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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2023) -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

동방박사님 2024. 5.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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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때론 ‘정의’라는 이름으로 때론 ‘평등’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공정’이라는 말보다는 ‘불공정’이라는 용어로 더 많이 쓰이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공정함’의 진정한 의미!
오늘날 왜 우리는 불공정을 그토록 강하게 느끼는가?


현대인의 삶에서 경쟁과 분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싸움이 잦은 시대, 그만큼 협동과 협의와 멀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거나 맞춰 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의 이익, 혹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큰소리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연 그러한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가? 어쩌면 현대인들은 위험할 정도로 ‘경쟁과 협력의 균형’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사실 공정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불공정한 대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즉 공정한 태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각자의 본능적인 부분을 존중하는 것이자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방법인 셈이다.

이 책은 공정성의 원칙은 무엇인지, 신경학과 심리학에서는 공정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인류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공정’에 대해 심도 있게 파헤쳐 본다.

또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스포츠, 비즈니스, 인간관계에서, 정부 그리고 정치에서, 그 외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공정성은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또 문제점은 무엇인지, 왜 오늘날 모든 문제의 궁극의 질문이자 답변으로서 ‘공정성’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페어플레이’가 삶의 궁극적 해답인지를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42조와 궁극적인 해답

PART 1. 왜 공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01.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공정성의 역할: 경쟁과 협력의 조화|공정성에 무슨 일이 있었나?|공정성에 대한 많은 연구|공정성의 종말?|그리고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 이유

02. 공정성의 원칙
공정성의 진짜 의미는?|공정한 것이 정당한 것, 평등한 것, 선한 것, 중립을 지키는 것과 다른(그리고 그 이상인) 이유|왜 공정성이 중요할까?|공정성 → 신뢰 → 거래 → 문명|철학으로서의 공정성: (특히) 롤스와 맥마흔|공정성은 백인만을 위한 것인가?|불공정은 공정의 반의어일까?

03 신경학과 심리학에서의 공정성 연구
다른 종들은 공정성 개념을 인식할까?|공정성은 인간(그리고 원숭이) 뇌의 어느 부위와 관련이 있을까?|심리학자들이 했던 공정성 실험과 게임들|우리는 공정한 결과를 추구하고 불공정한 결과를 거부하도록 타고나는가?

04. 역사에서의 공정성
역사와 경고|최초의 거래가 이뤄졌을 때 고대인들에게는 공정성 개념이 있었을까?|최초의 정착지 주민들은 안전과 자유 간에 공정한 거래를 했을까?|공정성은 초기 문명과 고대 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고대의 공정성과 노예 제도|다른 문명에서 균형 잡힌 공동체 이익이라는 개념의 발달|마그나카르타와 왕국의 공동체|수평파, 로크, 그리고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공정성과 제국 - 공정성은 백인만을 위한 것일까?

05. 공정성은 영어권 국가의 산물일까? (스포일러 주의: 아니다)
영국은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가?|언어학적 논쟁|영국 역사의 특색|두루뭉술하게 회복하기

PART 2. 오늘날 공정성은 어떤 모습일까?

06. 스포츠(그리고 그 다른 형태인 전쟁)에서의 공정성
페어플레이에 기반한 스포츠 규정|피파의 페어플레이 감각|평평한 운동장의 진짜 의미|스포츠는 어떻게 협력과 경쟁의 조화를 가르쳤는가?|전쟁에도 공정성 의식이 있다

07. 비즈니스와 경제에서의 공정성
비즈니스 언어 - 신탁, 채권, 신용, 교환|우리 조상들 사이에서의 신뢰와 거래|공정한 교환은 강탈이 아니다|금융 위기가 어떻게 공정성을 망가뜨렸는가?|자본주의를 공정하게 말하자면

08. 법과 과세에서의 공정성
공정 사용, 공정 거래와 합당한 노력 - 민법|정의로서의 공정성 - 형법|공정한 몫을 지불하기 - 과세

09. 의사소통과 기술에서의 공정성
두려움이나 편애 없이|미디어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공정한 평가|영국 언론의 자업자득|공정성은 어떻게 BBC를 죽였는가?|할 수 있는가? vs 해야 하는가?

