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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2024) -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

동방박사님 2024. 7. 2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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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존’과 ‘나눔’을 토대로 새롭게 열어가는 미래

제임스 퍼거슨은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 삶에서 물리적으로 연결된 취약성을 환기하고, ‘현존presence’, 즉 여기에 함께 있다는 단순한 사실 위에서 공생의 자리를 구축하고자 한다. 내가 그를 알지 못해도, 굳이 그를 돕고 싶지 않아도 이미 지척에 있는 그와 ‘몫share’을 나누는 행위가 빈번히 발생한다면, 그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명확한 사실 자체를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배의 근거로 삼을 순 없을까? 시민과 국민을 가르는 배타적 성원권 대신, 우리가 이주민이나 난민과 이미 물리적으로 인접해 살아간다는 경험적 사실을 나눔의 근거로 삼는 세계는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 미래를 열어젖힐까? (중략)

나는 ‘갈 데까지 간’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으로 축소되었던 분배 논의에 제대로 불을 지필 때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짓누르는 긴장과 울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인‘간間’으로서 기어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하루하루의 삶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현존을 통한 실천으로 몫을 확보해내는지 자세히 살피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분배정치의 대안과 전략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이 책이 분배에 관한 사유와 실천적 대응을 확장하는 촉매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조문영, 「해제」 중에서

목차

해제: 조문영(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머리말: 팬데믹 속에서 사회가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1장 논의의 출발: 사회적 의무가 왜 필요할까? 왜 지금?

2장 현존과 사회적 의무: 나눔에 관한 에세이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사회적 의무
_ 나눔의 확장
지구 차원의 현존 정치를 향해서
결론

3장 부록: 일부 이론적인 대조와 설명

사회인류학의 전통과 ‘관대함’에 대한 분석
_ 뒤르켐
_ 데리다
_ 차터지
_ 아렌트
_ 버틀러

저자 소개 

저 : 제임스 퍼거슨 (James Ferguson)
스탠퍼드 대학 인류학과 교수이자 인문과학부 ‘수전과 윌리엄 힌들Susan S. and William H. Hindle’ 특훈 교수다. 1985년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인류학과를 거쳐 2003년부터 스탠퍼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조사와 이론작업을 바탕으로 빈곤, 개발, 이주, 현대성 등에 관한 인...
 
역 : 이동구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데이콤 등 IT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해왔다. 현재는 찍스닷컴에서 사진과 IT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집 바로 앞에는 교하도서관이 있고, 출판단지도 멀지 않아 늘 책과 가깝게 지낸다. 텔레비전도 없애버리고 책장을 맞춰 넣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책을 좋아한다. 은퇴 후에는 자그마한 책방을 열어 소규모 강연, 공연, 독서모임 등 동네 사랑방으로 키워나가는 꿈을 가지고 있다...

책 속으로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지적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는 전체 인구 중 극히 일부인 안정적인 도시 노동 계급의 생활방식이 순식간에 (어찌 되었든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있듯) 모두의 미래로 제시되어버렸다고 말하면서 20세기를 ‘노동자의 세기the century of laboring man’로 회상한다. 스탠딩이 주장하듯, ‘노동자의 세기’가 종말을 맞이했다면, 그 이유는 절대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임금노동자가 사라진 탓이 아니라, 지구적 성장과정에서 더는 임금노동을 보편적인 해결책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급망과 노동시장이 세계화되면서 노동 계급의 조직력이 약해지고,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과 재정 긴축 탓에 구조적인 실업과 비정규직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의 기술발전이 임금노동의 전 분야를 대체하거나 대폭 축소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왔던 전환 논리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
--- p.33~34

노동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즉 우리 모두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공동 자산의 상속자들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유산은 노동에만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고, 피 흘리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함께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가치의 원천은 사회 전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과실에 대한 정당한 권리는 노동자가 아닌, 상속자이면서 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돌아가야 한다.
--- p.40~41

