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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연인인 현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가스라이터가 잘하는 행동 중 하나는 ‘무의미한 싸움 걸기’인데, 현남은 여자에게 기억에 관해 사소한 싸움을 반복적으로 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자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신뢰를 놓아버리게 만든다. 여자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이 두려워 늘 현남의 말을 인정하고 넘어간다.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현남이 예민하게 군다며 면박 주는 바람에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두 상자에 따로 가둔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 첫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다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반면 레버가 없는 두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개들은 작은 담만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지는데, 이때 첫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가자마자 곧장 담을 넘었고, 두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받아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을 배워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는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삶이 있지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국에는 내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되지요.”
심리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따뜻한 유용함을 발휘할 수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 신고은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익숙한 콘텐츠를 사례로 차용하여 가스라이팅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연관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여기에는 “우리 삶에서 스쳐간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할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두 상자에 따로 가둔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 첫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다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반면 레버가 없는 두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개들은 작은 담만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지는데, 이때 첫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가자마자 곧장 담을 넘었고, 두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받아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을 배워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는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삶이 있지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국에는 내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되지요.”
심리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따뜻한 유용함을 발휘할 수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 신고은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익숙한 콘텐츠를 사례로 차용하여 가스라이팅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연관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여기에는 “우리 삶에서 스쳐간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할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1. 오늘도 가스라이팅
피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상
우리는 사랑일까
세상의 모든 가해자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사람들
추악한 다정함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2. 가스라이팅 레시피
핑퐁 게임의 두 선수
만들어진 진실
조종당한 마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때
내가 홀로 남겨진 까닭은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가 되기까지
3. 치밀하고 친밀한 적 가스라이터
가스라이터의 세 얼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거절할 수 없는 진심
완전해야 한다는 착각
똑똑, 잠시만 들어가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 지옥이다
4. 준비된 가스라이티
우리 안의 만들어진 천사
익숙해진 포기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했던 이유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덕이야, 아니 내 탓이야
애타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게
5. 굿바이 가스라이팅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죠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윙윙윙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다정한 고슴도치의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사이코지만 네가 있다면 괜찮아
나가는 글: 가치 있는 ‘같이’의 삶
참고문헌
1. 오늘도 가스라이팅
피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상
우리는 사랑일까
세상의 모든 가해자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사람들
추악한 다정함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2. 가스라이팅 레시피
핑퐁 게임의 두 선수
만들어진 진실
조종당한 마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때
내가 홀로 남겨진 까닭은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가 되기까지
3. 치밀하고 친밀한 적 가스라이터
가스라이터의 세 얼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거절할 수 없는 진심
완전해야 한다는 착각
똑똑, 잠시만 들어가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 지옥이다
4. 준비된 가스라이티
우리 안의 만들어진 천사
익숙해진 포기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했던 이유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덕이야, 아니 내 탓이야
애타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게
5. 굿바이 가스라이팅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죠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윙윙윙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다정한 고슴도치의 사회적 거리 두기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사이코지만 네가 있다면 괜찮아
나가는 글: 가치 있는 ‘같이’의 삶
참고문헌
책 속으로
가스라이팅은 전문 학술 용어도 아니고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된 분야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별것도 아닌 걸 그럴싸한 용어로 어렵게 말하냐고 폄하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던 시대에도 이미 지구는 둥근 모양이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가스라이팅은 분명히 실재하는 행위이고,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쉽게 우리 삶을 침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들어가는 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중에서
‘아픔’을 ‘나쁨’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일들은 빈번히 일어나지요. 우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세상에 살면서 나답게 사는 법을 잃어갑니다. 행복해질 권리를 빼앗기고 있지요. 내 잘못과 내 책임은 아니지만 누구의 짐도 아니기에, 그 주인 없는 짐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살아가지요. 결국 자기 목소리를 잃고, 선택을 포기하며, 나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피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상」중에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스라이팅 관계에서 이 표현이 딱 들어맞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 안에 자신을 잃는 선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이용하고 있는지 구별하려는 마음보다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을 두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크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랑일까」중에서
아픔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은 누군가의 상처를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고, 당신 책임도 있다며 손가락질합니다. 그 목소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위로받아야 하는 순간에도 죄책감을 느끼고 숨어버리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내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요. 한 사람의 메시지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흘러간 메시지는 선한 영향력이 되어 용기의 꽃을 피웁니다.
