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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의 풍경 (2024) -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동방박사님 2024. 8. 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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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로 손꼽히는 신복룡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인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책 『해방정국의 풍경』(2024, 중앙북스)을 펴냈다. 본 도서는 이승만, 김구, 김일성, 박헌영 등 한국 현대사를 풍미하는 좌익과 중도,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일화와 사건을 상세히 소개하며, 이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한국 역사의 진실과 이면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목차

서문
글머리에

제1장 해방 : 망국의 책임을 묻지 않는 역사
제2장 제2차 세계대전 전시 회담 : 4대국 영수들의 꿈과 좌절
제3장 한반도 분단의 결정 과정 : 3성조정위원회의 젊은 장교들
제4장 신탁 통치 파동 : 돌아오지 않는 다리
제5장 중도파의 비극적 운명 : 송진우
제6장 장덕수의 소설 같은 삶
제7장 미소공동위원회 : 하지 장군의 꿈과 야망
제8장 여운형과 김규식의 꿈과 좌절(1) : 일제 시대와 해방정국
제9장 여운형과 김규식의 꿈과 좌절(2) : 좌우합작의 희생자들
제10장 이승만과 김구의 만남과 헤어짐(1) : 은원의 30년, 임시정부
제11장 이승만과 김구의 만남과 헤어짐(2) : 단독 정부를 둘러싼 갈등
제12장 백관수 : 한 애국자의 얼룩진 삶
제13장 친일 논쟁 : 그 떨쳐야 할 업장
제14장 박헌영 : 한 공산주의자의 사랑과 야망
제15장 김일성 신화의 진실(1) : 청년 마르크시스트의 탄생
제16장 세 번의 비극(1) : 대구 사건
제17장 남북협상(1) : 김구와 김일성의 다른 계산
제18장 남북협상(2) : 돌아오지 않은 사람, 홍명희
제19장 남북협상(3) : 돌아오지 않은 사람, 백남운과 이극로
제20장 한숨 돌려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
제21장 세 번의 비극(2) : 제주 4·3 사건
제22장 세 번의 비극(3) : 여수·순천 사건
제23장 김일성 신화의 진실(2) : 한국전쟁
제24장 한국전쟁의 미스터리 : 미국의 함정이었나?
제25장 맥아더 : “미국의 시저”
제26장 자식을 가슴에 묻은 모택동
제27장 휴전 회담(1) : 후회하지 않는 전쟁은 없다
제28장 휴전 회담(2) : 밀사들의 막전 막후
제29장 휴전 회담(3) : 북방한계선(NLL)의 실체
제30장 죽산 조봉암의 해원
제31장 통일 논의를 둘러싼 허구들
제32장 무엇이 통일을 가로막는가?
 

저자 소개 

저 : 신복룡 (申福龍)
정치학자이자 인물 연구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同) 대학원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중앙도서관장, 대학원장, 석좌교수(1979~2012)를 지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1),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의 객원 교수(1985~1986)를 지내고, 독립유공자서훈심사위원(장)(1999~2023)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 : 1943-1...

책 속으로

우리는 해방정국의 갈등을 설명하면서 좌우익의 갈등이 비극을 낳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좌익 내부의 갈등과 우익 내부의 갈등이 좌우익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고 더 적의(敵意)에 차 있었으며 잔혹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해방정국을 더욱 비극의 길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몽양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해방정국의 희생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우익은 우익의 손에 죽었고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안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려는 극단적 도그마와 성숙하지 않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해방정국에서 이념이나 노선의 문제는 당사자들이나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과장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마와 같은 해방정국에서 “신탁 통치의 문제를 가슴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냉정과 이성으로 지혜롭게 고민하자”고 주장하던 고하나 설산이나 몽양은 좌우의 십자포화로 말미암아 희생되었다.
--- p.80~81

지금 일부 김구를 숭모하는 사람은 “이승만이 김구를 죽였다”고 내놓고 말하고 있고, 이에 질세라 이승만 측에서는 “김구가 장덕수와 여운형을 죽인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진실을 밝히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암살의 배후란 본디 희미하며, 이와 같은 갈등과 마찰이 서로에게는 상처를 주며 누군가에겐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덮어야 한다.
--- p.90

