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왜의 본질과 정체를 탐구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100년에 걸친 역사전쟁이 한일관계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전쟁의 소재가 사실은 역사적 화해의 대상’임을 실증하려는 시도로 출발했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전쟁에서 보듯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악화일로를 거듭해온 한일 역사전쟁,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묵직한 대답이 나왔다. 기존의 역사관에 대한 철저한 해체를 시도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이다. 언론에서 30년을 재직한 현직기자가 붓대를 잡았다. 저자는 한일 고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근본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의 재정비란 고대사의 그림을 완전히 바로잡는 일인데, 기존의 역사 기술은 심하게 헝클어져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만큼 철저히 해체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고 목청을 세운다. 낡은 아파트단지를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재건축의 결단을 고대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창이다. 마름모꼴 바다를 공유하고 있으며 대륙발 기마민족의 정복이라는 공통점이야말로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이 가능한 2가지 조건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전쟁에서 보듯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악화일로를 거듭해온 한일 역사전쟁,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묵직한 대답이 나왔다. 기존의 역사관에 대한 철저한 해체를 시도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이다. 언론에서 30년을 재직한 현직기자가 붓대를 잡았다. 저자는 한일 고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근본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의 재정비란 고대사의 그림을 완전히 바로잡는 일인데, 기존의 역사 기술은 심하게 헝클어져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만큼 철저히 해체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고 목청을 세운다. 낡은 아파트단지를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재건축의 결단을 고대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창이다. 마름모꼴 바다를 공유하고 있으며 대륙발 기마민족의 정복이라는 공통점이야말로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이 가능한 2가지 조건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목차
1권 차례
프롤로그 _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를 시작하며
1부. 해인족과 한반도왜
1장 _ ‘최초 왜인’ 호공(瓠公)의 정체(正體)
2장 _ 종족명 왜(倭)의 출현과 한반도왜(韓半島倭)
3장 _ 농경의 시작과 해인족의 운명 변화
4장 _ 농민집단 열도행과 해인족의 성장
2부. 반도왜 몰락과 열도왜 시대
5장 _ 해인족의 나라 포상국(浦上國) 전성시대
6장 _ 포상팔국 전쟁과 한반도왜의 몰락
7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① - ‘왜 인식’ 변화
8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② - 해인족의 이주
3부. 임나(任那)의 진실
9장 _ 지역명 임나의 출현과 다양한 분화
10장 _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실체
11장 _ ‘숨겨진 존재’ 임나일본부 파견주체
12장 _ 가야(임나)의 몰락이 증언하는 역사
에필로그 _ 왜와 임나의 수수께끼를 푸는 여정
2권 차례
프롤로그 _ 4세기 기마민족의 남하(南下)와 출자(出自) 문제
1부. 모용선비 기마족의 신라 진출