---「세상의 모든 가해자」중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상대의 입장을 살피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상대의 가시 돋친 말도 반박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비난까지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요. 문제는 의미 있는 타인이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스라이팅은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것이지요.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사람들」중에서
성범죄를 당한 것은 수치스러운 경험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여지를 남기고 성적으로 유혹했을 것이다, 야한 옷을 입었을 것이다, 지혜롭지 못해 그런 상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등의 말들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성범죄가 가스라이팅인지 아닌지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향한 이 같은 시선은 명백한 가스라이팅입니다. 피해자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세상에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없도록 조종하는 것이니까요.
---「추악한 다정함」중에서
서열이 있는 구조 속에서 가스라이팅은 되풀이됩니다. 낮은 자리에 위치하던 가스라이티가 그 시간을 버티면 가스라이터의 신념을 내면화한 채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정순 역시 그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행동을 강요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요. 자신이 들어온 말들, 세뇌받았던 신념은 강요해도 되는 근거가 됩니다. 자신이 해왔던 희생을 보상받기를 바라고 악행을 따라 하려 듭니다. 내가 겪어왔기 때문에 남이 겪는 것이 당연해지고 때로는 내가 겪은 것보다 강도가 약해진 세상을 미화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거야,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가 되기까지」중에서
매슬로우의 위계욕구이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스라이터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충족하면 되거든요. 배가 고플 때 샐러드를 든든히 먹으면 과식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어떤 자극에 취약한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은 무엇인지 미리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맞게 조절해야겠지요. 배 가 불러 미끼를 물지 않도록 말입니다.
---「애타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게」중에서
가스라이티는 대부분 관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합니다. ‘이 관계가 올바른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하지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요.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을 하고, 그 생각을 멈추기 위해 합리화하고, 자신의 행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에너지가 모두 소진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주변 경로를 사용하는 실수를 범하지요. 상대방의 언변에 포장된 큰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죠」중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오즈렘 에이덕과 이선 크로스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혈압이 올라가는 등 신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 3자의 시선으로 그 사건을 상상해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생리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내 일을 남 일 보듯 하니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문제는 현실에서 내 일을 남 일처럼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벽에 붙은 파리 효과’입니다.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윙윙윙」중에서
모든 글이 마무리될 때쯤 저는 알았습니다. 가스라이터와의 단절은 고립을 위한 단절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단절임을, 진정으로 ‘같이’ 있는 것의 가치를 찾기 위한 도전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누군가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 사람,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사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사람. 그들이 있어야 온전한 단절도 가능합니다. 또한 단절된 그 자리의 공허감을 채워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 끊어야 할 관계를 끊지 못하면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관계를 놓칩니다. 적절한 단절은 오히려 더 따뜻한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지요. 그런 의미에서 끊어내는 것은 오히려 함께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들어가는 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중에서
‘아픔’을 ‘나쁨’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일들은 빈번히 일어나지요. 우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세상에 살면서 나답게 사는 법을 잃어갑니다. 행복해질 권리를 빼앗기고 있지요. 내 잘못과 내 책임은 아니지만 누구의 짐도 아니기에, 그 주인 없는 짐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살아가지요. 결국 자기 목소리를 잃고, 선택을 포기하며, 나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피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상」중에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스라이팅 관계에서 이 표현이 딱 들어맞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 안에 자신을 잃는 선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 이용하고 있는지 구별하려는 마음보다 지금 내 곁에 그 사람을 두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크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랑일까」중에서
아픔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은 누군가의 상처를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고, 당신 책임도 있다며 손가락질합니다. 그 목소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위로받아야 하는 순간에도 죄책감을 느끼고 숨어버리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내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요. 한 사람의 메시지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흘러간 메시지는 선한 영향력이 되어 용기의 꽃을 피웁니다.
---「세상의 모든 가해자」중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상대의 입장을 살피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상대의 가시 돋친 말도 반박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비난까지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요. 문제는 의미 있는 타인이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스라이팅은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것이지요.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사람들」중에서
성범죄를 당한 것은 수치스러운 경험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여지를 남기고 성적으로 유혹했을 것이다, 야한 옷을 입었을 것이다, 지혜롭지 못해 그런 상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등의 말들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성범죄가 가스라이팅인지 아닌지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향한 이 같은 시선은 명백한 가스라이팅입니다. 피해자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세상에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없도록 조종하는 것이니까요.
