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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2024)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동방박사님 2024. 9. 1.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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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중 여성잡지의 시원, 《신여성》 발간 100년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
한순간 경성 거리를 점령했다 사라진 ‘그 언니’들의 투쟁기
*정희진 강력 추천!
“이러한 작업은 여성의 역사뿐 아니라 남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명의 선구자적 역할에 충실하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일군의 여성이 거리에 등장한다. 수백 년 동안 집 안의 존재로서 목소리조차 울타리 밖으로 넘지 말아야 했던 여성들이 밖에, 거리에 등장하자 하나의 사건이 된다.”(7쪽) 단발과 뾰족구두, 교육받은 여학생과 신 직업부인. 근대 경성의 거리에 불현듯 등장해 기득 남성 세력을 아연 긴장시켰던 ‘신여성’에 대해 우리가 그리는 초상화다. 하지만 이것은 이 미스테리한 집단의 모든 면을 충실히 설명하고 있을까? 지금껏 신여성에 관한 논의는 나혜석, 윤심덕 등 소수 엘리트 신여성에 한하거나 혹은 그녀들의 개성적인 외양을 평가하는 데 그쳤다. 이 책의 초판 《신여성: 매체로 보는 근대 여성 풍속사》는 대중 여성잡지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여성》 속 글과 사진을 분석하여, 위 같은 당대 담론의 한계를 넘어 ‘신여성’ 집단을 다층적으로 복원하고자 시도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때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왜 우리는 그들의 이후 행보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을까? 잡지 《신여성》의 발간 10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펴낸 이유도 이 새로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함이다.

초판 출간 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담론은 부지런히 변화하였고, 또 가려져 있던 여성의 역사 또한 다채롭게 드러났다.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낡은 논의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현재 시점에 맞는 질문을 새로이 던지고 걸맞은 사진과 글을 덧붙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100년 전 ‘그 언니’들의 투쟁기가 현재 여성들의 싸움과도 똑 닮아 있음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질문 아래 일군의 여성들이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기득 세력에 의해 강력한 ‘백래시’의 피해자가 되며, 다시 가정과 기존의 직분으로 회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세심히 발굴하여 펼쳐 보이는 데 집중했다.

결국 신여성은 화려한 도시의 모던걸, 거리의 침입자에서 ‘스위트 홈’의 파수꾼, 똑똑한 어머니, 능력 있는 워킹맘이 된다. 왜 그녀들은 이처럼 ‘막힌 출구’를 향해 나아갔을까? 9인의 저자는 그들의 행보를 보고 배움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진짜 출구’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책은 정희진의 추천사처럼 “여성의 역사뿐 아니라 남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지만, “100여 년 전 우리 사회의 일상사, 정치경제, 문화에 대한 지식”을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와 재미를 담보한다.

“사회의 이중적 잣대, 강력한 여성혐오, 노동 기회의 원천 봉쇄 등으로 신여성은 ‘밖’에 자리하지 못하고 점차 도시의 거리에서 사라져갔다. 그 많던 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신여성》 읽기는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자, 100년 전 신여성을 통해 현재의 현실과 대결하는 일이다.”_머리말에서

목차

머리말 《신여성》과 신여성 ― 100년 전 그 언니들에게 말 걸기

1장. 모던걸이 온다

새로운 신분의 등장
모던하게 보이기
도회 문명을 향유하다
모던걸과 ‘못된 걸’

2장. 신여성 수난사

근대의 새로운 스타
색상자, 소문을 쫓아라
관음하는 미행자 은파리
신여성에 관한 우스개
사전과 어록, 정당화된 상징폭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온함
· 덧붙이는 글 1: 《신여성》의 어록, 십계명

3장. 문제적 기호, ‘여학생’

‘여학생’의 탄생
여성교육 속 ‘맨스플레인’
소녀를 보호하라
규율과 감시, 단속되는 몸
상상된 학교, 핍진한 현실
‘데마’를 뚫고 나아가라
· 덧붙이는 글 2: 1920년대 실제 여학생 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 덧붙이는 글 3: 왜 여학생 중에는 영어 이름이 많을까?

