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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카 농민, 유형자, 군인의 삶 (2024)

동방박사님 2024. 4. 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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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러시아의 여성 군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부대를 창설하고 지휘관으로 활동했던 마리야 보차카료바의 자서전. ‘야시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보차카료바는 러시아 현대사와 세계사, 여성사와 전쟁사 등의 지평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아버지와 남편의 폭력에 고통받던 보치카료바는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1차대전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2월혁명 후 남성 병사의 전투 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러시아 여성결사대대 창설을 주도했으며, 10월혁명의 여파로 결사대대가 해체된 뒤에는 반혁명 운동에 가담하다 체포되어 1920년 5월 총살되었다.

전쟁과 혁명으로 격동하던 시기에 보치카료바는 한쪽에서는 반혁명 분자로, 한쪽에서는 러시아의 잔다르크로 불렸다. 그가 이끈 결사대대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반해 만들어졌으나 한편으로 기존 젠더 질서의 전복을 내장한 사회적 실험이었다. 이 책은 그 모순적인 삶과 시대의 면면을 담은 기록이다. 농민, 유형자, 군인으로 살았던 한 인간의 역사이자, 1889~1918년의 러시아의 모습을 민중의 시각에서 재현한 시대사이다. 우리 역사학계와 여성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은 ‘여성 군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세기 전환기 러시아의 실상,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의 격변, 러시아 민중과 병사의 모습, 러시아 여성의 위상과 페미니즘, 군대와 전쟁에 관한 1차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목차

머리말 _ 아이작 돈 레빈

1부 어린 시절

1장 고되게 일했던 꼬맹이 시절
2장 열다섯 살에 한 결혼
3장 작은 행복
4장 유형지로 가는 길
5장 유형지에서 빠져나오다

2부 전쟁

6장 차르의 은총 덕에 입대하다
7장 나의 첫 무인지대 경험
8장 부상과 마비
9장 독일군에게 붙잡혀 있던 여덟 시간

3부 혁명

10장 전선에서 일어난 혁명
11장 결사대대를 창설하다
12장 병사위원회의 지배에 맞선 나의 싸움
13장 전선의 결사대대
14장 케렌스키의 밀명을 띠고 코르닐로프에게 가다
15장 군대가 사나운 폭도가 되다

4부 테러

16장 볼셰비즘의 승리
17장 레닌과 트로츠키를 마주하다
18장 볼셰비키에게 붙잡혀 꼼짝없이 죽을 뻔하다
19장 기적이 구한 목숨
20장 사명을 띠고 출발하다

주요 인물 소개 | 주요 사건 연대표 | 옮긴이 해제

저자 소개

저 : 마리야 보치카료바 (Maria Botchkareva)
 
러시아의 여성 군인. 1889년에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집이 가난해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일을 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에서 벗어나려고 일찍 결혼했지만, 폭행을 일삼는 남편에게서 달아나야 했다. 새 연인을 따라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러시아 제국이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자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우며 뛰어난 군인으로 거듭났다. 1917년 2...
 
역 : 류한수
 
1966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역사학과에서 러시아 내전 기간 동안에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산업체의 경영 구조와 생산 현장에서 일어난 변화를 주제로 한 학위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이며 유럽 현대사, 특히 러시아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쏟으며 연구를 하...

출판사 리뷰

제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에서 싸우다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부대를 창설하다


러시아의 여성 군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근현대)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부대인 ‘제1러시아 여성결사대대’를 창설하고 지휘관으로 활동했던 마리야 보차카료바(1889-1920)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1918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러시아어로 구술한 내용을 러시아 출신 미국인 아이작 돈 레빈이 받아 적은 후 영어로 옮긴 책이다.

‘야시카Яшка/Yashka’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보차카료바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그리고 세계사와 여성사, 전쟁사 등의 지평에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진 폭력에 고통받던 보치카료바는 남성의 영역이었던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해 1차대전의 최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다. 여러 차례 무공을 세워 부사관으로 진급하며, 전쟁 영웅으로 상징적 존재가 된다. 2월혁명 후 전쟁 종식을 바라는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남성 병사의 전투 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여성결사대대 창설을 주도한다. 10월혁명의 여파로 결사대대가 해체된 뒤에는 반혁명 운동에 가담하다 체포되어 1920년 5월 총살되었다.

