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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밥상을 보면 한 인간이, 한 사회가 읽힌다!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과거와 현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 어식 문화 이야기
언뜻 인간의 역사는 대의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의 중심엔 늘 먹고사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 것인가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낱 가볍고 말초적인 잡담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그를 통해 구성된 정체와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이자 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밥상을 통해 한 인간을, 한 사회를 읽어내는 식문화 이야기에는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넘어 이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다.
이 책은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비린내와 갯내음 가득한 밥상을 통해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30여 가지 수산물로 요리해 낸 이야기에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수산물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소비됐는지, 정체 변화나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취급됐는지, 그리고 왜 동일한 식재료를 우리와는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했는지 등을 다양한 자료에 입각해 서술한다. 간편식과 서구식 식단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어식 문화를 천천히 맛보고 음미할 수 있는 이 책은 가깝고도 먼 섬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과거 식문화로 여행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준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밥상을 보면 한 인간이, 한 사회가 읽힌다!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과거와 현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 어식 문화 이야기
언뜻 인간의 역사는 대의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의 중심엔 늘 먹고사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 것인가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낱 가볍고 말초적인 잡담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그를 통해 구성된 정체와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이자 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밥상을 통해 한 인간을, 한 사회를 읽어내는 식문화 이야기에는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넘어 이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다.
이 책은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비린내와 갯내음 가득한 밥상을 통해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30여 가지 수산물로 요리해 낸 이야기에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수산물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소비됐는지, 정체 변화나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취급됐는지, 그리고 왜 동일한 식재료를 우리와는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했는지 등을 다양한 자료에 입각해 서술한다. 간편식과 서구식 식단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어식 문화를 천천히 맛보고 음미할 수 있는 이 책은 가깝고도 먼 섬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과거 식문화로 여행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준다.
목차
프롤로그 - 일본인은 어식 민족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1장. 애잔한 서민의 맛
이와시 - 가난한 밥상, 오랜 친구 같은 맛
멍게 - 씁쓰레한 땅, 도호쿠의 맛
오징어 - 전시 배급제 시대, 줄 서서 먹는 맛
꽁치 - 도쿄여, 가을이 왔구나
가다랑어 - 맏물과 제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맛
백합 - 갯벌 연정, 헤어져야 아는 맛
날치 - 유형의 섬, 비상하고 싶은 지상의 맛
전갱이 - 튀어야 산다? 튀겨야 산다
2장. 깊은 역사의 맛
붕어 - 쌀 문화, 삭힘의 기술
다시마 - 다시마 길, 동서 입맛을 가르다
방어 - 입신양명을 꿈꾸며, 명절의 맛
갯장어 - 교토는 알고, 도쿄는 모르는 맛
뱀장어 - 여름 보양식, 은밀하고 달콤한 맛
붕장어 - 화양절충, 요리도 통역이 되나요
가쓰오부시 - 전투식량, 이성이 마비되는 맛
3장. 쏠쏠한 돈의 맛
니기리즈시 - 패스트푸드가 살아가는 법
대게 - 온천과 벚꽃, 일상 탈출의 맛
새우 - 국민 스타, 대중적인 맛
청어 - 흥하고 망하고, 자본의 맛
전어 - 격세지감 몸값, 입맛은 변덕쟁이야
고등어 - 팔자 고친 흙수저, 출세의 맛
명태 - 어육소시지와 명란젓, 변신의 맛
4장. 무사의 칼맛
도미 - 오모테나시, 접대의 맛
뱅어 - 부활하라, 로열 클래스의 맛
아귀 - 미움받을 용기, 내강외유의 맛
참치 - 사시미 문화, 극강의 맛
복어 - 침략주의자를 울리고 웃기다, 위험한 맛
무사의 밥상 - 노부나가를 화나게 한 요리는?
5장. 신묘한 신성의 맛
문어 - 축제와 신령 그리고 다코야키, 길거리의 맛
쑤기미 - 못난이가 산으로 간 까닭, 웃겨주는 맛
김 - 아사쿠사의 미스터리, 다면적인 맛
전복 - 제주 해녀와 해적, 전설의 맛
연어 - 신이 내린 선물, 아이누의 맛
고래 - 그들은 왜 고래에 집착하는가, 허황된 맛
6장. 바닷물고기 언어학
감사의 글
참고문헌
1장. 애잔한 서민의 맛
이와시 - 가난한 밥상, 오랜 친구 같은 맛
멍게 - 씁쓰레한 땅, 도호쿠의 맛
오징어 - 전시 배급제 시대, 줄 서서 먹는 맛
꽁치 - 도쿄여, 가을이 왔구나
가다랑어 - 맏물과 제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맛
백합 - 갯벌 연정, 헤어져야 아는 맛
날치 - 유형의 섬, 비상하고 싶은 지상의 맛
전갱이 - 튀어야 산다? 튀겨야 산다
2장. 깊은 역사의 맛
붕어 - 쌀 문화, 삭힘의 기술
다시마 - 다시마 길, 동서 입맛을 가르다
방어 - 입신양명을 꿈꾸며, 명절의 맛
갯장어 - 교토는 알고, 도쿄는 모르는 맛
뱀장어 - 여름 보양식, 은밀하고 달콤한 맛
붕장어 - 화양절충, 요리도 통역이 되나요
가쓰오부시 - 전투식량, 이성이 마비되는 맛
3장. 쏠쏠한 돈의 맛
니기리즈시 - 패스트푸드가 살아가는 법
대게 - 온천과 벚꽃, 일상 탈출의 맛
새우 - 국민 스타, 대중적인 맛
청어 - 흥하고 망하고, 자본의 맛
전어 - 격세지감 몸값, 입맛은 변덕쟁이야
고등어 - 팔자 고친 흙수저, 출세의 맛
명태 - 어육소시지와 명란젓, 변신의 맛
4장. 무사의 칼맛
도미 - 오모테나시, 접대의 맛
뱅어 - 부활하라, 로열 클래스의 맛
아귀 - 미움받을 용기, 내강외유의 맛
참치 - 사시미 문화, 극강의 맛
복어 - 침략주의자를 울리고 웃기다, 위험한 맛
무사의 밥상 - 노부나가를 화나게 한 요리는?
