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1.한국근대사

한국 병합 (2024) - 논쟁을 넘어, 다시 살핀 대한제국의 궤적

동방박사님 2024. 8. 13. 07:09
728x90

책소개

일본의 젊은 학자가 깊이 들여다본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수난사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른바 『한국 병합』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결코 식지 않는 논쟁의 진원이다. 고종 황제를 중심으로 독자적 근대화를 도모한 대한제국. 그러나 이권을 노리고 한반도를 침략한 제국 일본은 끝내 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두루 한국 근대사를 연구한 학자 모리 마유코는 대한제국의 수립에서 붕괴에 이르는 세세한 과정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양국 시민이 당대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특히 일본 측 기록과 사료 중심으로 당시를 분석해 온 일본 학계의 시각을 넘어 한일 양쪽의 사료를 고루 분석하여, 『한국 병합』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의 역사를 촘촘히 파헤친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머리말

서장. 중화 질서 속의 조선 왕조

1. 조선은 속국인가: 청조에 대한 불신과 소중화사상
2. 조약 체제하의 〈속국〉: 일본·서양과의 조약, 청의 요구
3. 조선이 바라는 〈자주 독립〉이란: 갑신정변의 실패

제1장. 진정한 독립 국가로: 1894~1895년

1. 청일전쟁의 발발: 조선을 둘러싼 전쟁
2. 갑오개혁: 개혁과 외세
3. 종속 관계의 종언: 홍범 14조 서고

제2장. 조선 왕조로부터 대한제국으로: 1895~1897년

1. 을미사변, 아관파천: 국왕 고종의 방황
2. 〈황제〉 즉위의 열망: 구본신참의 구현
3. 대한제국의 성립: 준비된 〈중화 황제〉

제3장. 새 국가상의 모색: 황제와 지식인의 협화와 불화

1. 독립협회 결성: 개화파 지식인들이 지향한 것
2. 황제의 러시아 접근과 독립협희의 반대
3. 독립협회의 강제 해산: 의회 개설의 좌절

제4장. 대한제국의 시대: 황제 통치의 현실과 한계

1. 유교 종주의 전제 군주: 구본신참의 도달점
2. 황제국의 문화: 건축, 의복, 애국가

제5장. 보호국으로의 길: 러일전쟁 전야에서 개전으로

1. 대한제국의 외교: 다양한 가능성
2. 한일 의정서: 무시된 중립 선언
3. 제1차 한일 협약 체결: 재무, 외교 고문의 도입

제6장. 제2차 한일 협약 체결: 통감부 설치, 보호국화

1. 서양 국가의 승인, 황제에 대한 강요
2. 조인: 대신들의 저항과 타협
3. 헤이그 밀사 사건: 황제의 저항
4. 제3차 한일 협약의 체결: 황제의 강제 양위 후

제7장. 대한제국의 저항과 종언: 1910년 8월 병합으로

1. 일진회와 의병 운동: 고종 황제의 시대
2. 남북 순행과 이토 히로부미의 의도: 순종 황제의 시대
3. 한국 병합 조약 체결: 황제에서 〈이왕〉으로

종장. 한국 병합을 둘러싼 논쟁: 역사학과 국제법

후기 | 〈한국 병합〉 관련 연표 | 주요 참고 자료 |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모리 마유코 (Mayuko Mori,もり まゆこ,森 万佑子)
한반도 지역 연구 전문가.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근대사이다. 1983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났다. 2008년 도쿄 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지역문화연구전공에서 석사(학술)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에 동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하고, 2010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 2012년 수료했다. 2012년 도쿄 대학교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지역문화연구전공 박사 과정에 복학, 2016년 박...
 
역 : 최덕수 (崔德壽)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근대 한국 정치사 및 외교사 전공. 저서로는 《개항과 朝日관계》(2004, 고려대학교출판부)와 《대한제국과 국제환경》(선인, 2005), 공저로 《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열린책들, 2010), 《근대 한국의 개혁 구상과 유길준》(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15)가 있다. 역서로는 《조선의 개화사상과 내셔널리즘》(열린책들, 2014), 《근대 조선과 일본》(열린책들, 20...

