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문교양 (책소개)/1.인문교양

인생의 허무를 보다 (2022)

동방박사님 2024. 5. 16. 07:49
728x90

책소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이미지 확장판!!
초판 한정 김영민 저자의 사인 및
저자가 뽑은 엽서 5종 수록!!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자매편이자 이미지 확장판.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동일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되, 기존 책보다 두 배 이상 커다란 판형에 다섯 배 이상의 도판을 수록하고 있다. 각 도판에는 저자가 왜 이 그림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설명글이 친절하게 덧붙어 있다.

특히 부록으로 실린 소식의 「적벽부」에 대한 저자의 해설은 소식의 자연관, 정치관, 인생관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가득할 뿐 아니라 그의 ‘허무’ 에세이가 어떻게 「적벽부」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인류가 축적해온 문화 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본 저자가 메마른 문화의 사막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 ‘문화적 양서류’를 위해 선물처럼 제공한 안내서이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허무를 직면하다

1. 허무의 물결 속에서

봄날은 간다
─ 아름다움을 보다
허무 속에서 글을 쓰다
─ 허무 속에서 쓰다
폐허를 응시하다
─ 누가 폐허에 서 있는가
수평선을 보다
─ 구상과 추상을 넘어서
갱생을 위하여
─ 파도의 연대기

2. 부, 명예, 미모의 행방

인생은 거품이다
─ 아이도, 노인도, 영웅도, 해골도 모두 거품을 분다
죽음과 함께 춤을 추다
─ 시대마다 달리 추는 죽음의 춤
시체를 보다
─ 미인도 죽으면 썩는다
해골에게 묻는다
─ 필멸과 직면하다

3. 시간 속의 필멸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 시간의 경쟁자들
시간 속의 삶
─ 일상의 신성함을 그리다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 재즈 연주
정체성은 시간을 견디기 위한 ‘허구’다
─ 테세우스 배의 정체성을 찾아서

4. 오래 살아 신선이 된다는 것

노년을 변호하다
─ 결국 다가오는 노년
자각에 이른 치매 노인 이야기
─ 삶의 계절을 상징하는 꽃
자유인과 호구 사이에서
─ 그 자체로 존재하는 나무
신선을 보았는가
─ 신선을 보다

5. 하루하루의 나날들

시시포스 신화는 계속된다
─ 노역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삶의 쳇바퀴를 사랑하기 위하여
─ 일상의 예술성을 찾아서
구름을 본다는 것은
─ 구름과의 만남
느린 것이 삶의 레시피다
─ 천천히 흐르는 세계

6. 관점의 문제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법
─ 넓은 시야를 찾아서
모사를 넘어서
─ 모사와 창작의 경계에서
산속에서는 산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 중국의 여산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 풍자화 속에 등장하는 여우와 신 포도

7. 허무와 정치

경쟁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적벽과 파도
좋은 의도의 정치
─ 포르투나와 운명의 수레바퀴
정치도 연애처럼
─ 시간의 풍화
대성당을 가슴에 품다
─ 성당을 보다

8. 인생을 즐긴다는 것

삶을 유희하다
─ 유희로서의 삶
달콤함의 레시피
─ 달콤함을 그리다
인생의 디저트를 즐기는 법
─ 달콤함의 시각적 즐거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향하여
─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가

에필로그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부록
소식의 「적벽부」 (번역문|원문|해설)
─ 송나라와 명나라의 적벽도 세계
도판 목록 및 인용문 출처
 

저자 소개 

저 : 김영민
 
세상의 모든 것을 연구나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오며 세상에 대한 관점을 촌철살인의 필력으로 풀어내 온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산문과 연구서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관조하고 사유하는 글을 써오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2018년 한국인의 명절을 고찰하며 쓴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다양한 질문을 통해 본질에 닿으려는 시도를 ...

책 속으로

인간은 문화적 양서류다. 인간은 메마른 문화의 사막에서는 살 수 없다. 앞서 살았던 이들이 축적한 문화 속을 유영하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물거품 같은 삶 속에서 문화라는 또 다른 물거품을 만들고, 그 물거품들이 모여 마침내 깊고 넓은 문화의 바다가 된다. 인간이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문화의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허무한 삶을 그나마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깊고 넓은 문화 속에서 유영하기 때문이다. (중략)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공간적 제약 때문에 채 싣지 못했던 도판과 해설을 마음껏 실으면서 바다로 돌아가는 양서류 인간처럼 희열을 느꼈다. 천천히 삶의 욕조에 물을 채우는 기분으로 이 책에 들어갈 그림을 고르고 텍스트를 선정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좀 더 풍부한 상징과 기호와 이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기원하면서.
---「책을 펴내며」 중에서

제작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이 판화의 주제는 ‘덧없음’이다. 왼쪽에 있는 모래시계를 보라, 시간 속의 존재들은 아이가 불고 있는 거품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아이가 끌어안고 있는 해골처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화병 속의 꽃조차 예외가 아니다. 다른 시간 속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저 꽃도 시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이 판화의 왼쪽 배경에는 다름 아닌 무덤에서 부활하는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부활한 예수는 시간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존재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모든 것이 덧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존재들만 덧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구원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보다」 중에서

이것은 추상인가, 구상인가?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그림을 보여주자 총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손도끼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유명 가수의 가발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머리 부분만” 그렸다고 농담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그림을 일종의 구상화로 본 것이다. 반면, 이 그림을 일종의 추상화로 보며 감탄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그림이 추상이냐 구상이냐 여부도 상당 부분 보는 자의 눈에 달린 것이다.
---「구상과 추상을 넘어서」 중에서