5장. 신묘한 신성의 맛
문어 - 축제와 신령 그리고 다코야키, 길거리의 맛
쑤기미 - 못난이가 산으로 간 까닭, 웃겨주는 맛
김 - 아사쿠사의 미스터리, 다면적인 맛
전복 - 제주 해녀와 해적, 전설의 맛
연어 - 신이 내린 선물, 아이누의 맛
고래 - 그들은 왜 고래에 집착하는가, 허황된 맛
6장. 바닷물고기 언어학
감사의 글
참고문헌
책 속으로
식기를 보면 음식 문화가 읽힌다. 젓가락 하나에도 한 집단의 음식 문화 혹은 음식 역사가 응축돼 있다. 짧고 가늘어진 일본 젓가락은 생선을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문화가 뿌리 깊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가령 꽁치구이 살을 발라 먹는다고 해보자. 분명 끝이 뭉툭한 중국 젓가락보다 짧고 뾰족한 일본 젓가락이 더 알맞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도 생선을 즐겨 먹지만, 섭취 빈도나 레시피의 비중으로 따지면 역사적으로 일본이 도드라진다. 그래서 생선요리는 일식 문화의 대표 격이라 말할 수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와시는 신석기 조몬시대(?文時代) 유적에서 뼈가 발견될 만큼 오랫동안 일본인과 함께 한 물고기다. 사실 이와시는 만만한 생선이었다.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얕은 바다에서 쉽게 잡을 수 있고, 해변으로 파닥파닥 떼 지어 튀어 올라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흔하고 값이 쌌다. 가진 것 없는 서민이 부담 없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선이었다. 도미, 방어가 지체 높으신 분들의 애용식이었다면, 이와시는 헐벗은 백성을 먹여 살렸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바다의 쌀’이라는 별칭은 이와시의 정체성을 콕 짚은 말이다.
오징어는 배급제로 인해 처지가 바뀐다. 우선 해산물 배급 항목 중 오징어가 가장 많았다. 생선 부족분을 오징어가 채워줬다. 오징어 어획고가 늘었기에 가능했다. 생선이 사라진 맥 빠진 밥상에 홀연히 오징어라는 구원투수가 등판한 격이었다. 그때 다행히 오징어 떼가 몰려왔다. 풍어기가 시작된 것이다. 때마침 엔진을 장착한 동력선이 보급돼 커버할 수 있는 오징어 어장은 더 넓어졌다. 오징어 수요가 늘어나자 오징어잡이로 업종을 전환하는 어선이 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징어 어획량은 탄력을 받았다. 일본은 패전할 때까지 매년 10만 톤 안팎의 오징어를 건져 올렸다. 태평양전쟁 후에도 오징어는 꾸준히 잡혔다. 전후 식량난이 닥쳐왔을 때도 오징어는 주요 단백질원으로 식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맛으로 따지면 맏물보다 제철이 더 낫건만 왜 굳이 맏물에 몸달았을까. 맏물 사랑은 맛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과시욕, 허세를 좇는 유희에 가깝다. 맏물 가다랑어 소비 붐은 갑자기 거부(巨富)가 된 에도의 상인들 사이에서 촉발됐다. 이들은 당대 패셔니스타 내지 트렌드에 민감한 세칭 인싸족이었다. 음식 하나를 사 먹어도 즐거움과 멋을 중시했다. “가격이나 가성비 같은 것은 개나 줘라.” 두둑한 주머니 사정을 배경으로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새로운 맛과 멋을 추구했다. 이들 부류는 세련미를 뜻하는 이키(?), 무언가 하나에 꽂혀 멋을 추구하는 쓰(通) 같은 문화 조류를 일으켰다. 에도판 뉴웨이브다. 이들은 유독 맏물 가다랑어에 꽂혔는데, 그 행태가 흡사 오타쿠를 빼닮았다. 따라서 맏물 가다랑어 광풍은 졸부 인싸족의 멋내기와 뽐내기, 즉 허영기 어린 소비였다. 그러다 보니 맏물 가다랑어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건 당연했다.
--- 「1장. 애잔한 서민의 맛」 중에서
어업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인에게 바닷물고기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호수와 강에 사는 민물고기는 비교적 손쉽게 포획할 수 있었다. 요리의 깊이와 다양성만을 따지면 민물고기가 바닷물고기보다 앞섰다. 그런 의미에서 어식 내지 일식은 민물고기에게 먼저 빚졌다. 일식의 고향이라는 교토요리는 비와호의 은혜를 입었다. 교토는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이다. 바닷물고기가 유입되기 전에 주로 민물고기로 요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토 어식의 뿌리는 민물고기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 민물고기의 주된 공급처가 비와호였다.
방어가 명절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계기는 교토에서 비롯됐다. 교토의 왕족, 귀족, 고위 관리는 노도반도 해역에서 잡힌 방어를 헌상받았다. 교토의 방어 식문화는 마쓰모토 일대 및 타 지역으로 전파됐다. 교토로 간 방어는 마쓰모토로 간 방어와 달리 아라마키(荒?) 형태였다. 아라마키란 염장 후 머리, 꼬리, 뼈 모두를 제거해 살코기만 대나무 껍질에 싼 다음 그 위를 짚끈으로 친친 돌려 감은 것이다. 부패 방지 포장법인데 아라마키 방어는 최대 1년 동안 변질되지 않았다고 한다. 방어가도를 따라간 염장 방어는 소를 타고 갔으나, 교토행 아라마키 방어의 주요 수송 수단은 말이었다. 아라마키를 짚끈으로 포장한 까닭 중 하나는 오랫동안 방어를 싣고 가는 말등짝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라마키는 여러모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에도시대 무사들은 가쓰오, 즉 가다랑어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맛도 맛이거니와 이름이 내뿜는 기운이 맘에 쏙 들었다. 가다랑어 가쓰오(?)는 ‘이기는 남자’라는 뜻의 가쓰오(勝男)와도 발음상 통하고, 가쓰오부시는 가쓰오부시(勝男武士)로도 쓸 수 있다며 ‘승리를 부르는 생선’으로 여겼다. 가쓰오부시 교환권이 출산, 입학 선물로 애용된 까닭도 가쓰오부시가 강인하고 우수한 남성의 이미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가다랑어의 명리학 탓인지 가쓰오부시를 먹으면 왠지 힘이 솟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또 상대방을 가볍게 제압할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가쓰오부시는 혀가 아니라 간담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이쯤 되면 가쓰오부시가 어째서 군인의 영양식 혹은 야전식량으로 쓰였는지 그 배경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 「2장. 깊은 역사의 맛」 중에서
1962년 냉동식품 새우튀김인 ‘에비후라이’가 등장한다. ‘겉바속촉’을 좋아하는 일본인. 에비후라이는 일본인의 새우 사랑에 기름을 부었다. 단박에 일본인 식탁을 점령했다. 에비후라이는 덮밥, 소바와 앙상블이 좋아 금세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에비후라이 발매 10년 만에 전체 냉동식품 생산량 중 에비후라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차지했다. 음식 유행 속도가 기가급인 요즘과 달리 입소문만으로 흥행이 결정되던 1960년대를 감안하면 엄청난 파급력이다. 일본 식품시장에서 새우만큼 단기간에 대중적 인기를 폭발적으로 얻은 해산물은 극히 드물다.