1장 _ 4세기 경주,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의 출현
2장 _ 기마족의 신라 진출, 계기와 경로
3장 _ 신라로 들어간 선비족 모용씨
4장 _ 모용선비에서 신라김씨로
2부. 기마족의 가야 정복
5장 _ 4세기 가야권역의 북방문화
6장 _ 가야 진출 기마민족과 출자(出自) 논쟁
7장 _ 기마족의 가야 진출과 정치적 분열
8장 _ 모용선비의 가야평정과 새로운 도전
3부. 기마족의 일본열도 정복
9장 _ 가야정복 기마족의 일본열도 진출설
10장 _ 가야계 정복군주 숭신(崇神)의 결단
11장 _ 광개토대왕 비문왜의 정체(正體)
12장 _ 열도정복 기마족과 한왜연합왕국의 출현
에필로그 _ ‘힘(power)의 이동’으로 분석한 기마민족 정복사
3권 차례
프롤로그 _ 열도의 패권전쟁과 한반도 남부의 정치방정식
1부. 규슈시대에서 기나이시대로
1장 _ 야마타이국과 규슈시대
2장 _ 숨겨진 정치체 규슈왕조의 진실
3장 _ 숭신왕조의 일본열도 평정
4장 _ 사방이 적(敵)…숭신왕조의 한계
2부. 백제계 응신왕조 열도패권 장악
5장 _ 백제의 승부수…열도에 담로국 개척
6장 _ 흔들리는 숭신왕조 위험한 도박
7장 _ ‘곤지의 쿠데타’…백제왕실의 열도왕권 장악
8장 _ 응신왕조의 승리, 일본열도 패권 확립
3부.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
9장 _ ‘비운의 왕조’ 영산강 정치체
10장 _ 영산강 정치체와 가야(임나)
11장 _ 백제의 남하와 영산강 정치체의 멸망
12장 _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진실
에필로그 _ 일본서기 극복의 출발점에 서다
프롤로그 _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를 시작하며
1부. 해인족과 한반도왜
1장 _ ‘최초 왜인’ 호공(瓠公)의 정체(正體)
2장 _ 종족명 왜(倭)의 출현과 한반도왜(韓半島倭)
3장 _ 농경의 시작과 해인족의 운명 변화
4장 _ 농민집단 열도행과 해인족의 성장
2부. 반도왜 몰락과 열도왜 시대
5장 _ 해인족의 나라 포상국(浦上國) 전성시대
6장 _ 포상팔국 전쟁과 한반도왜의 몰락
7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① - ‘왜 인식’ 변화
8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② - 해인족의 이주
3부. 임나(任那)의 진실
9장 _ 지역명 임나의 출현과 다양한 분화
10장 _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실체
11장 _ ‘숨겨진 존재’ 임나일본부 파견주체
12장 _ 가야(임나)의 몰락이 증언하는 역사
에필로그 _ 왜와 임나의 수수께끼를 푸는 여정
2권 차례
프롤로그 _ 4세기 기마민족의 남하(南下)와 출자(出自) 문제
1부. 모용선비 기마족의 신라 진출
1장 _ 4세기 경주,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의 출현
2장 _ 기마족의 신라 진출, 계기와 경로
3장 _ 신라로 들어간 선비족 모용씨
4장 _ 모용선비에서 신라김씨로
2부. 기마족의 가야 정복
5장 _ 4세기 가야권역의 북방문화
6장 _ 가야 진출 기마민족과 출자(出自) 논쟁
7장 _ 기마족의 가야 진출과 정치적 분열
8장 _ 모용선비의 가야평정과 새로운 도전
3부. 기마족의 일본열도 정복
9장 _ 가야정복 기마족의 일본열도 진출설
10장 _ 가야계 정복군주 숭신(崇神)의 결단
11장 _ 광개토대왕 비문왜의 정체(正體)
12장 _ 열도정복 기마족과 한왜연합왕국의 출현
에필로그 _ ‘힘(power)의 이동’으로 분석한 기마민족 정복사
3권 차례
프롤로그 _ 열도의 패권전쟁과 한반도 남부의 정치방정식
1부. 규슈시대에서 기나이시대로
1장 _ 야마타이국과 규슈시대
2장 _ 숨겨진 정치체 규슈왕조의 진실
3장 _ 숭신왕조의 일본열도 평정
4장 _ 사방이 적(敵)…숭신왕조의 한계
2부. 백제계 응신왕조 열도패권 장악
5장 _ 백제의 승부수…열도에 담로국 개척
6장 _ 흔들리는 숭신왕조 위험한 도박
7장 _ ‘곤지의 쿠데타’…백제왕실의 열도왕권 장악
8장 _ 응신왕조의 승리, 일본열도 패권 확립
3부.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
9장 _ ‘비운의 왕조’ 영산강 정치체
10장 _ 영산강 정치체와 가야(임나)
11장 _ 백제의 남하와 영산강 정치체의 멸망
12장 _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진실
에필로그 _ 일본서기 극복의 출발점에 서다
책 속으로
‘초기왜’는 일본열도인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한반도 동남부의 해변인을 지칭하는 용어였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진한의 농민들이 경주 인근의 어로종사자들을 멸칭하는 용어로 출발하였다는 말이다. (…) 한인과 이웃한 곳에 살았던 초기왜는 다른 종족이 아니다. 직업과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다.
