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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이동을 멈추었다. 선사시대부터 ‘대이동’을 거듭해오며 열사의 땅 사막부터 극한의 땅 남극까지 지배해온 인류에겐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인간은 왜 끊임없이 이동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이민’이 세계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볼 때가 아닐까? 이 책은 30개가 넘는 지도, 표, 그림과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과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살펴본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새로운 문화와 기술과 음식과 생활양식 등을 퍼뜨린 이들의 흐름을 따라 걷는다. 이렇듯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면, 인간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어내고 전파했는가 그리고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 문제가 어째서 오늘날 인류의 과제로 남게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이동을 멈추었다. 선사시대부터 ‘대이동’을 거듭해오며 열사의 땅 사막부터 극한의 땅 남극까지 지배해온 인류에겐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인간은 왜 끊임없이 이동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이민’이 세계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해볼 때가 아닐까? 이 책은 30개가 넘는 지도, 표, 그림과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과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살펴본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새로운 문화와 기술과 음식과 생활양식 등을 퍼뜨린 이들의 흐름을 따라 걷는다. 이렇듯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면, 인간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어내고 전파했는가 그리고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 문제가 어째서 오늘날 인류의 과제로 남게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목차
머리말
Ⅰ. 인류·민족의 ‘대이동’이란 무엇인가?
1. 문명은 어떻게 전파되었을까?
‘세계 최초의 이민’은?
6대 문명의 탄생
‘이민’이 문명을 연결했다
‘왕의 길’은 하룻밤에 닦이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인
2.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에 얽힌 수수께끼
해상경로로 이동 개시
항해자가 완성한 섬 네트워크
누가 고대 아메리카문명을 세웠나
3. 누가 유럽문명을 만들었나
그리스문명은 오리엔트문명의 일부에 불과하다
식민지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이유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했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과 ‘이민’
교역의 민족, 페니키아인의 역할은?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고대 로마
이렇게 유럽은 오리엔트를 잊었다
4. 유목민으로 문명의 흥망을 생각하다
세계사의 주역으로서 유목민
스키타이, 흉노, 훈족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은 왜 일어났을까?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몽골제국
흑사병 유행의 원인은 몽골제국?
Ⅱ. 세계의 ‘교역’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5. 유럽을 포위한 이슬람 상인
떠오르는 이슬람
정통 칼리프 시대에서 우마이야왕조로
‘아바스 혁명’이라는 전환점
‘상업의 부활’은 커다란 착각
전 세계로 이주한 이슬람 상인
6. 상업 민족으로 활약한 바이킹
누가 북해를 통일했나
확대하는 바이킹의 상업권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인
북해제국을 건설한 덴마크인
바이킹 활약을 뒷받침한 랑스킵
‘상업의 부활’과 바이킹
7. 포르투갈은 신항로 개척시대의 패자가 아니다
막대한 이익이 파생한 사하라 횡단 무역
레콩키스타에서 신항로 개척시대로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
뉴크리스천의 동향
밀무역으로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예수회
신세계로 확대된 무역 네트워크
포르투갈은 ‘패자’가 아니었다
8.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교역의 장이 된 아시아
이슬람화하는 동남아시아
영락제와 정화의 원정
무역 거점으로서의 류큐
류큐는 왜 중국과의 관계를 이어갔나?
9. 흑인과 유대인이 일으킨 ‘설탕 혁명
‘설탕 혁명’이란 무엇인가?
대이동하는 환대서양 세계
대서양 노예무역과 인구 증가의 관계
네덜란드의 신세계 진출
기술 전파의 열쇠가 된 세파르딤
Ⅲ. ‘이민’이 유럽의 번영을 가져왔을까?
10. 아르메니아인으로 본 산업혁명
아르메니아 상인의 네트워크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르메니아인의 활약
면은 어떻게 거래되었나?
장인으로서의 아르메니아인
유럽인은 무엇을 얻었나?
