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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도는 우리 땅!”...한국인으로 귀화한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 호사카 유지 교수의 한일관계사로 본 독도 이야기《우리 역사 독도》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 섬, 독도.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외교부 독도 사이트(http://dokdo.mofa.go.kr/kor/)에 나와 있는 문구이다. 이 당연한 주장을 올리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독도 연구와 관련 주장이 나와서 가능했다. 일본이 홍보와 공세를 지속한 탓에 세계의 디지털 지도에 독도를 리앙쿠르트 섬(Liancourt Rock)이나 다케시마(Takeshima, 竹島(죽도))로,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지도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데에도 범국민적인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어왔다. 1982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김광태가 불렀고, 서경덕 교수가 2005년에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감성적으로 열정으로 접근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다 이성적으로 풀어낸 체계적인 독도 관련서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 호사카 유지 교수여서 더욱 눈길이 간다.
이 책은 독도가 처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뒤에,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역대 왕조와 정권이 독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한일관계사를 중심으로 밝힌 ‘독도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도가 진정 어느 나라의 땅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독도문제에 대한 객관적 해법과 치밀한 대응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일관계사로 증명하는 독도의 정체성: 독도의 주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의 독도연구가 활발해졌다. 독도교육, 독도 관련 이벤트 등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2008년 7월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2008년 7월에 일본이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일본에서 부르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영토”라고 기재했고,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 지명위원회가 독도의 주권국가를 한때 “한국”에서 “미지정”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공세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독도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도의 내력을 역사적·정치사회적으로 명확히 파악해 정리함으로써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자세를 말한다. 독도연구가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치·경제적으로 국제여론을 움직이는 일본의 전 방위적인 공세에 밀려 결국 독도의 주권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이 책은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울릉도 및 독도 관련 사료를 다루면서 독도문제를 치밀하게 풀어나간다. 여기에는 우리 역대 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시행한 정책은 물론이고, 조선 왕조와 민간의 구체적 응전방식, 독도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전략과 전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객관적 자료로 승부하는 독도 연구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독도문제에 접근할 때마다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에 감정이 좋지 않은데, 수시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국민들의 감정은 절대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애국심에 비해 독도연구와 독도영유권 논리 개발에 쏟는 우리의 노력은 너무도 인색했다. 우리는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만 생각했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독도를 어떻게 자기네 땅이라고 선전하며 설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 독도에 관한 자료를 확보해 그것으로 독도영유권에 대한 논리를 체계화시키는 데도 소홀히 했다.
이 책의 저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의 공세에 대응해 독도가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두 차례나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당시 일본 정권의 확인까지 받은 안용복의 활약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조선의 지도는 물론이고, 에도막부 등 일본의 역대 정권이 색깔이나 글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한 지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가 제시한 자료 가운데는, 일본의 역대 정권이 울릉도와 독도가 “원래 조선 땅이었다”고 인정한 문서까지 들어가 있다.
한편 저자는 조선 숙종 때 조정과 신료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마치 울릉도와 다케시마(당시 울릉도를 가리킨 지명)가 다른 섬인 것처럼 언급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이로 인해 당시에 일본이 울릉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바뀌면서 어설픈 대응에서 탈피해 울릉도 및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게 된다.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기는 했지만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마저 일본에게 넘어갈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조선 조정과 대신들이 어민 안용복의 활약상을 알고도 그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 유배를 보낸 일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저자는 역대 왕조의 적극적인 대응뿐만 아니라 잘못한 부분까지 언급함으로써 앞으로의 독도영유권 전략을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자양분으로 삼으려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와 일본 정권의 문서와 기록, 그리고 지도를 면밀히 살펴, 독도영유권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의 역대 정권은 이미 울릉도 등지로 배를 타고 나아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원래 자기네 땅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단지 그들은 그런 자료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 채 자국에 유리한 자료와 해석만을 국제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논리와 방침에 대응해 독도영유권을 지켜나가려면,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독도와 관련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또 저자는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가르쳐서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자고 주장한다.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독도와 독도영유권에 관해 알아본 이 책을 통해, 독도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전 국민이 합심해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역사가 증명한 독도의 정체성
● 우산과 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고려사 지리지』
●왜적이 우산무릉에서 도둑질을 했다. - 『태종실록』
●우산과 무릉 두 섬은 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 『세종실록 지리지』
●울릉·우산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마쓰시마(당시 독도의 일본식 이름)다. - 『동국문헌비고』
●“마쓰시마(독도의 옛 일본이름)는 자산도(독도의 옛 이름)이고 우리나라 땅이다. 너희가 감히 그곳에 가느냐!” - 안용복
●독도는 조선령이며 일본령이 아니다. - 에도막부
●일본영토 범위에는 독도는 물론 홋카이도도 없다. - 『고사기』, 『일본서기』에 드러난 내용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 섬, 독도.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외교부 독도 사이트(http://dokdo.mofa.go.kr/kor/)에 나와 있는 문구이다. 이 당연한 주장을 올리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독도 연구와 관련 주장이 나와서 가능했다. 일본이 홍보와 공세를 지속한 탓에 세계의 디지털 지도에 독도를 리앙쿠르트 섬(Liancourt Rock)이나 다케시마(Takeshima, 竹島(죽도))로,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지도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데에도 범국민적인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어왔다. 1982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김광태가 불렀고, 서경덕 교수가 2005년에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감성적으로 열정으로 접근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다 이성적으로 풀어낸 체계적인 독도 관련서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 호사카 유지 교수여서 더욱 눈길이 간다.