--- pp.67-68
한반도 해인족은 내륙의 농민집단에게 대안지가 존재한다는 ‘정보’와 대안의 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농민들을 일본열도로 보냈고, 그 덕분에 일본의 야요이 농경문화는 출현할 수 있었다. (…) 가칭 ‘도해(渡海) 비즈니스’이다.
--- pp.162-163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변진구야국(弁辰狗倻國)은 변진한 24국 중 하나이니 삼한의 구성원이 분명하다. 그런데 같은 시대 왜의 실상을 전하는 왜인전에 ‘기북안 구야한국(其北岸 狗耶韓國)’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왜) 북쪽 끝은 구야한국이다.”라는 뜻이다. 왜의 북안이 구야한국이라니? 삼국지 가운데서 논란이 가장 심한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학자들은 구야한국이 왜의 영역이라는 증거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한국의 학자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
--- pp.206-207
‘본가야’는 곧 ‘임나가라’와 같은 말이었다고 짐작된다. 임나가라에서의 ‘임나’는 본국, 맹주국, 중심국을 뜻하는 일종의 관형사이다. 임나는 미칭(美稱) 내지 우호(優號)인 만큼 ‘임나가라’는 그렇게 불리기를 희망한 세력이 스스로 채택한 용어라고 하겠다. 반면 인접국으로서 ‘임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던 신라는 적대국을 임나라는 좋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 p.246
2권
가야의 개국신화를 세밀히 분석해 보면 ‘건국의 할아버지들’이 AD 4세기에 진입했을 것이란 방증이 포착된다. 4세기에 가야로 진입한 건국주는 기마민족 출신으로 짐작된다. 신라의 마립간시대가 그러하듯이 4세기의 가야에서도 기마문화의 융성함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 기마문화의 수준과 특징으로 판단할 때 신라와 가야권은 극히 유사하다. 이는 가야를 정복한 기마민족 역시 모용선비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 p.150
369년의 대대적인 군사작전 이후 착실한 도해준비를 거친 다음, 부여계(?) 모용선비군단은 AD 370년-405년 약 30년의 세월 동안 축차적(逐次的)으로 바다를 건너가기에 이른다. 가야에서 발진한 기마군단은 규슈에 이어 혼슈와 시코쿠 등지로 지배영역을 빠르게 넓혀 나갔으니 한·왜연합왕국이 출현한 셈이다.
--- p.191
(…) 한반도에서 출발한 인간집단이 바다 건너 일본열도로 진출한 사례를 한두 차례로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BC 3세기경 한반도계 야요이농민이 일본열도로 첫발을 디딘 이래 무수한 이주의 파도가 반도에서 열도로 이어졌다. 기원을 전후할 즈음부터 수십 개의 소국이 한반도와 근접한 규슈 일대에 생겨난 것은 당연하다. 규슈와 혼슈 등지로 이주하여 소국체제를 건설한 한반도계 농민들은 본국인 가야땅을 ‘임나(任那)’라고 지칭하였을 것이다.