문제적 인물 마리야 보치카료바의 생애와
전쟁과 혁명이 격동하는 러시아의 역사


전쟁과 혁명으로 격동하던 시기에 보치카료바는 한쪽에서는 반혁명 분자로, 한쪽에서는 러시아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삶을 살았다. 관습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용감한 여성이자 시대 흐름을 거스르고 몰락한 역사의 패자이기도 하다. 풀뿌리 민중 출신이면서 전쟁에 관해서는 지배계급의 가치 체계를 받아들였다. 그가 이끈 여성결사대대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반해 만들어졌으나 한편으로 기존 젠더 질서의 전복을 내장한 사회적 실험이었다.

이 책은 그 모순적인 삶과 시대의 면면을 담은 기록이다. 농민, 유형자, 군인으로 살았던 한 인간의 역사이자, 1889~1918년의 러시아의 모습을 민중의 시각에서 재현한 시대사이다.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과 참혹한 전투, 역사의 크고 작은 국면이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지며,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고(진위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여성참정권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우정을 나누며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등 때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보치카료바의 모습도 흥미롭다.

우리 역사학계와 여성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은 ‘여성 군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세기 전환기 러시아의 실상, 1차대전과 러시아혁명의 격변, 러시아 민중과 병사의 모습, 러시아 여성의 위상과 페미니즘, 군대와 전쟁에 관한 1차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 책에 존재하는 오류와 왜곡, 한계를 면밀히 점검한다는 전제 위에서 말이다.

성별을 지우고 군인으로 인정받다

“내 가슴은 펄펄 끓는 전쟁이라는 솥 안에 있기를, 전쟁의 불길로 세례를 받고 전쟁의 용암에 그을리기를 갈망했다. 내 나라가 나를 불렀다.”
러시아가 1차대전에 참전하고, 전쟁의 풍문이 보치카료바가 두 번째 남편과 함께 유형 생활을 하던 시베리아에까지 당도한다. 1915년, 스물여섯 살의 보치카료바는 참전을 결심한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동포에 대한 연민과 애국심이 계기였다고 말하지만, 끊어낼 길 없는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성의 입대가 금지된 상황에서 차르에게 탄원해 특별 허가를 받아낸 보치카료바는 최전선에 배치된다.

남성의 특권이라고 여겨지던 전쟁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전우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는 병사들 옆에서 보치카료바는 성별을 지우고 존재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 능력을 입증해 보이고, 척추 부상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등의 부상을 이겨내고, 무인지대에 방치된 부상병 50여 명을 밤새 구해내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동등한 군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남성만의 배타적 공간이던 군대에 뛰어들어 여성의 영역을 넓혀낸 것이다. 훈장 수훈과 진급, 유명세도 뒤따른다.

여성 전투부대라는 실험, 젠더 질서를 수호하거나 넘어서거나

“저 같은 여자 300명을 편성해서 그 부대가 본보기가 되어 남자들을 전투로 이끌면 어떻겠습니까?”
1917년 5월, 보치카료바는 개별 여성 군인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 세계 최초의 여성 전투부대인 제1러시아 여성결사대대의 창설을 주도하고 지휘관이 된 것이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부대는 국가적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페미니스트들의 격려를 받고 세계적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이 여성결사대대는 보치카료바의 삶만큼이나 모순과 역설을 안고 있었다. 애초에 “남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설립된 부대였다. 2월혁명으로 전제정이 무너진 뒤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하자, 여성을 본보기로 삼아, 여성을 보호하는 존재인 남성 병사의 전투 의욕을 고취한다는 구상이었다. 며칠 만에 20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혹독한 훈련 끝에 300명으로 추려진 결사대대는 전선에 투입되어 독일군 참호를 점령하는 성과를 올리지만, 당시 와해되고 있던 군대의 상황과 맞물려 활약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10월혁명 이후 해체되고 만다.

