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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60~1970년대 실험적 주택에 담긴
건축가의 도전과 한계를
도면, 모형, 렌더링으로 재구성해 분석하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현직 건축가의 시선으로 발굴해낸 1960~1970년대 한국의 실험적 주택과 건축가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저자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당시 국내 유일의 건축전문지였던 「SPACE(공간)」에 게재된 주택 중 여덟 개 프로젝트를 선별한 뒤, 지면의 자료를 근거로 직접 도면, 모형, 렌더링 등을 다시 제작하면서 건축가의 의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추론해나간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SPACE(공간)」에 연재됐던 ‘리-비지트 「SPACE」’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책은 그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주택 작업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의 빈칸을 채우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주택에서 저자가 읽어낸 당대 건축가들의 도전과 한계는 한국성, 주어진 조건에 대한 극복, 조형성 실험 등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건축을 바라보는 데에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한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1960~1970년대의 주택 작품들은, 서재원의 재발견과 해석을 통해 다시 현재성을 갖게 되었다. 기존 관행과 다른 새로운 제안들을 통해 건축적 사고와 표현 형식에 다양성을 더했던 당대 주택 영역의 사례에 대한 생생한 해석은, 흔히 거장의 작품이나 국가 주도의 대형 건축 사업, 그리고 아파트 출현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주고 있다. (중략) 심도 있는 해석들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근현대건축사는 몇몇 밝은 별들을 잇는 별자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은하계로 확장되어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 ‘리뷰’, 379쪽
건축가의 도전과 한계를
도면, 모형, 렌더링으로 재구성해 분석하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현직 건축가의 시선으로 발굴해낸 1960~1970년대 한국의 실험적 주택과 건축가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저자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당시 국내 유일의 건축전문지였던 「SPACE(공간)」에 게재된 주택 중 여덟 개 프로젝트를 선별한 뒤, 지면의 자료를 근거로 직접 도면, 모형, 렌더링 등을 다시 제작하면서 건축가의 의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추론해나간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SPACE(공간)」에 연재됐던 ‘리-비지트 「SPACE」’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책은 그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주택 작업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한국의 근현대 건축사의 빈칸을 채우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주택에서 저자가 읽어낸 당대 건축가들의 도전과 한계는 한국성, 주어진 조건에 대한 극복, 조형성 실험 등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건축을 바라보는 데에도 유효한 관점을 제공한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1960~1970년대의 주택 작품들은, 서재원의 재발견과 해석을 통해 다시 현재성을 갖게 되었다. 기존 관행과 다른 새로운 제안들을 통해 건축적 사고와 표현 형식에 다양성을 더했던 당대 주택 영역의 사례에 대한 생생한 해석은, 흔히 거장의 작품이나 국가 주도의 대형 건축 사업, 그리고 아파트 출현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주고 있다. (중략) 심도 있는 해석들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근현대건축사는 몇몇 밝은 별들을 잇는 별자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은하계로 확장되어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 ‘리뷰’, 379쪽
목차
프롤로그: 건축가라는 중간 존재
추천의 글: 뻔하지 않은 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안병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매너리스트의 보석 상자: 유걸, 강씨댁
짓다만 표정: 조창걸, 건축가 丁씨댁
우리에게 던져진 미완의 덩어리: 정길협, C씨 주택 계획안
한국성이라는 그 추상적 원죄: 김석재, 박대인의 집
고뇌하는 계단: 공일곤, OH씨댁
나누기 게임: 김원, 봉원동 K씨댁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성렬, 한남동 송씨댁
리뷰: 시간에서 발굴한 우리의 건축 형식 실험들
추천의 글: 뻔하지 않은 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안병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매너리스트의 보석 상자: 유걸, 강씨댁
짓다만 표정: 조창걸, 건축가 丁씨댁
우리에게 던져진 미완의 덩어리: 정길협, C씨 주택 계획안
한국성이라는 그 추상적 원죄: 김석재, 박대인의 집
고뇌하는 계단: 공일곤, OH씨댁
나누기 게임: 김원, 봉원동 K씨댁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성렬, 한남동 송씨댁
리뷰: 시간에서 발굴한 우리의 건축 형식 실험들
책 속으로
이 책은 「SPACE(공간)」 창간해인 1966년 이후부터 1970년대 사이에 계획 혹은 실현된 한국 건축가의 주택 작업 여덟 채를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당시 건축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다. (중략) 이 시기는 박정희 정부의 휘하에서 「건축법」이 제정되고 국립박물관 현상설계 전통논쟁 사건 등 국가 정체성이 건축에까지 강요된 때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주관적 ‘내적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의 건축가에게 주어진 소여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찾고자 했다.