---「추악한 다정함」중에서
서열이 있는 구조 속에서 가스라이팅은 되풀이됩니다. 낮은 자리에 위치하던 가스라이티가 그 시간을 버티면 가스라이터의 신념을 내면화한 채 올라서기 때문입니다. 정순 역시 그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행동을 강요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요. 자신이 들어온 말들, 세뇌받았던 신념은 강요해도 되는 근거가 됩니다. 자신이 해왔던 희생을 보상받기를 바라고 악행을 따라 하려 듭니다. 내가 겪어왔기 때문에 남이 겪는 것이 당연해지고 때로는 내가 겪은 것보다 강도가 약해진 세상을 미화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진 거야,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가스라이티가 가스라이터가 되기까지」중에서
매슬로우의 위계욕구이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스라이터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충족하면 되거든요. 배가 고플 때 샐러드를 든든히 먹으면 과식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어떤 자극에 취약한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은 무엇인지 미리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맞게 조절해야겠지요. 배 가 불러 미끼를 물지 않도록 말입니다.
---「애타게,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게」중에서
가스라이티는 대부분 관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합니다. ‘이 관계가 올바른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하지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요.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을 하고, 그 생각을 멈추기 위해 합리화하고, 자신의 행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에너지가 모두 소진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주변 경로를 사용하는 실수를 범하지요. 상대방의 언변에 포장된 큰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시죠」중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오즈렘 에이덕과 이선 크로스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혈압이 올라가는 등 신체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 3자의 시선으로 그 사건을 상상해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생리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내 일을 남 일 보듯 하니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문제는 현실에서 내 일을 남 일처럼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벽에 붙은 파리 효과’입니다.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윙윙윙」중에서
모든 글이 마무리될 때쯤 저는 알았습니다. 가스라이터와의 단절은 고립을 위한 단절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단절임을, 진정으로 ‘같이’ 있는 것의 가치를 찾기 위한 도전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누군가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 사람,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사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사람. 그들이 있어야 온전한 단절도 가능합니다. 또한 단절된 그 자리의 공허감을 채워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 끊어야 할 관계를 끊지 못하면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관계를 놓칩니다. 적절한 단절은 오히려 더 따뜻한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지요. 그런 의미에서 끊어내는 것은 오히려 함께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가는 글: 가치 있는 ‘같이’의 삶」중에서
출판사 리뷰
“별것도 아닌 일에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네가 이상한 거야.”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나 아니면 누가 널 감당하겠어?”
“너만 아파? 회사 다니는 사람 다 아파. 모두 참아가며 일하는 거라고.”
내 옆에서 가장 친밀한 얼굴을 한 채
가장 치밀하게 나를 병들게 하는 적 ‘가스라이팅’
결국에는 나를 잃어버리고 상대의 요구에 따라 살게 만드는
정서적 폭력이자 정신적 학대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모습과 가해 방식, 가스라이팅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사람의 특성, 가스라이팅에 쉽게 당하는 심리적 특성, 극복 방안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드라마·소설 속 사례에 심리학 이론을 더해 분석한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바야흐로 가스라이팅 시대,
당신은 오늘도 ‘가스라이팅’당했습니다
불과 1~2년 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목격되는 질문들이 있다. “저 지금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 거 맞나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법 좀 알려주세요.” “혹시 이것도 가스라이팅인가요?” “가스라이팅도 고소 사유가 되나요?” 이 모든 질문이 가리키는 핵심은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어느 순간부터 각종 매체에서 언급되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용납되지 않는 말로 나를 공격하거나 설득하려고 할 때 엄한 표정을 짓고는 경고하듯 맞받아친다. “저 가스라이팅하지 마세요.”
이 경우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할까?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차적으로 상대가 조작을 행하고 그다음 당하는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여야 이 가스라이팅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가스등(Gaslight)」이라는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사실에 비추어 이 행위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특별한 사건이나 범죄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일상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도 연인, 가족, 직장 동료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으며 자주 그리고 쉽게 삶을 침범한다. 비상식적인 상황에, 상대의 뻔뻔한 말과 태도에 반격하거나 저항하기보다 나 스스로를 의심한다면?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나를 탓하고 내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만든다면? 당신은 지금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 중이다.
