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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2024) -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선언

동방박사님 2024. 8. 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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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기후위기를 야기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현재의 기후재난을 극복할 수 없다!
12년 만에 우리 사회에 다시 소환된 기후·생태문제의 발본적 해결책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붕괴’가 시작되었고, 기후‘재난’은 지구의 일상이 되었으며, 인간에게 남은 일은 이 붕괴를 멈추고 위기를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재난에 적응해 살아남는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도 들려온다. 이에 여러 국제기구와 ‘중심부’ 국가는 탄소중립, 그린뉴딜,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등의 대응책을 내놓았고, 기업 또한 RE100 캠페인, ESG경영 등을 실천하겠다고 천명했다. 시민들은 정부의 정책과 권고에 따라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분리배출 철저히 하기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 지구적 총력전을 벌인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매 여름마다 살인적인 폭염 기록은 새롭게 갱신되고,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무색하게도 지난 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기업들은 생산방식은 그대로 둔 채 에코백과 텀블러 등 ‘친환경 굿즈’만 양산하며, 얼마 전 정부는 신규 택지 개발을 위해 서울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오염수는 수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다에 방류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회를 가진 마지막 세대’라는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도 변화가 지지부진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다른 걸 시도해야 한다. 기후·생태위기에 근본적인 돌파구가 되어줄 머레이 북친의 사상을 지금 한국에 다시 불러온 이유다.

미국 생태운동의 선구자인 북친은 ‘녹색 자본주의’같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의 ‘친환경’ 조치들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사회와 정치 체제에 대한 개입 없이 개인들의 일상적 실천만으로 생태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 대해서도 반대를 표한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기후·생태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기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문제다. 북친은 ‘사회적 생태론’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통해 자연을 향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는 근본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위계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논한다. 따라서 기후·생태문제의 해결은 이 위계구조가 사라져야만 가능하며, 그를 위해서는 지금의 정치체제를 바꾸어 중앙화된 국가나 자본의 권력을 시민들이 나눠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처럼 도발적이고 발본적인 북친의 사상이 담긴 글 네 편을 엮었다. 이 책은 2012년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돼 우리 사회의 생태주의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온 바 있다. 이를 그 후 12년 만에 복간하며 번역상의 일부 오류를 바로잡고 옮긴이의 주석을 추가해 설명력을 더했으며, 정치학자이자 기후정의운동 활동가 채효정의 ‘추천의 글’을 덧붙여 현재 기후·생태운동 담론에서 북친의 사상이 지닌 의미를 논하고자 했다. 기후재난의 시대에 현재적으로 다시 읽는 머레이 북친은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의 기후 대응에 꼭 필요한 논점과 영감을 전달해줄 것이다.

목차

서문 (데비 북친)

사회적 생태론이란 무엇인가?
고도자본주의 시대의 급진 정치학
반동의 시대, 사회적 생태론의 역할
코뮌주의 프로젝트

옮긴이의 글: 한국 사회가 머레이 북친을 만날 때
추천의 글 (채효정, 정치학자·기후정의운동 활동가)

저자 소개 

미국의 사회이론가, 정치철학자, 사회운동가. 1921년 뉴욕의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모로부터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을 들으며 성장했다. 공장노동자로 일하던 10대 때부터 노동조합운동에 참여했으며 이후로도 노동운동, 반핵운동, 공동체운동 등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에 헌신한다. 특히 생태운동의 선구자였던 북친은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통해 자연과 인간 모두를 착취하지 않...
 
역 : 서유석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헤겔철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고 마르크스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 프리부르대학교 동유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수학했으며 호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범한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역임했으며, 특히 시대와 호흡하려 애쓰는 철학자들의 공동체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학술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자치와 연...

책 속으로

우리의 상식적 자연관은 정적(static) 자연관이다. 산 정상에서 보이는 전경과 같은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경치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매 순간 특정 장면에 사로잡힌다. 하늘로 치솟는 매, 높이 뛰는 사슴, 낮게 엎드리는 코요테. 그런데 이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그 대상의 물리적 동작에 대한 단순한 동학이고, 이것도 따지고 보면 눈앞 전경에 대한 정적인 이미지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정적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이런 순간들이 ‘영원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비인간 자연은 그런 정적인 전경 이상의 것이다.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우리는 자연이 기본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은 아주 다양한 것을 산출해나갈 뿐 아니라 극적이기까지 한 발전 과정이며 영원히 변화하는 현상임을 알게 된다.
--- p.23~24