홋카이도 서쪽 해안지역은 시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청어가 풍부했다. 산란기에 살이 차고 기름기 오른 청어는 홋카이도 토착민 아이누족에게 값진 식량자원이었다. 그런데 홋카이도 바깥 일본 본토 사람들은 청어가 시쳇말로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청어에서 자본의 맛을 감지했다. 청어를 쫓아서, 돈을 쫓아서 혼슈의 와진(和人)이 우르르 몰려왔다. 상품으로서의 청어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대략 18세기부터 아이누의 평온한 삶도 흔들렸다.
어육소시지 시장의 초고속 성장으로 서서히 참치와 고래 물량이 달렸다. 대체할 생선이 필요했다. 그때 어육소시지 업계의 눈에 명태가 들어왔다. 명태살을 냉동연육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돼 어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던 참이었다. 명태 냉동연육 개발은 어육소시지에게도 희소식이었다. 이로 인해 명태를 주축으로 임연수어, 전갱이 등이 참치, 고래를 밀어내고 어육소시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어육소시지 생산량이 정점을 찍은 1965년의 경우 한 가구당 연간 어육소시지 소비량이 4.37킬로그램, 개수로 환산하면 46개였다.
--- 「3장. 쏠쏠한 돈의 맛」 중에서
도미는 해부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익힌 도미살을 다 발라내면 항문 쪽 가시에 작고 동그란 혹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소용돌이 뼈(鳴門骨)다. 나루토(鳴門)라는 명칭은 시코쿠섬 북동쪽의 나루토해협에서 따왔다. 우리나라 명량해협처럼 썰물 때 물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나루토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 물살이 가장 거칠고 소용돌이가 많기로 정평이 난 바다인데, 나루토산 도미는 뼈마디에 혹이 붙어 있다. 거친 물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자연선택설을 알 리 없었던 옛사람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덧씌워 그럴듯하게 추론했다. 나루토에 서식하는 도미가 거친 물살에 밀리지 않으려고 몸무게를 불릴 목적으로 돌을 삼켰는데, 그 돌들이 몸속에서 뼈가 됐다는 것. 물살에 단련된 나루토산 도미의 살은 찰지고 탱탱하다. 당연히 시가는 다른 도미보다 높다.
어느 날 스미다가와에서 어부들이 뱅어를 건져 올렸다. 처음 보는 물고기였다. 가만히 뜯어보니 머리에 접시꽃 비스름한 무늬가 있었다. 아니 이런! 접시꽃은 도쿠가와 가문의 상징 문양(家紋)이 아니던가. 어민들은 신묘하다고 여겨 이 물고기를 관아에 신고했다. 관아의 관리들은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 접시꽃 문양 생선을 발견한 사건은 마침내 쇼군 이에야스의 귀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그 물고기라면 내가 좀 알지. 내가 미카와(三河)에 있을 때 어부들이 먹어보라고 가져왔었지” 하며 껄껄 웃었다. 미카와는 지금의 아이치현 동부 지방으로 이에야스의 고향이자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領地)였다. 이에야스는 그 물고기를 에도에서 만나다니 길조가 아니고 뭐냐며 자신에게 갖다 바치라고 명령하고, 아무나 함부로 잡거나 먹지 못하도록 했다. 그 물고기가 다름 아닌 뱅어였다.
양어(養魚) 기술이 발달해 자주복도 무독성으로 길러 낸다지만, 어쨌거나 복어는 공포감을 주는 생선이다. 오죽했으면 대포나 총포를 뜻하는 철포(뎃포, 鐵砲)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제대로 한 방 맞으면 끝장난다는 강철 포환. 독성과 중독성을 동시에 함축한 복어의 특징을 철포만큼 잘 축약한 단어도 없겠다. 복어요리 전문점 상호에 ‘철포’를 넣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제는 철포가 공포감보다는 ‘죽여주는 맛’이라는 은유로 받아들여지니까 그럴 것이다.
--- 「4장. 무사의 칼맛」 중에서
문어는 하레를 상징하는 생물이다. 일본인 의식 속에서 문어는 신비롭고 신성한 힘을 지닌 존재다. 적군, 질병, 풍랑 등 악한 세력을 물리친다. 힘없는 민초들 입장에서는 힘 있는 구세주, 선량한 구원자의 대명사다. 민초들의 이런 기대감은 문어가 가진 특유의 강인함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근육과 흡반은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위기에 봉착하면 제 다리를 스스로 잘라 내 위기를 모면하며, 얼마 후 잘린 부분에 새 다리가 난다. 인간에게는 없는 질긴 생명력이다. 나약한 민초들이 닮고 싶은 강인함이다. 마치 마블 영화의 어벤져스 같은 슈퍼 울트라 파워를 지닌 존재다. … 슈퍼 울트라 파워인 문어는 잿날의 속성과 딱 들어맞는 생물이다. 다코야키가 마쓰리 같은 잿날 먹거리로 자리 잡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의 밥상에도 오르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장수와 출세를 보장하는 음식으로 통한 전복. 한마디로 길운을 부르는 해산물이다. 길조가 깃든 생물 혹은 물건을 통칭 엔기모노(?起物)라고 한다. ‘엔기’란 불교에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연기설, 연기관이라고 할 때의 그 연기다. 만물이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 관념어인데, 불교 영향을 받고 살았던 옛 일본인들은 삶에서 엔기를 중시했다. 엔기는 세상만사 흉조를 예방하고 길조를 도모하는 물건 내지 행위다. 그들은 매사에 길흉을 따져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 길한 물건과 흉한 물건을 구분해 사전에 흉액을 차단하려는 심리가 강했다. 이런 심리는 먹거리에도 짙게 뱄다. 전복 외에 팥, 도미, 이세에비, 맏물 가다랑어, 출세어, 다시마 등이 대표적인 엔기모노 해산물이다.
