 의미가 된다.
---「4장 성리학자 정몽주」중에서
정몽주가 두 사람(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을 주선했다면, 1383년에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에 관해 의기투합했다고 하는 기존 해석도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듯하다. …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는 역성혁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결국에는 두 사람과 결별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383년 함주에서 세 사람이 만났을 때 곧바로 역성혁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5장 군사 행정가 정몽주」중에서
주목할 것은 공양왕이 그런 불만을 토로한 대상이 정몽주였다는 점이다. 당시 정몽주는 여전히 이성계 정도전 등과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특별히 다른 행보를 보인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공양왕이 그에게 이성계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정몽주에게서 무엇인가 다른 조짐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7장 개혁과 혁명의 갈림길에서」중에서
정몽주가 정도가 아니라 권도를 택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나 위대함이 폄훼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통해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 정몽주의 면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정몽주의 선택이 개인적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생을 먼저 생각한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중에서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역사 속의 위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잘했고 칭송받을 만한 업적도 있지만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비판받을 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위인들이 세운 공적과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력이 훨씬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단점이나 잘못은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역사적 위인의 삶이 신화화되는 순간 비판이나 이견이 용납되지 않고,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도 위인의 업적을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매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장 정몽주, 그는 누구인가?」중에서
정몽주가 창왕 폐위를 주도했다는 것은 창왕이 왕씨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성계 세력이 정권 장악을 위해 창왕을 신돈의 자손으로 몰아 폐위할 때 정몽주가 항거하지 않고 동조한 것이 된다. 둘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정몽주를 충신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장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몽주 인식과 평가」중에서
주희의 해석에 비추어 본다면 ‘달가’는 “천리에 통달하여 세상에 시행할 만하다”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정몽주의 자 ‘달가’는 《맹자》의 이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이 또한 명확한 관련 기록이 없어서 확언하기 어렵다. 만약 이 추측이 맞는다면, ‘달가’라는 자에는 도에 통달하고 도를 세상에 펼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장 정몽주의 출생과 성장」중에서
이색은 정몽주의 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달가의 횡설수설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횡설수설은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지껄임”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요즘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예전에는 자신의 논리를 종횡으로 거침없이 유창하게 설파하는 것을 ‘횡설수설’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색의 평가는 정몽주의 강의가 성리학 이론을 설파하는 데 전혀 막힘이 없었으며 그 내용이 모두 이치에 부합했다는 의미가 된다.
---「4장 성리학자 정몽주」중에서
정몽주가 두 사람(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을 주선했다면, 1383년에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에 관해 의기투합했다고 하는 기존 해석도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듯하다. …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우는 역성혁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결국에는 두 사람과 결별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383년 함주에서 세 사람이 만났을 때 곧바로 역성혁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5장 군사 행정가 정몽주」중에서
주목할 것은 공양왕이 그런 불만을 토로한 대상이 정몽주였다는 점이다. 당시 정몽주는 여전히 이성계 정도전 등과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특별히 다른 행보를 보인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공양왕이 그에게 이성계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정몽주에게서 무엇인가 다른 조짐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7장 개혁과 혁명의 갈림길에서」중에서
정몽주가 정도가 아니라 권도를 택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나 위대함이 폄훼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통해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 정몽주의 면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정몽주의 선택이 개인적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생을 먼저 생각한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중에서
출판사 리뷰
〈단심가〉, 선죽교, 영웅담 등
신화와 허구가 가려버린 정몽주의 진짜 삶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키려다 태종 이방원의 손에 죽어나간 정몽주. 그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충절의 화신’으로 추앙을 받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후대에 덧붙여지면서 정몽주의 삶은 점점 신화가 되어갔다. 그 유명한 〈단심가〉나, 정몽주가 죽은 자리에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선죽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위인전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 미래의 장인에게 글을 배웠다는 일화도 허구이고, 구사일생의 위기를 넘어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는 영웅담도 과장되어 알려졌다.