인간은 “자연의 외계인”이므로 “그 어디에서도 환경 세계와 ‘함께’ 진화할 수 없다”는 캐나다의 생태학자 닐 에번든(Neil Evernden)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또 지구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인간은 “지성을 갖춘 벼룩”에 불과하다는 가이아 이론가들의 주장도 말이 안 된다. 인간과 자연 진화를 분리하는 이런 주장들은 설득력이 없으며 피상적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잠재적으로 인간을 증오한다. 인간은 고도의 지성과 뛰어난 자기의식을 갖춘 영장류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인간은 진화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 p.25~26

자연을 지배해야겠다는 ‘생각’은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 사회의 지배구조는 인간이 자연계의 존재들 또한 위계적인 연쇄 구조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런 자연관은 역동적인 진화의 관점, 즉 생명계가 주체성과 유연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관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적인 자연관이다. (…)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자연 지배’의 관념은 계급과 위계구조가 없는 사회가 도래해야만 극복될 수 있다. 계급과 위계구조의 존재는 공사 영역에서 지배와 복종을 야기하고 세계를 착취의 대상으로 사물화한다. (…) 경제적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 위계질서로 구조화된 사회가 종식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p.46~47

정치활동의 물리적 공간은 거의 언제나 도시나 마을, 즉 지역자치체였다. 정치가 가능하려면 도시의 규모가 적당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인의 생각에 따르면, 도시(폴리스)는 너무 크면 안 됐다. 너무 클 경우 면 대 면 토론이 불가능하고 시민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결코 고정되거나 불가침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기준 덕에 도시는 국가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적당한 크기지만 결코 작지 않은 폴리스는 시민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공적 사안을 처리했다. 대표자 선출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으나 가급적 최소화했고 그 관리를 철저히 했다.
--- p.82~83

코뮌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회에 참석하는 다양한 직업의 노동자들이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가령 인쇄공, 배관공, 주조소 노동자로서 참가해 자기 직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민회에 참여한다. 그러니까 직업은 특정 직종의 노동자지만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시민으로 참가한다는 말이다. 시민은 특수한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자, 전문가, 개인이라는 편협한 신분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자치체의 삶 자체가 이런 시민을 키우는 학교 역할을 한다. 새로운 시민을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을 교육한다. 결국 민회는 의사결정 기구일 뿐 아니라 복잡한 공동체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다루며 사람들을 시민으로 키우는 교육의 장소이다.
--- p.150~151

분명히 강조하건대 근현대 역사 시기의 모든 위대한 혁명에는 도시 시민의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급진주의적 역사 서술은 계급 반목만을 강조해왔다. 계급 대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존의 급진주의적 역사 서술은 혁명에서 도시 시민이 한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은폐해왔다. 1640년대의 청교도혁명은 런던시라는 혁명의 장소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파리시를 빼고 프랑스혁명을 논할 수 없고, 페트로그라드시에 주목하지 않고 러시아혁명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최고의 혁명 거점이었던 바르셀로나시를 빼고 1936년 스페인혁명을 논할 수 없다. 혁명에서 도시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혁명이 거기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가 중요한 것은 혁명 대중이 결집하고 토론을 벌이는 다양한 통로가 다름 아닌 도시에 의해서 마련되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 자체가 정치적인 실재다. 도시의 전통이 혁명 대중을 키워내고 도시의 환경이 대중의 혁명 사상을 촉진한다.
--- p.155~156

출판사 리뷰

생태운동의 선구자, ‘사회적 생태론’의 창시자 머레이 북친이 전하는
인간과 타자의 관계를 다시 묻는 도발적 생태정치학


머레이 북친은 20세기 후반에 활발히 활동했던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생태주의자다. 그는 생태운동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운동에 앞장선 선구자로, 당대의 여러 생태주의 노선과의 비교 속에서 ‘사회적 생태론’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구축했다. 이 관점은 오늘날에도 생태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생태운동가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북친은 생태주의적 대안 사회체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슴의 장단을 종합한 ‘코뮌주의’를 구상해낸다.

이 책은 그러한 북친의 사상이 드러나는 네 편의 글을 엮은 것으로, 북친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어렵지 않게 그의 논의를 소개해준다. 북친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지금의 기후위기 대응책들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누군가는 국가와 기업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시민들이 충분히 경각심을 갖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북친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의 ‘친환경’ 조치들로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사회와 정치 체제에 대한 개입 없이 개인들의 일상적 실천만으로 생태문제가 해결될 리도 만무하다고 설파한다.

