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인간과 건강 (독서>책소개)/1.죽음.심령.사후

카르마와 환생 (2022)

동방박사님 2024. 9. 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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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도 요가의 스승, 죽음과 환생을 말하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Paramhansa Yogananda는 서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요가 스승 중 하나로, 이 책은 그의 강연과 기고문을 모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지혜』 시리즈 중 ‘죽음과 환생’에 관한 책이다. 인류의 의식이 물질적 생존을 넘어 잘 살고 잘 죽어가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이 들려주는 지혜는 더욱 값지고 시의 적절해 보인다.

요가난다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영혼’이라는 전제 하에 펼쳐진다. 비록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 ‘죄’라는 것을 저지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때문에 영원히 정죄당하는 일은 없다고 요가난다는 말한다. 오히려 진정한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리고 스스로 유한한 생을 사는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착각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는데, 바로 그 미몽迷夢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된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 생애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목차
발행인의 말 

/ 1장 카르마 법칙 /?2장?자신의 카르마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 3장 카르마로부터의 해방 / 4장 죽음과 부활 / 5장 ?환생 /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Paramahansa Yogananda) 관심작가 알림신청 작가 파일
1893년 인도에서 태어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 깨달음을 추구하는 인도 고대 과학을 서양에 전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1920년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수백만의 삶에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인도의 영적 가르침과 사람을 해방시키는 요가의 기법에 목말라했다. 1946년에 출판된 그의 『어느 요기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a Yogi)』은 영성문학의...

역 : 이현주 (관옥)
대한민국의 감리교 목사, 동화작가, 번역가. 아무개 또는 무무无無라는 자호自號도 사용하고 있다.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겸허히 살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 사상의 주요틀인 ‘세상일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不敢爲天下先)’는 노장老莊사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1944년 충주에서 출생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변선환 박사의 제자였으며, 죽변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동화작가 이원수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기독교서회...

책 속으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거나 몸이 늙어서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암담한 때에도 기뻐하는 태도를 잃지 말라. 체스판은 검은 바탕과 흰 바탕이 서로 엇갈려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모든 어둠이 밝음에, 슬픔이 기쁨에, 실패가 성공에 잇닿아있다. 변화와 갈등은 불가피한 것들이고, 그 때문에 위대한 게임이 가능해진다. 그것들을 초연히 바라보자. 결코 그것들이 자기 안의 참자아를 더럽히게 놔두지 말라.”
---「인생은 게임이다」중에서

“하느님 안에는 동떨어짐이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옹근 ‘하나’를 깨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동떨어짐이 있고, 죽음이 있다. 그에게 죽음은 영혼이 그 너머로 사라져 망각되는 텅 빈 장벽이다. 깨달은 사람은 죽음의 땅 너머 모든 영혼이 춤추면서 다시 깨어나는 곳을 안다. 죽음은 슬픔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동안 사랑하는 친구가 죽었을 때 얼마나 슬펐던가? 실은 그럴 이유가 없다. 하느님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이 커다란 ‘신성(the great Divine)’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결코 자신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칠 것이다.”
---「귀여운 새끼사슴」중에서

“모든 영혼들이 저마다 값싼 외투를 벗고 불멸의 빛나는 옷을 입게 된다면 죽음 앞에서 울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영원불멸을 확신하는 성자들이나 죽을까봐 벌벌 떠는 소인배들이나 모두 하나같이 죽는데, 왜 죽음을 겁낸단 말인가?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통과하는 보편적 경험이 죽음이다. 생각해보라.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물건인가. 알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어 알 수 없는 것으로 스며든다. 생각해보라. ‘죽음’ 이란 얼마나 신비로운 물건인가. 부지런히 일한 사람과 게으름뱅이를 똑같이 삼키고 그들을 대기와 원소들로 바꿔놓는다. 생각해보라. 사람마다 죽음을 겁내지만 바로 그 죽음이 온갖 슬픔과 질병과 곤경을 벗고 편안히 쉬게 해준다.”
---「마지막 날」중에서

“명상의 힘과 직관直觀의 보물로 날마다 새로운 평화와 기쁨을 얻으라. 그것들이 당신의 마지막 여정에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날마다 하느님과 소통하며 죽음을 준비하라. 당신은 이 길 끝에서, 마지막 날의 문을 통과해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것이고,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마지막 날」중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물질로 만들어, 이 땅에서 출생과 성장을 즐기며 살다가 옹근 완전함으로 고통 없이 돌아가게 하셨다. 고속 촬영한 필름으로 한 송이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듯이,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고 성숙해가는 과정, 그리고 물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으로 다시 하느님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인간이 하느님과 어긋나 스스로 물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그래서 자기 인생영화를 보다가 미처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막이 내리는 것을 겁내게 된 것이다. 인생영화가 미완성으로 종영終映하면서 육肉과 의식으로 이루어진 영화 장면에 집착하는 바람에 고통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이 종영을 무서운 죽음으로 인식한다.”
---「초자연적 죽음과 고통스런 죽음」중에서