11. 대영제국으로 퍼져 나간 스코틀랜드인
대영제국의 복잡한 성립 과정
이주하는 스코틀랜드인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
스코틀랜드인이 맡았던 역할
대영제국 붕괴에서 무엇이 일어났나?
12. 유럽인은 왜 식민지로 건너갔을까?
세계화의 시대
증기선의 발달
유럽인은 왜 신세계로 이주했나?
영국 국내에서 일어난 일
미국의 부상
13 세계사에서 바라본 유럽 이민 문제
제국주의가 결정한 세계지도
유럽으로 밀려오는 난민
제국주의 각국의 꿍꿍이
불을 내뿜은 ‘유럽의 화약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상흔
코소보 난민은 민족문제의 축소판
시리아 난민 문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상황
제국주의가 남긴 어두운 유산
맺음말
참고문헌
Ⅰ. 인류·민족의 ‘대이동’이란 무엇인가?
1. 문명은 어떻게 전파되었을까?
‘세계 최초의 이민’은?
6대 문명의 탄생
‘이민’이 문명을 연결했다
‘왕의 길’은 하룻밤에 닦이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인
2.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에 얽힌 수수께끼
해상경로로 이동 개시
항해자가 완성한 섬 네트워크
누가 고대 아메리카문명을 세웠나
3. 누가 유럽문명을 만들었나
그리스문명은 오리엔트문명의 일부에 불과하다
식민지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이유
페르시아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했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과 ‘이민’
교역의 민족, 페니키아인의 역할은?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고대 로마
이렇게 유럽은 오리엔트를 잊었다
4. 유목민으로 문명의 흥망을 생각하다
세계사의 주역으로서 유목민
스키타이, 흉노, 훈족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은 왜 일어났을까?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몽골제국
흑사병 유행의 원인은 몽골제국?
Ⅱ. 세계의 ‘교역’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5. 유럽을 포위한 이슬람 상인
떠오르는 이슬람
정통 칼리프 시대에서 우마이야왕조로
‘아바스 혁명’이라는 전환점
‘상업의 부활’은 커다란 착각
전 세계로 이주한 이슬람 상인
6. 상업 민족으로 활약한 바이킹
누가 북해를 통일했나
확대하는 바이킹의 상업권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인
북해제국을 건설한 덴마크인
바이킹 활약을 뒷받침한 랑스킵
‘상업의 부활’과 바이킹
7. 포르투갈은 신항로 개척시대의 패자가 아니다
막대한 이익이 파생한 사하라 횡단 무역
레콩키스타에서 신항로 개척시대로
포르투갈의 아시아 진출
뉴크리스천의 동향
밀무역으로 살림살이가 넉넉해진 예수회
신세계로 확대된 무역 네트워크
포르투갈은 ‘패자’가 아니었다
8.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교역의 장이 된 아시아
이슬람화하는 동남아시아
영락제와 정화의 원정
무역 거점으로서의 류큐
류큐는 왜 중국과의 관계를 이어갔나?
9. 흑인과 유대인이 일으킨 ‘설탕 혁명
‘설탕 혁명’이란 무엇인가?
대이동하는 환대서양 세계
대서양 노예무역과 인구 증가의 관계
네덜란드의 신세계 진출
기술 전파의 열쇠가 된 세파르딤
Ⅲ. ‘이민’이 유럽의 번영을 가져왔을까?
10. 아르메니아인으로 본 산업혁명
아르메니아 상인의 네트워크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르메니아인의 활약
면은 어떻게 거래되었나?
장인으로서의 아르메니아인
유럽인은 무엇을 얻었나?
11. 대영제국으로 퍼져 나간 스코틀랜드인
대영제국의 복잡한 성립 과정
이주하는 스코틀랜드인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이민
스코틀랜드인이 맡았던 역할
대영제국 붕괴에서 무엇이 일어났나?