이러한 근거 없는 허구가 역사적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면서 정몽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신화화는 정몽주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정몽주 다시 읽기》는 정몽주의 삶을 보여주기에 앞서 그에 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논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이, 조식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가세한 이 논쟁은 그가 정말 충신이었는지, 그가 훌륭한 성리학자였는지 등 주제가 다양했고, 이는 정몽주의 삶이 입체적이었음을 시사하며 우리의 편견을 벗긴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정몽주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되짚어봄으로써 인간 정몽주의 참모습을 이해해나간다. 특히 정몽주가 직접 쓴 시들을 곳곳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의 생애와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수성가의 표상
탁월한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 성장하다
우리가 아는 정몽주의 모습은 어떤가? 그가 거물로 성장해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에 맞서 고려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모습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가? 당연한 말이지만 정몽주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려면 그가 어떤 경험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정몽주의 성장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몽주는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고려 말 핵심 인물로 발돋움했다. ‘성리학자’로서 선진 학문인 성리학의 교육에 큰 공로를 세웠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이색은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상이란 뜻인 ‘동방이학의 조(祖)’로 일컫기도 했다. 또한 정몽주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당시 ‘군사 행정가’로서 세 차례나 종군했는데, 특히 이성계가 직접 발탁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군 시기는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한 때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외교관’으로서는 친명(明) 외교 노선을 주장하며 직접 외교관으로 나서 당시 경색되어 있던 명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파견되어 왜구 침입을 자제시킬 것을 요청하고, 고려인 포로를 송환해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눈에 띄는 것은 정몽주의 출신이 중앙 정계의 유력한 세력과 연결될 만한 고리가 전혀 없는 한미한 집안이었다는 점이다. 귀족적 성격이 강했던 고려 사회에서 정몽주의 출신 배경은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정몽주의 출세는 오로지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이뤄낸 성과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나라와 민생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도와 권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개혁가
사람이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정도는 말 그대로 바른길을 가는 것, 즉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반면 권도는 정도를 지키기 어려울 때 목적 달성을 위해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몽주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 고려 말의 정치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몽주가 항상 정도만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이렇게 고려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정몽주는 고려 말 혼란기에도 자신의 정치적·행정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고려를 장악한 이성계 세력의 개혁 추진에 동참했는데,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 참여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고려를 유지한 채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몽주는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 했던 이성계의 혁명 세력과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는 이성계 세력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은 재상(수문하시중)이 되어 인사·재정·교육·의례·복식 등 국정 개혁의 전반을 총괄하면서 공양왕 대의 혼란한 정치 사회 상황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이후 ‘5죄 재심’ 등의 사건과 이성계의 낙마 등을 계기로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지만, 정몽주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고려 최후의 보루였던 그가 죽자 고려 또한 곧 무너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정몽주의 삶과 활약상을 통해 그를 ‘개혁’에는 앞장섰지만 ‘혁명’에는 반대했고, 정치적 수완과 행정 능력이 탁월했던 관료이자 나라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으로서 재해석한다. 무엇보다 그가 때로는 정도(正道)가 아닌 권도(權道)를 과감히 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 정몽주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정몽주는 개혁을 위해 창왕을 폐위하는 데 앞장서거나, 30년간 깊이 교유했던 동지였지만 정적이 되어버린 정도전을 공격하고자 그의 어머니의 천한 신분을 이용하는 등 필요에 따라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전자에서는 개혁을 통한 국가와 민생의 안정, 후자에서는 혁명을 막고 고려를 지키는 것이 그가 추구했던 ‘대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도를 택했다고 해서 정몽주의 업적이나 위대함이 폄훼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덧붙인다. 오히려 그런 면모는 고려 말 혼란기의 현실 정치인 정몽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몽주를 둘러싼 ‘충절의 화신’이라는 신화를 걷어내더라도, 그가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화와 허구가 가려버린 정몽주의 진짜 삶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키려다 태종 이방원의 손에 죽어나간 정몽주. 그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충절의 화신’으로 추앙을 받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후대에 덧붙여지면서 정몽주의 삶은 점점 신화가 되어갔다. 그 유명한 〈단심가〉나, 정몽주가 죽은 자리에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선죽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위인전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 미래의 장인에게 글을 배웠다는 일화도 허구이고, 구사일생의 위기를 넘어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는 영웅담도 과장되어 알려졌다.