10. 정치와 정부에서의 공정성
정치는 공정성을 버렸나?|공정성, 공리주의, 핵 대재앙의 우스운 측면|공정성과 전체주의|공정성과 민주주의|공정성은 정치를 버렸나?|공정성과 바이러스

11. 인간관계에서의 공정성
공정성과 타인|사랑, 증오, 성별에서의 공정성|신앙에서의 공정성|삶에 대한 우리의 기대에서의 공정성|재키 로빈슨과 로이 프랜시스

12. 페어플레이가 궁극적 질문의 해답일까?
공정한 세상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후기, 그리고 더 읽을거리
감사의 글
후주
 

저자 소개

저 : 벤 펜턴 (Ben Fenton)
3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한 영국의 언론인으로, 8천 편에 달하는 기사를 썼다. 〈옥스퍼드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고 20년 동안 40여 개국을 오가면서 전쟁, 재난, 승리, 폭동, 9·11, 올림픽, 월드컵 등에 관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취재했다. 이후 워싱턴 특파원에 임명되어 언론 분야의 전문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수석 기자가 되었다. 2007년에는 〈파이낸셜 타임스〉로 옮겨 수석 ...
 
역 : 박정은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으로 일하다가 책과 번역이 좋아 출판 번역가로 전향했다. 글밥 아카데미 출판 번역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성적인 프리랜서 괜찮을까요?》 《리프레이밍》 《무너지지 않는 아이》 《리더십 리부트》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사실 공정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정의를 내리려고 하다가 본질을 놓칠 위험이 있다. 나는 공정성이 우리 뇌에 새겨져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쳤다는 사실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정성은 사실상 감정으로, 만족, 행복감, 안심, 분노,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 감정은 느끼기 쉽고, 설명하기도 아주 어려운 건 아니지만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정성은 또한 내재하는 것이다. 경기와 거래와 통치에서의 공정성은 참가자들, 승자와 패자가 모두 선천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선천적으로 아는 것은 보통 쉽게 정의할 수 없다.
--- p.44, 「공정성의 진짜 의미는?」 중에서

좋든 나쁘든,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반응하기 위해 뇌에 존재하는 것은 논리 회로가 아니라 스위치이다.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순간적으로 느낄 뿐이다. 불공정성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 수천만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해왔고, 더 본능적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이 불공정성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목숨뿐 아니라 번식할 기회도 잃을 수 있었다. 우리는 공정성을 반기는 게 좀 더 최근의 본능임을 안다. 더 하등 종들에서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101, 「우리는 공정한 결과를 추구하고 불공정한 결과를 거부하도록 타고나는가?」 중에서

평평한 운동장은 물론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다. 경기가 공정해지려면 양 팀이 같은 규칙과 조건에서 뛰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축구나 하키, 헐링, 라크로스와 같은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두 팀이 자리를 바꾼다는 규칙이 있으면 운동장이 평평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규칙이다.
--- p.212~213, 「평평한 운동장의 진짜 의미」 중에서

우리는 정치인과 기업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또 스포츠 영웅과 악당, 좋아하는 가수와 배우, 가장 경멸하는 유튜버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들은 우리의 먼 조상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소수의 사람들을 (친밀하고 사적인 접촉을 통해) 알게 된 것처럼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그들의 말, 행동, 창작물을 우리가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보도하고 요약해야 한다. 중개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없다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이 그들의 유권자, 고객, 팬에게 하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그들이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지, 진짜 의도와 행동을 공정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어떤 방법으로 알 수 있을까?
--- p.281~282, 「미디어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공정한 평가」 중에서