연어의 인공부화 기법을 알아낸 무라카미는 연어 산지로 우뚝 섰다. 연어는 무라카미의 주력 상품이 되어 무라카미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무라카미에는 지금도 연어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 있다. 무라카미 사람들은 정월 명절에 먹기 위해 겨울이 찾아오면 시오자케를 만들어 처마 밑에 쭉 걸어놓는 풍습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이 시오자케의 상태가 다른 지방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염장하려면 내장을 빼내기 위해 배를 완전히 가르기 마련인데, 무라카미에서는 배를 완전히 가르지 않고 일부분을 붙은 채 남겨둔다. 그 이유가 뭉클하다. 생명의 은인인 연어의 배를 어찌 가르랴. 즉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 「5장. 신묘한 신성의 맛」 중에서
참돔, 참조기, 참치, 참새우, 참멸치, 참붕어, 참숭어, 참게, 참문어. 생선에 참과 거짓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굳이 ‘참’을 붙인 건 물고기가 잘났거나, 성질이 온순하거나, 오래 사는 건강 체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잣대는 인간의 혀다. 개중에 가장 맛있는, 참말로 맛나는 놈이 참생선이다. 맛 이외의 또 다른 기준은 유용성이다. 인간의 식생활에 가장 유용한 놈이 참이다. 즉 동종 중 가장 많이 잡히거나 가장 실한 놈이 참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 제사상에 단골로 오르고, 환갑 등 잔치상에도 발탁된다. 먹거리 차원에서 금메달감이다. 그래서 접두어 ‘참’은 그 물고기에 수여하는 고마움의 증표이자 인증서인 셈이다. ‘참’에 상응하는 일본어 표기는 ‘마(?)’다. 참돔은 마다이, 참정어리는 마이와시, 참문어는 마다코, 참고등어는 마사바. 이런 식이다.
언어학적으로 생선 이름보다 가장 깊고 다양한 것이 바다 해海가 아닐까 한다. ‘해’ 자를 읽는 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녀(海女)는 아마, 돌고래(海豚)는 이루카, 성게(海?)는 우니, 새우(海老)는 에비, 홍조식물 꼬시래기(海?)는 오고. 발음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학교에서 바다 해의 음독법을 ‘아이우에오’로 가르쳤다고 한다. 모든 모음으로 표현되는 바다. 이 얼마나 다채롭고 품이 넓은 세계인가. 사카나와 바다, 그리고 일본. 언어라는 그물이 끌어 올린 일본은 파닥파닥, 비린내와 생동감이 가득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와시는 신석기 조몬시대(?文時代) 유적에서 뼈가 발견될 만큼 오랫동안 일본인과 함께 한 물고기다. 사실 이와시는 만만한 생선이었다.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얕은 바다에서 쉽게 잡을 수 있고, 해변으로 파닥파닥 떼 지어 튀어 올라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흔하고 값이 쌌다. 가진 것 없는 서민이 부담 없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선이었다. 도미, 방어가 지체 높으신 분들의 애용식이었다면, 이와시는 헐벗은 백성을 먹여 살렸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바다의 쌀’이라는 별칭은 이와시의 정체성을 콕 짚은 말이다.
오징어는 배급제로 인해 처지가 바뀐다. 우선 해산물 배급 항목 중 오징어가 가장 많았다. 생선 부족분을 오징어가 채워줬다. 오징어 어획고가 늘었기에 가능했다. 생선이 사라진 맥 빠진 밥상에 홀연히 오징어라는 구원투수가 등판한 격이었다. 그때 다행히 오징어 떼가 몰려왔다. 풍어기가 시작된 것이다. 때마침 엔진을 장착한 동력선이 보급돼 커버할 수 있는 오징어 어장은 더 넓어졌다. 오징어 수요가 늘어나자 오징어잡이로 업종을 전환하는 어선이 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징어 어획량은 탄력을 받았다. 일본은 패전할 때까지 매년 10만 톤 안팎의 오징어를 건져 올렸다. 태평양전쟁 후에도 오징어는 꾸준히 잡혔다. 전후 식량난이 닥쳐왔을 때도 오징어는 주요 단백질원으로 식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맛으로 따지면 맏물보다 제철이 더 낫건만 왜 굳이 맏물에 몸달았을까. 맏물 사랑은 맛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과시욕, 허세를 좇는 유희에 가깝다. 맏물 가다랑어 소비 붐은 갑자기 거부(巨富)가 된 에도의 상인들 사이에서 촉발됐다. 이들은 당대 패셔니스타 내지 트렌드에 민감한 세칭 인싸족이었다. 음식 하나를 사 먹어도 즐거움과 멋을 중시했다. “가격이나 가성비 같은 것은 개나 줘라.” 두둑한 주머니 사정을 배경으로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새로운 맛과 멋을 추구했다. 이들 부류는 세련미를 뜻하는 이키(?), 무언가 하나에 꽂혀 멋을 추구하는 쓰(通) 같은 문화 조류를 일으켰다. 에도판 뉴웨이브다. 이들은 유독 맏물 가다랑어에 꽂혔는데, 그 행태가 흡사 오타쿠를 빼닮았다. 따라서 맏물 가다랑어 광풍은 졸부 인싸족의 멋내기와 뽐내기, 즉 허영기 어린 소비였다. 그러다 보니 맏물 가다랑어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건 당연했다.
