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전쟁연구 (책소개)/10.고대전쟁사

페르시아 원정기

동방박사님 2021. 12. 2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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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크세노폰, 리더쉽에 대한 보편적 원칙을 보여주다

『페르시아 원정기』는 ‘실천적 지혜’에 관심이 많았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이 용병들을 이끌고 내륙을 횡단하면서 겪는 전투의 상황과 부하들을 통솔하기 위해 행한 각종 연설 등을 다루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병사들 앞에 선 지휘관의 미덕과 리더쉽을 보여주고 있기에 서양에서는 이미 기원전부터 군 지휘관을 비롯해 단체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책 곳곳에 드러나 있는 명연설 때문일 것이다.

병사들의 합의로 지휘관이 된 만큼 크세노폰은 자기 맘대로 부하들을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명령보다는 설득으로 지휘해야 했고, 모든 것을 민주주의 요구에 맞추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회의를 열고 사태를 설명하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끝나면 표결에 부치고 다수결로 결정했다.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사들 간의 협력이 급선무였다.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나 대표는 독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 이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상적인 리더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목차

옮긴이 서문- 1만 그리스인 용병대의 활약상 일러두기
제1권 - 퀴로스가 형을 축출하고 왕이 되려 하다
(1)퀴로스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수사로 가다; 다레이오스 2세가 죽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오르다; 퀴로스가 이오니아 지방으로 돌아와 군대를 모집하다
(2)퀴로스가 사르데이스를 출발하다; 켈라이나이에 머물다; 클레아르코스가 용병대를 이끌고 도착하다; 에퓌악사와 만나다; 튀리아이온 평야로 계속 행군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용맹을 과시하다; 킬리키아의 여러 관문을 통과하다
(3)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타르소이에서 더 이상 행군하기를 거부하다; 클레아르코스가 회의를 개최하다
(4)잇소이로 행군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전함들이 도착하다; 쉬리아 관문들을 통과하다; 그리스인 장군 두 명이 탈영하다; 에우프라테스 강으로 행군하다; 퀴로스가 목적지를 밝히다; 에우프라테스 강을 건너다
(5)아라비아 사막을 지나 행군하다; 클레아르코스 부대와 메논의 부대가 충돌할 뻔하다
(6)퀴로스가 배신자 오론타스를 처형하다
(7)바뷜론을 향해 행군하다; 퀴로스가 1만 그리스인 용병대의 사기를 고취하다
(8)페르시아 정부군과 조우하다; 쿠낙사 전투와 퀴로스의 죽음
(9)퀴로스의 성격 묘사
(10)페르시아 왕이 퀴로스의 진영을 유린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격퇴하다

제2권 - 그리스인 용병대가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지다

(1)퀴로스가 죽었음을 알게 되자,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아리아이오스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의하며 항복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다
(2)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아리아이오스와 합류하여 페르시아 왕의 군대 옆에 진을 치다
(3)페르시아 왕이 휴전협상차 사절단을 보내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팃사페르네스와 함께 철군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다
(4)철군 시작; 1만 그리스인 용병대와 페르시아군이 서로 의심하다; 페르시아군이 1만 그리스인 용병대를 공격하려 한다고 페르시아 사자({ ?가 일러주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티그리스 강을 건너다
(5)클레아르코스가 팃사페르네스와 협상하다; 그가 네 명의 다른 그리스인 장군을 데리고 재차 팃사페르네스를 만나러 갔다가 다섯 명 모두 체포되어 처형당하다
(6)다섯 그리스인 장군들의 성격 묘사

제3권 - 그리스인 용병대가 카르두코이족의 나라로 행군하다

(1)그리스인 용병대가 절망의 나락에 빠지다; 크세노폰이 퀴로스군에 합류하게 된 사연; 크세노폰이 마음을 가다듬고 프록세노스의 대장들을 격려하다; 살아남은 장군들과 대장들이 회의를 열어 새로운 장군들을 선출하다
(2)1만 그리스인 용병대의 전체 회의
(3)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사륜거와 천막을 부수다; 페르시아인들이 1만 그리스인 용병대의 행동을 감시하다; 철군이 다시 시작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적군의 기병대와 궁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행군의 대열을 바꾸다
(4)급조된 투석병과 궁수들이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격퇴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겁주기 위해 적병의 시신을 심하게 훼손하다
(5)팃사페르네스의 청야 전술;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티그리스 강과 여러 산들에 갇히다; 한 로도스인이 짐승 가죽을 타고 강을 건너자고 제안하지만 그들은 산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다

