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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부여의 재조명을 통해 한일고대사를 새롭게 해석하다.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동아일보사, 2010)의 개정판인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부여사를 복원해, 부여가 고구려 백제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일본에 진출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백제는 실존하지 않았으며, 부여는 원부여-반도부여(백제)-열도부여(일본)로 변화했음을 확인한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
1장 다시 보는 일선동조론
들어가는 글: 불함문화론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일선동조론 | “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2장 도래인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연오랑?세오녀
열도를 뒤덮은 한국 이름 | 한일동족론
3장 태양의 아들, 부여
들어가는 글: 프리기아와 부여
여명기의 부여 | 부여의 아들, 고구려와 백제
4장 백제는 신화다
들어가는 글: 역사가 된 신화
백제의 신화 | 일본(日本), 왜(倭)를 정벌하다
5장 안개 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들어가는 글: 왕비의 꽃밭
고도(Godot)를 기다리며 | 위례(慰禮)로 가는 길 | 백제의 근거지, 요서지역 | ‘구다라(クタラ)’, 곰나루인가 스마트빌딩인가
6장 끝없는 전쟁의 시작
들어가는 글: 닮은 그대, 주몽과 김누루하치
쥬신류어와 까오리류어 | 쥬신 분열의 시작, 씨앗 싸움 | 고구려와 부여, 끝없는 전쟁의 시작 | 부여계 토착화의 진통
7장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들어가는 글: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부여의 세 차례 남하 | 험난한 부여의 여정 | 부여의 남하에 대한 여러 연구
8장 근초고왕, 야마토 왕조를 열다
들어가는 글: 진구 황후의 두 얼굴
진구 황후,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하다 | 야마토 왕조의 시조, 근초고왕
9장 부여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부여와 곰고을의 사람들
고마와 담로 | 범부여 연합국가의 성립
10장 한 줄기, 두 연꽃
들어가는 글: 새롭게 열리는 일본의 역사
열도로, 열도로 | 무령왕과 닌도쿠 천황 | 오진 천황이 곤지왕? | 다시 안개 속으로
11장 의문의 고리, 곤지왕
들어가는 글: 왕의 부인과 결혼한 곤지 왕자
곤지왕과 개로왕의 관계 | 열도로 간 곤지왕
12장 곤지왕이 유라쿠 천황인 까닭
들어가는 글: 한눈으로 보는 백제사
곤지왕과 왜 5왕 | 왜왕 무(武)=유라쿠 천황=곤지왕
13장 개로왕을 위한 만사(輓詞)
들어가는 글: 개로왕을 위하여
현 일본 천황가의 조상, 개로왕 | 게이타이 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 베일에 싸인 천황가
14장 안동장군 신라제군사 왜국 왕
들어가는 글: 대국 왜의 정체
안동대장군 왜국 왕 | 부여계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 | 부여의 대고구려전 군사전략 | 반도에서 열도로 헤게모니의 이전
15장 우리의 이름, 왜(Wa)
들어가는 글: 광개토대왕비의 답답한 해석
왜, 한국인의 이름 | 광개토대왕비의 왜
16장 왜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글: 한족(漢族)의 나라, 일본?