--- p.13, 「프롤로그」중에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다양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선별된 주택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수학적이면서 조형적인 프로젝트다.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건축주, 도시의 규제와 제약, 지역 정치 등 각 시대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 집들은 또한 전통 주택에서 몇 가지 익숙한 요소를 빌려와 모종의 관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관습과 기대를 깨뜨린다. 전통과 현대,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택들은 그래서 ‘뻔하지 않은 집’이다.
--- p.31, 「팔라, ‘추천의 글’」중에서
쉽게 말해 안병의의 주택은 우산대가 있는 반면 시노하라의 주택은 우산대, 즉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없다. 그렇다고 기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기둥은 평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허공에 십자형으로 지나는 들보를 교차점에서 지지할 뿐이다. 즉 엄브렐라 하우스가 일본 전통 종이우산의 구조를 텍스트적으로 해체, 차용하면서 일본성을 획득하고 있다면,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콘텍스트적으로 재현하는 실존적 태도에 방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
--- p.52
강씨댁, 이 범상치 않은 주택의 작가가 서울시청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 1940년생이라는 사실을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중략) 유걸의 작업은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형태로 각인된 경우가 많은데, 이 주택에서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기하학적 엄밀함과 폐쇄된 형식적 체계는 오히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자유 정신과는 거리가 먼 근본주의자의 것처럼 보인다.
--- p.82
전체적으로 건축가 丁씨댁은 미묘하게 평면과 단면, 입면이 서로 어긋나고 있으며 절제된 개구부와 두 개의 굴뚝, 튀어나온 테라스와 가벽 그리고 깃발, 반달, 은행잎 등의 형상이 나타나는 입면으로 미루어볼 때 건축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집인 동시에 기능과 조형 사이에서 주저한 건축가의 내면도 솔직하게 잘 드러난 집이다. 조형 의지와 기능 사이에서 아직 완전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당시 30세의 젊은 건축가는 지금의 한샘그룹을 탄생시킨 조창걸 명예회장이다.
--- p.136
정길협 또한 김중업을 벗어나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듯하다. (중략) L씨댁의 설계소묘에서 그는 “건축가는 건축 이전에 현실을 발견하는 데 의의를 두고, 모랄moral이 뒷받침된 ‘자기’를 기반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C씨 주택은 스스로를 몰아쳤던 건축가의 에고ego 덩어리, 그 자체인 것이다.
--- p.173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1970년에 발표된 C씨 주택 계획안이 결국 한국성을 탐구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첫인상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전통 요소의 직접적인 차용이나 형상화를 따르지 않은 데다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 주택은 완결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에 메스scalpel를 들이댄 포스트모던의 과도기적 절충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 이미테이션에 머물고 있는 당시 건축계에 대한 비판이 된다. 자본주의에 거세당한 채 스스로 고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국적 불명의 이미테이션에 빠진 우리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 p.176
건축가 김석재에게 휴머니티와 한국성은 그의 독실한 신앙심과 맞물려 일종의 종교적, 건축적 소명 의식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하여 이후 한국성에 천착하며 작업을 이어갔는데 (중략) 그런 시기 안에서 김석재가 김중업 사무실에서 독립해 얼마 되지 않은 1970년경 설계한 박대인의 집은 매우 야심 차게 한국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p.197
야나기 무네요시가 막사발에서 ‘무심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박대인은 초가집에서 ‘어수룩한 여유’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초가집의 정신 같은 초-추상적인 개념이 한국 건축으로 번안될 수 있는가의 오래된 문제에 직면한다. 그간 한국성의 탐구가 눈에 보이는 실實에서 점차 보이지 않는 허虛로 방향을 틀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랜 문제를 풀지 못해서 오는 피로감이 점차 쌓이고 있는 것은 암묵적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성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 p.219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건축가가 얼마나 형태와 기능을 단순 종속 혹은 대립 관계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하고자 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중략) 하나의 완결된 조형이 기능적으로 분절되면서 남은 조각들로 미학esthetic과 윤리ethic 사이에서 고뇌한 미완의 파편인 셈이다.
--- p.241
지붕과 형태의 기괴함이 첫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지붕의 조형 의지(이상)와 평면의 기능(현실)이 타협을 시도한 결정적 피겨figure이기 때문이다.