12. 유럽인은 왜 식민지로 건너갔을까?
세계화의 시대
증기선의 발달
유럽인은 왜 신세계로 이주했나?
영국 국내에서 일어난 일
미국의 부상
13 세계사에서 바라본 유럽 이민 문제
제국주의가 결정한 세계지도
유럽으로 밀려오는 난민
제국주의 각국의 꿍꿍이
불을 내뿜은 ‘유럽의 화약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상흔
코소보 난민은 민족문제의 축소판
시리아 난민 문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상황
제국주의가 남긴 어두운 유산
맺음말
참고문헌
책 속으로
이 책에서는 이민의 정의를 조금 넓게 잡고, ‘이동하는 사람들(移民)’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민의 역사를 살펴본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능력과 수단’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특별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사람들=이민’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면 인간이 어떻게 문명을 만들고 전파했는지,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졌는지 전체적인 구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와 그 문제가 오늘날 과제로 남았다는 사실도 실감할 수 있다.
--- 「머리말」 중에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사건의 중심에는 고트족(Goths)이 있었다. 고트족은 본래 발트해 남부에 살다가, 남하하여 흑해 연안부까지 이주하는 과정에서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갈라졌다. (중략)
동고트족은 동흉노의 이동으로 인해 서방으로 밀려난 훈족에게 지배당했다. 375년 이에 위협을 느낀 서고트족이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제국 영내로 침입한 사건을 계기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중략)
브리튼섬은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침공 이후 로마가 지배했는데, 민족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의 세력이 약해지자 로마는 브리튼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앵글로색슨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주민인 브리튼인을 정복했다. (중략) 요컨대 유목민의 이동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인 셈이다.
---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은 왜 일어났을까?」 중에서
1347년 흑사병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지중해 각지로 번져 프랑스 마르세유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1348년에는 아비뇽, 피렌체, 런던으로 퍼져 나갔고, 이듬해에는 북유럽에서 폴란드로, 1351년에는 러시아까지 도달했다.
흑사병은 현대의 그 어떤 전염병보다 빠른 속도로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창궐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몽골제국의 교역 네트워크로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병을 퍼뜨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가 커진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몽골제국이 ‘팍스 몽골리카’ 즉 몽골의 평화를 실현하지 않았더라면 유라시아 대륙의 교역 네트워크는 확장되지 않았을 것이며, 유럽까지 흑사병이 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 「흑사병 유행의 원인은 몽골제국?」 중에서
영락제는 환관이자 이슬람교도였던 정화(鄭和)에게 함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반도까지 원정을 다녀오도록 명령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쳤다. 그는 중국의 교역 확장 시대를 몸소 실현한 황제였다. (중략)
그러나 1424년에 영락제가 세상을 떠나자 중국은 적극적인 대외 진출을 중단했다. 급기야 1436년에는 대양 항해용 선박 건조까지 중단했다. 중국은 이 시기에 나라의 빗장을 닫아걸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공무역 체제는 유지했으나 해외 진출은 중단했다. 당시 세계에서도 선진적인 기술을 보유한 중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을 이 시점으로 볼 수 있다.
--- 「영락제와 정화의 원정」 중에서
세계사 최대 규모 ‘이민’ 이야기의 주인공은 16~19세기에 노예가 되어 대서양을 건넌 흑인이다. 현재 연구에서는 서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이송된 흑인 노예가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했다고 추정한다. 이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이 유럽에 수출되어 유럽인의 생활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중략)
유럽인의 설탕에 대한 갈망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17세기에는 신세계가 설탕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의 최대 수출품은 설탕이었고, 이 현상을 ‘설탕 혁명’이라 불렀다.
‘설탕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강제 이주를 당한 흑인 노예다. 흑인은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 기술을 전수한 사람들로는 유대인(세파르딤, Sephardim)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다.
