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3.민주화운동

민주화 후유증 (2023) - 가지 않는 과거, 오지 않는 미래

동방박사님 2023. 5. 18. 08:52
728x90

책소개

‘타협적 민주화’와 그 후유증의 극복

끔찍했던 군부 통치를 청산하고 정상적 민주시대의 문을 연 지도 어언 30년.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상은 정작 어떤가? 제각기 진영에 갇혀 극단적 갈등과 분열로 고통받고 있는, 혐오와 증오의 적대 정치에 몸서리치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만 한가득이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잘못됐길래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이런 현실에 무엇보다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국힘과 더민 두 진영은 그럼에도 오랜 동안 면면히 그리고 이 순간에도 서로 치고 받으며 끄떡없이 존재한다. 이 지긋지긋한 우리 정치상황에서 먼저 확인되는 것은, 현재의 자기 권력을 위해 상대에게 맹목적 반감을 불러일으켜 얻은 추한 부당이득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적대적 공생체제’다.

적대적 공생 체제는 일방이 겉으로는 상대방의 타도를 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타도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벌써 누군가 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결국 지지자를 사이비종교의 신도처럼 만들어 ‘자기 진영에 대한 맹목적 지지=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적 반감’만을 원하게 된다. 애초엔 그런 맹목적 지지도 상대 타도를 위한 것이라고 선전·선동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게 됐을 땐 일상적으로 ‘공생’하며 정치적·물질적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목적만 남게 될 것이다. (206~207쪽)

서로 적대하는 두 세력이 “퇴행적·위선적인 강성 이데올로기로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정상적인 민주체제의 발전이 만성적으로 저해”(207쪽)되는 이 현상이야말로 ‘민주화 후유증’이라 부를 만하다. 이상적·혁명적 민주화였다면 아예 없었거나 짧게 겪었을지도 모를 후유증 말이다.

목차

머리말

서론: 당위의 역사와 현실의 역사

제1장 민주화 역사 다시 읽기

1. 국민의힘, 그 역사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2. ‘타협적 민주화’와 3당통합신당 민자당
3. 민자당, 전두환 민정당의 승계인가 청산인가
4. 민자당 이후, 전두환의 민정당과 얼마나 단절하려 노력해왔는가

제2장 국민의힘, 파시즘과 보수의 동거

1. 파시즘과 보수 · 우파
2. 파시즘과 보수 · 우파가 혼재하는 국민의힘 세력
3. 국민의힘, 파시즘과 보수 · 우파의 단절은 가능한가

제3장 더불어민주당, 민주화 역사의 왜곡과 독점

1. 김영삼의 민정당 부정과 노무현의 새천년민주당 부정, 누구의 역사관이 옳은가
2. 더불어민주당 ‘운동권’의 ‘행방불명된 이념’과 민주화 논공행상의 독선적 독점
3. ‘반영남패권주의∈민주화’ 후유증과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가스라이팅 고착화

제4장 ‘적대적 공생’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1. 파시즘 시금석: 5 · 18 광주학살과 전두환의 민정당
2. 민주화 후유증: ‘적대적 공생’의 늪에 빠진 당파정치
3. 타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의식은 타당한가
4. 해결책: 민주주의 조건으로서의 복수정당제

제5장 가지 않는 과거, 오지 않는 미래

1.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의 추억
2. 호남의 국민의힘 지지는 가능한가
3. 어떻게 ‘타임 루프’ 대한민국을 벗어날 것인가

결론: 역사 인식의 전환과 정치체제의 정상화를 위하여

에필로그: 〈기생충〉의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자 소개

저 : 김욱
 
광주일고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남대학교에서 헌법, 법철학, 독서와 토론, 글쓰기와 자기표현 등을 강의했고, 사법시험 출제위원을 역임했으며,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위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프레시안』, 『대한변협신문』, 『한겨레』, 저널룩『인물과 사상』, 『월간 인물과 사상』, 『오마이뉴스』 등에 많은 평론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아주 낯선 상식...

출판사 리뷰

‘타협적 민주화’라는 절묘한 한계

저자는 우리의 ‘5공 청산’과 ‘민주화’ 역사를 꼼꼼히 되짚어봄으로써, 이 후유증이 ‘타협적 민주화’라는 우리 민주화 역사의 근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직선제 개헌 요구로써 6 · 29선언을 받아내고, 군부 일원의 집권 연장일망정 이를 쿠데타가 아닌 선거로 허용했으며, ‘5공 청산’을 강제해 청문회를 끌어내고, 민정당세력 타파 압박을 3당합당이란 출구로 열어가는 등등에 모두 절묘한 타협 과정이 있었음을 직시한 것이다. 즉,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세력의 지난한 비타협적 투쟁으로 마침내 이뤄낸 승리가 아니라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 간 힘의 균형점에서 어렵사리 일궈낸 ‘타협적 민주화’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 역사가 타협이 아닌 민주세력의 일방적 승리였다면 6 · 10항쟁으로 6 · 29선언을 받아낼 게 아니라 전두환정권을 타도했어야 했고, 5공청산 청문회로 끝날 일이 아니라 전두환 · 노태우일당을 혁명재판으로 처단했어야 했으며, 3당합당이 아니라 민정당을 해산하고 인적 응징을 했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혁명적 청산이 가능할 정도로 민주세력의 힘이 크진 않았다. 즉 원했든 원치 않았든 현실의 역사는 타협의 과정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상의 역사를 내세워 현실의 역사에 이상적 화풀이만 하는 건 부질없는 정신적 사치일 뿐이다. (47~48쪽)