부모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아이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의 내용은 무시할 수 있지만, ‘왜 내 말을 안 들어줘요?’ 같은 종류의 말이 대화에서 나온다면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있기로 하든 한 하늘 아래 있기로 하든, 사회 계약을 구성할 때 협력과 경쟁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기로 약속한다. 정치 기술은 사람들이 느끼는 균형이 공정한지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산하기 위해서는 들어야 한다.
- 312쪽, 「정치는 공정성을 버렸나?」 중에서

공정성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인간 존재라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기계의 다른 톱니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아는 건 우리의 행동을 형성하는 데 불가피한 일이다. 공정성은 우리를 위해 중재에 나선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 진보의 기계에 윤활유를 바르고, 다른 인간과 싸워야 할 필요성과 협력하려는 본능 사이의 균형을 잡도록 한다. 공정성은 우리에게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를 가르치고, 권력뿐만 아니라 책임을 가르친다.
--- p.373, 「공정한 세상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정말 ‘공정함’이 무엇인지 알고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정함의 반대말은 정말 ‘불공정함’이 맞는가?


오늘날 우리는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공정한 경기를 원한다’, ‘결과와 과정 모두 공정해야 한다’와 같은 말을 자주 하며, 최근에는 현실 속에서도 미디어에서도 그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또한 ‘공정성’에 대해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는 우리는 정작 공정성이 무엇인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막연히 드는 ‘불쾌한 감정’을 불공정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욱 문제다. 공정성에 감정이 깊게 개입되어 있다면 누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감정’을 이용해 손쉽게 자신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정’의 문제에 대해 오랜 세월 천착해 온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를 통해 우리가 늘상 사용하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공정의 개념에 대해, 또 우리 시대에 공정이 왜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인문, 역사, 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짚어본다.

공정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으로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다. 사회를 풍요롭게 하면 공정한 몫으로 보상받아야 하고 사회에 피해를 주면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 자신이 누리는 부를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 그 부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안정된 사회가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 계약이다. 협상과 합의의 정도가 천차만별로 해석될 수 있지만, 공정성의 중심인 ‘절차’가 악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유연성과 포용력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제는 절차가 악용되고 있고 자본주의는 공정성이라는 토대를 잃었다.
- p.35 「공정성의 종말?」 중에서

저자는 인간들이 겪고 있는 무의식적 절차가 ‘경쟁과 협력 사이의 균형’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공정’이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인류의 시작부터 오늘날로 이어지는 역사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차근차근 논의를 전개해 간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경쟁’과 ‘협력’은 현생 인류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따라서 역사 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과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지만 그에 앞서 우리에게는 ‘공정함’이라는 공동의 합의가 있기에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공정함을 일찍 채택했던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집단의 규모를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공정성의 문제들이 파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공정함은 때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 탄탄한 자료와 배경지식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이슈를 취재하며 40여 개국을 누빈 저널리스트로서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관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시대에 가장 적절한 책이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로서의 ‘공정’을 다시 만날 것을 추천하는 이유다.

공정성의 문제에 포퓰리즘이 쉽게 달라붙는 이유
현시대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궁극의 답변으로서의 공정성을 흥미롭게 파헤치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특히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거대한 인간 마을의 지혜로부터 이득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신 군중 심리를 제공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파벌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상호 적대감을 가지고 흥분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요즘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라는 부채질 기능 덕분에 상호 적대감이 마치 관중이 지켜보는 스포츠처럼 되어 버렸다. 깨끗하고 좋은 물이 흐를 때는 더러운 찌꺼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분열을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쉽게 격해지는 분위기를 이용해 목적을 이룬다. 지금 인터넷은 엄청난 소동들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 p.37~38 「공정성의 종말?」 중에서