이러한 근거 없는 허구가 역사적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면서 정몽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신화화는 정몽주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정몽주 다시 읽기》는 정몽주의 삶을 보여주기에 앞서 그에 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논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이, 조식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가세한 이 논쟁은 그가 정말 충신이었는지, 그가 훌륭한 성리학자였는지 등 주제가 다양했고, 이는 정몽주의 삶이 입체적이었음을 시사하며 우리의 편견을 벗긴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정몽주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되짚어봄으로써 인간 정몽주의 참모습을 이해해나간다. 특히 정몽주가 직접 쓴 시들을 곳곳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의 생애와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수성가의 표상
탁월한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 성장하다
우리가 아는 정몽주의 모습은 어떤가? 그가 거물로 성장해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에 맞서 고려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모습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가? 당연한 말이지만 정몽주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려면 그가 어떤 경험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정몽주의 성장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몽주는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고려 말 핵심 인물로 발돋움했다. ‘성리학자’로서 선진 학문인 성리학의 교육에 큰 공로를 세웠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이색은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상이란 뜻인 ‘동방이학의 조(祖)’로 일컫기도 했다. 또한 정몽주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당시 ‘군사 행정가’로서 세 차례나 종군했는데, 특히 이성계가 직접 발탁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군 시기는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한 때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외교관’으로서는 친명(明) 외교 노선을 주장하며 직접 외교관으로 나서 당시 경색되어 있던 명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파견되어 왜구 침입을 자제시킬 것을 요청하고, 고려인 포로를 송환해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눈에 띄는 것은 정몽주의 출신이 중앙 정계의 유력한 세력과 연결될 만한 고리가 전혀 없는 한미한 집안이었다는 점이다. 귀족적 성격이 강했던 고려 사회에서 정몽주의 출신 배경은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정몽주의 출세는 오로지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이뤄낸 성과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나라와 민생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도와 권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개혁가
사람이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정도는 말 그대로 바른길을 가는 것, 즉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반면 권도는 정도를 지키기 어려울 때 목적 달성을 위해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몽주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 고려 말의 정치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몽주가 항상 정도만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이렇게 고려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정몽주는 고려 말 혼란기에도 자신의 정치적·행정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고려를 장악한 이성계 세력의 개혁 추진에 동참했는데,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 참여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고려를 유지한 채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몽주는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 했던 이성계의 혁명 세력과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는 이성계 세력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은 재상(수문하시중)이 되어 인사·재정·교육·의례·복식 등 국정 개혁의 전반을 총괄하면서 공양왕 대의 혼란한 정치 사회 상황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이후 ‘5죄 재심’ 등의 사건과 이성계의 낙마 등을 계기로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지만, 정몽주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고려 최후의 보루였던 그가 죽자 고려 또한 곧 무너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정몽주의 삶과 활약상을 통해 그를 ‘개혁’에는 앞장섰지만 ‘혁명’에는 반대했고, 정치적 수완과 행정 능력이 탁월했던 관료이자 나라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으로서 재해석한다. 무엇보다 그가 때로는 정도(正道)가 아닌 권도(權道)를 과감히 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 정몽주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정몽주는 개혁을 위해 창왕을 폐위하는 데 앞장서거나, 30년간 깊이 교유했던 동지였지만 정적이 되어버린 정도전을 공격하고자 그의 어머니의 천한 신분을 이용하는 등 필요에 따라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전자에서는 개혁을 통한 국가와 민생의 안정, 후자에서는 혁명을 막고 고려를 지키는 것이 그가 추구했던 ‘대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도를 택했다고 해서 정몽주의 업적이나 위대함이 폄훼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덧붙인다. 오히려 그런 면모는 고려 말 혼란기의 현실 정치인 정몽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몽주를 둘러싼 ‘충절의 화신’이라는 신화를 걷어내더라도, 그가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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