--- p.246
한남동 송씨댁이라 이름 붙여진 이 집은 우선 형태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무슨 개구리 눈도 아니고 스포츠카에 달린 팝업 헤드램프처럼 지붕 위로 불쑥 튀어 올라온 창들과 집 전체를 뒤덮은 경사지붕은 마치 동물이 튀어나올 듯, 숲속에나 있을 법한 만화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중략) 물론 건축적으로 보면 과도한 조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신념 아래 코르뷔지에식의 ‘볼륨의 단면적 관입’이나 라이트풍의 ‘수평적 유동성’ 등의 ‘공간’을 신봉하던 여타의 주택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돼 보인다.
--- p.318
근본적으로 ‘형태에 기능을 욱여넣은’ 디자인 과정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주류를 이루던 반反형태주의에 가하는 일격으로 보인다. 주택이 소개된 「SPACE」 79호(1973년 10월호) 지면에는 소위 ‘도면의 꽃’이라 불리던 단면도는 없고 입면도 스케치만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에 힘을 더 실어준다.
--- p.319
전체적으로 형태와 평면의 관계를 볼 때 한남동 송씨댁은 공간을 덧붙여가며 조형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형에 맞춰 공간을 나누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 건축가들의 다소 감성적인 프로세스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이라고 봐야 한다.
--- p.332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잊혀진 우리의 1960~1970년대 주택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건축가 서재원의 독특한 건축적 시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 건축계에서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형식주의적 분석의 실천이기도 하다.
--- p.360, 「리뷰」중에서
건축에 대한 형식주의적 접근은 그 구성 요소의 명료한 정의와 그들 간의 엄밀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건물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구조를 표현하는 텍토닉이 건축의 대표적인 형식미가 되겠지만, 형식 요소가 꼭 구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중략) 구조, 형태, 공간을 포함하여 표면, 패턴, 색, 장식에 관계된 다양한 요소들이 내적 논리에 의해 통합되어야 하며, 더 많은 영역의 요소들이 견고한 규율로 묶일 때 보다 높은 형식적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361, 「리뷰」중에서
기존 관행과 다른 새로운 제안들을 통해 건축적 사고와 표현 형식에 다양성을 더했던 당대 주택 영역의 사례에 대한 생생한 해석은, 흔히 거장의 작품이나 국가 주도의 대형 건축 사업, 그리고 아파트 출현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주고 있다. (중략) 심도 있는 해석들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근현대건축사는 몇몇 밝은 별들을 잇는 별자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은하계로 확장되어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p.13, 「프롤로그」중에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다양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선별된 주택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수학적이면서 조형적인 프로젝트다.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건축주, 도시의 규제와 제약, 지역 정치 등 각 시대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 집들은 또한 전통 주택에서 몇 가지 익숙한 요소를 빌려와 모종의 관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관습과 기대를 깨뜨린다. 전통과 현대,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택들은 그래서 ‘뻔하지 않은 집’이다.
--- p.31, 「팔라, ‘추천의 글’」중에서
쉽게 말해 안병의의 주택은 우산대가 있는 반면 시노하라의 주택은 우산대, 즉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없다. 그렇다고 기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기둥은 평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허공에 십자형으로 지나는 들보를 교차점에서 지지할 뿐이다. 즉 엄브렐라 하우스가 일본 전통 종이우산의 구조를 텍스트적으로 해체, 차용하면서 일본성을 획득하고 있다면,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콘텍스트적으로 재현하는 실존적 태도에 방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
--- p.52
강씨댁, 이 범상치 않은 주택의 작가가 서울시청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 1940년생이라는 사실을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중략) 유걸의 작업은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형태로 각인된 경우가 많은데, 이 주택에서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기하학적 엄밀함과 폐쇄된 형식적 체계는 오히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자유 정신과는 거리가 먼 근본주의자의 것처럼 보인다.
--- p.82
전체적으로 건축가 丁씨댁은 미묘하게 평면과 단면, 입면이 서로 어긋나고 있으며 절제된 개구부와 두 개의 굴뚝, 튀어나온 테라스와 가벽 그리고 깃발, 반달, 은행잎 등의 형상이 나타나는 입면으로 미루어볼 때 건축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집인 동시에 기능과 조형 사이에서 주저한 건축가의 내면도 솔직하게 잘 드러난 집이다. 조형 의지와 기능 사이에서 아직 완전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당시 30세의 젊은 건축가는 지금의 한샘그룹을 탄생시킨 조창걸 명예회장이다.