저자인 벤 펜턴의 미덕은 정치적 논쟁에 버금가는 가장 민감하고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를 누구보다 침착하게 균형 있는 논지를 잃지 않으며 ‘공정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명한 저널리스트답게 최근 그 문제점이 더욱 부각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와 이것이 가져온 인류의 돌이킬 수 없는 후퇴에 대해서도 공정성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SNS가 다양해지고 전파 속도가 빨라진 요즘, 사람들은 쉽게 선동 당할 수 있고 그만큼 쉽게 격분할 수 있다. 거기에 가장 좋은 주제로 ‘공정성’이 엮이고, 일부 불순한 의도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는 소식을 전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통로지만 악용하기 좋은 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휘둘리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서양에서 공정성 훼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징후 중 하나는, 정치 세력의 정상적인 기능을 향한 분노였다. 놀랄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금융 위기와 그 후유증이 자신들의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의 ‘포퓰리스트(populist)’ 리더들은 자신이 정치인이 되었을 때, 유토피아를 가져오는 데 계속 실패하는 경우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이 ‘민중의 적’은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다양하다.
- p.324~325 「공정성과 민주주의」 중에서

수 세기 동안 인류는 역사적으로 전쟁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견제와 균형’이라고 부르는 개념들을 발달시켜 왔다. 그 결과,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와 국민 투표로 일종의 ‘리더’들을 뽑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리더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공동 사업체를 관리할 ‘권한’을 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리더들이 권한을 가지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공정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상이 만약 자신의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것들이라면, 이는 불공정의 시작이 아닐까?

국가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면, 이들이 어리석거나 파괴적인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조언하고 제지할 수도 있는 비정치적인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공정하다. 공정한 사회에서 우리는 권한을 위임할 필요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권한을 버릴 필요는 없다. 권력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대표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한 사람들과 자신들을 위해, 규범을 깨고 건물을 파괴할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통치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위임은 절대적인 위임이 아니라 미묘한 위임이어야 한다.
- p.326 「공정성과 민주주의」 중에서

그래서 저자는 강조한다. 국민 투표는 분명 장점이 있는 제도지만, 공정성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예/아니오’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에는 균형적이거나 공정한 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의사’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뉘앙스도 없다. 포퓰리스트들이 ‘잡담’을 퍼뜨리고 ‘갈라치기’를 하면서 국민을 은근슬쩍 조종하려고 하는 행동에도 공정함이 없다. 따라서 저자는, 당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이나 문제에 간단한 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공정이 사라진 시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궁극의 지침서


벤 펜턴은 책에서 공정한(fair), 공정성(fairness)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fair’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이라는 주제에 관한 많은 책을 살펴보면, 작가들이 공정이라는 말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의’, ‘공평’, ‘형평성’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공정은 오로지 공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바꾸거나 대체할 수 없는 단어이자 개념이다. 물론 공정을 한 마디로 딱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정의해 보려고 노력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것의 의미는 상호 간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그리고 같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다른 집단에 그들이 틀렸다고(또는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공정성을 고취하는 방법은 불공정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를 가장 달라지게 하는 행동은 언쟁 대신 이념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 p.345 「공정성과 타인」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공통된 의견에 도달하기 위해 ‘듣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쪽의 주장만 내세워서 될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힘과 권력을 휘둘러 강압적으로 상대를 누르는 일은 결국 불공정에 대한 반발로 다시 무너지게 될 뿐이다. 따라서 벤 펜턴은 우리가 타고난 감각인 ‘공정성’을 이용하면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몇 차례로 그칠 일이 아니라, 무엇이 공정하고 공정하지 않은지, 더 나은 사회를 찾기 위한 균형을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공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의 1부에서는 공정성이 어디에서 나왔고,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지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 2부에서는 스포츠, 전쟁, 소셜 미디어, 비즈니스, 세금,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공정성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당신이 공정하게 행동해 왔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도록 만들어 준다. 나아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인간관계 등 사회 전반에서 과연 공정한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페어플레이(Fair Play)’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길이며,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이다. 우리는 대체 왜 공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된다. 앞으로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이고, 또한 스스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추천평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다. 벤 펜턴은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논의되었지만 가장 잘 이해되지 않은 개념 중 하나인 공정성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고 확실한 지침을 제공한다.”
- 마크 톰프슨 (전 〈뉴욕 타임스〉CEO, 현 CNN CEO)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 즉 우리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답한다.”
- 사트남 상게라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