--- pp.227-228
3권
오지랖이 넓었던 숭신왕조는 대한해협 건너편 한반도 정세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 가야와 사실상 연합왕국을 이룩하였던 숭신의 왜국은 AD 400년을 전후하여 백제와 힘을 합쳐 신라를 타도하는 데 국력을 기울였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숭신왕조가 4세기 말부터 소멸하는 6세기 초까지 약 150년간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맺은 깊은 관련성을 감안하면 숭신왕조는 일본사보다는 한국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더 온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 p.109
AD 527-528년 ‘반정의 전쟁’으로 규슈 일대의 승신왜국을 제압하고 대륙과의 안정적인 외교루트를 확보한 기나이 응신왜는 곧이어 가야(임나)와 신라, 백제 등과의 관계에서 과거 숭신왜가 지녔던 위상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한다. 백제에 대한 ‘갑질’이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흠명 4년(AD 543) 11월, ‘임나하한에 있는 백제 군령·성주를 일본부에 귀속하게 하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p.272
(…) 5세기 후반부터 숭신왜가 서부로 후퇴하면서 규슈 일대의 인구가 늘었고 기나이평야까지 잃었기에 양곡 부족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기나이군과 싸울 병사들을 먹일 군량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대사이다. 쌀이 절실했던 규슈의 정치체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색한 추리가 아니다. 물이 넉넉하고 들판이 넓은 영산강유역은 벼농사 역사가 길고 생산량도 많았다. 영산강의 쌀과 규슈의 병사를 교환한 증거가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이 아닐까?
--- p.394
일본서기가 대(對)한반도 관계사를 조작한 것은 콤플렉스 극복 차원만이 아니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일본서기는 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의식하고 반영한 정치문서이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대등한 외교관계가 아니라 조공책봉의 외교가 기본이었다. 따라서 위계가 낮으면 곤란하였다. 야마토왜는 적대국 통일신라를 능가하는 나라가 되고자 했으므로 신라에 멸망당한 백제를 본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어미를 죽이는 심정으로 본국을 조공국으로 묘사한 슬픈 책이 고사기요, 일본서기이다. 그런 만큼 일본의 정치체 입장에서는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근본을 베어버린 ‘나름 결단의 역사서’라고 하겠다.
--- pp.67-68
한반도 해인족은 내륙의 농민집단에게 대안지가 존재한다는 ‘정보’와 대안의 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농민들을 일본열도로 보냈고, 그 덕분에 일본의 야요이 농경문화는 출현할 수 있었다. (…) 가칭 ‘도해(渡海) 비즈니스’이다.
--- pp.162-163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변진구야국(弁辰狗倻國)은 변진한 24국 중 하나이니 삼한의 구성원이 분명하다. 그런데 같은 시대 왜의 실상을 전하는 왜인전에 ‘기북안 구야한국(其北岸 狗耶韓國)’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왜) 북쪽 끝은 구야한국이다.”라는 뜻이다. 왜의 북안이 구야한국이라니? 삼국지 가운데서 논란이 가장 심한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학자들은 구야한국이 왜의 영역이라는 증거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한국의 학자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
--- pp.206-207
‘본가야’는 곧 ‘임나가라’와 같은 말이었다고 짐작된다. 임나가라에서의 ‘임나’는 본국, 맹주국, 중심국을 뜻하는 일종의 관형사이다. 임나는 미칭(美稱) 내지 우호(優號)인 만큼 ‘임나가라’는 그렇게 불리기를 희망한 세력이 스스로 채택한 용어라고 하겠다. 반면 인접국으로서 ‘임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던 신라는 적대국을 임나라는 좋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 p.246
2권
가야의 개국신화를 세밀히 분석해 보면 ‘건국의 할아버지들’이 AD 4세기에 진입했을 것이란 방증이 포착된다. 4세기에 가야로 진입한 건국주는 기마민족 출신으로 짐작된다. 신라의 마립간시대가 그러하듯이 4세기의 가야에서도 기마문화의 융성함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 기마문화의 수준과 특징으로 판단할 때 신라와 가야권은 극히 유사하다. 이는 가야를 정복한 기마민족 역시 모용선비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 p.150
369년의 대대적인 군사작전 이후 착실한 도해준비를 거친 다음, 부여계(?) 모용선비군단은 AD 370년-405년 약 30년의 세월 동안 축차적(逐次的)으로 바다를 건너가기에 이른다. 가야에서 발진한 기마군단은 규슈에 이어 혼슈와 시코쿠 등지로 지배영역을 빠르게 넓혀 나갔으니 한·왜연합왕국이 출현한 셈이다.