앞에서 살펴본 한스 발둥 그린의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과 함께 보면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어린아이와 젊은 여성, 늙은 여성, 해골이 다시 한번 등장한다. 맨 오른쪽에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를 들고 서 있다. 가운데 있는 늙은 여성은 젊은 여성을 죽음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젊은 여성은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그림 아래쪽 배경에는 악마가 사람들을 고문하는 지옥이 그려져 있고, 위쪽 배경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승천하고 있다. 지혜의 상징인 올빼미가 심각한 눈으로 관람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모두 늙어 죽기 마련이니 지옥에 떨어지지 말고, 천국의 길을 가라고.
---「결국 다가오는 노년」 중에서

사람이 그려진 그림에서는 보통 사람이 주인공이다. 에런 모스의 그림에서는 다르다. 그가 그린 것은 구름의 세계이고, 그 아래를 지나는 인간과 동물은 배경에 불과하다. 만약 구름이 초현실을 상징한다면, 초현실의 세계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셈이다. 화가는 관객이 자기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잠시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잊고 자신이 창조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바란다.
---「구름과의 만남」 중에서

엄격히 말하면, 모사와 창작의 분명한 경계는 없다. 아무리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모사하고자 해도, 모사 과정에서 예술적 자아의 흔적이 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사와 창작의 진정한 차이는 창작 여부가 아니라, 창작하는 과정에서 견지한 지향점이다. 최대한 자아의 표현을 절제하고 외부 세계의 경험에 충실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외부 세계를 자아 표현의 재료로서 이용하는가, 혹은 자아와 세계가 만났을 때 생기는 마찰음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지우는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모사와 창작의 경계에서」 중에서

성당 혹은 교회는 그 압도적인 외관뿐 아니라 정교한 내부 역시 지속적으로 재현 대상이 되어왔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에마뉘얼 더 비터가 그린 암스테르담의 ‘신교회(the Nieuwe Kerk)’가 좋은 예이다. 초월을 지향하는 압도적이고 정교한 내부 속에 다양한 필멸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림 왼쪽에는 인부가 필멸자를 위해 무덤을 파고 있다. 특정 개인은 필멸하지만, 인간은 또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 점을 확인이라도 하듯, 커다란 기둥 뒤쪽에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가 보인다.
---「성당을 보다」 중에서

소식이 구상하는 이상 세계는, 국가가 지방사회의 자율성을 상당 부분 보장하고, 그런 자율적 영역은 개인의 창의적 해결과 즐거움의 대상으로 맡겨두는 곳이다. 정부는 국가 중심의 획일적 질서를 강요하지 말고, 정부에 포섭되지 않는 삶의 다양한 측면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개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관점을 운용하며 자신의 삶을 창의적으로 구성하고 음미한다. 그게 각자 할 일이다. 이런 비전 속에서는, 삶의 문제들이 정부의 일률적 해결책에 의존하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미시적이고, 창의적이고, 맥락 의존적인 해결책에 의존한다.
---「소식의 「적벽부」 해설」 중에서

출판사 리뷰

눈으로 즐기는 맛과 몰입감을 한층 업그레이드한『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이미지 확장판!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자매편이자 이미지 확장판인 『인생의 허무를 보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동일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기존 책보다 두 배 이상 큰 판형에 관련 이미지를 다섯 배 이상 수록한 확장판이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회화와 벽화, 판화, 벽지, 도자기, 그림책, 영화, 설치작품 등 허무 이미지가 다양하게 실려 있지만, 지면상의 문제로 못다 실은 이미지가 많았다. 『인생의 허무를 보다』는 저자 김영민이 수집한 수많은 허무 이미지들을 새로운 판본으로 선보인 것으로, 텍스트와 더불어 이미지를 통해 허무를 직관하고 오롯이 응시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총 316컷의 이미지를 커다란 판형에 시원하게 배치하여 눈으로 즐기는 맛과 몰입감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수록된 이미지마다 저자의 해설을 덧붙이고 있어, 저자가 각 글마다 왜 이 그림을 수록했는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해갈을 제공한다.

깊고 넓은 문화의 바다를 유영하는
‘문화적 양서류’를 위한 안내서


왜 굳이 이미지 확장판을 출간한 것인가에 대해 저자 김영민은 인간은 ‘문화적 양서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메마른 문화의 사막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앞선 이들이 축적해온 문화 속을 유영하면서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며, 인간이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곧 깊고 넓은 문화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문화적 양서류’라 표현한다.

저자는 앞선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채 싣지 못했던 도판과 해설을 이 책에 마음껏 실으면서 바다로 돌아가는 양서류 인간처럼 희열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풍부한 상징과 기호와 이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기를 기원하면서 “천천히 삶의 욕조에 물을 채우는 기분”으로 그림과 텍스트를 고르고 선정했다. 이렇게 탄생한 『인생의 허무를 보다』는 ‘문화적 양서류’인 우리를 위한 저자 김영민의 특별한 선물이자 친절한 안내서라 하겠다.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가득한
소식의 「적벽부」 해설


이 책에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집필하는 데 모티프가 되었던 북송시대 문장가 소식의 「적벽부」의 원문과 번역문뿐 아니라 특별히 저자의 상세하고 전문적인 해설을 싣고 있다. 「적벽부」를 통해 소식의 자연관, 정치관, 인생관을 꿰뚫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가득한 해설은 단연 이 책의 백미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소식과 「적벽부」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저자 김영민이 「적벽부」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집필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8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문이 ‘「적벽부」에 대한 유연한 주석’으로 새롭게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오랜 세월 수많은 화가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탄생한 ‘적벽도(赤壁圖)’의 세계를 접하게 됨으로써, 이 그림들이 단순한 풍경화 또는 산수화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을 마주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동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식의 「적벽부」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관련 그림들은 『인생의 허무를 보다』를 소장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