--- p.136
정길협 또한 김중업을 벗어나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듯하다. (중략) L씨댁의 설계소묘에서 그는 “건축가는 건축 이전에 현실을 발견하는 데 의의를 두고, 모랄moral이 뒷받침된 ‘자기’를 기반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C씨 주택은 스스로를 몰아쳤던 건축가의 에고ego 덩어리, 그 자체인 것이다.
--- p.173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1970년에 발표된 C씨 주택 계획안이 결국 한국성을 탐구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첫인상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전통 요소의 직접적인 차용이나 형상화를 따르지 않은 데다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 주택은 완결을 추구하던 모더니즘에 메스scalpel를 들이댄 포스트모던의 과도기적 절충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 이미테이션에 머물고 있는 당시 건축계에 대한 비판이 된다. 자본주의에 거세당한 채 스스로 고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국적 불명의 이미테이션에 빠진 우리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 p.176
건축가 김석재에게 휴머니티와 한국성은 그의 독실한 신앙심과 맞물려 일종의 종교적, 건축적 소명 의식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하여 이후 한국성에 천착하며 작업을 이어갔는데 (중략) 그런 시기 안에서 김석재가 김중업 사무실에서 독립해 얼마 되지 않은 1970년경 설계한 박대인의 집은 매우 야심 차게 한국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 p.197
야나기 무네요시가 막사발에서 ‘무심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박대인은 초가집에서 ‘어수룩한 여유’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초가집의 정신 같은 초-추상적인 개념이 한국 건축으로 번안될 수 있는가의 오래된 문제에 직면한다. 그간 한국성의 탐구가 눈에 보이는 실實에서 점차 보이지 않는 허虛로 방향을 틀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랜 문제를 풀지 못해서 오는 피로감이 점차 쌓이고 있는 것은 암묵적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성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 p.219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건축가가 얼마나 형태와 기능을 단순 종속 혹은 대립 관계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하고자 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중략) 하나의 완결된 조형이 기능적으로 분절되면서 남은 조각들로 미학esthetic과 윤리ethic 사이에서 고뇌한 미완의 파편인 셈이다.
--- p.241
지붕과 형태의 기괴함이 첫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지붕의 조형 의지(이상)와 평면의 기능(현실)이 타협을 시도한 결정적 피겨figure이기 때문이다.
--- p.246
한남동 송씨댁이라 이름 붙여진 이 집은 우선 형태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무슨 개구리 눈도 아니고 스포츠카에 달린 팝업 헤드램프처럼 지붕 위로 불쑥 튀어 올라온 창들과 집 전체를 뒤덮은 경사지붕은 마치 동물이 튀어나올 듯, 숲속에나 있을 법한 만화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중략) 물론 건축적으로 보면 과도한 조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신념 아래 코르뷔지에식의 ‘볼륨의 단면적 관입’이나 라이트풍의 ‘수평적 유동성’ 등의 ‘공간’을 신봉하던 여타의 주택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돼 보인다.
--- p.318
근본적으로 ‘형태에 기능을 욱여넣은’ 디자인 과정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주류를 이루던 반反형태주의에 가하는 일격으로 보인다. 주택이 소개된 「SPACE」 79호(1973년 10월호) 지면에는 소위 ‘도면의 꽃’이라 불리던 단면도는 없고 입면도 스케치만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에 힘을 더 실어준다.
--- p.319
전체적으로 형태와 평면의 관계를 볼 때 한남동 송씨댁은 공간을 덧붙여가며 조형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형에 맞춰 공간을 나누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 건축가들의 다소 감성적인 프로세스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이라고 봐야 한다.
--- p.332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잊혀진 우리의 1960~1970년대 주택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건축가 서재원의 독특한 건축적 시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며, 나아가 우리 건축계에서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형식주의적 분석의 실천이기도 하다.
