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계사 이해 (독서>책소개)/2.세계문화

상인의 세계사 (2024)

동방박사님 2024. 9.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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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와 문명을 연결한 중간상인,
11개 주제로 탐구하는 브로커의 변천사

상인은 문명의 태동과 함께 등장해 서로 다른 지역과 인간을 연결하고 매개했다. ‘중매인’ 내지는 ‘브로커’로 불린 그들은 멀찍이 떨어진 문명을 연결하여 서서히 하나로 통일시켰다. 그들이 구축한 교역로를 따라 성직자는 타지에 종교를 전파했고, 문학가는 다른 세상의 문화를 배웠으며, 국가는 이국의 문물을 수입했다. 상인이야말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지구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한 주인공이자 인류 역사의 숨은 주역이다.

역사의 한 축이었던 그들은 아주 장기간에 걸쳐 사람과 세상을 연결했다.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고, 상반된 생태계와 문화권을 융합시켜 세계사에 역동적인 감칠맛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이, 자신들의 상품이 세계를 바꾼다는 자각이 일절 없었을 테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세상을 바꿀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상인의 변천사에서 세계 경제의 우여곡절을 알 수 있다. 머나먼 과거에는 상인이 직접 서로 다른 세상을 연결했으나 이제는 매개의 역할을 기계가 떠맡게 되었다. 덕분에 세계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강력하게 일체화되는 중이다. 오늘날 세상은 급속하게 좁아지고 있다. 이 책은 상인이 역사에 남긴 업적,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 방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세상을 ‘직접’ 만나는 일이 가능해진 오늘날. 우리는 두 개의 시대가 공존하는 순간을 살고 있다. 우리의 오늘은 미지의 땅을 지우고 확대를 거듭한 과거의 끝이자 새로운 경제 체제가 형성되는 새 시대의 출발점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현대의 조세 피난처까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이어진 중간상인의 변천사를 통해 인류 경제의 미래를 가늠해 보자.

목차

머리말 - 4p

1장 메소포타미아 - 최초의 브로커가 태어난 요람 … 13p
2장 페니키아인 - 지중해 교역로의 개창자 … 33p
3장 파르티아 -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로마의 경쟁자 … 51p
4장 이슬람 - 중세를 지배한 황금의 종교 … 69p
5장 소그드인 - 실크로드의 주인공 … 89p
6장 세파르디와 아르메니아인 - 지중해를 넘어 세계로 … 109p
7장 바이킹, 한자동맹, 네덜란드 - 북방 교역망의 변천사 … 127p
8장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 … 147p
9장 대영제국 - 수수료 자본주의의 설계자 … 169p
10장 영사에서 종합상사로 - 일본의 경제발전을 이끈 두 개의 기둥 … 187p
11장 조세 피난처 - 대영제국과 IT 기술의 합작품 … 209p

맺음말 - 사람과 물품, 돈과 정보의 흐름이 분리되다 … 228p
후기 … 232p
참고문헌 … 234p

저자 소개 

저 : 다마키 도시아키 (玉木 俊明)
일본 오사카 출생으로, 1987년 도시샤대학 문학부 문화학과를 졸업했다. 근대 유럽 경제사를 전공했고, 2007년부터 교토산업대학의 경제학부 교수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 〈북방 유럽의 상업과 경제 1550~1815년〉으로 오사카대학교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저서 중 한국에 번역된 책으로는 《세계사의 중심축이 이동한다》,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이아몬드의 세계》, 《한 권으로 읽는...

역 : 이인우기자, 작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2022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학교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저술한 책으로는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2024)를 비롯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한겨레 10년의 이야기》(공저, 1998),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2016), 《서울 백년 가게》(2019), 《음식천국 노회찬》(...

출판사 리뷰

역사를 추동한 만국의 브로커들

기원전 8,000년 무렵. 인류의 농경 및 목축 생활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문명이 발전하기 위한 목재, 광석 등이 부족했기에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고자 물자 유통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등장했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도시나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중간상인이 등장했고, 그들은 이집트 지역에서 인더스 지역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상업권을 형성했다. 즉 상인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역사의 주인공이다. 최초의 브로커는 인류의 요람이 품은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문명의 증거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연이어 등장하는 중간상인들 또한 각자가 직면한 시대의 문제에 휘말리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오늘날 레바논-시리아 지역에서 문명을 꽃피운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교역로의 개창자였다. 그들은 원래의 거주지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항해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의 항해가 달랐다고 설명한다. 당시 그리스인은 발칸반도 주위를 중심으로 동쪽 연안 바다 위주로 항해했다. 이와 달리 페니키아인은 유럽 문명의 근원으로 통용되는 고대 그리스인들보다 항해술이 뛰어났고, 이를 이용해 지중해 세계의 교역을 장악했다. 페니키아인의 후예가 세운 카르타고는 로마보다 앞서 지중해를 자국의 내해로 편입했고, 지중해의 물류를 통제해 막대한 이익을 확보했었다. 지은이가 강조하듯이 “우리는 유럽으로 국한할 수 없는, 고대사 최대의 중간상인이었던 페니키아인이 세계사에 남긴 공헌을 더욱 진지하게 평가해야 한다.”

