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3.민주화운동

나의 이름은 임대운 (2022) - 5.18 광주항쟁 목격자 데이비드 돌린저 회고록

동방박사님 2023. 5. 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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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5.18 광주항쟁의 한가운데 한국 이름으로 불렸던 미국인의 이야기

데이비드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는 것. 미국 청년 데이비드는 평화봉사단으로 1978년, 한국에 처음 도착한다.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고, 한국어 선생님에게 ‘임대운(林大雲)’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는다. 그 후로 그는 임대운으로 불리며, 전라남도 영암의 보건소에서 결핵 환자를 돌본다.

1980년 5월 18일, 동료 평화봉사단원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대운은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광주로 간다. 터미널은 짙은 최루탄 냄새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영암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광주에 발이 묶인 대운은 동료 평화봉사단원이자 친구인 팀 원버그와 마주친다. 팀이 격앙되어 군인들이 젊은이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운은 광주 시내의 분위기를 보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날 버스 운영이 재개되어 대운은 영암으로 돌아오지만, 광주로 전화가 끊기고 계엄군의 폭력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팀과 한국인 친구들이 걱정된 대운은 광주로 돌아가 친구들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기로 한다. 5월 21일 그가 탄 광주행 버스는 나주에서 멈추고, 아름다운 한국의 5월에 대운은 걸어서 광주로 들어간다.

목차

제1부 언제나 새로운 시작

1장 여정의 시작
-1978년 1월부터 6월

2장 정착과 자아 찾기
-1978년 7월부터 1980년 5월

제2부 광주항쟁

3장 두려움과 희망
-5월 16일 금요일부터 5월 17일 토요일

4장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5월 18일 일요일

5장 은밀하게 퍼져가는 소식들
-5월 19일 월요일부터 5월 20일 화요일

6장 앞에 놓인 길
-5월 21일 수요일

7장 잠깐 동안의 해방
-5월 22일 목요일

8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5월 23일 금요일

9장 도청에서 보낸 밤
-5월 24일 토요일

10장 계속되는 긴장
-5월 25일 일요일

11장 장례식과 이별
-5월 26일 월요일

12장 목격
-5월 27일 화요일

13장 결과
-5월 28일 수요일부터 6월 2일 월요일

제3부 광주 이후의 삶

14장 다시 발견하기
-1980년 6월부터 8월

15장 반정부 인사와 접촉
-1980년 9월부터 1981년 7월

16장 진실 알리기
-1981년부터 현재

17장 광주항쟁에 대한 내 결론

부록 1. 팀 원버그를 추모하며
-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 팀 원버그

부록 2. 세상에 알리다
- 데이비드 돌린저의 수기
 

저자 소개

저 : 데이비드 리 돌린저 (David Lee Dolinger,임대운)
 
템플대학교에서 미생물학과 면역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난 35년간 인간의 질병, 특히 감염병 진단 방법을 개 발해 왔다. 크고 작은 다양한 기업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으며 체외진단 검사와 장비의 디자인, 개발,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 1978년 처음 한국 에 평화봉사단으로 도착해 한국 이름을 받았다. 한국어 선생님에게 받은 이름 임대운林大雲의 성은 숲을, 이름은 큰 구름을 뜻한다. 한국에서...

저 : 맷 밴볼켄버그 (Matt VanVolkenburg)

 
캐나다에서 2001년 처음 한국에 온 후 한국의 현대사에 매료되어, 광주항쟁 관련 자료를 열정적으로 연구했다. 2006년 온라인 포럼에서 데이비드 돌린저의 이름을 보고 그가 당시 광주에 있었던 평화봉사단원임을 알았다. 두 사람은 광주항쟁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이 깊어졌고, 회고록 집필을 함께 하게 된다. 블로그 〈것츠 오브 파퓰 러 필링 Gusts of Popular Feeling〉에 2005년부터 한국의 역사, ...

출판사 리뷰

전남도청에서 하룻밤을 보낸 유일한 이방인, 임대운

광주로 걸어 들어가던 대운은 환호하는 시위대가 탄 군용트럭과 버스를 만난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는데,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이들의 앞에 가고 있던 택시에서 내린 한국중앙정보부 요원이 그에게 카메라를 요구한다. 대운은 그에게 한국말로 신분증으로 요구하며 거부하고, 그는 각목을 대운의 가슴에 들이밀며 위협한다. 겨우 상황을 모면하고, 광주로 들어간 그는 금남로에서 헬기 사격을 피하고, 잔인한 폭력의 잔해를 마주한다. 그는 친구 팀을 만나 동료 평화봉사단원들과 함께 부상자를 돕고 외신기자에게 통역하며 가능한 많은 것을 목격하고자 한다. 항쟁이 끝난 직후, 광주에 남아있던 평화봉사단원들은 모두 서울로 소집된다. 파견국의 정치적 상황에 중립을 지킨다는 평화봉사단 규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운은 해임된다.

평화봉사단 해임, 그 후

더 이상 평화봉사단 신분이 아니지만 그는 어떻게든 한국에 남기로 한다. 대운이 찍은 사진은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들에 의해 해외로 빠져나가 외신에 보도되고, 그는 한국에 남아 감시를 받으면서도 반정부 인사들과 접촉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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