--- p.360, 「리뷰」중에서
건축에 대한 형식주의적 접근은 그 구성 요소의 명료한 정의와 그들 간의 엄밀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건물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구조를 표현하는 텍토닉이 건축의 대표적인 형식미가 되겠지만, 형식 요소가 꼭 구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중략) 구조, 형태, 공간을 포함하여 표면, 패턴, 색, 장식에 관계된 다양한 요소들이 내적 논리에 의해 통합되어야 하며, 더 많은 영역의 요소들이 견고한 규율로 묶일 때 보다 높은 형식적 성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361, 「리뷰」중에서
기존 관행과 다른 새로운 제안들을 통해 건축적 사고와 표현 형식에 다양성을 더했던 당대 주택 영역의 사례에 대한 생생한 해석은, 흔히 거장의 작품이나 국가 주도의 대형 건축 사업, 그리고 아파트 출현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주고 있다. (중략) 심도 있는 해석들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근현대건축사는 몇몇 밝은 별들을 잇는 별자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은하계로 확장되어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 p.379
출판사 리뷰
1960~1970년대, 한국의 건축가들을 찾아서
한국전쟁이 이후, 1960년에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이 집권했던 20여 년의 시간은 한국 건축의 근현대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른바 ‘발전 국가 시기’로 명명되는 이 기간 동안 「건축법」(1962)이 제정되었고, 정권의 휘하에서 종합박물관, 정부청사 등 설계공모를 통해 본격적인 프로파간다 건축이 생산됐다. 하지만 그 역사에 대한 기록과 해석은 김수근, 김중업 등 굵직한 공공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몇몇 건축가들에 집중됐다. 이들을 제외하고 당시 한국 건축계를 구성했던 여러 건축가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이 생산한 건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권력의 근거리에 있지 않았던 당대 건축가들의 실천과 도전에 대한 역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건축가 서재원은 50여 년이 흐른 현시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품고 당대 유일한 건축전문지였던 잡지의 지면을 대상으로 그 흔적을 찾아 나섰다.
왜 ‘주택’인가
“단독주택은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에 비교적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한 건축가의 솔직하고 내밀한 창작 의지와 집주인의 사회적 통념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응축되어 나타나는 매우 철학적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 44쪽
그가 특히 주택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건축가의 내적 의지가 오롯이 발현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주택의 특성상 시작부터 한계와 제약을 안은 건축가의 상황을 묘사하며 서재원은 건축가를 ‘중간 존재’로 규정한다. 따라서 주택이야말로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건축가의 사고와 철학이 집약적으로 투영된 대상이라 말한다.
“의뢰인의 요구 사항이 있고 지켜야 할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요구 또한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목사와 목수 사이에서, 기능과 형태 사이에서, 그리고 구상과 구축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중간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뇌의 흔적은 고스란히 도면과 건물에 남는다. 따라서 건축가의 주택 작업은 여타의 다른 건물보다 건축가의 진솔한 고민을 농밀하게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된다.” - ‘프롤로그’, 12쪽
새롭게 조명하는 8인의 건축가, 주택에 담긴 질문들
“서재원은 단독주택에 주목했는데, 공공재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한정된 의뢰인과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내재적 형식미에 대한 실험들을 가장 꽃피울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가 선별한 여덟 채의 주택은 눈에 띄는 형태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제각각 독특한 형식적인 문제들을 설정한 작품들이다.” - 최원준, ‘리뷰’, 372쪽
서재원이 발굴해낸 건축가와 주택 작업들의 면면을 보면, 오늘날에도 유효한 흥미로운 주제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안병의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계획안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일본 건축가 가즈오 시노하라의 엄브렐라 하우스와 비교를 통해 참조 대상(우산)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다른 해석과 태도를 드러낸다. 유걸의 초기작인 강씨댁에서는 루이스 칸의 영향을 언급하며, 기하학의 이성적 엄밀함과 감성적 공간을 통합하려는 자족적 시스템을 통해 콘텍스트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조창걸의 건축가 정(丁)씨댁은 조형 의지와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태가 위트와 모순으로 드러났음을 짚는 한편, 정길협의 C씨 주택 계획안에서는 자기만의 건축 언어를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밀했던 조형 실험을 발견한다. 김석재가 전통 요소를 차용해 한국성을 드러낸 작업인 박대인의 집은 건축가와 의뢰인의 입장의 차이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한국성 담론’에 주목하게 한다. 공일곤의 OH씨댁은 현실(삶)과 이상(작품 의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건축가의 자아성찰적 태도가 우유부단한 결과로 귀결된 집으로, 건축가의 숙명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하는 작업이다. 김원의 봉원동 K씨댁은 건축설계라는 행위의 근원적 본질을 묻고 있는 건축가의 종교적 태도가 잘 드러난 집으로, 우리 시대 엘리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조성렬의 한남동 송씨댁은 조형 의지가 기능과 공간을 압도한 작업으로, 형태와 기능 사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전략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호명된 여덟 건축가의 낯선 주택 작업은 1960~1970년대 당시 대부분 30대에 수행한 작업들이다. 서재원은 일명 ‘대표작’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 주택들 사이에서 건축가들의 이후 건축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단서, 혹은 자신들의 주요작들과 달리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던 도전, 나아가 ‘한국성’과 같은 시대의 부름에 대응하는 태도 등을 포착해낸다. ‘매너리스트의 보석 상자’(유걸), ‘짓다만 표정’(조창걸), ‘한국성이라는 그 추상적 원죄’(김석재), ‘고뇌하는 계단’(공일곤) 등 각 주택에 붙은 특징적인 제목들은 그가 집중적으로 분석한 대상(요소)과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건축가의 표현 방식들에 대한 분석과 성찰,