제4권 - 그리스인 용병대가 흑해 남안으로 행군하다
(1)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카르두코이족 나라의 산속으로 들어가 불필요한 가축들을 없애다; 카르두코이족이 마을을 버리고 고원에 올라가 위에서 1만 그리스인 용병대를 압박하다
(2)크세노폰이 짐 나르는 가축들을 옆길로 해서 인도하다; 카르두코이족과의 전투
(3)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평야와 켄트리테스 강에 도착해 힘겹게 강을 건너다
(4)아르메니아 지방을 지나 행군하다; 티리바조스와 휴전조약을 맺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눈 덮인 마을들에 숙영하며 티리바조스의 진영을 약탈하다
(5)눈 속을 행군하여 천신만고 끝에 물자가 풍부한 마을들에 도착하다
(6)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토착민들에 의해 봉쇄되었던 고갯길을 점령하다
(7)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타오코이족의 요새를 공격해 함락하고 칼뤼베스족과 스퀴타이족의 나라를 지나 행군하다; 길라잡이가 1만 그리스인 용병대를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안내하다
(8)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협상을 통해 마크로네스족의 나라를 통과해 산속 고갯길에서 콜키스인들을 물리치고 트라페주스에 도착해 제물을 바치고 육상 경기를 개최하다

제5권 - 그리스인 용병대가 파플라고니아 지방으로 행군하다

(1)케이리소포스가 군대를 뒤로하고 전함을 구하러 가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도 전함을 구하려고 노력하다
(2)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드릴라이족을 공격하러 갔다가 요새를 함락한 뒤 힘겹게 철수하다
(3)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트라페주스에서 케라수스로 행군하다; 크세노폰이 훗날 스킬루스에서 보낸 세월
(4)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못쉬노이코이족의 나라에 들어가 한쪽 파벌이 다른 쪽 파벌을 공격하도록 도와주다
(5)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칼뤼베스족과 티바레노이족의 나라를 행군하여 코튀오라에 도착해서는 시노페에서 보낸 사절단을 접견하다; 크세노폰이 군대의 행위를 옹호하다
(6)시노페인들이 1만 그리스인 용병대에게 뱃길로 여행하라고 권하다; 크세노폰이 식민시를 건설할까 하다가 단념하다
(7)군대를 파시스로 되돌리려 한다는 의혹을 크세노폰이 반박하며 군대의 기강이 점점 문란해지고 있다고 경고하다
(8)장군들의 처신에 대한 심문; 아르메니아를 통과하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고발당하자 크세노폰이 그때는 불가피했다고 자기변호를 하다

제6권 - 그리스인 용병대가 보스포로스 해협으로 행군하다

(1)파플라고니아인들과 휴전조약을 맺고 잔치를 벌이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단독 지휘관을 선출하기로 결정하다; 크세노폰이 사양하자 스파르테 출신 케이리소포스가 단독 지휘관으로 선출되다
(2)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배를 타고 헤라클레이아로 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 아르카디아인들이 따로 떨어져나가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세 패로 나뉘어 행군하거나 항해하다
(3)아르카디아인들이 비튀니스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크세노폰에 의해 구출되다
(4)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칼페 항에서 재결합하다; 제물이 길조를 보이지 않고 식량이 떨어지다; 그리스인 분견대가 파르나바조스의 기병대에 패하다; 살아남은 자들을 크세노폰이 구해주다
(5)그리스인 분견대가 시신들을 묻어주려고 출동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협곡을 건너 파르나바조스의 기병대를 패퇴시키다
(6)스파르테인 뷔잔티온 총독 클레안드로스 앞에서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호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비튀니스 지방을 통과해 크뤼소폴리스에 도착하다

제7권 - 뷔잔티온, 트라케, 소아시아에서 있었던 일들
(1)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지만 뷔잔티온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다; 도시를 공격하려는 군대를 크세노폰이 만류하다; 코이라타데스가 장군으로서 군대를 인솔하겠다고 자청하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뷔잔티온을 떠나다
(2)아낙시비오스가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아시아로 돌아가기를 원하다; 세우테스가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자기에게 와주기를 바라다
(3)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세우테스와 손잡기로 결정하다; 세우테스 진영에서의 잔치;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세우테스와 힘을 모아 트라케 마을들을 약탈하다
(4)크세노폰이 숙영하는 마을을 트라케인들이 야습하다; 세우테스가 반란자들을 제압하다
(5)급료 문제로 세우테스와 논쟁을 벌이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트라케 마을들을 약탈하다
(6)스파르테인들이 급료를 지급하고 군대를 고용하겠다고 제의하다; 세우테스의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당하자 크세노폰이 반박하다
(7)군대가 물자를 현지조달하고 있다고 세우테스가 불평을 늘어놓자, 크세노폰이 조목조목 그의 논리를 반박하여 군대에 급료를 지급하게 만들다
(8)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함선을 타고 람프사코스로 건너가 페르가모스로 행군하다; 크세노폰이 페르시아인 아시다테스의 재물을 약탈하는 데 앞장서다; 1만 그리스인 용병대가 스파르테 장군 티브론과 합류하다

부록
그리스인 용병대의 성격과 편제
그리스인 용병대의 병력
연대표
화폐단위와 도량형 환산표
쿠낙사 전투 개념도
퀴로스군의 행군로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크세노폰(기원전 대략 430?354년 경)은 아테나이의 군인이자 역사가였으며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테나이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시민이었지만, 민주정보다 스파르타의 귀족정을 선호했고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와도 친분을 가졌다. 크세노폰의 젊은 시절에 관해서는 기록된 바가 거의 없지만, 기원전 401년 경 크세노폰은 친구 프로크세노스의 초청으로 페르시아에 용병으로 가게 된다. 그는...

