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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의 ‘아이히만’들 실미도 사건 50주기에 부쳐 (2021) - (인문에세이)

동방박사님 2024. 8. 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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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올해 50주년을 맞이하는 실미도 사건 진상규명에 참여했던 저자가 조사 과정에서 면담했던 당시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 장면을 통해 실미도 부대 창설 과정, 즉 창설의 배경과 부대원 모집 과정을 재구성하고, 특히 진상규명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함으로써 이 사건의 축소, 조작, 은폐, 왜곡의 실상을 보여준다. 또 실미도 부대원들의 최후 폭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4명의 심문 기록, 그리고 그들이 사형장에서 남긴 최후 유언도 그대로 담아냈다.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어떻게 뒤틀리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즉 과거의 역사에 눈감지 않음으로써 오늘의 우리의 역사에서도 되풀이되는 비극에 눈감지 않고자 하는, 오늘 우리 삶의 건강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각오와 염원을 담은 책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 실미도 사건

1. 창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 모집: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3. 유린: “운동선수 규칙 위반”, “깨지는구나”
4. 봉기: “중앙청으로 가자”
5. 덮기: “조용히 처리하라”, “일본에서 머리 좀 식히고 오라”
6. 재판: “베트남에 같이 가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
7. 횡령: “뜯어 먹어도 그렇게 뜯어 먹을 수가 없어”
8. 발굴: “오빠, 이 나라를 절대 용서하지 마!”

2부 | 사형수 4인의 육성

1. 피의자 신문조서
2. 사형집행 관련 문서
3. 형장의 유언

저자 소개

평화여성회(NGO) 대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주요 공저로 《한국전쟁: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 《세계화와 여성안보》, 《끝나지 않은 국가의 책임: 산청, 함양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책 속으로

1부에서는 위원회가 실미도 부대 창설 과정부터 4명의 사형 집행까지 관여했던 자들의 조사면담 내용을 중심으로 싣는다. 2부에서는 흔적도 없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했던 사형수 4명의 육성을 공개하기로 한다. 이들 4명이 실미도에서 겪었던 3년 4개월, 총 4,860일의 기록이다. 소설과 영화, 그리고 수많은 기사와 영상들이 세상에 나왔지만 공작원들이 실미도에서 몸소 겪었던 내용들과는 거리가 먼 것도 있고, 사실을 왜곡·호도하는 내용도 많았다. 암매장 관련자들이 언젠가 입을 열 날을 기다리며, 이들 4명의 피의자 신문 조서와 사형집행 문서, 그리고 사형 집행장에서의 최후 유언을 공개한다.
--- p.23

실미도 부대의 창설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각각 개입하였던, ‘제2의 한국전쟁’이라 불리었던 베트남 전쟁이 배경이 된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각각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지원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 “사회주의권의 국제적 의무”라는 명분을 표방하면서 직접 전쟁에 참전하였다. 1968년 ‘1·21사태’ 직후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지시에 의해 공군이 책임을 맡아, 공군 내에 대북 보복으로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한 특수임무부대로 684부대가 실미도에 만들어졌다. 창설 직후 6개월 정도는 예산도 충분히 지급되었으나 1968년 말 베트남 전쟁 종결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등장한 닉슨이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중략) 박정희 정권은 닉슨 정권에 의해 대북 화해를 강요받았고, 이 과정에서 실미도 부대의 창설 목적과 임무는 폐기되었다. 중정과 공군의 무책임한 방기가 진행되면서 예산 전횡과 부대 관리 소홀이 이어졌고, 공작원들은 허기와 무력감을 느끼며 불만을 쌓아 가고 있었다.
--- p.34

실미도 부대 공작원 (중략) 모집 대상은 주로 전쟁고아, 무연고자 등으로 미군 부대, 한국군 첩보부대 인근이나 기지촌 주변에서 살아가는 남성으로 채워졌으며, 모집 마감이 임박하자 초등학교 동창인 7명의 옥천 청년 등으로 급하게 채워졌다. 주 임무는 ‘김일성의 목을 따 오는’ 것이었으며, 대우조건은 (1) 3개월 내지 6개월간의 훈련 (2) “월급 600불” (3) 신탄진 담배 지급 (4) 훈련 종료 후 소위 임관 (4) 임무 수행 후 미군 부대 등 취직 알선 등이었다. (중략) 31명은 ‘1·21사태’를 일으킨 북한의 124군 부대의 31명과 같은 숫자로서, 모집관들은 마지막까지 이 숫자를 지키고자 애썼으며, 신현준·강신옥·윤석두 등 마지막으로 입도한 3명은 부대 창설식이 임박해서 들어와 제대로 된 인적사항도 남아 있지 않다.
--- p.74

중정의 관리감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중정 실무담당 윤진원은 자신은 딱 한 번 실미도 부대를 방문하였으며, 모든 훈련은 공군이 책임지고 잘 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늘 보고를 받았다면서 공작원이 훈련 중에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모른다. 없었다. 구두로도 받은 바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공군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미도 현지에서 근무한 기간병들은 한결같이 위 사건들이 상부에 보고되었다고 사건 수사 과정에서 진술하고 있다.(재판기록)
--- p.100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잊혀진 부대인 실미도 부대 공작원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상부로부터의 지시 또는 정식 문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서 담당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기되었고, 사건을 입증할 물증이 사라짐으로써 온전한 사건의 실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 p.139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971년 11월 5일에 공군 보통 군법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재판장이 군사 보안상의 이유로 공판의 공개를 정지시켜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유가족들에게 통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략) 김이태는 본인이 김응수의 지시로 이들 4명에게 “베트남에 같이 가자”며 상고 포기를 종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상고 포기 후 12월 29일에 사형이 확정되고 사건 발생 후 채 7개월도 되지 않은 이듬해 1972년 3월 10일에 이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p.140-141