4장. 대중문화의 첨병이 되다

대중문화와 조우하다
여성팬, 그녀들이 위험하다
열망과 절망 사이에서 대중문화 즐기기
· 덧붙이는 글 4: 1927년 어느 봄날, 영화관을 찾은 ‘극다광 구보씨의 일일’

5장. 은밀한, 그리고 폭로된 성(性)

연애가 유행인 시대
성욕을 인정하라
제2부인, 경계에서 출현하다

6장. 과학, 또다시 어머니를 만들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
여성과 모성의 새로운 결속
신여성의 과학적인 어머니 노릇
막힌 출구, 어머니
· 덧붙이는 글 5: 봉근이는 어미의 손으로 죽였습니다

7장. 슈퍼우먼의 탄생

어쨌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직업부인의 공공성 문제
다시, 집으로…
날아라, 슈퍼우먼

부록. 《신여성》을 펼치다
《신여성》의 구성
《신여성》의 인쇄와 유통

저자 소개

저 : 김명임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소설 전공자로서 문학과 잡지 매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글쓰기 교재를 편찬하기도 했다. 지금은 인하대 프런티어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저 : 김민숙
시인을 꿈꾸는 느린 문학 연구자. 건국대학교에서 현대시를 전공했다. 이후 1920-30년대 한국시의 장소성을 연구해 왔으며, 건국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배화여자대학교 학술연구원으로, 한국 여성시의 트라우마와 장소성을 공부한다.
저 : 김연숙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교양 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고전 읽기: 박경리 『토지』 읽기’를 2012년부터 현재까지 강의해오고 있다. 매 학기 50여 명의 학생과 함께 『토지』를 읽으며 삶과 세상, 타인과 자기 자신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의 별을 찾아나가는 경험을 하도록 이끌었다. 강의 평점 최고점을 기록하고 600여 명 학생으로부터 최고 교양 강의로 손꼽힐 만큼 따스한 ...

책 속으로

근대도시의 신교육과 신문물을 열망하며 ‘밖’으로 나온 100년 전의 신여성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과 시빗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1920년대 초반 《신여성》의 첫머리에 실린 논평·논설류 기사들은 여성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거듭나야 함을 부르짖으면서도, ‘밖’에 등장한 신여성을 끊임없이 비난했다. (…) 사회의 이중적 잣대, 강력한 여성혐오, 노동 기회의 원천 봉쇄 등으로 신여성은 ‘밖’에 자리하지 못하고 점차 도시의 거리에서 사라져갔다. 그 많던 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신여성》 읽기는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자, 100년 전 신여성을 통해 현재의 현실과 대결하는 일이다. 출간 20년이 지난 이 책의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한 이유다.
--- p.10~12

《신여성》에서는 신여성의 소비가 모두 허영이자 사치로 비판받았다. “돈으로 된 세상” “배금이 유행”하여 “빈궁한 집안의 사람들이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갖춘 학자보다 수만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더 많아졌으니, 그렇게 타락한 시대의 죗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이 바로 신여성, 모던걸이었던 것이다. (…) 여성의 소비를 여성의 허영으로, 여성의 허영을 여성의 본능으로 만들어, 새롭게 등장한 모던걸을 구제불능의 정신적 미성숙자로 만들고 싶어 한 남성의 욕망과,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를 통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자 한 여성의 욕망이 동시에 드러난다. 신여성의 모던한 치장은 그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신여성의 도시적 생활양식은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 p.61~62

〈색상자〉, 〈은파리〉, 갖가지 우스개, 사전, 어록, 십계명 등은 남성 시선이 작동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시선 속에서 여성들은 희화화되고, 조롱거리가 되며 이들을 단죄하고 계몽하는 공식적인 틀이 생성되어 간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러나 남성 지식인이 만든 여성 계몽 잡지 《신여성》은 신여성을 둘러싼 온갖 소문을 주워 담으며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함을 물론, 때로는 윽박지르고 겁주기도 했다. 동시에 ‘부적절한’ 신여성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새로운 지침으로 신여성을 계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행하게 만든 건 남성을 거슬리게 만드는, 신경 쓰이게 만드는, 불편하게 만드는 ‘신여성’의 존재였다. (…) 그녀들의 불온한 무게감을 감지하는 것이야말로 《신여성》의 페이지를 읽어내는 지금 우리들의 ‘시선’일 터이다.
--- p.97~98

19세기 말부터 여성들은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가고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사람다운 여자’로 자기 개성껏 사는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알려진 대로 최초의 성악가인 윤심덕은 현해탄에서의 정사(情死)로 생을 마감했고, 또 한 명의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이혼 후 극심한 빈곤 속에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 김일엽은 속세를 떠나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들의 후배, 송계월은 남성들의 ‘백래시backlash’에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단명했다. 우회로를 택해 가정학과 여성교육 분야에서 지분을 확보받아 살아남으려던 김활란 등은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어디에도 쉬운 길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성들은 살아남는다. 여성들은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 p.135