--- p.191
(…) 한반도에서 출발한 인간집단이 바다 건너 일본열도로 진출한 사례를 한두 차례로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BC 3세기경 한반도계 야요이농민이 일본열도로 첫발을 디딘 이래 무수한 이주의 파도가 반도에서 열도로 이어졌다. 기원을 전후할 즈음부터 수십 개의 소국이 한반도와 근접한 규슈 일대에 생겨난 것은 당연하다. 규슈와 혼슈 등지로 이주하여 소국체제를 건설한 한반도계 농민들은 본국인 가야땅을 ‘임나(任那)’라고 지칭하였을 것이다.
--- pp.227-228
3권
오지랖이 넓었던 숭신왕조는 대한해협 건너편 한반도 정세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다. 가야와 사실상 연합왕국을 이룩하였던 숭신의 왜국은 AD 400년을 전후하여 백제와 힘을 합쳐 신라를 타도하는 데 국력을 기울였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숭신왕조가 4세기 말부터 소멸하는 6세기 초까지 약 150년간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맺은 깊은 관련성을 감안하면 숭신왕조는 일본사보다는 한국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더 온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 p.109
AD 527-528년 ‘반정의 전쟁’으로 규슈 일대의 승신왜국을 제압하고 대륙과의 안정적인 외교루트를 확보한 기나이 응신왜는 곧이어 가야(임나)와 신라, 백제 등과의 관계에서 과거 숭신왜가 지녔던 위상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본격화한다. 백제에 대한 ‘갑질’이 시작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흠명 4년(AD 543) 11월, ‘임나하한에 있는 백제 군령·성주를 일본부에 귀속하게 하라’는 요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p.272
(…) 5세기 후반부터 숭신왜가 서부로 후퇴하면서 규슈 일대의 인구가 늘었고 기나이평야까지 잃었기에 양곡 부족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기나이군과 싸울 병사들을 먹일 군량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대사이다. 쌀이 절실했던 규슈의 정치체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색한 추리가 아니다. 물이 넉넉하고 들판이 넓은 영산강유역은 벼농사 역사가 길고 생산량도 많았다. 영산강의 쌀과 규슈의 병사를 교환한 증거가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이 아닐까?
--- p.394
일본서기가 대(對)한반도 관계사를 조작한 것은 콤플렉스 극복 차원만이 아니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일본서기는 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의식하고 반영한 정치문서이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는 대등한 외교관계가 아니라 조공책봉의 외교가 기본이었다. 따라서 위계가 낮으면 곤란하였다. 야마토왜는 적대국 통일신라를 능가하는 나라가 되고자 했으므로 신라에 멸망당한 백제를 본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어미를 죽이는 심정으로 본국을 조공국으로 묘사한 슬픈 책이 고사기요, 일본서기이다. 그런 만큼 일본의 정치체 입장에서는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근본을 베어버린 ‘나름 결단의 역사서’라고 하겠다.
--- p.414
출판사 리뷰
왜의 본질과 정체를 탐구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100년에 걸친 역사전쟁이 한일관계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전쟁의 소재가 사실은 역사적 화해의 대상’임을 실증하려는 시도로 출발했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전쟁에서 보듯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악화일로를 거듭해온 한일 역사전쟁,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묵직한 대답이 나왔다. 기존의 역사관에 대한 철저한 해체를 시도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이다. 언론에서 30년을 재직한 현직기자가 붓대를 잡았다. 저자는 한일 고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근본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의 재정비란 고대사의 그림을 완전히 바로잡는 일인데, 기존의 역사 기술은 심하게 헝클어져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만큼 철저히 해체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고 목청을 세운다. 낡은 아파트단지를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재건축의 결단을 고대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창이다. 마름모꼴 바다를 공유하고 있으며 대륙발 기마민족의 정복이라는 공통점이야말로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이 가능한 2가지 조건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3권 체제로 구성돼 있다.
