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폭력연구 (책소개)/3.제노사이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동방박사님 2021. 12. 1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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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과연 이유는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에서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나라 이스라엘과 그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현재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최고지도자란티시 또한 살해당하면서 그 갈등의 고리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량학살로 기억되는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였던 그들이 이제는 가해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종과 종교와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그 역사적 비극은 케케묵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심각한 문제이다.

홀로코스트의 기본적인 실상은 이미 파악되었다고 하지만 그 사건의 시발점은 어디이고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이 논쟁에 대한 최신 연구 경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상세한 증언과 치열한 논의를 반영한 현장 보고서이다.

목차

서론

1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2 바이마르에서 히틀러까지
3 박해와 저항
4 최종해결
5 기독교와 나치즘 사이에서
6 유럽 각지에서 행해진 나치 부역
7 영국, 미국, 그리고 홀로코스트
8 근대성과 나치의 인종 학살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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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위스트리치는 예루살렘에 소재한 헤브루 대학에서 근대 유럽 및 유대인 역사를 담당하는 노이베르거 (Neuberger) 석좌 교수이다. 그는 1945년 카자흐스탄에서 폴란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치적으로 좌파였던 부모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소련으로 피신했는데, 도리어 소련 비밀경찰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 위스트리치 가족은 전후 폴란드와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 정착하였다. 위스트리치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퀸...
역자 : 송충기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보쿰 소재 루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을 거쳐 현재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치즘에 관한 논문 몇 편이 있으며 저서로는 『세계의 과거사 청산』(공저), 『꿈은 소멸하지 않는다』(공저), 『세계화 시대의 서양 현대사』(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변화의 변증법』, 『옥시덴탈리즘』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홀로코스트는, 한 강력한 국가가 체계적이고 치밀한 정책 아래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유대인 전부를 몰살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 다른 인종 학살과 비교할 때 ? 그 유례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유럽에서 이러한 극악무도한 목표를 거의 달성하는 듯싶었으나, 군사적으로 패배했기 때문에 결국 그 끔찍스런 마무리를 짓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p.25

만약 1933년 이전에 독일어와 독일 문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화한 민족에게 노벨상을 수여한다면, 그 상은 당연히 유대인의 차지가 될 것이다.--- p.26

유대인들이 실제로 유일하게 수천 년 동안 생존해 왔다는 그 신비감이 혈통과 종족이 갖는 절대적 진리성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나치의 인종차별주의는 실제로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내용만 바꾼 것으로, 어쩌면 유대인들에게 불리하게끔 기묘하게 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p.29

가장 극악무도했던 것은 독일이 소련을 침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41년 7월 10일에 예드바브네의 폴란드 주민들이 이웃에 살던 유대인 1천 6백 명을 거의 몰살시킨 사건이었다. 독일인들은 이 광경을 선전용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폴란드 마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도끼, 막대, 칼, 그리고 대못이 박힌 곤봉으로 살해했다. 남자들은 혀가 잘리거나 눈이 파헤쳐졌고, 여자들은 강간 살해되었으며, 어린이들은 땅에 내동댕이쳐져 짓밟혀 죽었다. (...) 잔인한 구타 속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폴란드인은 모두 근처 헛간으로 몰아넣고는 기름을 끼얹어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p.56

1930년에서 1933년까지 그는 자신의 세계관에서 핵심이었던 혈통에 근거한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도를 일시적으로 약화시켰다. 히틀러는 일단 반유대주의가 유권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혹은 중심적인 화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자, 합법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선전 방식을 별로 주저하지 않고 재조정했다.--- p.81

유대인 사업가들은 순식간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오스트리아 나치 행동대원들은 뻔뻔스럽게도 유대인들의 집들을 차지했다. 오스트리아의 반유대주의 전통은 이곳을 점령한 독일인들조차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다시 크게 발호했다. 1938년 3월 히틀러가 빈에 금의환향할 때 보여준 열광적인 환영 답례는 억제되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엄청나게 폭발시키는 촉진제로 작용했다.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조치를 채택한 오스트리아 방식은 독일 자체 내에서도 즉각 채택되었다.--- p.9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가 무시할 수 없었던 한 가지 경험적 사실이 존재했다. 곧 폴란드를 군사적으로 점령함으로써 2백만 명이 넘는 폴란드 유대인이 한꺼번에 히틀러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수가 이렇게 엄청나게 증가함에 따라 유대인이 없는 영토를 만들고자 광분하던 나치들은 역설적으로 딜레마에 빠진 셈이었다. 어떤 지역을 병합하거나 정복할 때마다 이주를 독려하고 어떻게든 추방해야 할 유대인 수가 오히려 늘어만 갔다.--- p.121

