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2.세계문화

게토의 저항자들 (2023) - 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 투쟁기

동방박사님 2024. 6. 12. 14:26
728x90

책소개

“어떤 경계선도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살아남는 것조차 저항이자 투쟁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무차별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하면서, 나치 점령지인 폴란드의 유대인들에게는 죽음 아니면 수용소행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닥쳤다. 그때, 탈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목숨 건 저항을 선택한 이들 중에는 10~20대의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두컴컴한 벙커에 숨어 무장 투쟁을 전개하거나 테러에 나서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저항운동의 신경 중추’인 ‘연락책’이었다.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유대인 신분을 숨기기가 비교적 쉬웠던 여성들은 아리아인으로 위장한 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저항 조직들을 연결하고, 빛이 사라진 밤 숲을 헤매며 밀수업자를 만나 무기를 들여왔다.

그들의 항전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같은 유대 설화들과 달리 약자의 통쾌한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절망에 빠져 있던 유대인들에게 저항의 의지를 불러일으켰고 팔레스타인에까지 알려져 정신적 상징이 되었다. 무자비하고 거대한 적에 맞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면서도 대담한 용기, 끈끈한 우정,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준 그들의 필사적 투쟁은 그 절박함과 처절함만큼 숭고하게 다가온다.

목차

옮긴이의 말
서론: 전쟁 도끼
등장인물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지도

프롤로그: 플래시 포워드─방어인가, 구조인가?

1부 게토의 소녀들

1 | 폴-린
2 | 불 속에서 불 속으로
3 | 여성들, 투쟁 거점을 구축하다
4 | 또 하나의 아침을 맞기 위해: 게토에서의 테러
5 | 바르샤바 게토: 교육과 글자
6 | 정신교육에서 유혈투쟁으로:유대인투쟁위원회를 조직하다
7 | 방랑의 나날들: 노숙자에서 가사도우미로
8 |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리다
9 | 검은 까마귀들
10 | 역사가 흘러갈 세 개의 길: 크라쿠프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11 | 1943년, 새해: 바르샤바에서 발생한 작은 봉기

2부 악마인가, 신인가

12 | 투쟁 준비
13 | 소녀 연락책
14 | 게슈타포에 잠입하다
15 | 바르샤바 게토 봉기
16 | 땋은 머리의 강도들
17 | 무기, 무기, 무기
18 | 교수대
19 | 숲속으로 간 프리덤:파르티잔
20 | 멜리나스, 돈, 그리고 구조
21 | 피로 물든 꽃
22 | 자그웽비에의 예루살렘이 불타고 있다

3부 “어떤 경계선도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23 | 벙커, 그리고 그 너머
24 | 게슈타포의 감시망
25 | 뻐꾸기
26 | 자매들이여, 복수하라!
27 | 한낮의 빛
28 | 대탈출
29 | “여행이 끝나간다고 말하지 마라”

4부 감정적 유산

30 | 삶의 공포
31 | 잊힌 힘

에필로그: 실종된 유대인

후기: 이 연구에 대해서
감사의 말

저자 소개 

저 : 주디 버탤리언 (Judy Batalion)
폴란드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으로 영어, 프랑스어, 이디시어, 히브리어에 능통하다. 하버드대학에서 과학사로 학사학위, 런던대학의 코톨드 예술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큐레이터, 연구원, 작가 등 다양한 경력을 바탕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에 기고해왔다. 폴란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 그리고 엄마, 자신, 큰딸까지 모녀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하얀 벽(White Walls)》...
 
역 : 이진모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보훔 루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대학 유럽 비교사 연구소 및 포츠담 현대사 연구 센터 방문 교수, 한국독일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과 ‘평범한’ 독일인들의 역할」과 「독일의 과거와 한국의 현재 사이의 진지한 대화」, 「두 개의 전후(戰後): 서독과 ...

책 속으로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폴란드 여성 유대인들의 투쟁 이야기가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서사 안에서,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은 다각적인 분석 틀과 함께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조명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여전히 그 어느 주제보다 더 신중하고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역사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그리고 각 진영 속의 무수한 회색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근대의 비극이다.
---「옮긴이의 말, 15쪽」중에서

나는 수년간 유대인 학교에 다녔지만,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의 일상적이면서 비범한 전투 활동에 관한 세세한 기록은 정말 놀라웠다. 나는 얼마나 많은 유대인 여성들이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었으며,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서론, 20-21쪽」중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을까? 왜 나는 모든 형태의 저항에 가담하고 때로는 그 저항을 주도했던 수백 수천의 유대인 여성들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단 말인가?
---「서론, 26쪽」중에서

