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1.일본역사(고대.중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 무사정권의 창시자

동방박사님 2021. 12. 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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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려 무신정권과 비교되는
일본의 무사정권 가마쿠라 막부 창시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철저히 해부한다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커다란 변혁기에 그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일본에서 최초로 무사정권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귀족적이면서 무사적인 요리토모의 양면성은 어떠한 배경에서 나왔는가. 현실 정치가로서 요리토모의 생애와 사상, 행동과 정책을,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사회·정신적인 상황 속에서 살펴본다. 또한 같은 시기에 등장한 일본과 고려의 무인 정권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도 간략히 살펴본다.

목차

머리말·무사정권 700년 역사를 열다

제1장 요리토모의 생애

제2장 시대 배경

제3장 요리토모의 사상

제4장 가마쿠라 막부와 고려 무신정권

맺음말·대결과 타협… ‘난세의 영웅’이 되다

저자 소개 

저 : 남기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거쳐 교토대학에서 일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 일본사학회 회장이었으며, 현재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마쿠라 시대의 정치사, 사상사, 대외관계사를 전공하고 있다.주요 논저로『蒙古襲と鎌倉幕府』,『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공저),『아틀라스 일본사』(공저),『몽골의 고려·일본 침공과 한일관계』(공저),『기억의 전쟁』(공저),『일본의 이해』(공저),『신황정통기』...
 

책 속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일본 역사상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12세기 당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요리토모가 일본에서 최초로 무사정권을 창시했기 때문이다. 그가 12세기 말에 창설한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그것이다. 가마쿠라 막부에 이어서 이후 무로마치 막부, 그리고 에도 막부로 약 700년이나 계속된 무사정권 역사의 문을 처음 열었던 인물이 바로 요리토모다. --- p.3

가마쿠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군사적 요새이자 요리토모의 선조 때부터 겐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었다. 요시이에의 아버지 요리요시가 겐지 가문의 조상신 하치만신(八幡神)을 봉안하여 겐지와 특별한 연을 맺은 장소이며, 요시토모가 간토 지방에서 지배권을 쌓기 위해 기반으로 삼은 곳이기도 했다. 1180년 12월 12일 요리토모는 가마쿠라의 새 저택에 입주하는 의식을 대대적으로 행하였는데, 여기에 모인 무사는 총 311명이었다. 이들 동국의 무사들은 일치단결하여 요리토모를 가마쿠라도노(鎌倉殿)로 섬길 것을 표명하였고, 요리토모는 이들 무사를 고케닌으로 인정하는 주종관계(主從關係)를 맺었다. --- p.19

동국에 기반을 둔 막부의 무위가 왕조국가에서 독립되거나 반체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가체제 속에서 공권력의 무위로서 정착했다는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제약이 있었다고 해도, 요리토모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무사정권의 ‘무위’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가마쿠라 막부 성립의 최대의 역사적 의의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72

요리토모는 무사정권으로서 갖추어야 할 막부의 ‘무위’를 국가 속에서 정착시켰지만, 사실 ‘무위’만으로 무사정권의 정당성이나 막부 존립의 이념적 기반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동아시아의 보편적 통치이념이라고 할 유교적 덕치·선정사상, 그 핵심인 ‘무민’의 이념을 적극 채택·수용할 필요가 있었다. ‘무위’의 정권에서 꼭 필요한 자기정당화의 논리가 바로 ‘무민’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요리토모 이래 ‘무위’와 ‘무민’은 가마쿠라 막부가 내걸었던 두 개의 핵심 지배이념이었다. --- p.77

요리토모는 세이와 겐지, 그중에서도 요리노부-요리요시-요시이에로 이어지는 가와치 겐지의 적류였다. 즉, 천황가의 혈통이면서 지방 무사들을 통솔했던 중앙 군사귀족의 문벌인 이른바 ‘귀종(貴種)’이었던 것이다. 요리토모가 무가의 동량으로서 동국 무사들을 결집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귀종’으로서의 속성이었다. 이러한 출신의 요리토모가 천황 존숭의 태도를 갖는 것은 그 정치적인 의도를 차치하고라도 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 p.80

요리토모는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가마쿠라에 본거지를 두고, 왕조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한 동국 정권으로서 막부의 지배기반을 확보하였다. 천황 혈통의 군사귀족 문벌이면서 동국 지방에서 무사들과 젊은 시절을 보낸 요리토모는 왕조국가와 지방 무사 사이에서 교묘하게 자신의 정권을 이끌어갔다고 하겠다. --- p.104

일본과 고려의 무인 정권을 확립했던 인물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1147~1199)와 최충헌(1149~1219)이다. 동시대의 인물로 무인 정권의 수장이었던 두 사람을 비교하고 아울러 수장으로서의 지위에 대해 살펴보자. --- p.109

전체적으로 요리토모의 사상과 행동에는 혁신과 보수, 강경과 유연이란 요소가 착종(錯綜)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충돌하는 역사의 커다란 변혁기였음을 말해준다. 요리토모가 창립한 가마쿠라 막부도 그러한 시대의 산물이었다.
---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