조선의 근대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만한 세력으로 등장했던 신여성은 대중문화의 장에서 적극적인 수용자가 되고자 했던 초창기부터 타락하고 위험한 존재, 잠재적 범법자로 비난받았다. 그녀들의 재기발랄함과 자유분방함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 병리적 현상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교양이나 고상한 취미 등의 코드와 연결되면서 적극 권유되고 유도된 신여성의 대중문화 향유 방식은 통제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 그러나 여성들의 욕망을 포획하고자 하는 제도와 담론의 촘촘한 그물망에도 불구하고 신여성들은 끊임없이 그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스스로를 ‘팬’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한 일군의 여성 향유층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한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유행가 가수와 배우의 사진을 모으며 ‘스타’를 동경했다. 더 나아가 몸소 자신이 스타가 되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 p.171~172

당대 여성들에게 ‘연애’ 즉 ‘사랑’은 인습에 의해 억눌렸던 자기 존재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도이자 해방처였다. 신여성들은 ‘연애’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온전하게 자신이 하나의 인간 존재로 존중받길 원했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표현된 성 담론은 그들이 자신을 하나의 욕망을 가진 존재로 자각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는 당대로서 위계화된 성적 권력 구도를 위협하는 파격적인 관점이었다. 그런 만큼 이들의 ‘사랑’과 ‘욕망’이라는 관념은 당대 사회에서 늘 ‘정조’라는 결계로 단단하게 결박되어야 했다.
--- p.222

여성의 공적영역 진입이 매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에서 ‘어머니’라는 역할은 신여성에게 자신의 가치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여성은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을 길러내는 막대한 책임을 담당함으로써 조선의 당당한 구성원이란 존재감을 획득할 수 있었다. (…) 그러나 《신여성》의 새로운 양육법은 실천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고, 여성에게 ‘모성됨’은 버릴 수 없는 직분으로 강요되었다. (…) ‘아동’만 있고 ‘여성’이 없었던 《신여성》의 과학적 양육법은 신여성에게 ‘막힌 출구’나 다름없었다. (…) 가정이 ‘스위트’하게 되면 될수록 여성은 어머니로, 아내로, 주부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스위트 홈이랑 고립된 섬에 갇히고 만다.
--- p.248~249

자본주가 여성 노동자를 채용할 때 그는 한 사람의 노동자가 아니라 한 명의 여성을 뽑을 따름이라는 추악한 사실을 최정희는 훤히 꿰뚫어 봤다. (…) 실직한 남편 대신 보험회사의 외교원 일을 하며 한 달 벌어 겨우 30원도 못 되는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와중에 “생각하면 무서운 것은 이 세상의 이면”이어서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여위어가는 여자의 팔다리가 ‘에로’도 아니겠건만 엽기적인 세상 사람들은 여기에 눈을 뜨고 있으니” 개탄스럽다는 어느 여성의 목소리도 가위 충격적이다. 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그로부터 10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직업여성이 겪는 고초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 p.278

여성이 집 밖으로 나가 일하는 것 자체가 여성해방일 수 없고, 남성이 집 안으로 들어와 일을 해야만 자유든 해방이든 논해볼 수 있다는 인식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인식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 《신여성》에 소개된 1920-1930년대 ‘직업부인’들은, 슈퍼우먼이 되지 못할 바에는 직장 생활을 포기하라는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는 현대 직업여성들의 원형이다. 지나가는 길의 굴곡이 목적지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과정을 알면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신여성》을 읽는 오늘의 독자들일 것이다.
--- p.291

출판사 리뷰

100년 전 경성 거리를 진동케 한
불온하고 새로운 신분, ‘신여성’의 등장

여름이 다가오면 흰 구두와 양산을 사고, 주말이 되면 해수욕과 벚꽃 놀이를 즐긴다. 머리는 구부리거나 짧게 자르고 가끔은 테니스와 골프도 친다. 좋아하는 배우의 브로마이드를 사 모으거나 자유로운 데이트를 즐긴다. 놀랍게도 이는 지금이 아닌, 당대 신여성의 일과를 묘사한 것이다. X세대, MZ세대 등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현재의 세대론처럼, ‘신’ 세력들은 남들과 다르게 차려입고, 다르게 소비하고, 다르게 향유함으로써 ‘구’ 세력과 자기 자신들을 구분하며 등장한다. 이 책은 신여성이 어떠한 전략을 통해 근대 조선의 공적영역에 침입했으며, 새로운 존재 양식을 통해 자리를 보전하고자 했는지 당대의 잡지, 신문,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충실히 살펴본다.