이 책은 독도가 처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뒤에,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역대 왕조와 정권이 독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한일관계사를 중심으로 밝힌 ‘독도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도가 진정 어느 나라의 땅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독도문제에 대한 객관적 해법과 치밀한 대응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일관계사로 증명하는 독도의 정체성: 독도의 주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의 독도연구가 활발해졌다. 독도교육, 독도 관련 이벤트 등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2008년 7월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2008년 7월에 일본이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일본에서 부르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영토”라고 기재했고,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 지명위원회가 독도의 주권국가를 한때 “한국”에서 “미지정”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공세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독도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도의 내력을 역사적·정치사회적으로 명확히 파악해 정리함으로써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자세를 말한다. 독도연구가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치·경제적으로 국제여론을 움직이는 일본의 전 방위적인 공세에 밀려 결국 독도의 주권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이 책은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울릉도 및 독도 관련 사료를 다루면서 독도문제를 치밀하게 풀어나간다. 여기에는 우리 역대 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시행한 정책은 물론이고, 조선 왕조와 민간의 구체적 응전방식, 독도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전략과 전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객관적 자료로 승부하는 독도 연구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독도문제에 접근할 때마다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에 감정이 좋지 않은데, 수시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국민들의 감정은 절대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애국심에 비해 독도연구와 독도영유권 논리 개발에 쏟는 우리의 노력은 너무도 인색했다. 우리는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만 생각했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독도를 어떻게 자기네 땅이라고 선전하며 설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 독도에 관한 자료를 확보해 그것으로 독도영유권에 대한 논리를 체계화시키는 데도 소홀히 했다.
이 책의 저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의 공세에 대응해 독도가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두 차례나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당시 일본 정권의 확인까지 받은 안용복의 활약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조선의 지도는 물론이고, 에도막부 등 일본의 역대 정권이 색깔이나 글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한 지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가 제시한 자료 가운데는, 일본의 역대 정권이 울릉도와 독도가 “원래 조선 땅이었다”고 인정한 문서까지 들어가 있다.