--- 「‘설탕 혁명’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세계 최초의 공업국가로 거듭난 나라는 영국이었다. 우리는 뭉뚱그려 ‘영국’이라 부르지만, 영국이라는 나라의 체제는 매우 복잡하다. (중략)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한 브렉시트(Brexit)의 의미가 이해된다. 브렉시트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실제로 EU에서 탈퇴하고 싶었던 나라는 잉글랜드이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탈퇴를 원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등은 EU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처럼 영국의 내적 유대는 절대 견고하지 않다. 영국은 서서히 분열 중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대영제국의 복잡한 성립 과정」 중에서
전쟁이 끝나자 유럽을 대신해 미국이 급부상했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산업혁명과 조선업에 필요한 자원을 자국 내에서 거의 조달할 수 있었다. 노동력의 국내 수급이 가능한 게 바로 미국 번영의 원천이었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에 인구밀도는 낮아 노동력을 수용할 여지도 충분했다. 그 덕분에 유럽에서 대규모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이민’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사의 주역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간 현상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순리였다고 볼 수 있다.
--- 「미국의 부상」 중에서
제1차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긴 사라예보사건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린 발칸반도의 민족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본래 발칸반도는 역사적으로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시대가 길었다. 겉으로는 하나의 통합된 제국을 유지하는 듯했으나, 속으로는 다양한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곪아가고 있었다. (중략)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뒤에는 독일이 버티고 있었고, 세르비아 측에는 러시아가 가담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었고,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삼국협상을 체결했다. 발칸반도는 말 그대로 제국주의 국가 간의 잇속 챙기기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최전선이 되었다.
--- 「불을 내뿜은 ‘유럽의 화약고’」 중에서
유고슬라비아 해체로 국가가 잇달아 독립하는 과정에서 코소보의 자치 요구 운동도 거세졌다. 코소보 총인구의 약 160만 명 중 세르비아인은 13퍼센트뿐이고, 알바니아인이 대다수로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알바니아인 우선 정책을 펼치던 티토가 사라지자 코소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1981년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 코소보 문제는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1998년 세르비아 치안부대를 파견해 코소보 해방군을 격퇴하려고 시도하며 다시 표면에 불거졌다.
분쟁 종결 후 코소보는 국제연합(UN)의 감독을 받았는데, 코소보의 불안정한 지위는 2008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 2009년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신청했을 때, 코소보와의 관계 개선이 조건으로 제시되자 세르비아는 코소보와 합의에 나섰다.
그러나 세르비아 헌법상 코소보는 여전히 세르비아의 한 지방으로, 독립국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한 국가가 많지만, 승인하지 않은 국가도 적지 않아 지금까지 문제로 남아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세르비아인을 습격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발생한 코소보 난민은 발칸반도에 남은 난민 문제를 상징한다.
--- 「코소보 난민은 민족문제의 축소판」 중에서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 시대에 중동 국가의 국경선을 자신들 편의대로 정했고, 그 결정이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선 확정 문제는 제국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 좀 더 신중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다루었더라면 이후 중동에서의 분쟁은 줄어들고 걸프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걸프전으로 인한 난민도 발생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상황」 중에서
본국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저렴한 노동력으로 식민지 사람들을 활용했다. 세계 최대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에는 식민지에서 온 이들이 몰려들었다. 현재 영국에 다양한 인종이 사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다. 물론 다른 유럽 국가에도 식민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는 있었다. 다시 말해 유럽은 수많은 이민자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시스템으로 돌아간 것이다. (중략)
유럽의 난민 문제는 역사와 문화 밑바탕에 깔린 문제라 해결이 쉽지 않다.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시대와 유럽 제국주의 시대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
--- 「제국주의가 남긴 어두운 유산」 중에서
이 책에 적은 대로 ‘이민’이란 사람들을 연결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새로운 문화와 기술, 음식, 생활양식 등을 퍼뜨린 이들의 이야기다. 인류는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며, ‘이민’이 있었기에 다른 장소에 사는 사람끼리 접점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또 강제로 이주당한 흑인 등 ‘이민자’의 희생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역사가 어떻게 접점을 가지게 되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목적으로 썼다. 독자 여러분이 이 핵심어로 세계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읽어낼 수 있다면 제목 그대로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본다.
