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樂善齋)는 헌종 13년(1847년)에 중건된 창덕궁의 건물로, 이 일대에는 숙종, 정조, 헌종 때에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낙선재는 창덕궁[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의 동남쪽과 창경궁이 연결되는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데, 궁궐지(宮闕志)에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와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에는 헌종 13년(1847년)에 낙선당 옛터에 건물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헌종은 낙선재에서 경빈김씨는 석복헌에 머물렀다고 지내진다. 여기서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일을 즐겨한다는 의미이고 석복헌은 복을 준다는 뜻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순정효황후(윤황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이방자도 이곳에서 살다가 1989년에 죽었다.
낙선재는 세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서쪽에 낙선재가 있고, 그 동쪽에는 낙선재와 건립 시기가 비슷한 석복헌(錫福軒, 1848년 8월 11일 중수)이 있으며, 다시 그 동쪽으로 1820년대 이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수강재(壽康齋, 1848년 8월 11일 중수)가 있는데, 이 건물들이 있는 영역을 통틀어 흔히 낙선재라고 부른다. 낙선재는 임금이, 석복헌은 왕비가, 수강재는 대비가 거처하던 곳이다.
낙선재는 조선 시대 궁궐의 침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좌우 대칭의 평면 형식에서 벗어나 온돌과 마루를 생활 방식과 기능에 맞게 구성한 점이 돋보이며, 다양한 외관과 창호 형식, 그리고 후원의 계단식 화단이 빼어나다. 화계 위에는 취운정(翠雲亭), 한정당(閑靜堂)이 있으며, 그 위에 상량정(上凉亭), 칠분서(七分序), 만월문(滿月門), 삼삼와(三三窩), 승화루(承華樓)와 그 일곽이 있다. 이방자가 세상을 떠난 뒤 낙선재 일곽에 보수와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1996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다. 승화루는 원래 소주합루라 불렀으나 훗날 승화루라고 이름이 바뀌었고 아래는 의신합이라는 방이었으나 현재는 열린 공간이 되어있다. 중희당과 삼삼와라고 불리는 육각정과 연결시켜 주는 칠분서라는 월랑이 있다. 상량정은 원래 평원루였으나 이름이 바뀌었다.
어차고(御車庫)는 숙장문 동쪽으로 작은 동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구한말 순종이 타던 신식 자동차를 보관하는 차고였다. 현재 어차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비변사의 부속기관인 빈청(賓廳)으로, 건물의 이름은 비궁당(匪躬堂)이었는데 대신들과 비변사의 당상관들이 임금을 만나기 전에 대기하는 곳이었다. 비궁당 뒤에는 측간(厠間)이라 하여 화장실이 있었으며, 동쪽과 남쪽에는 동산이 둘러싸고 서쪽과 북쪽에는 담장을 둘렀다. 그러나 한일병합 이후 어차고로 개조되었다가 현재는 카페로 변했다. 차량은 경복궁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의풍각(儀豊閣)이 있다. 얼마전 의풍각에서 임금의 관인 재궁이 발견되어서 공개된적이 있다. 의풍각은 궐내각사(闕內各司) 북쪽에 위치한다. 그 이외에 진선문(進善門) 남쪽 내병조(內兵曹) 연치미각(輦致美閣) 교자고(轎子庫) 원역처소(員役處所) 전설사(典設司) 등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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