왜(倭)라는 명칭 | 고대 사서에 나타난 왜의 실체 | 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17장 야마토 다마시
들어가는 글: 한국과 일본, 갈 수 없는 나라
기마민족국가와 범부여 연합 | 일본의 시작, 야마토의 실체
18장 백제 성왕이 긴메이 천황
들어가는 글: “사실 우리 조상은 백제인입니다”
성왕, 두 얼굴의 대왕 | 성왕, 성명왕, 긴메이 천황
19장 성왕과 가야(임나) 삼총사
들어가는 글: 미소라 히바리의 꿈
임나 3총사: 성왕-소가씨-긴메이 천황 | 모쿠마치의 후예, 천황 위에 군림하다
20장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끼오오가미
들어가는 글: 비다쓰 천황의 비밀
백제 성왕, 천황가의 조상신 | 부여계의 성지, 히라노 신사 | 성명왕의 후예들
21장 미녀와 영웅
들어가는 글: 아지매, 오세요
아스카 문화의 스이코 천황에서 사이메이 천황까지 | 백제 구원의 여신, 사이메이 천황 | 영웅의 등장, 덴지 천황
22장 덴지 천황과 덴무 천황
들어가는 글: 진신의 쿠데타
덴지 천황, 백강전투를 위해 태어난 사람 | 덴지와 덴무, 난형난제(難兄難弟) | 덴무 천황의 비밀
23장 덴무, 세상을 속이다
들어가는 글: “폐하, 논어(論語)라도” | 천황의 탄생 | 우지노카미와 무쿤다 | 『일본서기』의 역사적 의미
글을 마치며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
1장 다시 보는 일선동조론
들어가는 글: 불함문화론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일선동조론 | “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2장 도래인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연오랑?세오녀
열도를 뒤덮은 한국 이름 | 한일동족론
3장 태양의 아들, 부여
들어가는 글: 프리기아와 부여
여명기의 부여 | 부여의 아들, 고구려와 백제
4장 백제는 신화다
들어가는 글: 역사가 된 신화
백제의 신화 | 일본(日本), 왜(倭)를 정벌하다
5장 안개 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들어가는 글: 왕비의 꽃밭
고도(Godot)를 기다리며 | 위례(慰禮)로 가는 길 | 백제의 근거지, 요서지역 | ‘구다라(クタラ)’, 곰나루인가 스마트빌딩인가
6장 끝없는 전쟁의 시작
들어가는 글: 닮은 그대, 주몽과 김누루하치
쥬신류어와 까오리류어 | 쥬신 분열의 시작, 씨앗 싸움 | 고구려와 부여, 끝없는 전쟁의 시작 | 부여계 토착화의 진통
7장 압록강을 건너 한강으로
들어가는 글: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부여의 세 차례 남하 | 험난한 부여의 여정 | 부여의 남하에 대한 여러 연구
8장 근초고왕, 야마토 왕조를 열다
들어가는 글: 진구 황후의 두 얼굴
진구 황후,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하다 | 야마토 왕조의 시조, 근초고왕
9장 부여의 나라, 일본
들어가는 글: 부여와 곰고을의 사람들
고마와 담로 | 범부여 연합국가의 성립
10장 한 줄기, 두 연꽃
들어가는 글: 새롭게 열리는 일본의 역사
열도로, 열도로 | 무령왕과 닌도쿠 천황 | 오진 천황이 곤지왕? | 다시 안개 속으로
11장 의문의 고리, 곤지왕
들어가는 글: 왕의 부인과 결혼한 곤지 왕자
곤지왕과 개로왕의 관계 | 열도로 간 곤지왕
12장 곤지왕이 유라쿠 천황인 까닭
들어가는 글: 한눈으로 보는 백제사
곤지왕과 왜 5왕 | 왜왕 무(武)=유라쿠 천황=곤지왕
13장 개로왕을 위한 만사(輓詞)
들어가는 글: 개로왕을 위하여
현 일본 천황가의 조상, 개로왕 | 게이타이 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 베일에 싸인 천황가
14장 안동장군 신라제군사 왜국 왕
들어가는 글: 대국 왜의 정체
안동대장군 왜국 왕 | 부여계 내부의 헤게모니 쟁탈전 | 부여의 대고구려전 군사전략 | 반도에서 열도로 헤게모니의 이전
15장 우리의 이름, 왜(Wa)
들어가는 글: 광개토대왕비의 답답한 해석
왜, 한국인의 이름 | 광개토대왕비의 왜
16장 왜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글: 한족(漢族)의 나라, 일본?