지비아와 그녀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계획한 것처럼 나치가 건물에 진입하면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뒤에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지난 반년 동안 독일인들은 조직적으로 바르샤바의 유대인들을 살해 해왔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한 발의 총도 발사하지 않았다. 집결 광장에 강제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외침을 제외하면 절대적인 침묵이 지배했다. 무기를 움켜쥐고 초조하게 서서 독일군과의 대결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급격한 흥분과 동시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훗날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내면에 소용돌이쳤던 혼란은 마치 “내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 감정의 결산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녀는 친구들을 다시는 볼 수 없으며, 알리야, 즉 팔레스타인 이주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인 이츠하크 카츠넬손이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 “우리의 무장투쟁은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줄 겁니다. (…)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11. 1943년, 새해 : 바르샤바에서 발생한 작은 봉기, 230쪽」중에서

카샤리옷은 신분증, 배경, 목적, 머리스타일, 이름까지 모두 가짜였다. 이 모든 것들 못지않게 중요한 가짜 미소도 지을 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슬픈 눈을 한 채로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미소를 만들어 냈다. 특히 연락책은 크게 웃고, 많이 웃도록 훈련받았다. 그들은 고개를 들고, 술을 마시고, 아무 걱정도 없는 듯 보여야 했다. 또한 부모와 형제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된 적이 없으며, 굶주리고 있지도 않으며, 잼 항아리에 총알을 숨기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하게 행동해야 했다. 심지어 그들은 기차 안에서 다른 승객들과 대화하면서 반유대주의적인 주제가 나와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 구스타에게는 게토 바깥세상의 모든 순간이 공포였다. “철조망 바깥의모든 발걸음은 마치 우박처럼 쏟아지는 총알 속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 모든 거리는 무성한 밀림 같아서 마체테를 휘둘러 장애물을 제거하듯 나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연락책 여성들은 기꺼이 그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레니아도 마찬가지였다.
---「13. 소녀 연락책, 266-267쪽」중에서

지비아는 바르샤바 게토의 투사들이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어떻게 대항했는지 국제사회에 알릴 사람들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폴란드를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프룸카와 한체에게 편지를 보내 폴란드를 떠나서 이곳의 저항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으라고 요청했다. 구조 계획은 전혀 없었으며, 아무도 최후의 탈출로나 마지막으로 은신할 벙커를 준비하지 않았다. ZOB는 전투 중 발생할 사상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벙커’만 준비했다. 그들은 이제 전투가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다.
---「15. 바르샤바 게토 봉기 289-290쪽」중에서

그녀는 저주받은 도시를 떠나 넓은 숲지대에 다가갔다. 한낮의 햇빛이 다시 황혼 속으로 사라졌다. 찬란한 여름밤이었다. 달빛이 그녀를 비췄고, 별은 그녀의 눈에서 반짝였다. 레니아는 부모, 형제, 동지들에 대한 환영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옆에 있는 것만 같았고, 그들의 얼굴은 모두 슬프고 일그러지고 변해 있었다. 그들 모두가 겪은 고통은 그들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긴 상태였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껴안고 싶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환영은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허깨비들은 영화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화면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레니아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았다. “내가 누구에게 그 많은 짐을 지웠을까?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왜 이 모든 고통이 내게 왔을까?”
---「22. 자그웽비에의 예루살렘이 불타고 있다 405쪽」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는 수년간 유대인 학교에 다녔지만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여성들의 일상적이면서 비범한 전투 활동에 관한 세세한 기록은 정말 놀라웠지만, 나는 얼마나 많은 유대인 여성들이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었으며,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을까? 왜 나는 모든 형태의 저항에 가담하고 때로는 그 저항을 주도했던 수백 수천의 유대인 여성들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단 말인가?” ― 〈서론〉에서

왜 이 여성 투사들의 저항사는 감춰지고 왜곡되었는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으로서 유대인 여성사에 관심이 있던 주디 버탤리언은 2007년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우연히 1946년 출간된 이디시어 책 《게토의 여자들》을 발견했다. 한나 세네시와 같은 용맹한 유대인 여성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펼쳐본 그 책에는 무장투쟁, 첩보활동, 시설 폭파, 사보타주까지 유대인 출신인 본인조차 들어본 적 없었던 젊은 폴란드 여성 유대인들의 드라마틱한 저항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온몸에 전율을 느낀 그녀는 이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곧 이런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놀라운 투쟁 이야기를 나는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을까?”

