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한일관계사 연구 (전공분야>책소개)/8.일제강제동원

팩트로 보는 일제 말기 강제동원 2 (2024) 미쓰비시 사도(佐渡)광산의 조선인

동방박사님 2024. 8. 1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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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팩트로 보는 일제 말기 강제동원’ 시리즈의 제2권은 미쓰비시三菱 광업 사도佐渡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광부에 관한 모든 자료를 통해 사도광산이 우리의 역사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풀어낸 책이다.

사도광산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문제는 2021년 12월,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 후보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한국 사회에 알려졌다.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은 2006년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일본 문화청에 '금과 은의 섬 사도 - 광산과 그 문화'라는 주제로 잠정목록 제안서를 신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일본정부가 2010년 ‘금을 중심으로 하는 사도광산의 유산군’을 잠정목록에 올리면서 세계유산으로 향한 걸음은 빨라졌다. 그러나 위원회 조사과장 재직 보도자료를 통해 ‘강제노역 작업장’임을 제기한 후 잠잠해졌다. 이 점은 2015년 7월 7일자 『니가타일보』 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18년에 내용을 변경축소한 후 2021년에 다시 등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제하려 하는데, 왜 당사국도 아닌 한국이 문제를 제기하는가. 500여 년에 달하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 가운데, 침략전쟁과 무관한 에도시대의 역사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가 ‘역사전쟁’을 선포하며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목적을 노골적이고도 공개적으로 드러내 유네스코 정신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광산은 1492년 발견 이후 임진왜란 등 침략전쟁 군자금과 에도 막부의 통치자금을 조달한 탐욕의 땅이었다. 사도광산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이며, 이 시기에 동원한 조선인은 최소 1,500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은폐한 채 일부의 역사만을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조선·석탄산업’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세계를 상대로 한 약속을 어겼다. 2015년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에 세계시민들이 완전한 역사full History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참다 못한 세계유산위원회가 2021년 제44차 총회에서 결의문을 통해 개선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2023년 현재까지 여전히 모르쇠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일본이 사도광산의 일부 역사만을 등재하겠다고 나선 것은 세계시민이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반역사적 처사이다.

일본의 행태를 바로 잡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도광산의 완전한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도대체 사도광산이 어떤 역사를 가졌으며, 한국사와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아는 일이다. 『팩트로 보는 일제 말기 강제동원2-미쓰비시 사도佐渡광산의 조선인』은 사실의 무게를 느끼기 위한 도구 가운데 하나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해 현재까지 발굴한 모든 자료를 수록했다. 현장을 찾아 촬영한 사진도 넣었다.

“강제로 끌고 간 공식 문서가 있다면 내놓으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의 강제성 문제를 둘러싼 공박에서 늘 빠지지 않는 가해자 측의 그럴 듯 한 주장修辭이다. 그들은 ‘실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피해자는 공적 문서를 남길 수 없다’는 점을 약점으로 삼고 공격의 빌미로 활용한다. 팩트를 내세우며 저지르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렇다. 피해자는 공적 문서를 남길 수 없다. 가해의 문서는 가해자가 생산했고, 가능하면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해자 측이 만든 공식 문서를 발굴하지 못했다 해서 피해의 역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남긴 문서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강제동원의 피해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다양한 성격의 사료를 분석한다 해도 역사기술에서 주관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역사학자는 주관적 객관성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과 시각으로 사료를 대한다면 자의적 해석을 낳게 되고, 그 결과물은 왜곡과 선동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몇몇 역사부정론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나선 일본 정부. 일본 정부와 역사부정론자들의 역사왜곡을 막겠다고 나선 이들, 모두가 범할 수 있는 오류이다. 의도가 공익적이므로 또는 악의적 의도가 없으므로 등등의 이유로 덮어주는 것도 ‘우리 안의 오류’에 동참하는 일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만이 ‘의도치 않은 공범’을 피하는 길이다.