제1권은 ‘왜와 임나의 진실’ 편이다. ‘왜(倭)’라는 족속명이 원래는 한일 사이의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았던 해변인에 대한 멸칭에서 비롯하였으며 ‘왜’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종족과 지역이 한반도 남부해안에서 일본열도로 변화하는 역사의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다.
제2권은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 편이다. AD 4세기 이후에 두드러지는 기마민족의 진출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제의 기마족을 필자는 ‘선비족 모용씨’로 간주한다. 모용선비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를 정복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특히 전방후원분을 ‘고대 일본의 지배자들이 큰 배를 타고 진출한 외래정복자임을 증언하는 기념물’로 진단하면서 직사각형 전방부(前方部)를 일본신화의 천반선(天磐船), 즉 돌배(石船)를 상징한다고 기술한 대목 등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3권은 ‘열도의 내전과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규슈왜와 기나이왜로 양분되어 진행된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기의 비밀을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열도의 정치체와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한반도 남부제국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의 출현 배경을 열도의 내전과 결부시킨 시각은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논지이다.
저자 장한식은 현직 방송기자이지만 역사 관련한 글쓰기는 처음이 아니다.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시작으로 2009년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2015년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2018년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등 독자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여러 역사서를 저술한 바 있다. 특히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출간하면서 문제의 기마민족이 모용선비라는 주장을 펼친 일은 역사학계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의 단초 역시 1999년 책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의 한일관계라는 화두를 놓고 ‘많이 읽고 오래 생각’한 끝에 복잡미묘한 고대사를 관통할 수 있는 얼개를 꾸밀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존의 한일 고대사는 그 뼈대가 부식되었고 낡아빠진 설명틀은 붕괴지경으로 몰렸다. 이제 기초석을 새로 깔고 기둥을 바꾸고 서까래를 다시 올려야 할 때가 됐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현실 이야기’이다. 작은 형사사건이든 거대한 정치적 음모이든 인간사회의 모든 역사는 현실적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의 부산물이요 축적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상을 감추고 있는 고대사의 이면을 포착하는 데는 언론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의 취재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육하원칙(六何原則)이란 그물을 갖고 사건의 진상을 포획하는 기자는 확보된 작은 단서에서 숨겨진 큰 그림을 찾아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헌의 부재와 고고학적 발굴의 빈곤으로 흐릿하기만 한 고대사의 실체를 포착하는 일에는 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축적된 기자의 정보분석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일 고대사 재건축의 완성은 전문학자들의 몫이지만 거장들의 역사해석에서 벗어난 시각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기자의 취재방식이 전문연구자에게 통찰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다시 고대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2,3권은 한일 역사전쟁에서 풀리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을 비교적 명쾌하게 풀이하고 있다. 특히 임나일본부설과 한반도왜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과감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일 고대사 체계의 새로운 집짓기’를 촉구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한다. 역사서에 ‘재건축’이라는 특이한 제목이 붙은 것은 이런 의도라는 설명인데 동의할 만하다. 묵직한 이야기가 연속되지만 기자가 쓴 글인 탓에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과거로 떠나는 미래여행’이자 ‘미래를 향한 과거여행’……. 역사에 관심 많은 독자들에게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비장하면서도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역사 기술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전쟁에서 보듯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악화일로를 거듭해온 한일 역사전쟁, 과연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묵직한 대답이 나왔다. 기존의 역사관에 대한 철저한 해체를 시도하는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이다. 언론에서 30년을 재직한 현직기자가 붓대를 잡았다. 저자는 한일 고대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근본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의 재정비란 고대사의 그림을 완전히 바로잡는 일인데, 기존의 역사 기술은 심하게 헝클어져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만큼 철저히 해체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고 목청을 세운다. 낡은 아파트단지를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재건축의 결단을 고대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창이다. 마름모꼴 바다를 공유하고 있으며 대륙발 기마민족의 정복이라는 공통점이야말로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이 가능한 2가지 조건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3권 체제로 구성돼 있다.