버탤리언의 탐구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 투쟁사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찾고 그들의 업적을 알리고자 『게토의 저항자들』을 펴냈다. 1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취재, 당사자들의 회고록, 수백 개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했다. 당시 연락책으로 활약한 ‘레니아 쿠키엘카’를 중심으로 폴란드 유대인 여성들이 나치에 맞서 싸우게 되는 계기부터 처절한 투쟁과정, 그리고 종전 후의 삶까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 덕분에 그동안 잊혔던 폴란드 유대인 여성 투사들의 이름, 영웅적인 저항의 역사뿐 아니라 종전 후 그들이 겪은 고통의 유산이 세상에 되살아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그동안 ‘순한 양’으로 여겨졌던 유대인을 향한 대중의 편견을 완전히 뒤집었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자극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유대인도서상, 캐나다 유대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무장투쟁부터 ‘저항운동의 신경 중추’ 연락책까지
여성이었기에 가능했던 활약상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1940년대 본격적으로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가족과 이웃이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비극적 현실은 폴란드 유대인 여성들을 레지스탕스 투사로 변모시켰다. 그들은 주로 전간기부터 폴란드에서 유대인 청소년 그룹에 가입하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구성원이었으며, 대개 젊었고 10대도 많았다. 처음부터 청소년 그룹에 소속되어 주축으로 활약했던 이들도 있는가 하면, 가족을 모두 잃고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을 선택한 여성들도 있었다.

버탤리언이 전하는 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의 세계는 매우 변화무쌍하다. 그들은 게토의 어두컴컴한 벙커에 숨어 나치에 맞서기 위한 수단들을 모색했다. 무장투쟁부터 지하소식지 발간과 저항계획 수립, 협상, 위장, 거짓말, 은신, 보호, 급식소 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연락책(카샤리옷)’이었다. 유대인 여성들은 남성들이 갖추지 못한 위장 능력, 즉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장점이 있어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가 용이했다. 그들은 아리아인으로 위장한 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으며 저항조직들을 연결하고, 빛이 사라진 밤 숲을 헤매며 밀수업자를 만나 무기를 들여오는 등 “저항운동의 신경 중추”가 되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마치 첩보극의 한 장면처럼 돈으로 나치 경비병을 매수하고, 빵 덩어리 속에 권총을 숨기고, 나치를 유혹하거나 술로 매수하고, 총으로 쏘아 적을 죽임으로써 고비를 넘기며 임무를 수행했다.

살아남는 것마저 저항이었던 이들
절망적이었기에 더욱 숭고한 그들의 용기


『게토의 저항자들』에서 소개되는 레지스탕스 투쟁사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자신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알고도 결연히 싸움에 나섰기 때문이다. 나치라는 무자비하고 거대한 적에 맞서 싸워 소수의 유대인이 승리를 거두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들의 저항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같은 유대 설화와는 달리 통쾌한 승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 등에서 성공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그들은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다수는 게슈타포 감옥과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

거대한 적의 존재만큼이나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위협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이었다. 나치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지인, 이웃, 낯선 사람들을 항상 경계해야 했다. 심지어 동포이지만 나치에 가담한 일부 유대인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했다. 게토 밖을 넘나들었던 연락책들은 폴란드 사회에 만연한 반유대주의와 항상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여성 레지스탕스들은 악전고투를 거듭하면서도 대담한 용기, 끈끈한 우정,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주며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갔다. 가족과 친구, 남편과 애인을 잃은 사무치는 고통, 그리고 곳곳에 도사리는 폭행과 강간의 두려움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정체를 들키고 감옥에 갇혀서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저항을 선택한 그들의 용기는 그 절박함과 처절함만큼 숭고하게 다가온다.

끝나지 않은 전쟁, 전해지지 못한 역사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이 책 후반부에 소개되는 생존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고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고통과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생존한 레지스탕스 투사들은 종전 후 외부 세계가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에 주목하기는커녕 침묵하거나 자신을 각자의 입장에 맞게 이용한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죽은 자들을 떠올리며 죄책감 속에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 전후(戰後) 폴란드에서도 여전히 반유대주의가 만연했기에 유대인들이 다시 정착하기 위해선 생명의 위협과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숭고한 투쟁사는 너무나도 빠르게 왜곡되고 잊혀갔다. 종전 무렵 고국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구분 짓기 위해 유럽 출신의 유대인이 나약하다는 이미지를 심으며 강인한 투사들의 활약을 애써 지우려 했다. 그나마 알려진 투쟁사도 특정 집단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입맛에 맞게 편집되기 일쑤였다. 이런 현실과 마주한 여성 투사들은 체념하고 스스로 입을 다물게 되었다. 또한 간혹 그들의 투쟁사를 다룰 때조차 ‘아름답고 젊은 여성’을 부각하는 데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내면세계에서 과거 끔찍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이나 후유증과 어떻게 계속 씨름했는지에만 집중해왔다는 사실을 지은이는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렇듯 전승이 단절된 유대인 여성 투쟁사를 복원하고 종전 후 생존자들의 삶과 내러티브의 변화까지 분석한 『게토의 저항자들』은 홀로코스트가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회색지대의 수많은 방관자가 함께 만들어낸 복잡다단한 역사적 비극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일제강점기라는 비슷한 역사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항일운동사에서 잊힌 역사는 없는지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그러한 역사에 합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