페니키아인에 관한 설명처럼, 지은이는 그간 유럽인의 편견으로 외면되었던 상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존속했던 ‘파르티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국가는, 로마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사이에서 비단 중계무역을 펼쳐 막대한 수입을 벌었다. 파르티아가 관장한 동서 교역로는 이베리아반도의 끝에서 중국의 낙양까지 이어져 있었다. 약 6,400km에 육박하는 교역로의 한복판에, 로마 제국의 경쟁자로서 파르티아라는 중간상인이 있었다.

이 책은 이슬람 상인과 소그드인의 활약도 재해석한다. 그들은 동시대의 유럽인 내지는 중국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났다. 이슬람 세력은 7세기에 근동 지역과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로 인해 지중해는 여러 문화와 종교가 교류하는 ‘이문화 교역권’에 편입되어 거대한 세계 교역망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중국-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로에서, 지중해는 이슬람 세력에 포위된 채 변방의 협소한 시장으로 전락했다.

한편 소그드인은 이슬람교도와는 달리 강력한 국가를 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여러 제국의 신민을 자처했기에, 자신들을 지배하는 거대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상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서 교역로가 이어진 유라시아대륙 최대의 중간상인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수많은 지역에서 공용어로 통용됐고,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 및 통제하는 거대 제국에 여러 방식으로 이바지했다. 특히 당나라에서는 고위 관료로 승진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즉 대항해시대가 오기 전까지, 바닷길은 이슬람 상인의 영역이었고 육로는 소그드 상인의 영역이었다. 두 상인이 중세 역사를 움직인 두 개의 기둥이었다. 유럽이 세계사의 전면에 나타난 시기는 이 두 브로커가 점차 쇠퇴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슬람 상인과 소그드 상인의 활약에 비하면, 동시대 유럽 내 상인의 역할은 미미하고 협소했다.

이문화 교역권의 변방에서 세계 교역망의 중심으로

유럽의 상업망은 소그드인과 이슬람 상인이 중간상인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상인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향신료 무역 내지는 레반트 교역을 벌였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탈리아 상인의 활동은 거대한 이문화 교역권의 변방에서 벌어진 사소한 상거래에 불과했다고 성찰하면서, 오히려 동시대 지중해 무역을 책임진 집단은 이베리아반도 출신 유대인, 즉 ‘세파르디’라고 역설한다. 세파르디의 일부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추방된 후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자유도시에 정착해 산호를 인도에 수출했고, 이를 대가로 인도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를 독점적으로 취급했다.

실크로드에서 소그드인이 정체성과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자, 그 자리를 ‘아르메니아인’이 대신하였다. 그들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대항해시대를 이룩한 15~17세기에 유라시아대륙의 육상 교역망을 장악했다. 그들은 오늘날 이란 땅으로 이주한 후 그곳을 거점으로 전 세계 면직물 교역의 거상으로 활약했다.

세파르디가 지중해 무역을, 아르메니아인이 유라시아의 육상 교역을 담당할 때,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는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을 넘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포르투갈은 지중해를 둘러싼 이슬람 세력의 포위망을 벗어나고자 아프리카 연안 바다를 항해했다. 이후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양, 아라비아해,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남쪽 바다까지를 하나의 해상 교역망으로 연결했다. 한편 에스파냐는 콜럼버스의 ‘신세계’ 항해를 지원하면서 대서양 무역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한다. 앞서 세파르디 중 일부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정착했고 그곳에서 사탕수수 생산 및 설탕무역 체제를 구축하긴 했다. 이후 에스파냐는 자국의 군인과 상인을 파견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식민지를 건립하고, 세파르디가 정립한 설탕무역 시스템을 자국의 경제 체제로 편입하였다. 즉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이 연결된 ‘이문화 교역권’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유럽이,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거쳐 세상을 단일한 교역망으로 연결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것을 이끈 선두주자가 바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였다.

지은이는 장기간에 걸친 경제적 우위의 전환 과정에서, 북유럽의 중간상인도 나름의 지분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이 유럽을 포위하던 7세기 초, 북유럽에서는 ‘바이킹’이라는 집단이 최초로 북해와 발트해 중심의 상업망을 구축했다. 이후 독일의 뤼베크, 함부르크 등을 중심으로 대두한 ‘한자동맹’이 바이킹의 교역망을 활용해 중세 유럽의 경제를 지탱하였다. 대항해시대 기간에는 네덜란드 상인이 오늘날 폴란드 지방의 곡물을 대량으로 유럽에 유통하여 흑사병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요컨대 지중해에 인접한 남유럽 상인들은 전 세계 바다를 하나의 해상 교역망으로 연결했고, 위쪽의 북유럽 상인은 북해 및 발트해 상업망을 지중해 상업망과 연결해 유럽을 하나의 상업망으로 통합한 것이다.