분배의 가장 중요한 양상 중 하나는 ‘무엇인가를 가져가려는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관행이라는 위드록의 주장은 적절한 지적이다. 이것이 요구에 따른 분배의 논리이며, 단순히 이웃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 이웃이라는 상태에 정확하게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현존에 기반을 둔 사회적·정치적 논리는 여전히 심각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내가 ‘성원권’이라 부르는 원칙(‘우리 중 하나’)은 시민권의 형태로 법적으로 명확하게 인정되고 있으며, 정치적 주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현존’의 원칙(‘여기, 우리와 함께’)은 대체로 상식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의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여기’에 존재한다는 명백하고 자명한 조건이 얼마나 확실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우리는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 p.63~64

아직까지 명확한 실행방안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지만 ‘현존’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존’의 특징 중 하나는 요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렵채집인들이 겪었던 집단적 기아와 마찬가지로, 현대 이민자들의 관점에서 사회적 서비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보면 명확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취약성과 고통마저도 함께 따라온다.
--- p.95

장기적으로는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인간성’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국적을 초월한 사회적 의무를 파악하는 방법을 찾고, 실제 삶의 공통성에 대해 좀 더 탄탄한 인식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인식으로 무장한다면, 함께 식사를 나누기 위해 둘러앉은 수렵채집인들처럼 우리는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정말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다원성plurality’이라고 불렀던 비자발적 공존 상태의 풍요로움을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 p.97~98

출판사 리뷰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

전 세계 경제가 급격히 글로벌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부의 불평등과 분배문제가 나날이 더 대두되고 있다. 특히 분배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할 것 없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주원인이었다. 초부유층과 기층 서민들의 간극이 날로 커지고, 부유층 내에서도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중산층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은 결코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최첨단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들의 ‘적절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점점 ‘잉여’ 인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잉여’ 인간이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그 관심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일상에 잘 스며들었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일반인들도 그 효용을 절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한 정쟁에 휩쓸려 제대로 된 공론장을 마련해보지도 못한 채 기본소득 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분배정치의 시대』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스탠퍼드 대학 인류학과 제임스 퍼거슨 교수의 신작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은 단순히 기본소득을 논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에서 문제의식 제기 정도에 그친 ‘현존presence’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나눔’과 ‘사회적 의무’를 고찰한, 짧지만 강렬하고 묵직한 책이다. 원서의 부제가 “나눔에 관한 에세이”인 데 비해 한국어판 부제를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라고 단 이유는 단순히 ‘나눔’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시대에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할 도전적인 문제의식이자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한 화두다.

“넘쳐나는 우리의 부는 어디서 온 것인가? 이전 세대보다 우리가 훨씬 더 생산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들보다 뛰어난 인종이어서는 아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우리는 100년, 아니 1,000년의 인류 역사를 거치면서 세대를 이은 노동과 희생, 발명으로 건설된 거대한 지구적 생산조직을 통해 그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 전체적으로 수백만 명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중략) 이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과 관련된 모든 체계는 통합된 유산이다. (중략) 분명한 것은 적어도 전체 산출물의 일정 부분은 생산조직의 모든 사람에게 소유권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39~40쪽)

‘현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적 전략을 찾아야 할 때

퍼거슨은 ‘현존’을 “다른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상태”,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암묵적으로는 적어도 최소한의 인정과 의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여기, 우리 안에 있다는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사실”, “노동이나 시민권에 기반을 두지 않은 (넓은 의미의) ‘소유권’”, “모든 문제점까지 공유한 채 비자발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이 정의만으로는 ‘현존’의 실체가 명확하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현존이라는 것은 글로 표현할 수도 없고 자명하지도 않다. 현존은 정치적·사회적 인식과정을 통해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존은 구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현존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프리카의 미니버스 택시를 소개한다.

“올리브를 담은 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승객들을 잔뜩 밀어 넣고는 과적상태로 달리는 게 일상이다. 덥고 땀내 나고 불편하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사회성을 공유하는 현장이기도 하며, 최소한의 예의범절과 시민행동의 원칙을 모두가 존중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략) 여기에 사회적인 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진정한 상호주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공유요구에 더 가깝다. 새로운 승객이 올라타면 우리에게는 의무가 주어진다. 단지 나와 같은 요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의 공간은 포기해야 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68~69쪽)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의 ‘지옥철’, ‘만원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했을 뿐, 우리 대부분은 날마다 이렇게 타인과 사회성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때 ‘얌체’ 짓은 금물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므로. 저자는 이렇듯 일상에 실재하는 ‘현존’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전략을 찾아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회’란 무엇이며, ‘사회적 의무’란 무슨 의미일까?