격동기의 정치적 양상은 “질주”이다. 그것이 오른쪽으로 치닫든 왼쪽으로 치닫든, 격정의 소음 속에서 민중에게 호소하려면 먼저 크게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태를 관망하며, 야심을 버리지 않고 처신을 조심하는 무리가 있는데, 해방정국에서 그들을 중도파라 부른다. 온건파(Moderate)라는 용어는 들어봤지만, 중도파(Middle-of-the-Road)라는 용어에 생소했던 미군정은 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무리”(wobbler)인가 의심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우선 미국인들이 보기에 저들이 “뻘갱이”(pinko)인지 “퍼랭이”(blue)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낮에 보면 퍼랭이 같고 밤에 보면 뻘갱이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했다.
--- p.115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과 김구가 갈등하게 된 첫 번째 사건은 통속적이게도 돈 문제였다. 이승만이 상해에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한 3개월 동안 임정이 그에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독립운동 자금의 문제였다. 이승만도 그 문제에 관해서는 책임질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하와이 교포와 미국 동부 교포들의 헌금이 있었으나 “푼돈” 정도에 그쳤고, 이승만 자신도 생활이 여유롭지 않았다.(서재필의 증언) 그가 임정을 도와준 것은 공식적으로 200달러가 전부였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볼 때 그때의 1달러는 지금의 한화 2만 원 정도이다. 이것은 이승만이 임정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실은 그 자신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 임정을 재정적으로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p.141~142

김일성의 가짜 논쟁에 관한 나의 논문이 발표된 다음 나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의 소감에는 “아슬아슬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드디어 사고가 났다. 곧 “김일성은 가짜라고 일관되게 주장한 성균관대학교 이명영 교수는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다”는 구절이 필화(筆禍)가 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명영이 중앙정보부 요원이 아니었는데 일부 항간에서 오고 가던 이야기와 인터넷에 오르내리던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고 쓴 것이 나의 실수였다. 유족의 입장에서 볼 때 선대가 중앙정보부의 요원이었다는 기록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 p.246

일본이 전후 복구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개전의 보고가 태평양사령부에 전달되었을 때 맥아더의 부관들은 잠자는 그를 깨우지도 않았다. 전투는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M. Higgins, 1951, p. 15) 6월 29일 아침, 그는 수원(오산) 비행장에 도착하여 곧 한강 남쪽 연안에서 전선을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은 어찌 되나?”(“And what of Japan?” Reminiscences, p. 333)
--- p.395

남북한의 통일이 지연되는 것은 냉전의 잔재나 열강의 이해관계나 이념의 이질성 때문이 아니라 남북한 지배 계급의 의지박약과 이해관계의 상충 그리고 부패와 공의롭지 않은 경제 구조 때문이다. 부패한 정권이 통일을 이룩한 역사적 사례가 없다. 그러므로 정치와 경제가 이토록 부패한 상황에서 통일은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에 따르면, 국가사는 대체로 500년 동안의 통일 시대를 지속한 다음 100년의 분열의 시기를 겪었다. 바꿔 말해서 한국의 분단은 100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통일은 “문득”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 이는 체제 경쟁에서 남한의 승리나 북한의 붕괴에 의한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우발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 p.532

출판사 리뷰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해방정국 시기를 통해,
비통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거울을 다시금 비춰주는 책!

본 도서의 제목자로 쓰인 해방정국解防政局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림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다. 한국사에서는 보통 이 시기를 현대사로 간주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군정 기간(1945~1948)은 사실상 1907년부터 1910년까지의 일본의 통감(統監) 정치보다 더 자유롭거나 주권적인 국가가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4대 강국의 `해방을 시켜주지만, 독립을 시키지 않는다`는 확고한 정책 하에서 한국은 미국의 준식민지로 불리었다. 그러다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3개월 정도 `공화국 군대` 가 지배하던 시대를 맞이했고, 이는 중공군이 참전했다 물러난 `겨울 피난`(1·4후퇴)이 끝난 1952년 3월까지 계속되었다. 다시 대한민국은 주권을 찾았으나, 그 과정에서 일본, 미군정, 대한민국, 이른바 인민공화국(북한), 미8군 사령관(UN군 사령관)을 거쳐 다시 대한민국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통치권자가 여섯 번은 바뀐 셈인데, 저자는 현대사에 이렇게 팔자가 드센 세대가 일찍이 없었으며, 이 기간에 겪은 10년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소설이었고, 밤새 이야기를 해도 쉬이 끝내기 어려운 한국전쟁의 전말이라 이야기한다.