한편 저자는 조선 숙종 때 조정과 신료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마치 울릉도와 다케시마(당시 울릉도를 가리킨 지명)가 다른 섬인 것처럼 언급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이로 인해 당시에 일본이 울릉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바뀌면서 어설픈 대응에서 탈피해 울릉도 및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게 된다.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기는 했지만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마저 일본에게 넘어갈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조선 조정과 대신들이 어민 안용복의 활약상을 알고도 그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 유배를 보낸 일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저자는 역대 왕조의 적극적인 대응뿐만 아니라 잘못한 부분까지 언급함으로써 앞으로의 독도영유권 전략을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자양분으로 삼으려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와 일본 정권의 문서와 기록, 그리고 지도를 면밀히 살펴, 독도영유권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의 역대 정권은 이미 울릉도 등지로 배를 타고 나아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원래 자기네 땅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단지 그들은 그런 자료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 채 자국에 유리한 자료와 해석만을 국제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논리와 방침에 대응해 독도영유권을 지켜나가려면,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독도와 관련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또 저자는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가르쳐서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자고 주장한다.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독도와 독도영유권에 관해 알아본 이 책을 통해, 독도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전 국민이 합심해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역사가 증명한 독도의 정체성
● 우산과 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고려사 지리지』
●왜적이 우산무릉에서 도둑질을 했다. - 『태종실록』
●우산과 무릉 두 섬은 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 『세종실록 지리지』
●울릉·우산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마쓰시마(당시 독도의 일본식 이름)다. - 『동국문헌비고』
●“마쓰시마(독도의 옛 일본이름)는 자산도(독도의 옛 이름)이고 우리나라 땅이다. 너희가 감히 그곳에 가느냐!” - 안용복
●독도는 조선령이며 일본령이 아니다. - 에도막부
●일본영토 범위에는 독도는 물론 홋카이도도 없다. - 『고사기』, 『일본서기』에 드러난 내용
목차
들어가면서|독도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8
독도시론|미국지명위원회가 일으킨 파문·10
2008년 7월의 독도사태·17 / 국제사회는 왜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가·18 / 우리나라 독도외교의 현주소·20 / 일본의 전략: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22 /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리앙쿠르 암·23 / 붕괴되는 일본의 주장·27 / 적확한 논리와 활발한 홍보 필요·33 / 일본은 왜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우기는가 ·34 / 갈등을 풀 열쇠는 무엇인가 ·37 /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39 /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며·42
제1장 어느 나라가 독도를 영토로 삼았나 ·46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켰을 때의 삼국과 일본·47 / 나무로 만든 사자로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사부·51 /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왕래했을까 ·54 / 한일관계사로 본 삼국시대 이후의 울릉도와 우산도·56
▶ 고대 왜의 군사력·68
제2장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울릉도와 독도·74
고려시대의 울릉도와 우산도·75 / 고려말 울릉도에 들른 왜구·83 / 조선과 수교한 일본·88 / 울릉도 공도정책을 추진한 태종·94 / 쇄환정책을 실천에 옮긴 김인우의 활약·98 / 대마도를 공격한 세종대왕·106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08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10
▶ 왜구의 정체성·114
제3장 요도, 삼봉도 수색과 『신증동국여지승람』·118
실패로 돌아간 요도 수색작업·119 / 성종 때 벌어진 삼봉도 수색작업·12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우산도와 울릉도·126 /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조선과 일본·135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40
제4장 에도막부와 울릉도 도해면허·142
울릉도(다케시마) 도해면허·145 / 조선의 무인도에 도해를 허가한 도해면허·152 / 에도막부와 돗토리번의 유착관계·158 / 독도(마쓰시마) 도해면허와 두 섬으로의 도해·162 /『은주시청합기』·164
▶ 다케시마와 마쓰시마·174
제5장 울릉도 쟁계·178
사건의 발단·179 / 집권세력이 바뀐 조선 조정·184 / 조선 조정과 귤진중이 벌인 논쟁·190 / 180년 만에 울릉도 등지에 파견된 장한상·194 / 에도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조사하다·198 /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를 금지시키다·204