--- 「1장. 애잔한 서민의 맛」 중에서
어업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고대인에게 바닷물고기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호수와 강에 사는 민물고기는 비교적 손쉽게 포획할 수 있었다. 요리의 깊이와 다양성만을 따지면 민물고기가 바닷물고기보다 앞섰다. 그런 의미에서 어식 내지 일식은 민물고기에게 먼저 빚졌다. 일식의 고향이라는 교토요리는 비와호의 은혜를 입었다. 교토는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이다. 바닷물고기가 유입되기 전에 주로 민물고기로 요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토 어식의 뿌리는 민물고기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 민물고기의 주된 공급처가 비와호였다.
방어가 명절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계기는 교토에서 비롯됐다. 교토의 왕족, 귀족, 고위 관리는 노도반도 해역에서 잡힌 방어를 헌상받았다. 교토의 방어 식문화는 마쓰모토 일대 및 타 지역으로 전파됐다. 교토로 간 방어는 마쓰모토로 간 방어와 달리 아라마키(荒?) 형태였다. 아라마키란 염장 후 머리, 꼬리, 뼈 모두를 제거해 살코기만 대나무 껍질에 싼 다음 그 위를 짚끈으로 친친 돌려 감은 것이다. 부패 방지 포장법인데 아라마키 방어는 최대 1년 동안 변질되지 않았다고 한다. 방어가도를 따라간 염장 방어는 소를 타고 갔으나, 교토행 아라마키 방어의 주요 수송 수단은 말이었다. 아라마키를 짚끈으로 포장한 까닭 중 하나는 오랫동안 방어를 싣고 가는 말등짝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라마키는 여러모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에도시대 무사들은 가쓰오, 즉 가다랑어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맛도 맛이거니와 이름이 내뿜는 기운이 맘에 쏙 들었다. 가다랑어 가쓰오(?)는 ‘이기는 남자’라는 뜻의 가쓰오(勝男)와도 발음상 통하고, 가쓰오부시는 가쓰오부시(勝男武士)로도 쓸 수 있다며 ‘승리를 부르는 생선’으로 여겼다. 가쓰오부시 교환권이 출산, 입학 선물로 애용된 까닭도 가쓰오부시가 강인하고 우수한 남성의 이미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가다랑어의 명리학 탓인지 가쓰오부시를 먹으면 왠지 힘이 솟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또 상대방을 가볍게 제압할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가쓰오부시는 혀가 아니라 간담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이쯤 되면 가쓰오부시가 어째서 군인의 영양식 혹은 야전식량으로 쓰였는지 그 배경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 「2장. 깊은 역사의 맛」 중에서
1962년 냉동식품 새우튀김인 ‘에비후라이’가 등장한다. ‘겉바속촉’을 좋아하는 일본인. 에비후라이는 일본인의 새우 사랑에 기름을 부었다. 단박에 일본인 식탁을 점령했다. 에비후라이는 덮밥, 소바와 앙상블이 좋아 금세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에비후라이 발매 10년 만에 전체 냉동식품 생산량 중 에비후라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차지했다. 음식 유행 속도가 기가급인 요즘과 달리 입소문만으로 흥행이 결정되던 1960년대를 감안하면 엄청난 파급력이다. 일본 식품시장에서 새우만큼 단기간에 대중적 인기를 폭발적으로 얻은 해산물은 극히 드물다.
홋카이도 서쪽 해안지역은 시기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청어가 풍부했다. 산란기에 살이 차고 기름기 오른 청어는 홋카이도 토착민 아이누족에게 값진 식량자원이었다. 그런데 홋카이도 바깥 일본 본토 사람들은 청어가 시쳇말로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청어에서 자본의 맛을 감지했다. 청어를 쫓아서, 돈을 쫓아서 혼슈의 와진(和人)이 우르르 몰려왔다. 상품으로서의 청어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대략 18세기부터 아이누의 평온한 삶도 흔들렸다.
어육소시지 시장의 초고속 성장으로 서서히 참치와 고래 물량이 달렸다. 대체할 생선이 필요했다. 그때 어육소시지 업계의 눈에 명태가 들어왔다. 명태살을 냉동연육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돼 어묵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던 참이었다. 명태 냉동연육 개발은 어육소시지에게도 희소식이었다. 이로 인해 명태를 주축으로 임연수어, 전갱이 등이 참치, 고래를 밀어내고 어육소시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어육소시지 생산량이 정점을 찍은 1965년의 경우 한 가구당 연간 어육소시지 소비량이 4.37킬로그램, 개수로 환산하면 46개였다.
--- 「3장. 쏠쏠한 돈의 맛」 중에서
도미는 해부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익힌 도미살을 다 발라내면 항문 쪽 가시에 작고 동그란 혹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소용돌이 뼈(鳴門骨)다. 나루토(鳴門)라는 명칭은 시코쿠섬 북동쪽의 나루토해협에서 따왔다. 우리나라 명량해협처럼 썰물 때 물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나루토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 물살이 가장 거칠고 소용돌이가 많기로 정평이 난 바다인데, 나루토산 도미는 뼈마디에 혹이 붙어 있다. 거친 물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자연선택설을 알 리 없었던 옛사람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덧씌워 그럴듯하게 추론했다. 나루토에 서식하는 도미가 거친 물살에 밀리지 않으려고 몸무게를 불릴 목적으로 돌을 삼켰는데, 그 돌들이 몸속에서 뼈가 됐다는 것. 물살에 단련된 나루토산 도미의 살은 찰지고 탱탱하다. 당연히 시가는 다른 도미보다 높다.