책 속으로

한국은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다. 35년은 태어난 아이가 장년이 되기까지의 긴 시간이다. 이른바 〈혐한〉 도서를 좋아하는 사람도, 케이팝 아이돌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적어도 이제까지 한 번은 일본에 의한 한국 식민지 지배에 관하여 논의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인가〉라는 한일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근본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사료에 근거하여 역사학적 방법으로 일반 독자를 위해 쓴 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첫 문장」중에서

보호 조약이라고 불리는 제2차 한일 협약을 비롯하여 한국 병합에 이르는 과정에서 양국 간에 체결된 모든 구조약과 협정에 대해서 양국에서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들을 논의하고 청산했어야 하는 국교 정상화를 위한 조약이, 구조약과 협정을 〈이미 무효〉라고 하여 논의를 기피하였던 것이다.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애매한 표현에 의해서 한국은 〈1910년 한국 병합 조약은 원래부터, 그 이전 1905년 제2차 한일 협약(을사 보호 조약)도 무효〉, 일본 정부는 〈병합 조약은 한국이 독립선언(1948년)을 했을 때부터 무효〉라고 각각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해석의 차이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략) 또한 이 조약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 p.322~323

〈재산·청구권〉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경제 협력금〉이라고 국회에서 설명하였다. 한국 국내에서는 〈대일 청구권〉이라고 하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다른 한편, 조약 교섭 과정에서 이케다 하야토 정권은 냉전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자 하는 일본 국내 여론을 고려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여 경제면에서 한일 협력을 중시하였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도와도 일치하였다.
--- p.324

현재 한국은 대한제국 병합을 향한 일련의 여러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성립하지 않았던 조약에 의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기 때문에 〈강점〉(강제 점령)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합법으로 형식적으로는 합의하여 성립한 〈통치〉였다고 하고 있다.
--- p.325

① 통상의 결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② 고종 황제가 인정하지 않았다, ③ 일본 측에 의한 강제가 있었다는 것은 벌써 120년 동안 계속 바뀐 것이 없다. 이것은 단순히 국제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 문제인 것이다.
--- p.347

조선 왕조·대한제국과 일본에서는 정치의 존재 양식도, 그것에 동반하는 사실의 기록과 정리하는 방법도 크게 달랐다. 양국에서 현재까지 남아 확인 가능한 사료를 사용하여,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대한제국에서는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논의하여도 평행선을 달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 조약 체제의 외교를 실천했던 나라와 그렇지 않았던 나라의 기록을 대등하게 사용하며 논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른 한편 일본 측의 사료에만 의거하는 것은 일본의 주관이 포함되어, 일본으로부터 보는 한국사가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p.350

사실에 대한 이해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이 성립한다. 다만 그와 같은 가운데서도 대한제국의 사료에서 추출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이 일본의 지배에 합의하지 않았고 환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작은 부분까지 순차적으로 서술되는 일본 사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 p.351

출판사 리뷰

한일 갈등의 진원, 대한제국 강제 병합
그 결정적인 근대사의 시간을 되짚다


한국(조선) 근대사를 연구해 온 젊은 일본 학자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한국 병합: 논쟁을 넘어, 다시 살핀 대한제국의 궤적』은 한국(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차근차근 짚으며 국권 피탈의 수난사를 깊이 들여다본다.

도쿄 여자 대학교 국제사회학과 교수 모리 마유코(森万佑子). 그는 혐한 현상과 케이팝 열풍이 공존하는 일본의 사회 문화 속에서, 일본 대중이 100여 년 전 한일 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 책을 집필했다. 현재 한일 간 논란과 갈등의 진원인 이른바 〈한국 병합〉, 즉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역사적 배경과 진행 과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역사학 대 국제법의 구도로 논쟁해 온 지난 30여 년간의 학술적 공방도 아울러 정리한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세대는 물론 우리 한국인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하는 국권 피탈의 상세한 역사적 과정을 다시금 짚어 봄으로써, 논쟁과 갈등을 넘어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역사학적 인식의 장을 마련한다. 일본인 연구자의 저작임에도 일본 측 사료에 국한되지 않고 한일 양쪽의 사료를 골고루 분석하여 당대사를 정리한 것이 특히 돋보인다.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또 수시로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 연구자들과 교류하여 꾸준히 양국의 최신 연구 성과를 습득해 온 결실이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그리고 일본의 보호국에서 식민지로