역 : 천병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바덴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 검정시험(Graecum)과 라틴어 검정시험(Großes Latinum)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교수로,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
 

출판사 리뷰

헤로도토스·투퀴디데스의 뒤를 잇는 크세노폰의 걸작 페르시아 원정기

그리스를 주름잡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격돌로 그리스의 황금기를 종식시킨 30년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이 막 끝나고 지중해 전역에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시기. 지식인들은 조국의 어지러운 상황에 실망하고 좌절감에 빠져든다. 그리스 전역이 황폐화되다 보니 저마다 먹을거리를 찾아서 타지로 떠나는데, 아테네의 경무장보병은 그 어느 나라의 군대보다 월등히 뛰어나 그리스인 용병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기원전 402/1년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우 소(小)퀴로스는 형을 왕위에서 축출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용병을 모집한다. 그는 유능하고 경험 많은 그리스군 장군들을 통해 11,000 명이 넘는 그리스 용병을 모집하여 기원전 401년 3월 왕명에 순종하지 않는 피시다이족을 응징한다는 핑계로 뤼디아 지방의 수도 사르데이스를 출발하여 내륙으로 행군하기 시작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기원전 401년 여름, 페르시아 내전에 동원된 그리스인 용병대에 혹서를 잊게 할 공포가 엄습한다. 퀴로스군은 바뷜론 근처의 쿠낙사(Kounaxa)에서 페르시아 왕의 군대와 마주쳤는데, 퀴로스가 이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다. 그리스인 용병대는 페르시아 제국 심장부에 갇힌 채 외국인 반역자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될 상황. 더 나쁜 일이 뒤를 이었다. 협상차 페르시아군 진영에 갔던 장군들이 모조리 처형을 당한 것. 낯선 땅에서 겹겹이 페르시아군에 둘러싸인 채 지도부를 잃은 그리스인들은 고립감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밤이 되어도 괴로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크세노폰(Xenophon)이 나서서 외쳤다. “똘똘 뭉쳐 아테네로 돌아가자.” 용병대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고, 여기서 이 책의 저자인 크세노폰이 새로운 지휘관으로 선출된다.

천재적인 지휘관이 쓴 최고의 군사 저술서

장군으로 뽑힌 크세노폰은 그리스인 정신에 호소한다. 그들이 자유인이고 자유국가의 시민이며 자유로운 조상의 후예임을 상기시켰으며 모든 것을 민주주의 절차에 따랐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회의를 열고 사태를 설명하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끝나면 표결에 부치고 다수결로 결정했다. 열띤 토론 끝에 페르시아인의 중재 제의를 거절하고 자력으로 살길을 찾기로 결정한다.

이 책은 대제국 페르시아에서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진 그리스인 용병들이 전의를 완전히 잃지 않고 회복해가는 과정과 적군의 추격과 매복을 막아내고 눈보라와 굶주림을 뚫고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상적 지휘관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은 용병대를 이끌고 내륙을 횡단하면서 겪는 전투 상황과 부하들을 통솔하기 위해 행한 각종 연설, 지휘관으로서 내린 정확한 결단과 리더십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 결과 서양에서는 이미 기원전부터 군 지휘관을 비롯해 단체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정평을 얻게 되었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모험들에 관한 박진감 넘치는 기술과, 크세노폰의 폐부를 찌르는 연설들은 병사들을 감동시켰고 이제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크세노폰은 공포에 빠진 병사들로부터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자유를 헌납하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러한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전기의 실험들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페르시아 원정기』는 오랫동안 그 언어와 문체 때문에 앗티케(Attike) 방언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텍스트로 인정받아 왔고, 학자들도 그런 형식적 특징들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 책은 사료(~? 및 문학작품으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됨으로써 형식적 가치와 내용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비로소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크세노폰의 문학적 업적은 여러 가지 자료들에 근거해 그리스인 용병대의 퇴각을 생동감 있게 기술함으로써 회고록 문학과 자서전 문학의 초석을 놓았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군인들이 자신의 전역( ?[)을 기록해둔 회고록 또는 로마인들이 후일 commentarii(‘수기’, ‘회고록’이란 뜻)라고 부르던 것, 이를테면 율리우스 카이사르(Iulius Caesar)의 『갈리아 원정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의 효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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