어느 날 스미다가와에서 어부들이 뱅어를 건져 올렸다. 처음 보는 물고기였다. 가만히 뜯어보니 머리에 접시꽃 비스름한 무늬가 있었다. 아니 이런! 접시꽃은 도쿠가와 가문의 상징 문양(家紋)이 아니던가. 어민들은 신묘하다고 여겨 이 물고기를 관아에 신고했다. 관아의 관리들은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 접시꽃 문양 생선을 발견한 사건은 마침내 쇼군 이에야스의 귀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그 물고기라면 내가 좀 알지. 내가 미카와(三河)에 있을 때 어부들이 먹어보라고 가져왔었지” 하며 껄껄 웃었다. 미카와는 지금의 아이치현 동부 지방으로 이에야스의 고향이자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領地)였다. 이에야스는 그 물고기를 에도에서 만나다니 길조가 아니고 뭐냐며 자신에게 갖다 바치라고 명령하고, 아무나 함부로 잡거나 먹지 못하도록 했다. 그 물고기가 다름 아닌 뱅어였다.
양어(養魚) 기술이 발달해 자주복도 무독성으로 길러 낸다지만, 어쨌거나 복어는 공포감을 주는 생선이다. 오죽했으면 대포나 총포를 뜻하는 철포(뎃포, 鐵砲)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제대로 한 방 맞으면 끝장난다는 강철 포환. 독성과 중독성을 동시에 함축한 복어의 특징을 철포만큼 잘 축약한 단어도 없겠다. 복어요리 전문점 상호에 ‘철포’를 넣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제는 철포가 공포감보다는 ‘죽여주는 맛’이라는 은유로 받아들여지니까 그럴 것이다.
--- 「4장. 무사의 칼맛」 중에서
문어는 하레를 상징하는 생물이다. 일본인 의식 속에서 문어는 신비롭고 신성한 힘을 지닌 존재다. 적군, 질병, 풍랑 등 악한 세력을 물리친다. 힘없는 민초들 입장에서는 힘 있는 구세주, 선량한 구원자의 대명사다. 민초들의 이런 기대감은 문어가 가진 특유의 강인함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근육과 흡반은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위기에 봉착하면 제 다리를 스스로 잘라 내 위기를 모면하며, 얼마 후 잘린 부분에 새 다리가 난다. 인간에게는 없는 질긴 생명력이다. 나약한 민초들이 닮고 싶은 강인함이다. 마치 마블 영화의 어벤져스 같은 슈퍼 울트라 파워를 지닌 존재다. … 슈퍼 울트라 파워인 문어는 잿날의 속성과 딱 들어맞는 생물이다. 다코야키가 마쓰리 같은 잿날 먹거리로 자리 잡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의 밥상에도 오르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장수와 출세를 보장하는 음식으로 통한 전복. 한마디로 길운을 부르는 해산물이다. 길조가 깃든 생물 혹은 물건을 통칭 엔기모노(?起物)라고 한다. ‘엔기’란 불교에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연기설, 연기관이라고 할 때의 그 연기다. 만물이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 관념어인데, 불교 영향을 받고 살았던 옛 일본인들은 삶에서 엔기를 중시했다. 엔기는 세상만사 흉조를 예방하고 길조를 도모하는 물건 내지 행위다. 그들은 매사에 길흉을 따져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 길한 물건과 흉한 물건을 구분해 사전에 흉액을 차단하려는 심리가 강했다. 이런 심리는 먹거리에도 짙게 뱄다. 전복 외에 팥, 도미, 이세에비, 맏물 가다랑어, 출세어, 다시마 등이 대표적인 엔기모노 해산물이다.
연어의 인공부화 기법을 알아낸 무라카미는 연어 산지로 우뚝 섰다. 연어는 무라카미의 주력 상품이 되어 무라카미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무라카미에는 지금도 연어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 있다. 무라카미 사람들은 정월 명절에 먹기 위해 겨울이 찾아오면 시오자케를 만들어 처마 밑에 쭉 걸어놓는 풍습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이 시오자케의 상태가 다른 지방의 그것과 조금 다르다. 염장하려면 내장을 빼내기 위해 배를 완전히 가르기 마련인데, 무라카미에서는 배를 완전히 가르지 않고 일부분을 붙은 채 남겨둔다. 그 이유가 뭉클하다. 생명의 은인인 연어의 배를 어찌 가르랴. 즉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 「5장. 신묘한 신성의 맛」 중에서
참돔, 참조기, 참치, 참새우, 참멸치, 참붕어, 참숭어, 참게, 참문어. 생선에 참과 거짓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굳이 ‘참’을 붙인 건 물고기가 잘났거나, 성질이 온순하거나, 오래 사는 건강 체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잣대는 인간의 혀다. 개중에 가장 맛있는, 참말로 맛나는 놈이 참생선이다. 맛 이외의 또 다른 기준은 유용성이다. 인간의 식생활에 가장 유용한 놈이 참이다. 즉 동종 중 가장 많이 잡히거나 가장 실한 놈이 참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 제사상에 단골로 오르고, 환갑 등 잔치상에도 발탁된다. 먹거리 차원에서 금메달감이다. 그래서 접두어 ‘참’은 그 물고기에 수여하는 고마움의 증표이자 인증서인 셈이다. ‘참’에 상응하는 일본어 표기는 ‘마(?)’다. 참돔은 마다이, 참정어리는 마이와시, 참문어는 마다코, 참고등어는 마사바. 이런 식이다.
언어학적으로 생선 이름보다 가장 깊고 다양한 것이 바다 해海가 아닐까 한다. ‘해’ 자를 읽는 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해녀(海女)는 아마, 돌고래(海豚)는 이루카, 성게(海?)는 우니, 새우(海老)는 에비, 홍조식물 꼬시래기(海?)는 오고. 발음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학교에서 바다 해의 음독법을 ‘아이우에오’로 가르쳤다고 한다. 모든 모음으로 표현되는 바다. 이 얼마나 다채롭고 품이 넓은 세계인가. 사카나와 바다, 그리고 일본. 언어라는 그물이 끌어 올린 일본은 파닥파닥, 비린내와 생동감이 가득하다.
--- 「6장. 바닷물고기 언어학」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역사의 중심엔 늘 먹고사는 문제가 있다!
한 인간과 한 사회를 읽는 키워드, 식문화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30여 가지 수산물로 차려 낸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 이야기
언뜻 인간의 역사는 대의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한 인물이나 청천벽력 같은 일대 사건, 변혁을 지향하는 이념 등에 의해 역사가 추동되고 사회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의 역사는 곧 먹고사는 것의 역사다. 굳이 누군가의 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가 살아온 기록’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이는 곧 자명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 것인가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낱 가볍고 말초적인 잡담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그를 통해 구성된 정체(政體)와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이자 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밥상을 통해 한 인간을, 한 사회를 읽어내는 식문화 이야기에는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넘어 이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다.