목차

책 펴내는 글

1. 조선인을 강제동원하라 - 모집, 이입, 징용

1) 일본인 대신 조선인을 투입하라
2) 조선인 광부 300명을 데려오라
3) ‘전사’로 치켜세웠지만
4) 조선인 1,519명을 동원했다는데
5) 1941년에 징용 가던 청년들
6) 재단법인 중앙협화회 통계

2. 강제노동의 현장

1) 조선인 숙소 : 상애료
2) 조선인 숙소 : 임시 숙소와 금강료
3) 박순이 할머니가 그린 조선인 사택
4) 조선인 광부는 무슨 일을 했을까
5) 적국 미·영을 쳐부수기 위해 오늘도 증산에 힘써 주세요!
6) 신의 이름으로 강요한 강제노동
7) 경성광산전문학교 나카가와 젠타로의 사도광산 실습보고
8) 전선과 총후의 투혼을 일치시켜라!
9) 광부에서 군인으로, 다중동원
10) 기원제를 집행한 오야마즈미 신사
11) 입영을 위해 섬을 떠난 송병선과 임춘길
12) 삼거리 우동집이 지금도 그대로 있네
13) 광산으로 군공사장으로
14) 군 공사장에서 부상을 당한 조선인
15) 도중에 고향에 보내주기도 했지만
16) 진폐로 고통받는 광부들

3. 굴종하지 않는다!

1) 1940년 2월, ‘불온한 행동’을 한 조선인 40여 명
2) 1940년 4월, 조선인 광부 97명 중 97명이 일으킨 파업
3) 노무조정령 위반이라고?
4) 화태청 경찰서 수배문서에서 찾은 사도광산 조선인 광부
5) 148명의 조선인 탈출자
6) 1945년 6월, 사도섬을 탈출한 7명의 조선인
7)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 성공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탈출

4. 해방의 땅, 사도

1) 광복은 맞았건만, 여전히 머나먼 고향
2) 끌고 올 때는 득달같더니 집으로 보내는 책임은 없다고?
3) 나라를 찾은 지가 언제인데
4)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왔다가?
5) 귀국선을 타지 못한 조선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6) 조국이 해방되었는데, 왜 귀국선 대신 사도행 배를 타야 하나!

5. 사도광업소가 생산한 자료

1) 「반도인 노무자에 관한 조사보고」(1940)
2) 「반도노무관리에 대하여」(1943)
3) 『사도광산사 고본』(1950, 미출간)

6. 피해자가 소장한 기록

1) 김종원이 남긴 자료
2) 눈을 잃고 얻은 기록

7. 피해자의 목소리

1) 임태호의 탈출기
2)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들

8. 공탁금 관련 자료

9.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명부


1) 이름을 기억하라! -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름
2) 국가기록원 소장 강제동원 관련 명부철
3) 「순직산업인명부」에서 찾은 사도광산 사망자 9명
4) 전근자 관련 명부
5) 사도시사도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명부
6) 「조선인 연초 배급명부」
7) 「조선총독부 작성 지정연령자 연명부」
8) 위원회 피해조사 명부
9) 대일민간청구권보상금지급결정대장(피징용자)
10) 지금까지 찾은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름

10. 피해자를 찾아 떠난 길 - 일본 현지 시민단체가 생산한 자료

1) ‘강제징용 한국인 니가타현 조사회(코리안강제연행등니가타현연구회)’
2) 「사도아이카와미쓰비시광산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조사에 대한 보고」에 담긴 장명수의 현지조사 기록
3) 장명수가 만난 사람, S(윤, 스기모토)

11. 후생연금반환운동

1) ‘잇는 모임’을 발족해 조사를 이어가자!
2) ‘잇는 모임’이 전개한 후생연금반환운동

12. 일본 현지 시민들의 기억하기

1) 소겐사?源寺의 공양탑, 그리고 사도광산 노동자 추도식

저자 소개 

저 : 정혜경 (鄭惠瓊)
1960년 서울 출생. 서울시 문화재 위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식민지 시기 재일한인의 역사를 주제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구술사(Oral History)를 시작했고, 1999년부터 기록학(Achival Science) 분야도 공부했다. 그간 단행본 12권(단독)과 논문 40여 편을 발표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