왜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에는 양 당사자가 존재한다. 먼저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 상황이나 상대의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 즉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인 ‘가스라이터(Gaslighter)’와 가스라이터의 조종에 반응하는 사람, 그럼으로써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인 ‘가스라이티(Gaslightee)’가 있다.
가스라이터는 상황을 바꾸거나 교묘한 말 한두 마디로 상대를 조종하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세뇌하기도 한다. 이때 가스라이팅에 걸려든 사람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정말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에 이른다. 가스라이터에게 의존하고 지배당하는 가스라이티는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잃어버린다. 결국 자기 학대나 무기력증 같은 정신적 질병이나 물리적 피해를 얻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연인인 현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가스라이터가 잘하는 행동 중 하나는 ‘무의미한 싸움 걸기’인데, 현남은 여자에게 기억에 관해 사소한 싸움을 반복적으로 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자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신뢰를 놓아버리게 만든다. 여자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이 두려워 늘 현남의 말을 인정하고 넘어간다.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현남이 예민하게 군다며 면박 주는 바람에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두 상자에 따로 가둔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 첫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다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반면 레버가 없는 두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개들은 작은 담만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지는데, 이때 첫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가자마자 곧장 담을 넘었고, 두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받아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을 배워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는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삶이 있지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국에는 내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되지요.”
심리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따뜻한 유용함을 발휘할 수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 신고은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남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기가 쉬운 가혹한 현대사회에서는 사방곳곳에서 이 잔혹한 가스라이팅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당하는 개개인은 자신이 이상하거나 불편한 사람은 아닌지 의심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포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잃어가”며 이것이 바로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지적한다.
이 사회에서 가스라이팅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주위로 퍼져나가고 세대를 이어 되물림되는 독성 강한 사회적 전염병으로,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면서 상처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깨닫고 예방하고 회복하고 함께 연대하지 않는다면 해독되지 않는 사회적 독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속 사례에
심리학 이론을 더해 분석한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이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익숙한 콘텐츠를 사례로 차용하여 가스라이팅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연관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여기에는 “우리 삶에서 스쳐간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할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1장 ‘오늘도 가스라이팅’에서는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상황을 살펴본다. 우리의 삶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화 속 사건부터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상황, 그리고 ‘이것도 가스라이팅이야?’ 싶은 이야기까지 가스라이팅으로 들어가는 길목 언저리에 있는 내용은 모두 다뤘다. 2장 ‘가스라이팅 레시피’는 ‘도대체 가스라이팅이 뭐야?’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고 있다. 상황을 조작하는 건 어떤 건지, 심리는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 현상을 자세히 분석하여 살펴본다.
3장 ‘치밀하고 친밀한 적 가스라이터’와 4장 ‘준비된 가스라이티’에서는 가스라이팅 관계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의 특징을 심리학으로 파고들어 이런 사람이 가스라이터구나 하고 깨닫고, 가스라이팅에 취약했던 자신을 발견하거나, 심지어 나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을 가했던 부끄러운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 마지막 5장 ‘굿바이 가스라이팅’에서는 가스라이팅과 가스라이팅을 뿌리로 둔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리고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나 아니면 누가 널 감당하겠어?”
“너만 아파? 회사 다니는 사람 다 아파. 모두 참아가며 일하는 거라고.”
내 옆에서 가장 친밀한 얼굴을 한 채
가장 치밀하게 나를 병들게 하는 적 ‘가스라이팅’
결국에는 나를 잃어버리고 상대의 요구에 따라 살게 만드는
정서적 폭력이자 정신적 학대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모습과 가해 방식, 가스라이팅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사람의 특성, 가스라이팅에 쉽게 당하는 심리적 특성, 극복 방안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드라마·소설 속 사례에 심리학 이론을 더해 분석한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바야흐로 가스라이팅 시대,
당신은 오늘도 ‘가스라이팅’당했습니다
불과 1~2년 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목격되는 질문들이 있다. “저 지금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 거 맞나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법 좀 알려주세요.” “혹시 이것도 가스라이팅인가요?” “가스라이팅도 고소 사유가 되나요?” 이 모든 질문이 가리키는 핵심은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어느 순간부터 각종 매체에서 언급되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가 용납되지 않는 말로 나를 공격하거나 설득하려고 할 때 엄한 표정을 짓고는 경고하듯 맞받아친다. “저 가스라이팅하지 마세요.”