“식문화, 특히 물고기 등과 같은 수산물을 매개체로 일본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단순한 미식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를 통해 일본의 풍습, 문화, 역사 이야기에 초점을 두려 했다. 짜네 맵네 음식을 간 보듯 한 집단의 수천 년 식문화를 식별할 수는 없다. … (하지만) 물고기와 함께 먹고사는 장삼이사의 삶은 나라를 불문하고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 시선으로 일본의 물고기와 일본의 어식 문화를 그려보려 했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비린내와 갯내음 가득한 밥상을 통해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30여 가지 수산물로 요리해 낸 이야기에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수산물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소비됐는지, 정체 변화나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취급됐는지, 그리고 왜 동일한 식재료를 우리와는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했는지 등을 다양한 자료에 입각해 서술한다. 설익은 문화론이나 일식 찬미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간편식과 서구식 식단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어식 문화를 천천히 맛보고 음미할 수 있다. 비린내 추억하기. 가깝고도 먼 섬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과거 식문화로 여행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준다.
과거와 현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6가지 일본 맛보기 코스
“그건 그렇고, 이제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이 책은 분명 수산물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꽁치, 고등어, 방어, 아귀, 새우, 오징어부터 일본 고유 음식이자 식재료인 니기리즈시, 사시미, 고래까지, 이야기의 시작은 수산물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진다. 물론 수산물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끝없이 새끼를 치며 이어진다. 가령, 아귀 이야기에서 아귀 간의 고쿠미(깊은 감칠맛)를 말하다가 미토학을 창시한 도쿠가와 미쓰쿠니와 『일본외사』를 지은 라이 산요 이야기로 빠진다든지, 꽁치 이야기를 하다가 이에신궁 참배객을 맞기 위해 개발된 독특한 생선구이 방식을 말한다든지, 전시 배급제 시대에 오징어가 배급된 이야기를 하다가 수제비가 등장한 배경을 말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저자의 해박한 수산물 지식과 재미난 입담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씹을수록 졸깃하고 고소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저자의 소박한 바람처럼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기보다는 그야말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다한 지식이 알게 모르게 쌓인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애잔한 서민의 맛〉은 백성들에게 수산물이 어떤 존재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2장 〈깊은 역사의 맛〉은 어패류를 통해 일본 식문화사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3장 〈쏠쏠한 돈의 맛〉에서는 상품 가치를 토대로 수산물을 살펴보고 경제 성장기의 수산물 소비 경향을 주로 다룬다. 4장 〈무사의 칼맛〉은 생선을 매개체로 무사 계급과 무사 문화를 이야기한다. 5장 〈신묘한 신성의 맛〉에서는 수산물에 얽힌 민속과 민초의 신앙생활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6장 〈바닷물고기 언어학〉에서는 물고기와 연관된 언어로 일본인의 식습관과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내고, 과거와 현재를 골고루 버무려 낸 6가지 코스 요리에는 단순히 맛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진한 고쿠미가 있다.
때로는 애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갑게
밥상에 비친 일본 어식 문화의 빛과 그림자
갯마을 민초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힘 있는 통찰
언어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일까? 언어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 기자로 활동한 저자의 글은 말맛이 살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산물 이야기를 다양한 감정을 갖고 따라가게 된다. “지역 토산물도 인간처럼 나고 자라는 곳을 닮는 걸까. 도호쿠의 토산물 멍게는 도호쿠의 처지를 쏙 빼닮았다.” 멍게 이야기에서는 씁쓰레한 멍게 맛처럼 씁쓸한 감정이 감돈다. “맏물을 ‘하시리’라고도 한다.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아차 하는 순간 떠나버리니 망설이면 놓친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과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가다랑어 이야기에서는 맏물을 놓칠세라 조바심이 난다.
“복어는 천국의 맛이라고들 한다. 제대로 먹으면 천국에 온 듯 느끼지만, 잘못 먹으면 실제로 이 세상에 하직 인사를 고하고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한 몸에 지닌 생선이다.” 복어 이야기에서는 아찔함이 엄습한다. “고래 한 마리가 일곱 마을을 기쁘게 할 순 있을지 몰라도 고래 포획은 결코 녹록지 않다. … 잡히면 대박이지만, 안 잡히면 대형 손실. 고래잡이는 투기성이 농후했다. 그런 조업을 전통이니, 공동체 결속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지만, 내부를 보면 잇속이 만만찮다.” 고래 이야기에서는 통쾌함이 느껴진다. 사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저자가 말했듯, 한일 관계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일순 격랑이 일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초여름 바다 날씨 같다. 이런 감정의 선을 때론 섬세한, 때론 힘 있는 필치로 그려내는 저자의 글에서는 이즘이나 주의에 빠지지 않는 통찰력이 엿보인다.
“음식은 언어와 닮았다. 한 외국어가 수입되고 번역된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모국어화되는 과정이 음식에도 존재한다. 언어처럼 음식도 무궁무진하게 변화한다.” -〈2장. 깊은 역사의 맛〉에서
음식과 언어라는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인류 사회의 문화는 서로 같은 길을 걷는다. 갯마을 민초와 함께 맵고 짜고, 힘들고 고된 삶의 여정을 거쳐 온 수산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 서영찬. 그가 언어라는 그물로 끌어 올린 일본 어식 문화에는 오랜 풍화작용을 묵묵히 견뎌 낸 장삼이사의 땀과 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한 인간과 한 사회를 읽는 키워드, 식문화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30여 가지 수산물로 차려 낸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 이야기
언뜻 인간의 역사는 대의에 의해 움직이는 듯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비범한 인물이나 청천벽력 같은 일대 사건, 변혁을 지향하는 이념 등에 의해 역사가 추동되고 사회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의 역사는 곧 먹고사는 것의 역사다. 굳이 누군가의 명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가 살아온 기록’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이는 곧 자명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을 것인가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낱 가볍고 말초적인 잡담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그를 통해 구성된 정체(政體)와 사회문화를 들여다보는 돋보기이자 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기에 밥상을 통해 한 인간을, 한 사회를 읽어내는 식문화 이야기에는 낯섦에서 오는 설렘을 넘어 이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진지한 시선이 녹아 있다.