형식주의에 입각한 독자적 재해석
책 말미의 ‘리뷰’에서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은 “오늘날 우리 건축계에서 사전 정보 없이 건물의 모습만으로 그 건축가를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경우를 꼽자면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서재원이 대표적”이라 설명하며, “엄정한 형식을 통한 건축적 소통에서 서재원이 주도면밀하게 활용하는 요소는 역사적 단편”이라고 말한다. 한국 현대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형식주의 건축의 계보를 잇는 그에게 선배 건축가들의 주택은 분명 훌륭한 역사적 참조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건축의 형식을 통한 소통이 이 시대에 유효한 길이기는 하지만 많은 동지가 있지는 않기에, 서재원은 「SPACE」의 지면을 통해 선배들을 찾아 나섰다. 역사적 단편들을 활용하여 건축의 내러티브를 조성하는 그에게, 우리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건축적 실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도 했다.”
- 최원준, ‘리뷰’, 370쪽
서재원이 각 주택을 해석하는 과정의 백미는 잡지에 공개된 사진, 도면 등 한정된 자료를 자신만의 매체(도면, 스케치, 모형, 렌더링 등)로 재구성하는 방법론이다. 그는 ‘내가 건축가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어떤 부분을 가장 고민했을까’를 염두에 두고 건축가의 설계 프로세스를 따라 추론을 이어간다. 이를 위해 평면도나 단면도를 스케일에 맞춰 다시 작도하거나, 엑소노메트릭 등 3차원 분해도를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실제 건물 내외부 모습을 확인하기 힘든 경우에는 실물 모형을 제작해 사진을 촬영하거나, 3D 모델링을 통해 렌더링 이미지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각 주택의 특징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에 따라 새롭게 표현된 매체는 건축가 서재원의 시선과 선배 건축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한 독자들이 저자의 형식주의적 면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서재원이 설계한 건물의 평면도를 ‘리뷰’에 함께 수록했다.
국내외 시각을 더한 균형적 해석
이 책은 「SPACE」에 연재됐던 ‘리-비지트 「SPACE」’에 바탕을 두고 기획됐다. 원고를 다듬고 내용을 추가해 살을 붙이면서, 건축가 서재원의 주택 분석이 지닌 함의를 우리 건축계 ‘안과 바깥의 시선’을 통해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느꼈다. 이에 맞춰 포르투갈 포루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팔라(fala)가 쓴 ‘추천의 글’과 건축비평가이자 건축역사가인 최원준의 ‘리뷰’가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안과 밖의 담론과 연결되는 균형을 갖추게 되었다.
“여덟 채의 검박한 단독주택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기능과 형태, 건축가와 건축주, 그리고 이상적 포부와 실용적 조건 사이의 흔한 이분법적 관계를 드러낸다. 이 프로젝트들은 포르투에서 약 1만 164km 떨어진 먼 서울에 있지만 알바로 시자, 아돌프 로스, 로버트 벤투리, 그리고 데니스 스콧 브라운 같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나름 가까운 레퍼런스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 팔라, ‘추천의 글’, 26쪽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다양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선별된 주택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수학적이면서 조형적인 프로젝트다.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건축주, 도시의 규제와 제약, 지역 정치 등 각 시대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 집들은 또한 전통 주택에서 몇 가지 익숙한 요소를 빌려와 모종의 관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관습과 기대를 깨뜨린다. 전통과 현대,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택들은 그래서 ‘뻔하지 않은 집’이다.” - 팔라, ‘추천의 글’, 31쪽
충실한 아카이브, 영문 병기로
독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긴 세로판형은 저자의 주요한 참조체인 「SPACE」 지면을 반영한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펼쳤을 때 저자가 참고했던 잡지의 지면을 같은 호흡으로 읽어갈 수 있도록 지면을 세로로 이등분한 판형을 시도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과 건축가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취지에 맞춰 본문 전체를 영문으로 병기했다. 이로써 국내 독자뿐 아니라 해외 독자들에게도 보석처럼 숨겨졌던 한국 근현대 건축의 새로운 장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전쟁이 이후, 1960년에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이 집권했던 20여 년의 시간은 한국 건축의 근현대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른바 ‘발전 국가 시기’로 명명되는 이 기간 동안 「건축법」(1962)이 제정되었고, 정권의 휘하에서 종합박물관, 정부청사 등 설계공모를 통해 본격적인 프로파간다 건축이 생산됐다. 하지만 그 역사에 대한 기록과 해석은 김수근, 김중업 등 굵직한 공공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몇몇 건축가들에 집중됐다. 이들을 제외하고 당시 한국 건축계를 구성했던 여러 건축가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이 생산한 건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권력의 근거리에 있지 않았던 당대 건축가들의 실천과 도전에 대한 역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건축가 서재원은 50여 년이 흐른 현시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품고 당대 유일한 건축전문지였던 잡지의 지면을 대상으로 그 흔적을 찾아 나섰다.