왜(倭)라는 명칭 | 고대 사서에 나타난 왜의 실체 | 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17장 야마토 다마시
들어가는 글: 한국과 일본, 갈 수 없는 나라
기마민족국가와 범부여 연합 | 일본의 시작, 야마토의 실체
18장 백제 성왕이 긴메이 천황
들어가는 글: “사실 우리 조상은 백제인입니다”
성왕, 두 얼굴의 대왕 | 성왕, 성명왕, 긴메이 천황
19장 성왕과 가야(임나) 삼총사
들어가는 글: 미소라 히바리의 꿈
임나 3총사: 성왕-소가씨-긴메이 천황 | 모쿠마치의 후예, 천황 위에 군림하다
20장 천황가의 조상신, 성왕 이마끼오오가미
들어가는 글: 비다쓰 천황의 비밀
백제 성왕, 천황가의 조상신 | 부여계의 성지, 히라노 신사 | 성명왕의 후예들
21장 미녀와 영웅
들어가는 글: 아지매, 오세요
아스카 문화의 스이코 천황에서 사이메이 천황까지 | 백제 구원의 여신, 사이메이 천황 | 영웅의 등장, 덴지 천황
22장 덴지 천황과 덴무 천황
들어가는 글: 진신의 쿠데타
덴지 천황, 백강전투를 위해 태어난 사람 | 덴지와 덴무, 난형난제(難兄難弟) | 덴무 천황의 비밀
23장 덴무, 세상을 속이다
들어가는 글: “폐하, 논어(論語)라도” | 천황의 탄생 | 우지노카미와 무쿤다 | 『일본서기』의 역사적 의미
글을 마치며
책 속으로
여명기 쥬신의 역사에서 가장 주요한 나라는 고조선과 부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여는 고조선보다 더욱 뚜렷한 실체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부여는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여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경까지 북만주 일대-한반도 남부-일본 열도 등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부여족 공동체를 구성한 나라로 쥬신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부여는 망하면 다시 일어서면서 거의 1,000여 년을 존재했습니다. 부여의 가장 큰 적은 같은 부여계의 일파인 고구려였습니다. 부여는 고구려를 막기 위해 한족(漢族)과 연합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_ 62쪽
저는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반도 사학계가 말하는 백제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만주 지역에서 세력이 궤멸된 부여계가 남으로 이동하여 이전에 이미 한강 유역에 정착해 있던 부여계 소국을 정벌하여 정착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여계의 회복을 추구하다가 강력한 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열도부여의 개척에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습니다. _ 83쪽
이런 가운데 백제의 성왕(523~554년)은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그러니까 성왕은 부여계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강국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중요한 국가 이데올로기로 설정한 것입니다. 여기에 불교를 도입하여 문화강국으로 거듭 태어나려 했습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백제라는 말보다는 반도부여가 더욱 적당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_ 124쪽
동북아시아의 역사상 부여계만큼 긴 세월 동안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한 세력은 없었습니다. 쓰러지면 일어서고 타격을 받으면 장소를 바꾸어 또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생명력의 유지는 부여사의 위대한 특징들 가운데 하
나입니다. 만주에서 궤멸되어 정체성의 유지가 어려웠던 부여계는 반도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남하를 시작하자 반도부여는 열도의 개척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_ 224쪽
백제왕이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할권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상황이므로 굳이 그 부분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만약 백제왕이 죽게 되면, 이 지역에 대한 맹주로서의 권한을 왜왕이 제대로 이양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왜왕들은 이 지역에 대한 맹주권을 어떤 형태로든 간에 명시해두거나 국제적으로 승인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_ 356쪽
저는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반도 사학계가 말하는 백제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만주 지역에서 세력이 궤멸된 부여계가 남으로 이동하여 이전에 이미 한강 유역에 정착해 있던 부여계 소국을 정벌하여 정착했고, 이를 기반으로 부여계의 회복을 추구하다가 강력한 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열도부여의 개척에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습니다. _ 83쪽
이런 가운데 백제의 성왕(523~554년)은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그러니까 성왕은 부여계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강국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중요한 국가 이데올로기로 설정한 것입니다. 여기에 불교를 도입하여 문화강국으로 거듭 태어나려 했습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백제라는 말보다는 반도부여가 더욱 적당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_ 124쪽
동북아시아의 역사상 부여계만큼 긴 세월 동안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한 세력은 없었습니다. 쓰러지면 일어서고 타격을 받으면 장소를 바꾸어 또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생명력의 유지는 부여사의 위대한 특징들 가운데 하
나입니다. 만주에서 궤멸되어 정체성의 유지가 어려웠던 부여계는 반도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남하를 시작하자 반도부여는 열도의 개척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_ 224쪽
백제왕이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할권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상황이므로 굳이 그 부분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만약 백제왕이 죽게 되면, 이 지역에 대한 맹주로서의 권한을 왜왕이 제대로 이양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왜왕들은 이 지역에 대한 맹주권을 어떤 형태로든 간에 명시해두거나 국제적으로 승인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_ 356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부여의 후예, 일본 열도를 지배하다”
부여,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
부여는 기원전 5세기부터 산둥반도 이북에서 북만주 일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고구려가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존재했던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사실상 와해되었고,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벌로 이름만 남게 되었다. 결국 494년 문자왕에 의해 패망하고, 이후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부여라는 국호는 538년 백제 성황이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칭하면서 다시 부활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위서(魏書)』, 『양서(梁書)』, 『주서(周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의 사료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가 고구려를 건국’했으며, 더불어 ‘백제 역시 부여의 남하로 만들어진 부여계의 나라’였음을 이야기한다.