▶ 조선과 일본의 대 대마도 관계·211
제6장 안용복의 제2차 도일과 울릉도 쟁계 종언·214
안용복, 울릉도에서 다시 일본어민들을 만나다·215 / 안용복의 제1차 도일과 당시의 일본·217 / 요나고와 돗토리성의 안용복·219 / 안용복이 제2차 도일을 감행한 동기·221 / 일본어민들을 쫓아간 안용복·223 / 1696년 오키 섬에 표착한 안용복·226 / 제2차 도일을 통해 돗토리번으로 간 안용복·236 / 돗토리성에 체류한 안용복·238 / 대마도주의 아버지 소 요시자네와 안용복·242 / 안용복에 대한 조선 조정의 평가·245 / 1693년 에도막부는 조선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했다·248 / 울릉도 도해금지령과 안용복·250 / 안용복 사건의 쟁점·252 / 울릉도 쟁계의 종언·253
▶ 울릉도 쟁계의 종언을 고한 소 요시자네의 답서와 구상지각·257
제7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울릉도와 독도·264
조선 조정의 울릉도 등지 수토·264 /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임을 보여 주는 조선의 지도들·268 /『동국문헌비고』에 나타난 독도·270 / 일본의 왜곡된 논리·273 /『만기요람』의 우산도·278 / 하치에몽, 울릉도로 도해했다가 사형당하다·279
▶ 에도막부 말에 울릉도를 노린 초슈번·284
제8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일본지도·288
울릉도 쟁계 이후의 관찬 일본지도·288 / 에도시대의 중요한 민간지도들·298
▶ 고대로부터 근세까지의 지도제작 방법과 역사성·306
[부록|독도정책에 관한 제안]
독도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 제고 및 일체감 조성·310
참고문헌·317
찾아보기·318
독도시론|미국지명위원회가 일으킨 파문·10
2008년 7월의 독도사태·17 / 국제사회는 왜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가·18 / 우리나라 독도외교의 현주소·20 / 일본의 전략: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22 /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리앙쿠르 암·23 / 붕괴되는 일본의 주장·27 / 적확한 논리와 활발한 홍보 필요·33 / 일본은 왜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우기는가 ·34 / 갈등을 풀 열쇠는 무엇인가 ·37 /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39 /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며·42
제1장 어느 나라가 독도를 영토로 삼았나 ·46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켰을 때의 삼국과 일본·47 / 나무로 만든 사자로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사부·51 /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왕래했을까 ·54 / 한일관계사로 본 삼국시대 이후의 울릉도와 우산도·56
▶ 고대 왜의 군사력·68
제2장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울릉도와 독도·74
고려시대의 울릉도와 우산도·75 / 고려말 울릉도에 들른 왜구·83 / 조선과 수교한 일본·88 / 울릉도 공도정책을 추진한 태종·94 / 쇄환정책을 실천에 옮긴 김인우의 활약·98 / 대마도를 공격한 세종대왕·106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08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10
▶ 왜구의 정체성·114
제3장 요도, 삼봉도 수색과 『신증동국여지승람』·118
실패로 돌아간 요도 수색작업·119 / 성종 때 벌어진 삼봉도 수색작업·12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우산도와 울릉도·126 /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조선과 일본·135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40
제4장 에도막부와 울릉도 도해면허·142
울릉도(다케시마) 도해면허·145 / 조선의 무인도에 도해를 허가한 도해면허·152 / 에도막부와 돗토리번의 유착관계·158 / 독도(마쓰시마) 도해면허와 두 섬으로의 도해·162 /『은주시청합기』·164
▶ 다케시마와 마쓰시마·174
제5장 울릉도 쟁계·178
사건의 발단·179 / 집권세력이 바뀐 조선 조정·184 / 조선 조정과 귤진중이 벌인 논쟁·190 / 180년 만에 울릉도 등지에 파견된 장한상·194 / 에도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조사하다·198 /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를 금지시키다·204
▶ 조선과 일본의 대 대마도 관계·211
제6장 안용복의 제2차 도일과 울릉도 쟁계 종언·214
안용복, 울릉도에서 다시 일본어민들을 만나다·215 / 안용복의 제1차 도일과 당시의 일본·217 / 요나고와 돗토리성의 안용복·219 / 안용복이 제2차 도일을 감행한 동기·221 / 일본어민들을 쫓아간 안용복·223 / 1696년 오키 섬에 표착한 안용복·226 / 제2차 도일을 통해 돗토리번으로 간 안용복·236 / 돗토리성에 체류한 안용복·238 / 대마도주의 아버지 소 요시자네와 안용복·242 / 안용복에 대한 조선 조정의 평가·245 / 1693년 에도막부는 조선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했다·248 / 울릉도 도해금지령과 안용복·250 / 안용복 사건의 쟁점·252 / 울릉도 쟁계의 종언·253
▶ 울릉도 쟁계의 종언을 고한 소 요시자네의 답서와 구상지각·257
제7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울릉도와 독도·264
조선 조정의 울릉도 등지 수토·264 /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임을 보여 주는 조선의 지도들·268 /『동국문헌비고』에 나타난 독도·270 / 일본의 왜곡된 논리·273 /『만기요람』의 우산도·278 / 하치에몽, 울릉도로 도해했다가 사형당하다·279
▶ 에도막부 말에 울릉도를 노린 초슈번·284
제8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일본지도·288
울릉도 쟁계 이후의 관찬 일본지도·288 / 에도시대의 중요한 민간지도들·298
▶ 고대로부터 근세까지의 지도제작 방법과 역사성·306
[부록|독도정책에 관한 제안]
독도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 제고 및 일체감 조성·310
참고문헌·317
찾아보기·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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