이 경우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할까?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차적으로 상대가 조작을 행하고 그다음 당하는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여야 이 가스라이팅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가스등(Gaslight)」이라는 범죄 스릴러 영화라는 사실에 비추어 이 행위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특별한 사건이나 범죄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일상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도 연인, 가족, 직장 동료 등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으며 자주 그리고 쉽게 삶을 침범한다. 비상식적인 상황에, 상대의 뻔뻔한 말과 태도에 반격하거나 저항하기보다 나 스스로를 의심한다면?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나를 탓하고 내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만든다면? 당신은 지금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 중이다.
왜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에는 양 당사자가 존재한다. 먼저 상대방을 조종하기 위해 상황이나 상대의 심리를 조작하는 사람, 즉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인 ‘가스라이터(Gaslighter)’와 가스라이터의 조종에 반응하는 사람, 그럼으로써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인 ‘가스라이티(Gaslightee)’가 있다.
가스라이터는 상황을 바꾸거나 교묘한 말 한두 마디로 상대를 조종하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세뇌하기도 한다. 이때 가스라이팅에 걸려든 사람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정말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에 이른다. 가스라이터에게 의존하고 지배당하는 가스라이티는 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잃어버린다. 결국 자기 학대나 무기력증 같은 정신적 질병이나 물리적 피해를 얻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현남 오빠에게」에서는 연인인 현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한 여자가 나온다. 가스라이터가 잘하는 행동 중 하나는 ‘무의미한 싸움 걸기’인데, 현남은 여자에게 기억에 관해 사소한 싸움을 반복적으로 걸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자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신뢰를 놓아버리게 만든다. 여자는 두 사람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이 두려워 늘 현남의 말을 인정하고 넘어간다.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현남이 예민하게 군다며 면박 주는 바람에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두 상자에 따로 가둔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 첫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다 전기 충격을 멈추는 법을 배운다. 반면 레버가 없는 두 번째 상자에 갇힌 개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개들은 작은 담만 넘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지는데, 이때 첫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새로운 상자로 옮겨가자마자 곧장 담을 넘었고, 두 번째 상자에 있던 개들은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통을 받아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을 배워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길의 종착지에는 손해 보고 이용당하는 삶이 있지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종국에는 내가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되지요.”
심리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삶에서 따뜻한 유용함을 발휘할 수 있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심리학자 신고은은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알아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남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기가 쉬운 가혹한 현대사회에서는 사방곳곳에서 이 잔혹한 가스라이팅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당하는 개개인은 자신이 이상하거나 불편한 사람은 아닌지 의심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포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잃어가”며 이것이 바로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지적한다.
이 사회에서 가스라이팅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주위로 퍼져나가고 세대를 이어 되물림되는 독성 강한 사회적 전염병으로,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면서 상처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깨닫고 예방하고 회복하고 함께 연대하지 않는다면 해독되지 않는 사회적 독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속 사례에
심리학 이론을 더해 분석한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이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도록 영화, 소설, 드라마 등 익숙한 콘텐츠를 사례로 차용하여 가스라이팅을 설명하고 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스라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과 연관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여기에는 “우리 삶에서 스쳐간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할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1장 ‘오늘도 가스라이팅’에서는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상황을 살펴본다. 우리의 삶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화 속 사건부터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상황, 그리고 ‘이것도 가스라이팅이야?’ 싶은 이야기까지 가스라이팅으로 들어가는 길목 언저리에 있는 내용은 모두 다뤘다. 2장 ‘가스라이팅 레시피’는 ‘도대체 가스라이팅이 뭐야?’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고 있다. 상황을 조작하는 건 어떤 건지, 심리는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 현상을 자세히 분석하여 살펴본다.
3장 ‘치밀하고 친밀한 적 가스라이터’와 4장 ‘준비된 가스라이티’에서는 가스라이팅 관계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의 특징을 심리학으로 파고들어 이런 사람이 가스라이터구나 하고 깨닫고, 가스라이팅에 취약했던 자신을 발견하거나, 심지어 나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을 가했던 부끄러운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 마지막 5장 ‘굿바이 가스라이팅’에서는 가스라이팅과 가스라이팅을 뿌리로 둔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리고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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