“식문화, 특히 물고기 등과 같은 수산물을 매개체로 일본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단순한 미식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를 통해 일본의 풍습, 문화, 역사 이야기에 초점을 두려 했다. 짜네 맵네 음식을 간 보듯 한 집단의 수천 년 식문화를 식별할 수는 없다. … (하지만) 물고기와 함께 먹고사는 장삼이사의 삶은 나라를 불문하고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런 시선으로 일본의 물고기와 일본의 어식 문화를 그려보려 했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에도시대부터 21세기 도쿄까지 비린내와 갯내음 가득한 밥상을 통해 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30여 가지 수산물로 요리해 낸 이야기에는 우리와 닮은 듯 다른 일본 어식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수산물이 일본에서는 어떻게 소비됐는지, 정체 변화나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취급됐는지, 그리고 왜 동일한 식재료를 우리와는 다른 조리법으로 요리했는지 등을 다양한 자료에 입각해 서술한다. 설익은 문화론이나 일식 찬미론으로 흐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간편식과 서구식 식단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어식 문화를 천천히 맛보고 음미할 수 있다. 비린내 추억하기. 가깝고도 먼 섬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과거 식문화로 여행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준다.
과거와 현재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낸
꼬리에 꼬리를 무는 6가지 일본 맛보기 코스
“그건 그렇고, 이제 이야기는 산으로 간다.” 이 책은 분명 수산물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꽁치, 고등어, 방어, 아귀, 새우, 오징어부터 일본 고유 음식이자 식재료인 니기리즈시, 사시미, 고래까지, 이야기의 시작은 수산물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진다. 물론 수산물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끝없이 새끼를 치며 이어진다. 가령, 아귀 이야기에서 아귀 간의 고쿠미(깊은 감칠맛)를 말하다가 미토학을 창시한 도쿠가와 미쓰쿠니와 『일본외사』를 지은 라이 산요 이야기로 빠진다든지, 꽁치 이야기를 하다가 이에신궁 참배객을 맞기 위해 개발된 독특한 생선구이 방식을 말한다든지, 전시 배급제 시대에 오징어가 배급된 이야기를 하다가 수제비가 등장한 배경을 말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 저자의 해박한 수산물 지식과 재미난 입담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씹을수록 졸깃하고 고소한 이야기가 탄생한다. 저자의 소박한 바람처럼 술자리나 식사 자리에서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기보다는 그야말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다한 지식이 알게 모르게 쌓인다.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애잔한 서민의 맛〉은 백성들에게 수산물이 어떤 존재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2장 〈깊은 역사의 맛〉은 어패류를 통해 일본 식문화사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3장 〈쏠쏠한 돈의 맛〉에서는 상품 가치를 토대로 수산물을 살펴보고 경제 성장기의 수산물 소비 경향을 주로 다룬다. 4장 〈무사의 칼맛〉은 생선을 매개체로 무사 계급과 무사 문화를 이야기한다. 5장 〈신묘한 신성의 맛〉에서는 수산물에 얽힌 민속과 민초의 신앙생활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6장 〈바닷물고기 언어학〉에서는 물고기와 연관된 언어로 일본인의 식습관과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계급, 역사, 상품시장, 신앙, 언어로 맛을 내고, 과거와 현재를 골고루 버무려 낸 6가지 코스 요리에는 단순히 맛있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진한 고쿠미가 있다.
때로는 애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갑게
밥상에 비친 일본 어식 문화의 빛과 그림자
갯마을 민초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힘 있는 통찰
언어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일까? 언어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 기자로 활동한 저자의 글은 말맛이 살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산물 이야기를 다양한 감정을 갖고 따라가게 된다. “지역 토산물도 인간처럼 나고 자라는 곳을 닮는 걸까. 도호쿠의 토산물 멍게는 도호쿠의 처지를 쏙 빼닮았다.” 멍게 이야기에서는 씁쓰레한 멍게 맛처럼 씁쓸한 감정이 감돈다. “맏물을 ‘하시리’라고도 한다.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이다. 아차 하는 순간 떠나버리니 망설이면 놓친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과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가다랑어 이야기에서는 맏물을 놓칠세라 조바심이 난다.
“복어는 천국의 맛이라고들 한다. 제대로 먹으면 천국에 온 듯 느끼지만, 잘못 먹으면 실제로 이 세상에 하직 인사를 고하고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한 몸에 지닌 생선이다.” 복어 이야기에서는 아찔함이 엄습한다. “고래 한 마리가 일곱 마을을 기쁘게 할 순 있을지 몰라도 고래 포획은 결코 녹록지 않다. … 잡히면 대박이지만, 안 잡히면 대형 손실. 고래잡이는 투기성이 농후했다. 그런 조업을 전통이니, 공동체 결속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지만, 내부를 보면 잇속이 만만찮다.” 고래 이야기에서는 통쾌함이 느껴진다. 사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저자가 말했듯, 한일 관계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일순 격랑이 일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초여름 바다 날씨 같다. 이런 감정의 선을 때론 섬세한, 때론 힘 있는 필치로 그려내는 저자의 글에서는 이즘이나 주의에 빠지지 않는 통찰력이 엿보인다.
“음식은 언어와 닮았다. 한 외국어가 수입되고 번역된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모국어화되는 과정이 음식에도 존재한다. 언어처럼 음식도 무궁무진하게 변화한다.” -〈2장. 깊은 역사의 맛〉에서
음식과 언어라는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인류 사회의 문화는 서로 같은 길을 걷는다. 갯마을 민초와 함께 맵고 짜고, 힘들고 고된 삶의 여정을 거쳐 온 수산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저자 서영찬. 그가 언어라는 그물로 끌어 올린 일본 어식 문화에는 오랜 풍화작용을 묵묵히 견뎌 낸 장삼이사의 땀과 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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