--- 「머리말」 중에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사건의 중심에는 고트족(Goths)이 있었다. 고트족은 본래 발트해 남부에 살다가, 남하하여 흑해 연안부까지 이주하는 과정에서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갈라졌다. (중략)
동고트족은 동흉노의 이동으로 인해 서방으로 밀려난 훈족에게 지배당했다. 375년 이에 위협을 느낀 서고트족이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제국 영내로 침입한 사건을 계기로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중략)
브리튼섬은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침공 이후 로마가 지배했는데, 민족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의 세력이 약해지자 로마는 브리튼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앵글로색슨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주민인 브리튼인을 정복했다. (중략) 요컨대 유목민의 이동이 영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인 셈이다.
---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은 왜 일어났을까?」 중에서
1347년 흑사병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지중해 각지로 번져 프랑스 마르세유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1348년에는 아비뇽, 피렌체, 런던으로 퍼져 나갔고, 이듬해에는 북유럽에서 폴란드로, 1351년에는 러시아까지 도달했다.
흑사병은 현대의 그 어떤 전염병보다 빠른 속도로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 창궐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몽골제국의 교역 네트워크로 유럽과 중앙아시아가 밀접하게 이어지면서 병을 퍼뜨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가 커진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몽골제국이 ‘팍스 몽골리카’ 즉 몽골의 평화를 실현하지 않았더라면 유라시아 대륙의 교역 네트워크는 확장되지 않았을 것이며, 유럽까지 흑사병이 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 「흑사병 유행의 원인은 몽골제국?」 중에서
영락제는 환관이자 이슬람교도였던 정화(鄭和)에게 함대를 이끌고 아라비아반도까지 원정을 다녀오도록 명령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쳤다. 그는 중국의 교역 확장 시대를 몸소 실현한 황제였다. (중략)
그러나 1424년에 영락제가 세상을 떠나자 중국은 적극적인 대외 진출을 중단했다. 급기야 1436년에는 대양 항해용 선박 건조까지 중단했다. 중국은 이 시기에 나라의 빗장을 닫아걸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공무역 체제는 유지했으나 해외 진출은 중단했다. 당시 세계에서도 선진적인 기술을 보유한 중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을 이 시점으로 볼 수 있다.
--- 「영락제와 정화의 원정」 중에서
세계사 최대 규모 ‘이민’ 이야기의 주인공은 16~19세기에 노예가 되어 대서양을 건넌 흑인이다. 현재 연구에서는 서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이송된 흑인 노예가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했다고 추정한다. 이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이 유럽에 수출되어 유럽인의 생활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중략)
유럽인의 설탕에 대한 갈망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17세기에는 신세계가 설탕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의 최대 수출품은 설탕이었고, 이 현상을 ‘설탕 혁명’이라 불렀다.
‘설탕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강제 이주를 당한 흑인 노예다. 흑인은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 기술을 전수한 사람들로는 유대인(세파르딤, Sephardim)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다.
--- 「‘설탕 혁명’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세계 최초의 공업국가로 거듭난 나라는 영국이었다. 우리는 뭉뚱그려 ‘영국’이라 부르지만, 영국이라는 나라의 체제는 매우 복잡하다. (중략)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한 브렉시트(Brexit)의 의미가 이해된다. 브렉시트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실제로 EU에서 탈퇴하고 싶었던 나라는 잉글랜드이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탈퇴를 원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등은 EU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처럼 영국의 내적 유대는 절대 견고하지 않다. 영국은 서서히 분열 중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대영제국의 복잡한 성립 과정」 중에서
전쟁이 끝나자 유럽을 대신해 미국이 급부상했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산업혁명과 조선업에 필요한 자원을 자국 내에서 거의 조달할 수 있었다. 노동력의 국내 수급이 가능한 게 바로 미국 번영의 원천이었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에 인구밀도는 낮아 노동력을 수용할 여지도 충분했다. 그 덕분에 유럽에서 대규모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흡수했다.