저자는 그간 한국 병합에 관한 일본의 저작들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여 가는 과정〉을 주로 논해 왔다며, 『한국 병합』은 그와 달리 〈대한제국이 성립하고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 주목함을 밝힌다. 당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가 한국 병합을 향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는 데에서 더 나아가,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고,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거나 동조했던 다양한 인물과 세력의 정체와 역할을 분석한다. 이로써 대한제국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갔는지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우선 조선 왕조와 중국 간의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고, 그 정체성이 서구식 조약 체제 유입 이후 어떻게 다루어지고 변모해 갔는지 소개한다. 이어 청일전쟁을 계기로 과거의 중화 질서가 해체되면서 일본과 러시아 세력이 대두하고 그 속에서 조선이 맞이한 위기와 변화를 다룬다.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이유로 조선에 출병한 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다투며 끝내 청일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운다. 이 무렵 조선은 갑오개혁을 단행하며 국가의 각종 체제를 대폭 바꾸고 청의 예속에서 벗어났음을 선언한다. 그 사이 일본은 조선 왕실을 견제하며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저지르고, 위기를 느낀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는 등, 1897년 대한제국 수립에 이르기까지 조선 정부는 많은 위기를 겪는다.

대한제국은 정부 수립 이듬해인 1898년 이후 여러 가지 국가사업을 벌이고, 체제 및 사회 문화의 변화를 이어가며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 재정 위기 등을 겪으며 한반도 진출을 노리는 일본의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한일 의정서, 그리고 제1차 한일 협약 등을 체결하며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이어 1905년에는 제2차 한일 협약, 즉 을사 보호 조약 체결을 강제당하며 외교권과 내정 전반을 일본에 빼앗겨 보호국으로 전락한다. 그 와중에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는 등 저항하지만, 이를 계기로 1907년 양위까지 당한다. 순종으로의 강제 양위 직후에는 제3차 한일 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내정은 일본에 완전히 장악되고, 결국 1910년 8월 이른바 〈한국 병합 조약〉을 체결당하며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에 이른다.

병합 조약들을 둘러싼 논쟁: 역사학 대 국제법

한편 저자는 책의 종장에서, 1990년대 이후 30여 년에 걸쳐 한일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국 병합〉 관련 연구 성과와 논쟁점을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1980년대 후반 급속한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늘고, 동시에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쉽지 않았던 대일 관계 및 식민지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견해 제기가 급격히 는다. 아울러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관련 증언이 나오면서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관심과 발언도 본격화한다.

이 무렵 한국 사학계에서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하면서 한일 간 조약들에 대한 무효론 등 〈한국 병합〉을 둘러싼 문제들이 대두된다. 이를 계기로 한일 연구자들 사이에 공동 연구와 학술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주요 쟁점에 대해 양측 사료 연구에 입각한 논쟁이 불붙는다.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에서 대한제국과 일본 간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고 밝힌 것, 그리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식민지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밝힌 것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 등이 그것이다. 주로 역사학 대 국제법의 구도로 펼쳐져 온 이러한 양측의 학술적 공방을 소개하며, 저자는 당시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 했음을 확인한다.

2018년 대법원에서 피고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이후, 현재 한일 국민 간의 감정적 대립은 극에 달한 상태이다. 일본은 국제법적으로 해소된 사안에 대해 한국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 반면 한국은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조약 체결 과정을 뒷받침하는 역사학의 증거들을 제시하며 일본의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일본의 대중이 국제법적 논리에 편향해 있음을 지적하며, 갈등과 반목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길로 나아가려면 당대에 대한 역사학적 인식을 늘려야 함을 주문한다. 그런 토대가 형성되어야만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해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추천평

일본의 관점에서 그려 온 〈한국 병합〉을, 대한제국 성립과 붕괴 과정을 통해 다시 들여다본다. (중략) 대한제국 황제를 중심인물로 설정한 이 책이 안내하는 역사적 사실은 묵직하다.
- 아사히 신문
이 책의 안목은 (중략) 병합의 과정을 조선 측 역사를 통해 되돌아본 데에서 두드러진다. 제국주의의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고 어떻게 되었는지 드러난다. 조선에 손을 뻗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외교가 흥미롭다.
- 마이니치 신문
한일 간 갈등의 기원을 신진 역사학자가 정면으로 다룬다. (중략) 합법·불법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한국 병합의 실체……. (중략) 한일 사이의 해묵은 난제를 젊은 세대가 다시금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열의가 전해져 온다.
- 니혼게이자이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