1장 ‘모던걸의 등장’에서는 새로운 외양을 장착하고 도시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신여성의 존재감을 감지한다. 시스루, 단발 등 서양에서 수입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하고 ‘데-파트(백화점)’를 쏘다니는 신여성의 ‘모던하게 보이기’ 전략은 단숨에 그들을 근대의 스타로 만들었다. 이 장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신여성의 상징적인 외양부터, 신여성이 즐겨 먹던 호떡, 군고구마 등의 군것질거리, 근교 나들이와 스포츠 취미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활양식까지 상세히 담고 있다. 4장 ‘대중문화의 첨병이 되다’에서는 유행가, 영화 등 당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던 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집단보다 먼저 수용자와 생산자가 되기를 자임하면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쌓아나가던 신여성의 적극성을 보여준다. 5장 ‘은밀한, 그리고 폭로된 성’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자유로운 연애와 성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신여성의 행보가 눈에 띈다. 당대 뜨거운 논란거리였던 신여성의 ‘동성애’ 문제부터 불륜을 일삼는 ‘제2부인’ 문제까지 그들의 도발적인 욕망이 드러난다. 화려하게 꽃 피웠던 당대 신여성들의 문화양식을 생생한 자료를 통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미롭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여성의 일상과 문화를 묘사하는 잡지 《신여성》의 태도다. 《신여성》은 ‘신여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 신여성 주체의 매체였다기보다 그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 필자들의 매체였다. 따라서 《신여성》에는 그녀들의 불온한 행보를 비난, 조롱하고 억압하려는 시도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신여성을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못된 걸’이자 ‘정신적 미성숙자’라고 치부하지만, 신여성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온한 존재감을 통해 자기들의 아이덴티티를 세워나간다. 그 아슬아슬한 힘의 줄다리기를 살펴보는 것 역시 이 책이 주는 재미다.

조선판 ‘백래시’와 ‘맨스플레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온함을 견뎌내는 법

‘백래시(backlash)’는 진보적인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을 뜻한다. 이 책의 초판을 출간할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생소한 단어였지만, 페미니즘 담론이 부지런히 발전한 오늘에는 대단히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20년 뒤 다시 읽은 《신여성》에는 조선판 ‘백래시’라고 할 수 있는 강압적인 남성 세력의 반발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면 ‘신여성’은 누구였을까? 신여성은 ‘여학생’ ‘모던걸’ ‘현모양처’ ‘직업부인’과 어떻게 달랐을까? 신여성들이 자기 스스로를 정의하기에 앞서, 《신여성》의 남성 필자들은 그녀들의 불온한 존재감을 편리한 방식으로 소화하고자 했다. 신여성의 외양과 행동을 무차별적으로 비난, 조롱하고 그녀들의 의견에 반발하며 그 의도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지점에서 바로 조선판 ‘백래시’가 작동했는데, 이는 특히 책의 2장과 3장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2장 ‘신여성 수난사’는 ‘근대의 스타’ 신여성이 겪었던 각종 스캔들과 소문, 가학적 폭력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요즘 여성 연예인들이 겪는 고초와도 비슷해서 익숙하며 놀랍다. 신여성들의 ‘실체’를 밝혀내겠다는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저 미행자, 관음자의 위치를 즐기던 ‘은파리’와, ‘아님 말고’를 기치로 신여성에 관한 소문을 양산하던 ‘색상자’는 현대의 연예 뉴스와도 똑 닮아 있다. 신여성의 행동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그들의 언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던 다양한 코너가 있었는데, 이는 결국 새로운 세력을 향한 공포감을 달래려는 남성들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신여성》은 그러한 맥락에서 최전선의 전초기지였다. 그녀들이 겪었던 온갖 고초를 지금 여성들의 분투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3장 ‘문제적 기호, 여학생’에는 조선판 ‘맨스플레인’이 등장한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여성들이 잘 모를 것임을 전제하고,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를 나타낸 단어다. 3장에서는 새롭게 공적영역에 나타난 여성을 대상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체하며, 또는 꾸짖고 계도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남성 세력이 취했던 여러 전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여학생’을 순진무구하고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취약한 존재로 상정하고 행한 억압들은 놀라울 정도다.