사람과 물품, 정보와 돈이 분리되는 전환의 시대

이베리아반도의 두 국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세상을 바닷길로 합쳤다. 이 책은 네덜란드 상인이 바이킹과 한자동맹의 교역로를 계승해 북유럽과 남유럽을 경제적으로 통합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나 세상을 지배한 첫 번째 금융제국은 세 나라 중 하나가 아니다. 상업이 발전하는 역사에서 언급 한 번 되지 않았던 유럽 변방의 섬나라, 바로 영국이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설계했다.

19세기의 영국이 ‘대영제국’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17세기에 네덜란드와의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제정된 ‘항해법’이다. 영국의 항해법은 공화정을 세운 호국경 크롬웰이 처음으로 제정한 후 수차례 개정된 법령으로, 영국의 수출입에는 영국 배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유럽 내 화물선 유통 과정에서 네덜란드 선박을 밀어내고 영국 선박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둘째 요인은 영국의 본토와 식민지를 연결한 ‘철도’와 ‘선박’이다. 영국은 공식적으로 지배하는 식민지에는 물론,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공식 식민지에도 철도와 선박을 보내 해당 지역의 교역망을 장악했다. 라틴아메리카나 청나라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진 않았으나 영국의 철도와 선박을 이용하지 않고는 물류를 유통할 수 없었다. 영국은 바로 ‘망’을 장악해 경제적 힘을 축적하였다.

셋째는, 전 세계 금융 결제 비용의 수수료를 런던에 모이게 만든 ‘전신’의 위력이다. 오늘날에는 현금이나 물건으로 값을 치르기보다는 신용카드나 온라인 결제 방법으로 값을 지불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 전신을 부설하여 금융 시스템의 결제 수수료를 런던으로 유입되도록 만들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전기를 사용하거나 모종의 결제를 한다면, 전신을 사용한 수수료가 자동적으로 영국 런던에 모였다. 즉 대영제국은 수입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체제, 수수료(커미션)가 자동으로 축적되는 시스템인 ‘커미션 캐피탈리즘’을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전신, 그리고 전신이 이룩한 커미션 캐피탈리즘(수수료 자본주의)은 종래의 상거래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기존에는 사람과 물품, 정보와 돈이 상인 내지는 상단과 함께 이동했다. 그러나 전신으로 뒤덮인 수수료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사람과 물품, 정보와 돈이 분리된다. 이를 증명하듯 영국의 뒤를 따르던 제국주의 후발 국가들은 상품의 교역 자체보다도 ‘정보’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지은이는 ‘길’에서 이룩한 상업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고찰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정보가 돈이 되는 새로운 시대’, ‘수수료를 이용해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시대’, 곧 ‘경제적 전복의 세기’였다고 정의한다. 그 시기에 각국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은 영사관(대사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러 곳에 대사관을 파견한 후 그들로부터 현지의 정보를 입수하면, 이 정보를 자국의 기업에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수출을 장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사가 맡았던 정보 수집 업무는 자연스레 ‘종합상사’에 이전되었다. 다채로운 분야의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던 종합상사는,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세분화될수록 상품 생산 및 판매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정보 자체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렇듯 사람, 물품, 정보, 돈이 분리되는 세상은 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IT 산업은 기존 산업과는 다른 ‘무형자산’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무형자산을 두고, 지은이는 “자본 없는 자본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그 실태를 파악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이러한 특성을 악용하여, 전 세계적으로 IT 산업계는 ‘조세 피난처’에 자사의 수익을 숨겨놓고 납세를 회피하려고 한다.

조세 피난처는 기본적으로 대영제국의 어두운 유산이다. 30여 개에 육박하는 조세 피난처 지역 중 22곳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현재 영국의 해외 영토 내지는 영국 왕실령이다. 여러모로 영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지은이는 영국 왕실이 여전히 굳건한 이유는 그 집단이 바로 21세기 탈세 시스템의 지배자로서 군림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유럽에서 엄청난 수익을 버는 은행들은, 자국에서는 손해를 볼지언정 편법적으로 조세 피난처를 활용해 탈세를 저지르는 중이다. 제국주의의 어두운 유산, IT 기술의 발전, 편법과 불법 사이의 탈세. 이 세 가지가 결합된 결과, 마땅히 확보되어야 할 세수는 목표량을 채울 수 없게 된다. 그 여백은 자연히 아무런 죄가 없는 일반 국민에 전가된다. 이익은 사익화되고 피해는 사회화되는 기묘한 사회. 지은이는 현금이 사라진 ‘캐시리스’ 사회가 결국 빈부격차와 경제적 부조리를 확대-재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