노동 수용소에서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고 유대인들은 닥치는 대로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독일인들이 아직까지는 조직적인 대량 학살을 기획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독일이 공산주의 치하의 러시아를 침공하면서부터 급격히 변했다. 소련 침공이 개시된 지 약 6주가 지난 1941년 7월 31일 하이드리히는 괴링에게서 “독일의 관할 하에 있던 유럽의 전 지역에서 유대인 문제의 ‘총체적 해결’을 위해 조직, 물자, 그리고 재정에 관한 모든 준비를 갖추라”는 명령을 받았다.--- p.157

유대인에 대한 전쟁은 단지 유럽 대륙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었다. 히틀러는 또한 팔레스타인 지도자에게 유대인의 고국이 ‘국가의 중심’이 되면 그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아랍이 해방되는 시기가 오면 중동에서 독일의 유일한 목표는 “영국의 권력에 의해 보호를 받으면서 아랍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는 일이 될 것”임을 주지시켰다는 점이다.--- pp.175~176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소련 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독일은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발트해 연안 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 350만 명을 그 최초의 대상자로 삼았다. 거기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그것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은 나중에 폴란드 학살 수용소에서 비밀리에 시행된 방식인 가스 살인과는 달랐다. 독일군이 소련 깊숙이 진격해 가면서, 유대인 사망자 수는 급격하게 늘었다. 라울 힐버그에 따르면, 1943년 말까지 소련 지역 내에서 유대인만 약 2백만 명이 살해당했다. 독일군은 이들 대부분을 마을 근처에 있는 구덩이 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오로지 소련 지역에서만 훤한 대낮에 독일인과 그들의 부역자들이 비무장 상태였던 유대인 남녀, 어린이 수십만 명을 계속 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대량 학살은 누구나 알 수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련 정부가 단순한 내용 이상을 공개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평화를 애호하는 소련 시민들’이 나치 침략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은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pp.231~232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에서도 독일인과 현지 부역자들은 그곳이 독일군 수중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치안 유지군에게 내린 지침은 지역 주민을 자극하여 유대인들에게 ‘즉흥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라는 것이었다.--- p.234

라발은 미국의 어느 퀘이커교 단체에게 “외국계 유대인들은 프랑스에서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이들에 대한 독일인의 태도 변화로 프랑스가 이들을 제거할 수 있는 호기를 얻은 데 대해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p.263

엄격한 군율, 복종, 그리고 정확한 효율성이 생명인 냉혹한 독일 군대와, 전쟁하는 군대치고는 놀랄 정도로 비효율적이지만 때때로 자비와 동정심을 보여준 이탈리아 군대는 정말이지 서로 달랐다.--- p.274

한스 몸젠이 설득력 있게 지적했다시피, 관료적·기술적 방법의 사용으로 가해자들은 도덕적 압박을 덜 느끼게 되었고, 유대인 학살은 그것을 얼마나 잘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문제로 변질되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몸젠의 시각에 따르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동하기에 부적당한’ 사람들을 제거하는 과정 자체가 스스로의 동력을 얻게 되는 일종의 합리화되고 준자동화된 과정이다.
--- p.331
 

출판사 리뷰

역사상 최악의 범죄 홀로코스트,
그 전모를 드러내는 입문서이자, 역사적 정신적 배경까지 사유하는 책!


홀로코스트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의 한 사람인 영국의 역사가 로버트 S. 위스트리치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집필한 입문서이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사실적인 내용들은 이미 상당히 밝혀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나 합리적인 판단이 도외시된 이 학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혼란을 느끼게 되며, 이 사건이 여전히 역사의 블랙홀임을 알게 된다. 왜 나치 국가는, 전쟁 기간에 그 많은 곤란과 비용을 무릅쓰면서까지, 유대인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박멸하려고 애쓴 것일까?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왔으며 여러 가지 답변의 시도가 있어 왔다. 위스트리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입체적인 접근을 통해 당시의 정신적인 상황과 사회 풍조, 히틀러와 나치당의 기이한 세계관, 마지막 순간까지 유대인의 운명을 수수방관했던 국제 질서 등을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려 주고 있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여기에 매달리고 있지만, 홀로코스트의 전모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홀로코스트의 기본적인 실상은 이미 파악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홀로코스트가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홀로코스트가 저질러진 지 거의 두 세대를 지나고 있는데도, 이것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기는커녕 그 관심이 오히려 늘고 있고, 그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도 더 쌓여 갈 추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경우에도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적당한 개설서를 찾기란 어렵다. 하물며 국내 독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다행히도 본서는 최근의 연구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홀로코스트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저자는 홀로코스트 전문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 장마다 주제를 달리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다각도에서 그 전모에 쉽게 다가서도록 배려하고 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