여성 전투부대라는 혁신적 외양으로 전통적인 젠더 질서에 복무하려 한 실험은 실패로 끝난 셈이다. 러시아 여성결사대대는 태생적으로 이율배반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부대 규모나 활동 기간으로 보아 대표성을 띠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전선의 흐름을 뒤집거나 여성의 위상을 바꾸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부대는 여성에게 금지되었던 영역으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여성들의 욕망이 분출하는 장이었고,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군사 참여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에 볼셰비키 정부가 여성의 군복무를 허용함으로써 적어도 원칙적으로 여성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러시아 내전기와 제2차 세계대전기에 여성 군인의 참여가 급증한 데는 결사대대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혁명은 군대와 병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선언문과 연설을 들으며 나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가 전보다 훨씬 더 힘을 내서 전선을 지키는 것이라고 헤아렸다. 우리로서는 이것이 혁명의 의미가 아닐까?”
‘전쟁’(2부)의 기록 뒤에는 ‘혁명’(3부)과 ‘테러’(4부) 이야기가 이어진다. 보치카료바는 일반 병사의 시각에서, 또 전쟁 영웅으로 주목받으며 군 수뇌부와 교류한 경험 위에서 1차대전의 실상과 혁명의 명암을 전한다. 이 책이 전선과 참호에 있던 러시아군 병사들의 생각과 감정을, 그리고 2월혁명과 10월혁명이 군에 미친 영향을 증언하는 사료로서 가치를 지니는 맥락이 여기 있다.

2월혁명 후 러시아 군대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규율과 복종을 대신한다. 병사들이 병사위원회를 선출해서 군대를 스스로 통제하고, “실질적인 휴전 상태”에서 독일군과 ‘친교 행위’를 벌인다. 여성결사대대가 독일군 참호를 점령한 뒤 증원군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군단 전체가 전진할지 말지를 ‘토론’하다 역공을 받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혁명기에도 군인의 과업은 나라 지키기이며 독일군을 몰아내야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은 보치카료바는 동료 병사들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여기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10월혁명 이후에는 더더욱, 전쟁 종식과 평화를 원하는 병사들에게 보치카료바는 ‘구체제’와 ‘지배계급’의 일원으로 비쳤고, 여성결사대대는 결국 해체된다.

야시카는 왜 볼셰비키를 미워했을까
자서전의 오류를 딛고 진실을 추출하라


“이 전쟁에서 우리가 숱한 목숨을 잃었는데, 싸우지 않고 모든 것을 내주려고 하다니! 당신들은 나라를 망칠 거요!”
결사대대 해체 후 보치카료바가 마주한 현실은 어두웠다. 볼셰비키 정부 아래서 제국군 장교들이 체포되고, 테러가 벌어지고 민중은 고통받았다. 이 책에는 자서전에서 나타나기 쉬운 오류와 혼동, 과장과 누락이 존재하는데, 옮긴이에 따르면, 보치카료바가 사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부분이 볼셰비키를 서술하는 대목이다. 보치카료바는 10월혁명 직후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 독일의 침략성을 경고했다고 말하지만, 이 진술을 뒷받침하는 다른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1918년 1월에 “적색테러가 페트로그라드에서 판을 쳤다. 살해되고 린치당한 장교들의 주검이 강에 가득했다”는 회고도 부정확하다. 여러 사료를 참고할 때 “적어도 1918년 초엽 페트로그라드의 적색테러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오류와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때 이 책의 진실이 더 빛날 것이다.

보치카료바는 대다수 일반 병사와 달리 혁명 이후에도 전쟁을 지속하려고 애쓰며, ‘비당파’를 자처하지만 볼셰비키를 적대시했다. 옮긴이 류한수 교수는 보치카료바에게 군대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짚어 그의 심리를 이해해보려 한다. 신산한 삶에 시달렸던 그에게 군대는 자기를 인정해준 유일한 세계였으며, 폭력을 일삼았던 민중 공동체 안의 남성들과 달리 군대 엘리트 계층은 정중한 교양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고, 전쟁이라는 쟁점에서 장교들 편에 서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병사위원회를 내세워 규율을 흔들고 평화를 모색한 볼셰비키는 그에게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린 주범이었다. 그는 강화조약이 아니라 독일군에 승리를 거둬 평화를 얻어내고 싶었다. ‘야시카’가 서른한 살에 생을 마감하게 된 이유이다. 전쟁과 혁명에 대한 그의 서술을, 모순투성이였던 그의 삶을 이런 맥락에서 엄정하게 읽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