제1권은 ‘왜와 임나의 진실’ 편이다. ‘왜(倭)’라는 족속명이 원래는 한일 사이의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았던 해변인에 대한 멸칭에서 비롯하였으며 ‘왜’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종족과 지역이 한반도 남부해안에서 일본열도로 변화하는 역사의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다.
제2권은 ‘기마족의 신라·가야·열도 정복사’ 편이다. AD 4세기 이후에 두드러지는 기마민족의 진출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제의 기마족을 필자는 ‘선비족 모용씨’로 간주한다. 모용선비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를 정복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특히 전방후원분을 ‘고대 일본의 지배자들이 큰 배를 타고 진출한 외래정복자임을 증언하는 기념물’로 진단하면서 직사각형 전방부(前方部)를 일본신화의 천반선(天磐船), 즉 돌배(石船)를 상징한다고 기술한 대목 등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3권은 ‘열도의 내전과 영산강 전방후원분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규슈왜와 기나이왜로 양분되어 진행된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기의 비밀을 심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열도의 정치체와 때로는 교류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한반도 남부제국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의 출현 배경을 열도의 내전과 결부시킨 시각은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논지이다.
저자 장한식은 현직 방송기자이지만 역사 관련한 글쓰기는 처음이 아니다.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시작으로 2009년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2015년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2018년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등 독자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여러 역사서를 저술한 바 있다. 특히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출간하면서 문제의 기마민족이 모용선비라는 주장을 펼친 일은 역사학계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의 단초 역시 1999년 책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의 한일관계라는 화두를 놓고 ‘많이 읽고 오래 생각’한 끝에 복잡미묘한 고대사를 관통할 수 있는 얼개를 꾸밀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존의 한일 고대사는 그 뼈대가 부식되었고 낡아빠진 설명틀은 붕괴지경으로 몰렸다. 이제 기초석을 새로 깔고 기둥을 바꾸고 서까래를 다시 올려야 할 때가 됐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현실 이야기’이다. 작은 형사사건이든 거대한 정치적 음모이든 인간사회의 모든 역사는 현실적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의 부산물이요 축적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상을 감추고 있는 고대사의 이면을 포착하는 데는 언론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의 취재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육하원칙(六何原則)이란 그물을 갖고 사건의 진상을 포획하는 기자는 확보된 작은 단서에서 숨겨진 큰 그림을 찾아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헌의 부재와 고고학적 발굴의 빈곤으로 흐릿하기만 한 고대사의 실체를 포착하는 일에는 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축적된 기자의 정보분석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일 고대사 재건축의 완성은 전문학자들의 몫이지만 거장들의 역사해석에서 벗어난 시각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기자의 취재방식이 전문연구자에게 통찰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다시 고대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1,2,3권은 한일 역사전쟁에서 풀리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을 비교적 명쾌하게 풀이하고 있다. 특히 임나일본부설과 한반도왜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과감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일 고대사 체계의 새로운 집짓기’를 촉구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한다. 역사서에 ‘재건축’이라는 특이한 제목이 붙은 것은 이런 의도라는 설명인데 동의할 만하다. 묵직한 이야기가 연속되지만 기자가 쓴 글인 탓에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과거로 떠나는 미래여행’이자 ‘미래를 향한 과거여행’……. 역사에 관심 많은 독자들에게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비장하면서도 즐거운 여정이 될 것이다.
'40.한일관계사 연구 (전공분야>책소개) > 9.고대한일교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식민지 고대 (2014) - 일본 한일 고대사 바로 잡기 (1) | 2024.09.01 |
---|---|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2024) - 부여사로 읽는 한일고대사 (0) | 2024.09.01 |
고대일본의 대한인식과 교류 (2014) (0) | 2024.08.17 |
일본 신석기시대 생업과 주거 (2015) (0) | 2024.08.17 |
대백제의 꿈 (2013) - 일본고대사의 백제와 야마도왕조 (0) | 2024.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