결국 근대 조선의 남성들은 위에서 드러난 것처럼 각종 전략을 통해 신여성들을 거리로부터 내쫓고 가정이라는 익숙한 공간으로 혹은 경제전선이라는 새로운 과로의 현장으로 내몰고자 했다. 이에 저항하는 신여성의 분투와 쉽지 않은 싸움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싸움이 어떤 모양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신여성’이라는 매혹적인 오아시스를 지나
‘스위트 홈’이라는 고립된 섬으로...
과학의 발전과 경제적 자유는 신여성을 어떻게 억압했는가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여성학자 정희진은 자신의 저서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여성의 공적영역 진입과 사회진출이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과로’를 조장하며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당대 조선에 수입된 서양 사상들, 예를 들면 ‘과학’이라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도구와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진보는 신여성을 답답한 조선사회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 같았지만, 막상 《신여성》을 살펴보면 어떻게 이것들이 다시 신여성을 기존의 직분으로 회귀시켰는지가 자세히 드러난다.

6장 ‘과학, 또다시 어머니를 만들다’에서는 머리 틀고 구두 신는 신여성이 어떻게 다시 ‘오르간 타는 어머니’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과학’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상세히 증명한다. 가사노동의 과학화, 가정의 탈주술화는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현상이었고 조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신’ 세력이 되기 위해 과학적 지식과 태도를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모성과 여성의 결속을 새로운 스타일로 꾸며낼 뿐이었다. 이제 가정 내의 여러 문제, 예를 들면 아이가 아프거나 또래에 뒤처지거나, 출산과 임신 중 겪는 여러 어려움이 여성의 과학적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더욱더 가정에 충실히 복무하게 된다.

7장 ‘슈퍼우먼의 탄생’에서는 여성이 직업전선에 진출하며 겪게 된 여러 어려움이 드러난다. 이제는 여성이 단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여성해방을 의미하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유리천장’, ‘워킹맘’, ‘경력단절’ 등의 용어가 이를 뒷받침하지만 당대의 여성들은 경제적인 자유가 곧 여성을 해방시켜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신여성》 속 여러 자료는 경제활동을 하는, 혹은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이중 삼중의 억압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은 타인에 대한 의뢰심으로 남성의 ‘창기’가 다름없다고 말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가정에 소홀하거나, 여성성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성’을 팔며 돈을 번다고 치부한다.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며 가정까지 챙기는 여성에게는 남성의 ‘기를 죽인다’는 논평을 덧붙였으니 당대 직업여성들의 고초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존재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당대 신여성들의 고군분투가 왜인지 너무 익숙하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신여성처럼 산다. 학교에 다니고 대중문화를 즐기고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또 강요된 모성은 막힌 출구라는 걸 알아차렸고, 독박육아에 거부권을 행사한다.”(249쪽)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달려가는 길 끝에 ‘열린 출구’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도 그때 그 언니들처럼 ‘막힌 출구’를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렵지만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끝없는 그 길에 이 책이 단단한 동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추천평

이 책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1930년대 권투 경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열광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 관한 개념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임의적 재현이다. 당연히 그것은 여성의 ‘실제’가 아니라 남성이 바라는 여성의 모습이자 남성 그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한국의 신여성은 실재에 비해 과잉 재현된 일종의 현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신여성’(new women)은 있어도 ‘신남성’, ‘구남성’이라는 말은 없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이 상정하는 시간성의 기표가 되기 때문이다. 남성 주체는 여성이라는 대상을 통과해 자신을 인식한다. 남성의 글쓰기가 여성에 대한 이중 메시지와 자기 분열로 점철된 이유다. 신여성의 재현 주체가 주로 남성이었다는 사실, 즉 ‘신여성 담론’은 여성도 근대적 보편성(평등)에 포함된다는 모던에 대한 남성의 당황과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당대 신자유주의 통치 체제에서 여성의 개인화에 대한 남성의 반발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이것이 오늘날 여성의 시각에서 《신여성》을 재해석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이러한 작업은 여성의 역사뿐 아니라 남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사명의 선구자적 역할에 충실하다. 100여 년 전의 우리 사회의 일상사, 정치경제, 문화에 대한 지식만으로도 읽을 가치와 재미가 충분하다.
- 정희진 (서평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