“우리는 의식意識의 스크린 위에서 건강하고 풍요롭고 지혜로운 인생 드라마를 완벽하게 연출하는 것으로도 환생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 예컨대, 몸에 병이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건강이 나빠 괴로울 때에도 건강한 몸을 갈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건강한 영혼을 기억해낼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평정平靜(equanimity)이 환생에서 해방되는 비결이라는 얘기다. ‘겉으로 가난하든 부자든, 하느님의 자녀답게 우리도 아버지처럼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면,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인간적으로 아는 게 없다 해도 ‘내가 하느님의 형상인 까닭에 신성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 그것으로도 환생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옹근 전체로 살기」중에서

“고대 과학자들은 인간의 에고ego(저를 제 몸과 동일시하는 영혼)가 한 생을 사는 동안에 깨어있고, 꿈꾸고, 깊은 잠을 자면서 겪는 온갖 경험과 생각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의 경험, 환경, 감각, 생각, 몸 상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알고 있는 ‘나’는 태어나서 죽기까지 변치 않는다. 그래서 힌두 스승들은 여러 모양으로 바뀌는 삶의 상태들, 깨어있고 꿈꾸고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들을 끊임없이 성찰 또는 관찰하면서 변치 않고 영원한 본성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의식에 관한 실험들」중에서

“고대 힌두교도들은 죽음이 감각 및 운동 신경이라는 전선電線을 포함해, 인간의 육신이라는 전구電球에서, 외부의 다른 경로로 생명이라는 전기電氣가 물러나는 것임을 발견했다. 망가진 전구가 꺼졌다고 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듯이, 불수의적 신경이 잠잠해졌다고 생명 에너지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생명 에너지는 죽음과 동시에 우주 에너지(Cosmic Energy)로 회수되는 것이다.”
---「잠든 상태에서 쉬기」중에서

“별, 구름, 새, 짐승, 사람, 버림받은 것들이 모두 혈족으로 느껴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더는 환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신은 무지갯빛 지혜의 문을 열러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것이며, 그리하여 슬픔에 잠겨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영원한 자유를 향해 신속히 탈출하게 될 것이다.”
---「자유로 가는 길」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의 카르마는 나의 책임이다

우리가 한 생을 살고 그 생에서 미처 못다 한 배움을 위해 다음 생을 설계할 때, 밑그림이 되는 것이 소위 ‘카르마Karma’라고 한다. 카르마는 한자어로 업業이라 쓰며, 산스크리트어로는 ‘행위’라는 뜻으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빚어진 인과因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요가난다는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상황과 인물과 습관 등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이용해 빚어놓은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문제들의 깊은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에 박혀있으며, 각자 자신이 빚은 카르마가 끌어당기는 힘을 통해 불러들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대해 변명하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태도는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요가난다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과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도 비난하지 말라. 비난과 책망으로는 이미 일어난 일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더욱 의존하게 될 뿐이다. 내면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라. 자기 앞에 있는 것과 화해하고 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당신은 모든 카르마를 다시 만들 수 있고, 당장 오늘부터 영혼 의식(soul-consciousness)으로 새롭게 살 준비를 갖출 수 있다. 에고의 명령에 불복하라. 그것들은 영원한 미몽에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p.30)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기나긴 환생의 여정과 물질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방랑이 끝나면, 언젠가는 기쁨으로만 가득한 하느님 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혼에게 영원한 형벌이란 가당치 않다. 카르마를 짓는 것도 자기 자신이지만, 그것을 풀고 새로운 카르마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정한 책임이 시작되는 것이니, 결국 ‘나의 카르마는 나의 책임’이라는 말은 그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과 환생의 쳇바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선물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활용해 자신과 삶을 완성해간다. 나무나 돌과 다르게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그 자유의지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소수의 현자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요가난다는 말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공기를 갈망하듯 해방을 갈망해야 한다. 뜨거운 갈망 없이는 결코 하느님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을 갈망하라.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그분만을 갈망하라. 이것을 무엇보다도 큰 목마름으로 여기라. 그러면서 동시에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질병과 건강 등 모든 이원二元을 초월하라. 다른 모든 것과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라는 착각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라. 오로지 그분께만 마음을 쏟으라. 당신이 되고픈,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흔들림 없는 옹근 영(Spirit)으로 머무르라. 그분만이 당신의 참 자아다. 그분의 지복至福만이 당신의 참 본성이다.”(p.105)

요가난다는 빈틈없이 작용하는 우주의 법칙과, 그로 인한 죽음과 환생이라는 판결을 피하려면 오직 신성한 의식 안에서, 내면에 거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조율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성神性이야말로 이 모든 우주 법칙 위에 있으며, 신성에 가까워질수록 하느님의 법에 위배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삶의 첫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고 매 순간 그분을 향해 깨어있다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카르마와 창조해야 할 카르마를 분별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카르마의 영향력, 이 모든 죽음과 환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의식의 빛이 결국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 나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에 해방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는 나직한 속삭임은 이 계절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묵상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