‘이민’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사의 주역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간 현상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순리였다고 볼 수 있다.
--- 「미국의 부상」 중에서
제1차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긴 사라예보사건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린 발칸반도의 민족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본래 발칸반도는 역사적으로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시대가 길었다. 겉으로는 하나의 통합된 제국을 유지하는 듯했으나, 속으로는 다양한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곪아가고 있었다. (중략)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뒤에는 독일이 버티고 있었고, 세르비아 측에는 러시아가 가담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맺었고,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삼국협상을 체결했다. 발칸반도는 말 그대로 제국주의 국가 간의 잇속 챙기기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최전선이 되었다.
--- 「불을 내뿜은 ‘유럽의 화약고’」 중에서
유고슬라비아 해체로 국가가 잇달아 독립하는 과정에서 코소보의 자치 요구 운동도 거세졌다. 코소보 총인구의 약 160만 명 중 세르비아인은 13퍼센트뿐이고, 알바니아인이 대다수로 78퍼센트를 차지한다. 알바니아인 우선 정책을 펼치던 티토가 사라지자 코소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1981년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 코소보 문제는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1998년 세르비아 치안부대를 파견해 코소보 해방군을 격퇴하려고 시도하며 다시 표면에 불거졌다.
분쟁 종결 후 코소보는 국제연합(UN)의 감독을 받았는데, 코소보의 불안정한 지위는 2008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다 2009년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신청했을 때, 코소보와의 관계 개선이 조건으로 제시되자 세르비아는 코소보와 합의에 나섰다.
그러나 세르비아 헌법상 코소보는 여전히 세르비아의 한 지방으로, 독립국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한 국가가 많지만, 승인하지 않은 국가도 적지 않아 지금까지 문제로 남아 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세르비아인을 습격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발생한 코소보 난민은 발칸반도에 남은 난민 문제를 상징한다.
--- 「코소보 난민은 민족문제의 축소판」 중에서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 시대에 중동 국가의 국경선을 자신들 편의대로 정했고, 그 결정이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선 확정 문제는 제국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 좀 더 신중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다루었더라면 이후 중동에서의 분쟁은 줄어들고 걸프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걸프전으로 인한 난민도 발생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상황」 중에서
본국은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저렴한 노동력으로 식민지 사람들을 활용했다. 세계 최대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에는 식민지에서 온 이들이 몰려들었다. 현재 영국에 다양한 인종이 사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다. 물론 다른 유럽 국가에도 식민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는 있었다. 다시 말해 유럽은 수많은 이민자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시스템으로 돌아간 것이다. (중략)
유럽의 난민 문제는 역사와 문화 밑바탕에 깔린 문제라 해결이 쉽지 않다.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시대와 유럽 제국주의 시대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
--- 「제국주의가 남긴 어두운 유산」 중에서
이 책에 적은 대로 ‘이민’이란 사람들을 연결하고 문명을 전파하고 새로운 문화와 기술, 음식, 생활양식 등을 퍼뜨린 이들의 이야기다. 인류는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며, ‘이민’이 있었기에 다른 장소에 사는 사람끼리 접점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또 강제로 이주당한 흑인 등 ‘이민자’의 희생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역사가 어떻게 접점을 가지게 되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목적으로 썼다. 독자 여러분이 이 핵심어로 세계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읽어낼 수 있다면 제목 그대로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본다.