이들의 사형집행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시신 처리와 매장 등 관련자 70여 명은 보안각서를 제출하도록 강요받았다. 사형집행 내용은 군사기밀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이들이 작성·제출했다는 보안각서는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그러나 오류동으로 추정되는 암매장지와 관련하여 아직도 관련자들은 보안각서를 핑계로 정확한 내용을 증언하지 않고 있고, 공군과 국방부는 예전의 벽제 매장설, 유실설만 주구장창 낡은 레코드판 돌리듯 반복하고 있다.
--- p.142

벽제 유해 발굴 후 DNA 검사 결과 김기정, 정기성, 박원식, 김용환, 장명기, 이명구, 박기수, 장정길 등 총 8명의 신원이 확인되었고, 다른 시료들은 불량이거나 감정 불능으로 판명되었다. 이영수, 윤태산, 임기태, 황철복, 박응찬, 정은성, 신현준, 강신옥 등 공작원 8명의 유가족은 확인되지 않았고, 실미도 사건 당일 현장에서 사라진 이영수, 전균 등 2명의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들의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p.170

‘실미도 사건’은 한국전쟁의 연장선, 즉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의 남과 북이 무력을 동원하여 폭력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는 가운데 발생한 참사였다. “국가란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1·21사태’와 이에 대한 보복 응징 대책 실패작인 ‘실미도 사건’은 ‘샴쌍둥이’인 남북의 호전적 정권 안보 세력들이 펼친 적대적 무력 정책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어떻게 국가 구성원들의 삶을 뒤틀리게 만드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많은 유사사건에서 그러했듯이 ‘실미도 사건’에서도 정권보위를 부르짖는 자들은 사건을 축소·조작·왜곡·은폐하였고, 공작원들의 인권보호는커녕 이들을 인간 병기로 만들어 분단 갈등의 폭력적 대결에 써 먹으려는 생명 경시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가 폭력은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이다. ‘국가’란 이름 뒤에 숨어 수많은 사람을 해쳤던 비열한 인간들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 p.279-280

출판사 리뷰

1.

‘1971년 8월 23일 영등포로터리’에서 저지되었던 실미도 부대원들의 ‘중앙청으로 가는 길’과 그 이후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나 언론 보도, 그리고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일관되게, 전형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진상에 대한 축소, 조작, 은폐, 왜곡이었다.
‘북한군 특수부대에 의한 1·21사태 → 남한의 보복 차원에서 준비된 실미도 부대 →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용도 폐기되고 잊힌 부대가 된 실미도 부대 → 부당한 처우 → 중앙청으로 가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봉기 → 군경의 저지에 막혀 대치 중 폭사 →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생존자들을 비밀 재판 후 처형, 일부 사망자들은 암매장 → 50주년이 될 때까지 축소, 조작, 은폐, 왜곡!

이것이 실미도 사건의 기본적인 골격이다. 남북한 간의 대치 상황만으로는 이 사태가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 뒤의 미국 정부, 당시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박정희 독재 정부의 광기 어린 대응,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가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그 속의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근본적인 사태가 이 사건에 개재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실미도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50주년이다. 30여 명의 장정들이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실미도로 들어갔다가, 몇 년 동안 비인간적인 수준의 대우와 살인적인 훈련만을 받으며 착취까지 당하다가 결국 당국자들로부터 버려지고 잊힌 사람들이 되어야 했던 그들은 결국, ‘국가’의 이름을 도용하고, ‘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온갖 불법, 탈법적인 방법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한 세력의 희생양일 뿐이다.

실미도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분단된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그리고 그것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유린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결국 국가, 혹은 자본이 국민을 장기판의 졸(卒)로 여기는 역사의 사기극을 끝장내는 민중 항쟁이기도 하다.

2.

이 책은 실미도 사건 30주년 전후에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참여했던 저자가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시점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의 진상규명을 ‘여전히’ 시도하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저자가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것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에 참여했던 아이히만이 보여주었던 ‘악의 평범성’처럼,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 또렷이 자리 잡은 근원적인 악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자 자신마저 그러한 악의 모습에 굴복해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사건의 진실 규명 작업을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악한 사람들의 악행”은 그 악에 “침묵”할 때 완성된다는 자각으로 말미암아, 이 사건의 진상 규명에 (한때 손을 놓았다가) 다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우리 역사의 비극의 장면마다 깃들어 있는 ‘남성의 시각’과 ‘남성 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여성의 시각으로 한반도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 규명에 매달린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여성의 시각’은 그가 간여한 또 하나의 역사의 진실 규명/접근 작업의 하나인,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들을 만날 때에도 뼈저린 경험으로 다가왔음을 고백한다. 베트남 전쟁은 이 사건 - 실미도 사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각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50년 전의 역사를 지금 여기의 것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멀고 아득하다는 생각을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공식 선언된 21세기 20년째의 해에도 현실에서의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더 교모하고, 더 큰 규모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득권자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현실에 “스스로가 깨어 있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국가는 진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포기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인권이다”(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라는 말을 떠올리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런 점에서 돌이켜보면, 실미도 사태의 희생자들은 이들 자신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끝내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만큼 비극적인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남은 과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진상 규명과 보상/배상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건의 희생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