부여의 남하,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
이 책에서 저자는, 부여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만주에서 한반도로 남하했으며, 한반도 역시 그에 따라 변화의 과정을 겪었음을 주장한다. 제1차 남하는 고구려 건국 즈음하여 부여의 일부 소수 세력이 남하한 것으로, 이 세력이 한강 유역에 정착해 소국 백제를 건국했다. 제2차 남하는 3세기 초중엽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부여의 주요 세력들이 남하했는데, 이들이 소국 백제를 정벌하고 반도부여(백제)의 기초를 세웠다. 이때 주체 세력이 부여왕 울구태이며, 그가 백제의 고이왕이다. 제3차 남하는 4세기 초, 동호계의 선비가 강성해지면서 부여가 만주에서 큰 핍박을 받자 근초고왕 계열이 한반도로 남하했다. 근초고왕은 왕성한 정복활동으로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 고구려의 힘이 한반도에 이르자 반도부여의 일부는 일본 열도로 이동해, 일본 초기 국가 형성에 일조했다.
백제, 만들어진 신화
고구려 계통의 유민이 남하해 건국한 소국 백제가 이후에는 큰 외부세력의 유입 없이 스스로 성장하여 대국 백제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통설에 대해 백제의 역사는 부여사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그 근거로 3세기까지 중국의 주요 정사에 ‘백제’가 언급되지 않고 그 대신 ‘부여’만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백제가 처음 언급된 것은 4세기 중반부터이며, 남북조 시대 중 5세기에 존재한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宋書)』에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도 6세기 남부여가 등장하면서 사라진다. 결국 백제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아마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로 길어야 1세기 남짓이다. 이러한 사실들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만들어진 신화임을 강조한다
부여,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
부여는 기원전 5세기부터 산둥반도 이북에서 북만주 일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고구려가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존재했던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사실상 와해되었고, 41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벌로 이름만 남게 되었다. 결국 494년 문자왕에 의해 패망하고, 이후 공식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부여라는 국호는 538년 백제 성황이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호를 남부여로 칭하면서 다시 부활한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위서(魏書)』, 『양서(梁書)』, 『주서(周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의 사료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가 고구려를 건국’했으며, 더불어 ‘백제 역시 부여의 남하로 만들어진 부여계의 나라’였음을 이야기한다.
부여의 남하,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
이 책에서 저자는, 부여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만주에서 한반도로 남하했으며, 한반도 역시 그에 따라 변화의 과정을 겪었음을 주장한다. 제1차 남하는 고구려 건국 즈음하여 부여의 일부 소수 세력이 남하한 것으로, 이 세력이 한강 유역에 정착해 소국 백제를 건국했다. 제2차 남하는 3세기 초중엽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부여의 주요 세력들이 남하했는데, 이들이 소국 백제를 정벌하고 반도부여(백제)의 기초를 세웠다. 이때 주체 세력이 부여왕 울구태이며, 그가 백제의 고이왕이다. 제3차 남하는 4세기 초, 동호계의 선비가 강성해지면서 부여가 만주에서 큰 핍박을 받자 근초고왕 계열이 한반도로 남하했다. 근초고왕은 왕성한 정복활동으로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후 고구려의 힘이 한반도에 이르자 반도부여의 일부는 일본 열도로 이동해, 일본 초기 국가 형성에 일조했다.
백제, 만들어진 신화
고구려 계통의 유민이 남하해 건국한 소국 백제가 이후에는 큰 외부세력의 유입 없이 스스로 성장하여 대국 백제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통설에 대해 백제의 역사는 부여사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그 근거로 3세기까지 중국의 주요 정사에 ‘백제’가 언급되지 않고 그 대신 ‘부여’만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백제가 처음 언급된 것은 4세기 중반부터이며, 남북조 시대 중 5세기에 존재한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서(宋書)』에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 언급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도 6세기 남부여가 등장하면서 사라진다. 결국 백제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아마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로 길어야 1세기 남짓이다. 이러한 사실들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만들어진 신화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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