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역사이야기 (관심>책소개)/4.독립운동가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2011)

동방박사님 2024. 8. 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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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경의거'의 커다란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 그리고 자신보다도 남을 배려하고 동정할 줄 아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쳤던 이봉창의 일대기이다. 이 책은 그가 일제의 식민시기동안 조선, 일본, 중국을 거치며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그가 일으킨 동경의거의 국내외적 반향을 다루고자 노력했다.

목차

머리말

1 김구, ‘동경의거’의 진실을 밝히다
‘동경의거’의 진상이 알려지다
‘동경의거’에 관한 기록

2 ‘한인애국단’ 최초의 단원 이봉창
‘의열투쟁’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선
이봉창, 한인애국단 최초의 단원

3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난
유복한 어린 시절
세파에 시달린 소년기

4 민족차별에 피눈물을 흘리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생활
감당하기 힘든 민족차별

5 적지 일본에서 큰 뜻을 품다
‘신일본인’으로 살기
일왕의 즉위식을 보러 가다
일본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6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다
김구와의 만남
‘동경의거’계획과 도움의 손길
이봉창의 인간적인 매력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다

7 ‘동경의거’를 거행하다
거사를 위한 만반의 준비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다

8 일제의 신문에 당당히 맞서다
배후 인물로 지목된 김구
‘동경의거’ 직후 국내의 반향
일본 내각 총사퇴

9 ‘동경의거’가 상해사변을 일으키다
중국 신문의 호의적인 ‘동경의거’ 보도
일본인들의 저항과 폭동
상해를 침략한 일본군

10 김구, 또 다른 ‘의거’를 준비하다
한국독립당의 활동
김구의 특무공작 계획
제2의 이봉창, 윤봉길의거

11 보도 통제와 ‘동경의거’ 보도
일제의 보도 통제
일본의 ‘동경의거’ 보도
‘동경의거’에 대한 국내 신문의 보도

12 사형을 선고받다
‘대역죄’란 무엇인가
조작된 「신문조서」
공판 과정
유해 봉환

이봉창의 삶과 자취

저자 소개

저자 : 김도형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하였으며, 국민대·단국대·경원대·서경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충남대에 출강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봉창은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진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처음에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민족의 독립보다는 오히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봉창은 스스로 자신이 민족을 언급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봉창의 행적을 되새겨 보면 왠지 말할 수 없는 애절함과 한없는 동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던 이봉창이 변하게 된 이유는 바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던 민족차별이었다. 이봉창은 국내에서의 민족차별에 크게 실망하고 일본에서는 차별대우가 없을 것으로 알고 그곳에 갔다. 그리하여 큰 뜻을 품고 간 일본에서 1925년 11월부터 1930년 12월까지 6년 1개월 동안의 긴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차별대우가 더욱 심했을 뿐만 아니라 ‘신일본인’으로 살기로 결심하여도 고뇌와 번민만 주었을 뿐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조국의 독립만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봉창은 김구를 만나게 되었고, 조국을 위해 ‘동경의거’를 일으키게 되었다.

필자는 이 열전을 쓰면서 두 가지 점에 유의하였다.
첫 번째는 이봉창이 일으킨 ‘동경의거’의 국내외적 반향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동경의거’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거사가 아니었다. 그 후 일제를 향한 본격적인 투쟁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상해사변’이라는 국제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윤봉길의 ‘홍구공원의거’가 일어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이봉창의 인간적인 측면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봉창에 관한 자료를 읽다 보면 인간적인 풍모가 물씬 풍긴다. 담백하고 솔직한 성격과 훈훈한 인간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봉창은 사지로 떠나면서 김구에게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코자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위로하는 여유가 있었다. ‘동경의거’라는 커다란 업적을 남긴 위인이기도 하지만, 자신보다도 남을 배려하고 동정할 줄 아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김구는 조국의 광복이 이봉창·윤봉길과 같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피의 대가임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이 점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