왜 ‘주택’인가
“단독주택은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에 비교적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한 건축가의 솔직하고 내밀한 창작 의지와 집주인의 사회적 통념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응축되어 나타나는 매우 철학적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 44쪽
그가 특히 주택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건축가의 내적 의지가 오롯이 발현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주택의 특성상 시작부터 한계와 제약을 안은 건축가의 상황을 묘사하며 서재원은 건축가를 ‘중간 존재’로 규정한다. 따라서 주택이야말로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건축가의 사고와 철학이 집약적으로 투영된 대상이라 말한다.
“의뢰인의 요구 사항이 있고 지켜야 할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요구 또한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목사와 목수 사이에서, 기능과 형태 사이에서, 그리고 구상과 구축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중간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뇌의 흔적은 고스란히 도면과 건물에 남는다. 따라서 건축가의 주택 작업은 여타의 다른 건물보다 건축가의 진솔한 고민을 농밀하게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된다.” - ‘프롤로그’, 12쪽
새롭게 조명하는 8인의 건축가, 주택에 담긴 질문들
“서재원은 단독주택에 주목했는데, 공공재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한정된 의뢰인과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내재적 형식미에 대한 실험들을 가장 꽃피울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가 선별한 여덟 채의 주택은 눈에 띄는 형태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제각각 독특한 형식적인 문제들을 설정한 작품들이다.” - 최원준, ‘리뷰’, 372쪽
서재원이 발굴해낸 건축가와 주택 작업들의 면면을 보면, 오늘날에도 유효한 흥미로운 주제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안병의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계획안은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일본 건축가 가즈오 시노하라의 엄브렐라 하우스와 비교를 통해 참조 대상(우산)을 바라보는 두 나라의 다른 해석과 태도를 드러낸다. 유걸의 초기작인 강씨댁에서는 루이스 칸의 영향을 언급하며, 기하학의 이성적 엄밀함과 감성적 공간을 통합하려는 자족적 시스템을 통해 콘텍스트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조창걸의 건축가 정(丁)씨댁은 조형 의지와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태가 위트와 모순으로 드러났음을 짚는 한편, 정길협의 C씨 주택 계획안에서는 자기만의 건축 언어를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밀했던 조형 실험을 발견한다. 김석재가 전통 요소를 차용해 한국성을 드러낸 작업인 박대인의 집은 건축가와 의뢰인의 입장의 차이로 인해 해결되지 않은 ‘한국성 담론’에 주목하게 한다. 공일곤의 OH씨댁은 현실(삶)과 이상(작품 의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건축가의 자아성찰적 태도가 우유부단한 결과로 귀결된 집으로, 건축가의 숙명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하는 작업이다. 김원의 봉원동 K씨댁은 건축설계라는 행위의 근원적 본질을 묻고 있는 건축가의 종교적 태도가 잘 드러난 집으로, 우리 시대 엘리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조성렬의 한남동 송씨댁은 조형 의지가 기능과 공간을 압도한 작업으로, 형태와 기능 사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전략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호명된 여덟 건축가의 낯선 주택 작업은 1960~1970년대 당시 대부분 30대에 수행한 작업들이다. 서재원은 일명 ‘대표작’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 주택들 사이에서 건축가들의 이후 건축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단서, 혹은 자신들의 주요작들과 달리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던 도전, 나아가 ‘한국성’과 같은 시대의 부름에 대응하는 태도 등을 포착해낸다. ‘매너리스트의 보석 상자’(유걸), ‘짓다만 표정’(조창걸), ‘한국성이라는 그 추상적 원죄’(김석재), ‘고뇌하는 계단’(공일곤) 등 각 주택에 붙은 특징적인 제목들은 그가 집중적으로 분석한 대상(요소)과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건축가의 표현 방식들에 대한 분석과 성찰,
형식주의에 입각한 독자적 재해석
책 말미의 ‘리뷰’에서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은 “오늘날 우리 건축계에서 사전 정보 없이 건물의 모습만으로 그 건축가를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경우를 꼽자면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서재원이 대표적”이라 설명하며, “엄정한 형식을 통한 건축적 소통에서 서재원이 주도면밀하게 활용하는 요소는 역사적 단편”이라고 말한다. 한국 현대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형식주의 건축의 계보를 잇는 그에게 선배 건축가들의 주택은 분명 훌륭한 역사적 참조체로 다가왔을 것이다.