이런 통찰은 우리 민주화에 대한 그간의 일반적 · 상식적 관점의 일대 전환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1990년 김영삼의 ‘3당합당’을 야합이자 배신으로 매도해온 건 우리의 민주화가 ‘타협적 민주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매우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왜? “3당합당은 6 · 10항쟁의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이자, ‘전두환 5공 청산’이라는 민주화 과업의 일환을 타협적 방식으로 해결해낸 역사적 사건”(45쪽)인 때문이다. 집권 중이었던 노태우의 민정당이 전두환의 민정당과 단절하는 자기 부정을 거쳐 민자당을 탄생시켰고, 그 민자당의 김영삼은 5공 잔재를 일소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민주화 진전에 당당히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다.

오만한 ‘민주화 공로’ 독점

여기서 새롭게(?) 재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결정적으로는 정치 ‘제도권’과 온 국민이 참여한 민주적 · 합헌적 선거를 통해 민주화를 이뤘으며, 그런 의미에서 심지어 반민주세력도 타협적 민주화의 한 축이었다”(297쪽)는 점이다. 우선, 그 타협적 민주화가 운동권의 투쟁과 혁명이 아닌 “제도권 정치인들의 주도적 타협으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개헌과 국민의 선거참여로 이루어졌다”(154~155쪽)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민주화의 실체적 내용과 관련해 이른바 ‘운동권’ 이념은 아무런 기여도 한 게 없으며, 따라서 타협적 민주화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운동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국민’임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일부 더민당 운동권(출신 및 지지)세력은 마치 민주화 공로를 독점해 마땅한 양 독선적 행태도 마다 않아왔다.

운동권(지지세력)의 자아도취 망상에 그 원인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화 역사의 모든 정의를 독점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말하듯, 국민이 ‘타협적 민주화’ 역사의 주역이고, 자신들은 사회주의 ·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혁명을 꿈꿨지만, 그 운동이 민주화의 길을 여는 데 결과적으로 도움을 주었을 뿐, 자신들이 이루고자 한 현실 혁명에는 실패했으므로, 이념적으로 저항적 민주화 역사의 주변세력이었다는 사실은 추호도 상기(인정)하지 않는다. (161쪽)

그들 운동권이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투표 행위로써 민주주의 헌법이념을 정상화해가는 타협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그 주역은 어디까지나 일반 국민이었지 운동권이 아니었단 것이다. 그런데도 운동권세력이 스스로에게 과도한 논공행상으로써 민주화 공로를 독선적으로 독점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도덕적 우월감에 젖은 오만함을 넘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에 다름 아니다. 제대로 따지자면, “국민이 그들에게 해준 유공자 대우는 이미 차고 넘친다”(163쪽)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의 전제조건, 복수정당제

민주화의 한 축 민자당을 승계한 국힘은 따라서 민주화에 대해 자폐적 콤플렉스를 가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해 “민주정당으로서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 역사적으로 희미해진 민주적 정통성 · 정당성을 복원 · 강화해야 한다.”(299쪽) 이로써 민정당 승계로 간주해왔기에 국힘을 거부해왔던 명분도, 호남의 더민당 일당지배를 합리화할 명분도 무의미해질 뿐이다.

다른 많은 부분에서 민주적 발전이 있었다고 해도 헌법정신이 전제하는 복수정당제를 확립 못 하면 정치적으로는 민주국가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일당지배 체제는 민주국가에서는 절대로 방기하면 안 되는 (유사)독재의 온상이다. 단순히 정치공학적으로만 말한다 해도 복수정당제 없이, 즉 선택이라는 정치적 응징 없이 정치세력들로부터 합리적이고 온전한 유권자 대우를 받기는 힘들다. (300~301쪽)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힘도 호남이 복수정당제의 경쟁마당에서 표를 줄 수도 있는 정당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타협적 민주화를 수용함으로써 그 필요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충분조건은 물론 스스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일이겠지만. 이렇게 “우리가 ‘타협적 민주화’의 긍정적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선의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 만성적 후유증도 이내 극복”(207쪽)할 수 있음을, 저자는 우리 정치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되짚어가며 세세히 밝혀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