--- 「맺음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류는 이동한다
고로 생존한다
인류는 왜 이동할까? 모든 생물은 종(種)의 보존을 최대 목적으로 생존한다. 인류가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어떠한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종을 보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인류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주함으로써 다른 장소에 사는 사람끼리 접점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인류는 이동하며
문명을 전파한다
수만 년에 걸쳐 계속 이동한 인류는 정착지를 찾아 생활하며 문명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강, 양쯔강, 고대 아메리카의 6대 문명이다. 이들 문명이 발달, 전파되기 위해서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했다. 정착민이 이룩한 문명권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해 오고, 다시 그곳에서 살던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그 문명의 가치를 전달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문명권이 점차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페니키아인을 통해 지중해의 여러 지역과 교역했다. 그때 사용한 경로는 고대 로마인, 중세 이슬람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 근세 프랑스 상인, 영국 상인과 네덜란드 상인, 북유럽에서 온 스웨덴 상인의 무역 활동으로 이어져 유럽 번영의 주춧돌이 되었다.
인류는 이동하며
서로 충돌한다
인류의 이동은 각지에 문명을 전파했지만,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전쟁으로도 이어졌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페르시아전쟁,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전쟁이 대표적이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거대한 로마제국이 멸망했고, 몽골제국의 성립으로 동서 교류가 활발해지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보아도 그렇다. 인류의 빈번한 이동과 교류는 전염병이라는 불청객도 불러들였다.
자의가 아닌 강제 이동의 문제도 있다. 17세기 ‘설탕 혁명’의 주역은 서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었다. 18~19세기 산업혁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유럽 저임금 노동자들도 자의 반 타의 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이때부터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의 씨앗도 뿌려진 셈이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몰락하고 1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늘어나며 대두된 ‘난민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 열강은 어떤 민족이 살던 곳인지, 각 민족 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국경선을 정했다. 그 결과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문제가 발생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와 코소보 난민 문제 등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각 나라와 민족의 이해가 얽히고설켜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를 통해 그 시작과 뿌리를 알면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로 생존한다
인류는 왜 이동할까? 모든 생물은 종(種)의 보존을 최대 목적으로 생존한다. 인류가 다양한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어떠한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종을 보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인류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주함으로써 다른 장소에 사는 사람끼리 접점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인류는 이동하며
문명을 전파한다
수만 년에 걸쳐 계속 이동한 인류는 정착지를 찾아 생활하며 문명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강, 양쯔강, 고대 아메리카의 6대 문명이다. 이들 문명이 발달, 전파되기 위해서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했다. 정착민이 이룩한 문명권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해 오고, 다시 그곳에서 살던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그 문명의 가치를 전달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문명권이 점차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페니키아인을 통해 지중해의 여러 지역과 교역했다. 그때 사용한 경로는 고대 로마인, 중세 이슬람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 근세 프랑스 상인, 영국 상인과 네덜란드 상인, 북유럽에서 온 스웨덴 상인의 무역 활동으로 이어져 유럽 번영의 주춧돌이 되었다.
인류는 이동하며
서로 충돌한다
인류의 이동은 각지에 문명을 전파했지만,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전쟁으로도 이어졌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페르시아전쟁,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전쟁이 대표적이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거대한 로마제국이 멸망했고, 몽골제국의 성립으로 동서 교류가 활발해지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보아도 그렇다. 인류의 빈번한 이동과 교류는 전염병이라는 불청객도 불러들였다.
자의가 아닌 강제 이동의 문제도 있다. 17세기 ‘설탕 혁명’의 주역은 서아프리카에서 신세계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었다. 18~19세기 산업혁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유럽 저임금 노동자들도 자의 반 타의 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이때부터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의 씨앗도 뿌려진 셈이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몰락하고 1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늘어나며 대두된 ‘난민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 열강은 어떤 민족이 살던 곳인지, 각 민족 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국경선을 정했다. 그 결과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문제가 발생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와 코소보 난민 문제 등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각 나라와 민족의 이해가 얽히고설켜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책 《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를 통해 그 시작과 뿌리를 알면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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