퍼거슨은 “개인 간의 단순한 집합이나 연합이 아닌, 구성원들이 구속력 있는 의무로 묶인 특정한 종류의 집단적 자아”가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사회라는 최소한의 개념이 없다면 ‘사회적 의무’라는 것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의무는 한마디로 ‘지분(몫)을 나누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힌다.

“‘지분을 나누는 것’이 환영할 만한 유토피아적인 이상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존함으로써 가능해진 지분 덕에 치열한 경쟁이 촉발되기도 한다. 진흙탕 싸움을 벌인 끝에 대부분의 경우 마지못해 강제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여기서 공유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공유요구’의 결과다. 종종 한심할 정도로 작은 ‘지분’은 인심이 좋아서 주는 것이 아니다. 인심은커녕 현존하는 자체로 지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명확한 비유토피아적 정치과정에 대한 내 접근방식은 보편적인 공유가 영원히 행복한 세상의 하늘에 그려놓을 상상 속의 파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84쪽)

국민국가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감각 확장하기

여기서 “우리는 아직도 사회는 회원제 조직이라는 19세기의 낡은 생각과, 사회를 규정하고 범위를 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국민국가라는 전제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개념은 사회과학이 태동한 핵심이며, ‘사회보험’, ‘사회복지’, 여타 ‘사회정책’의 기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지금, 권한을 부여받은 국민국가 구성원의 집합체와 ‘사회’가 같은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실패를 겪어야 했다”(48쪽)라는 저자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심각한 저출생과 인구절벽에 골치를 앓고 있는 한국의 경우, 취업, 이민, 유학, 관광 등의 이유로 주위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수가 전체 인구의 약 5퍼센트에 달해 있고, 앞으로도 그 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포용이 아닌 배제의 속성을 가진 국민국가의 ‘성원권’이나 ‘시민권’이라는 틀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우리와 매우 가깝게 있는 어떤 사람들이 관념 속의 선 너머에 있다는 이유로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면, 선 안쪽에 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인 경우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혐오에 대해 연구해온 민속지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기록해왔던 일종의 사회적 사각지대 때문에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89쪽)라는 저작의 지적을 진지하게 되새겨야 한다. 이제는 웬만한 식당이나 가게에서 외국인이 주문을 받는 게 아주 친숙한 일상이지 않은가. 저자는 현존에 기반을 둔 정치가 강화되고 확장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경우는, 직접적이든 아니든, 우리의 사회적 의무에 대한 인식이 더 강력하고 탄탄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너무나 오랫동안 사회와 의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지배해온 기존의 국민국가 프레임을 붕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경로를 약간만 바꾸면 지금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어 보이는 정치적 결과물을 얻을 기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머리말에서 언급한 전 지구적 기본소득과 같은 전 세계적 재분배 제도가 거기에 포함될지 모른다.”(96쪽)

물론 저자 스스로 “너무 낙관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다음에는 무엇이 올지 알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고, 가능한 미래의 경로를 그려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인 동시에 ‘현존’과 사회적 의무에 대한 실질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향후 새로운 분배정치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포용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해제를 쓴 연세대 조문영 교수의 평처럼 “전염병, 전쟁, 기후재난 등 예측불허의 행성적 위기에도 생존과 안전을 향한 고투가 개인과 가족으로 내파內破될 뿐인 시대를 감당하기 힘든 독자라면, 이 책은 충분히 의미 있는 위로와 자극이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라는 감각을 온몸으로 체득해온 한국인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의 소중함과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우리’라는 감각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성원권의 범위와 정치적 연대의 폭을 넓”혀가는 과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조만간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현실화하면서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내 코가 석 자’라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