현재 팔순을 훌쩍 넘긴 저자는 지금껏 강의나 연구서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풀어놓는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결국 사람이 저지른 업보였고, 그 가운데 일부만을 우발이론(contingency theory)으로 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격동의 시대에 이념, 체제, 강대국의 입김이 세태를 좌지우지했을 수 있지만, 어느 시대이든 사람이 독립 변수였기에, 이 책은 바로 그 사람,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최근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024) 을 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당시의 생생한 상황과 이승만 대통령, 김구 등 당시 건국 1세대 인물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분석을 엿볼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승만과 김구는 현실 인식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김구는 민중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해 민중 봉기나 지지에 대한 국가 건설이 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윤봉길이나 이봉창 의사처럼 순교자적 희생정신으로 무장된 개별적 테러리스트에 의한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그를 테러리즘에 몰두하게 했다고도 전한다. 이는 김구를 숭모하는 무리에게는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분석이나, 저자는 테러리즘에 대한 학술적인 정의는 ‘자금이나 훈련이 부족해 조직적인 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략) 순교자적 우국심으로 무장된 개별적 투사가 적군에게 무장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중략) 적군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투쟁 방법‘을 뜻한다고 전한다. 또한 한국 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를 ’의열 투쟁’이라고도 일컫는데, 본질적으로 테러리즘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는 흥미로운 의견도 덧붙이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2024)에는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라며 반문한다. 역사에는 모든 정치인이 과오와 공덕을 함께 이루었으나, 그렇다고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보다 지금 와서 이승만이나 김구의 숭모자들이 해야 할 일은 누구의 죄를 묻기보다는 양쪽 후손들이 먼저 화해하고 좌익에 대해 항거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승만과 김구의 기일에 서로 초대장을 보내고, 그 답례로 조화를 들고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저자의 소망이다.

십수 년 전, 매체 사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2025년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출간되다

이 책은 본래 2015년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글을 엮어 2017년에 1판이 출간되었으며, 본판은 절판 상태였는데 이번에 중앙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저자는 연재를 진행하던 당시 좌우익 모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고 전한다. 우익들은 저자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였고, 좌익들은 보수 신문에 기생(寄生)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대구 사건과 여순 사건, 제주 4·3사건, 그리고 김일성(金日成)의 항일 투쟁과 가짜 논쟁의 진위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룰 무렵 『주간조선』 데스크로부터 저자의 글이 『조선일보』의 입장과는 달리 다소 좌경의 색채를 보이고 있으니 용어들을 수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연재는 끝을 보지 못하고 17회로 마감됐다.

2025년은 곧 해방 80주년을 맞는 해이다. 2025년을 앞두고 저자는 논란이 많았던 원고를 새롭게 더중앙플러스에서 온라인상으로 연재하고, 또 책을 다시 펴낼 기회를 얻게 됐다. 이 책은 역사학의 주류 논쟁에서 조금 비켜 서서 교과서나 연구서 또는 강의실에서 말할 수 없었던 해방정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해방정국의 공부에 몰두하는 것은 대단한 고뇌의 결과도 아니고 이념의 경도나 편들기도 아니며, 그저 담담하고 소박한 소망, 곧 왜 해방정국은 파열했는가에 관한 질문일 뿐이라 이야기한다. 한국 5,000년 역사에서 망국과 일제,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과 지금의 암울한 현실의 밑바닥에는 분단이라는 업장(karma)이 깔려 있다고 확신하기에 염력(念力)도 없이 이 화두를 잡고 몇십 년을 보냈다고 한다. 저자는 해방과 분단 80년을 앞둔 현재의 상황에서 그 시대를 돌아보는 것은 그때나 이제나 역사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그래서 그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려는 소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전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해방정국 시기를 제대로 돌아보며,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나름대로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