즉 지금 행해지는 방식 모두 기후·생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북친은 그보다 더 깊이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바로 인간과 자연이 관계 맺는 방식, 더 나아가 인간이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방식을 재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한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생태적 실천은 “심각한 사회병리 자체가 아니라 사회병리의 증상들에만 주목할 뿐이고 그 결과 그들의 노력도 근원적 치유와는 동떨어진 피상적인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한 사회적 생태론에 따르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는 인간들 사이의 위계에서 온다. 즉 사람들 사이의 우열을 가르는 위계구조의 존재가 다른 인간을 지배·억압·착취할 수 있게 하는데, 인간이 자연 또한 이런 위계적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연을 지배하고 수탈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친은 생태문제의 해결도 먼저 인간 사회의 위계구조가 사라져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생태문제가 탈정치적이고 ‘중립적인’ 대응이 아닌 사회·정치적 운동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보며 ‘생태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장에도 국가에도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북친이 문제의 핵심을 ‘위계구조’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가 도달하는 대안 또한 발본적이고 도전적인 것이 된다. 마르크스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은 사상가답게 북친은 무한한 성장과 착취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자본은 자연을 수탈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나 한때 아나키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그렇다고 자본을 통제할 강력한 국가 권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현실에서 수없이 목격하듯 국가 또한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으며 민중의 삶을 살피지 않는 ‘권력을 위한 권력’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도 국가에도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막다른 길에서 활로를 찾다보면 우리는 북친이 제안한 ‘코뮌주의’ 기획의 진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북친은 사람들 사이의 위계와 지배를 없애는 방법은 한 사람, 한곳이 소유하는 집중화된 권력을 시민들 모두가 나누는 것이라고 보며, 그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체제로 코뮌주의를 제시한다. 그는 이 대안사회 구상을 ‘리버테리언 지역자치주의’로 풀어 설명하는데, 중앙화된 권력을 지역의 민회, 즉 코뮌이 나눠 가지고, 그 안에서 시민들이 직접 공동체의 자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좌우할 공동체의 중대한 사안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이 정치체제는 우리 개개인에게 자유롭고 성숙한 정치적 주체가 되어 자연과 사회를 가꿔나갈 것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구상이다.

그럼에도 이는 중앙화된 권력을 그대로 둔 채 그것을 누구에게 이양하느냐, 그 권력에게 어떤 규제와 통치를 요구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 자체를 문제시하며 그것을 어떻게 나누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대담하고 의미 있는 기획이다. 왜냐하면 북친이 보기에 권력, 즉 위계구조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착취는 물론이고 자연을 향한 착취도 절대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통합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생태문제와 사회문제가 범람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아이디어를 전해준다.

‘추천의 글’에서 지금의 기후·생태 의제와 북친의 사상을 직조하며 북친을 현재화하고자 한 정치학자 채효정은 “총체적 무질서가 불러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이 차라리 질서라도 있었던 전체주의와 (독재국가와 복지국가를 모두 포함한) 사회국가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기후재난 앞에서 가중되는 불안과 공포가 기후 파시즘과 기후 리바이어던을 용인하는 위험한 시대에, 자유의 개념을 다시 정치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주의적 자유의 개념에 갇히지 않고 민중의 자유, 정치의 자유를 탈환하기 위해, 어떤 자유를 거부하고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를 논쟁하며 자유의 담론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친이 고민했던 ‘리버테리언 코뮌주의’는 지금도 중요한 쟁점을 제시하며, 더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확장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는다“고 평하며 이 논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이처럼 지금 우리 시대에 당도한 북친의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의 기후·생태문제에 꼭 필요한 논점과 영감을 전달해줄 것이다.

추천평

북친이 사회적 생태론을 제기하게 된 시대적 상황이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운동과 생태운동의 지형 속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녹색운동이 극우부터 극좌까지의 스펙트럼을 전부 아우르는 현재에 ‘녹색’이나 ‘에코’라는 말은 그것이 태동했던 시기의 급진적이고 저항적인 상징성을 담지하지 못한다. 지난 총선에서 한국의 ‘기후정치’는 극우정당, 신자유주의 정당, 진보정당의 기후정치인을 모두 ‘기후정치인’으로 호명했다. 이러한 시대에 ‘기후정치’나 '생태정치’라는 깃발을 드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어떤 생태주의 노선과 입장을 가지고, 어떤 생태정치의 길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20세기를 경과해온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은 오늘 우리가 검토해보아야 할 중요한 쟁점을 제공하는 철학적 노선이며 정치적 입장이다. (…)

한편으로는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로 국가 중심적인 체제가 재구축되는 시점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생태주의 운동을 정치적으로 다시 급진화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생태위기를 탈정치화하려는 반정치적 생태주의의 반동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 북친이 제공한 쟁점들은 여전히 유의미한 현재성을 지닌다. 요즘은 사상을 좇는 데에도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새로운 사상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 누군가에게는 이 책도 지나간 시대의 사상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봉착한 문제를 먼저 사유했던 이들의 궤적을 따라가며 오늘의 시간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중요한 침로가 되어줄 것이다.
- 채효정 (정치학자·기후정의운동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