“건축의 형식을 통한 소통이 이 시대에 유효한 길이기는 하지만 많은 동지가 있지는 않기에, 서재원은 「SPACE」의 지면을 통해 선배들을 찾아 나섰다. 역사적 단편들을 활용하여 건축의 내러티브를 조성하는 그에게, 우리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건축적 실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도 했다.”
- 최원준, ‘리뷰’, 370쪽
서재원이 각 주택을 해석하는 과정의 백미는 잡지에 공개된 사진, 도면 등 한정된 자료를 자신만의 매체(도면, 스케치, 모형, 렌더링 등)로 재구성하는 방법론이다. 그는 ‘내가 건축가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어떤 부분을 가장 고민했을까’를 염두에 두고 건축가의 설계 프로세스를 따라 추론을 이어간다. 이를 위해 평면도나 단면도를 스케일에 맞춰 다시 작도하거나, 엑소노메트릭 등 3차원 분해도를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실제 건물 내외부 모습을 확인하기 힘든 경우에는 실물 모형을 제작해 사진을 촬영하거나, 3D 모델링을 통해 렌더링 이미지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각 주택의 특징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에 따라 새롭게 표현된 매체는 건축가 서재원의 시선과 선배 건축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한 독자들이 저자의 형식주의적 면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서재원이 설계한 건물의 평면도를 ‘리뷰’에 함께 수록했다.
국내외 시각을 더한 균형적 해석
이 책은 「SPACE」에 연재됐던 ‘리-비지트 「SPACE」’에 바탕을 두고 기획됐다. 원고를 다듬고 내용을 추가해 살을 붙이면서, 건축가 서재원의 주택 분석이 지닌 함의를 우리 건축계 ‘안과 바깥의 시선’을 통해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느꼈다. 이에 맞춰 포르투갈 포루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팔라(fala)가 쓴 ‘추천의 글’과 건축비평가이자 건축역사가인 최원준의 ‘리뷰’가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안과 밖의 담론과 연결되는 균형을 갖추게 되었다.
“여덟 채의 검박한 단독주택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기능과 형태, 건축가와 건축주, 그리고 이상적 포부와 실용적 조건 사이의 흔한 이분법적 관계를 드러낸다. 이 프로젝트들은 포르투에서 약 1만 164km 떨어진 먼 서울에 있지만 알바로 시자, 아돌프 로스, 로버트 벤투리, 그리고 데니스 스콧 브라운 같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나름 가까운 레퍼런스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 팔라, ‘추천의 글’, 26쪽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다양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선별된 주택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수학적이면서 조형적인 프로젝트다. 독특한 형식적 실험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건축주, 도시의 규제와 제약, 지역 정치 등 각 시대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 집들은 또한 전통 주택에서 몇 가지 익숙한 요소를 빌려와 모종의 관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관습과 기대를 깨뜨린다. 전통과 현대,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택들은 그래서 ‘뻔하지 않은 집’이다.” - 팔라, ‘추천의 글’, 31쪽
충실한 아카이브, 영문 병기로
독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긴 세로판형은 저자의 주요한 참조체인 「SPACE」 지면을 반영한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펼쳤을 때 저자가 참고했던 잡지의 지면을 같은 호흡으로 읽어갈 수 있도록 지면을 세로로 이등분한 판형을 시도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과 건축가를 발굴해 소개한다는 취지에 맞춰 본문 전체를 영문으로 병기했다. 이로써 국내 독자뿐 아니라 해외 독자들에게도 보석처럼 숨겨졌던 한국 근현대 건축의 새로운 장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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