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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타깝게도 현재의 한국교회는 침체기에 접어들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이 더 인기를 끌고 교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통회와 자복으로 이끄는 “메시지”보다 평안과 안락을 주는 “마사지”에 탐닉하는 성도들에게 예레미야는 경종을 울린다. 눈물의 예언자라 불리는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고 실제로 체험한 유일한 예언자다. 그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심판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적 의무를 다하길 유다 백성에게 권면했다. 또한 국가와 성전이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백성들이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을 섬긴 데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리는 우상숭배의 길에서 돌이키라는 그의 외침은 사역 초기에도 말기에도 동일했다. 야웨의 길에는 종교적인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 영역의 긍휼과 정의가 포함된다. 이 책은 우리가 다시금 예레미야의 선포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깨달아 예언자의 영성을 회복한다면 성서적인 신앙으로 바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구약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구약 전도사’라 불리는 차준희 교수는 예레미야서를 전공한 전문학자로서 각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열두 예언자의 영성』, 『시인의 영성 1, 2, 3』에 이은 『예레미야의 영성』은 역사적 격랑 속에서 어떤 믿음의 영성이 하나님과 잇닿고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지 증언한다. 저자는 예레미야서의 최신 학문적 논의를 업데이트하면서 메시지의 시대적 적실성을 명증하게 제시한다. 더불어 재치 있고 유려한 글솜씨는 예레미야의 영성의 깊이와 높이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예레미야서의 주요한 장을 선택하여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자세히 풀이하고, 각각의 본문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한다. 서론에서는 예레미야서 전체의 윤곽과 주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25강으로 나누어진 본문은 예레미야서의 주요 본문을 주석적으로 풀이함으로써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의 학문적 욕구에 대응하고, 친절하게 메시지를 풀어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적용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문학술서이자 일반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는 “초보자를 위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개관과 메시지”를 담아 성경을 읽기 어려워하는 초보 성도를 위한 쉬운 해설을 선보인다. 예레미야의 독특한 삶에서 뿜어 나오는 소명(1장), 공존(7장), 공감(8장), 고독(12장), 재소명(15장), 흔들림(20장), 정의와 공의(22장), 분별(23장), 새 언약(31장), 진리(44장) 등의 주제들은 예언자의 영성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매우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주석서에 가깝지만, 예레미야의 영성을 기반으로 그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친절하게 정리하여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예레미야서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일반 성도들도 예레미야를 친근하고 평이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구약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구약 전도사’라 불리는 차준희 교수는 예레미야서를 전공한 전문학자로서 각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열두 예언자의 영성』, 『시인의 영성 1, 2, 3』에 이은 『예레미야의 영성』은 역사적 격랑 속에서 어떤 믿음의 영성이 하나님과 잇닿고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지 증언한다. 저자는 예레미야서의 최신 학문적 논의를 업데이트하면서 메시지의 시대적 적실성을 명증하게 제시한다. 더불어 재치 있고 유려한 글솜씨는 예레미야의 영성의 깊이와 높이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예레미야서의 주요한 장을 선택하여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자세히 풀이하고, 각각의 본문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한다. 서론에서는 예레미야서 전체의 윤곽과 주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25강으로 나누어진 본문은 예레미야서의 주요 본문을 주석적으로 풀이함으로써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의 학문적 욕구에 대응하고, 친절하게 메시지를 풀어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적용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문학술서이자 일반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는 “초보자를 위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개관과 메시지”를 담아 성경을 읽기 어려워하는 초보 성도를 위한 쉬운 해설을 선보인다. 예레미야의 독특한 삶에서 뿜어 나오는 소명(1장), 공존(7장), 공감(8장), 고독(12장), 재소명(15장), 흔들림(20장), 정의와 공의(22장), 분별(23장), 새 언약(31장), 진리(44장) 등의 주제들은 예언자의 영성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매우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주석서에 가깝지만, 예레미야의 영성을 기반으로 그의 메시지를 분석하고 친절하게 정리하여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예레미야서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일반 성도들도 예레미야를 친근하고 평이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목차
머리말
서론: 심판 그리고 그 너머의 구원도 내다보는 예레미야
제1강. 예레미야의 소명
제2강. 있을 수 없는 배신
제3강. 회개와 새로운 삶
제4강. 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백성
제5강. 심판받아 마땅한 유다 백성
제6강.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제7강.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제8강. 예레미야의 좌절
제9강. 중보기도 금지
제10강. 하나님과 겨루는 예레미야
제11강. 제2의 천성인 인간의 죄성
제12강. 거부당한 기도
제13강. 사회적 나병환자가 된 예레미야
제14강.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예레미야
제15강.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점검하는 예레미야
제16강.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예레미야
제17강. 예레미야의 겟세마네 기도
제18강. 예레미야의 궁전설교
제19강. 거짓 예언자
제20강. 법정에 선 예레미야
제21강. 예레미야 vs. 하나냐
제22강. 예레미야의 편지
제23강. 새 언약
제24강. 불타는 두루마리 책
제25강. 예레미야의 마지막 설교
부록: 초보자를 위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개관과 메시지
참고문헌
서론: 심판 그리고 그 너머의 구원도 내다보는 예레미야
제1강. 예레미야의 소명
제2강. 있을 수 없는 배신
제3강. 회개와 새로운 삶
제4강. 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백성
제5강. 심판받아 마땅한 유다 백성
제6강.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제7강.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제8강. 예레미야의 좌절
제9강. 중보기도 금지
제10강. 하나님과 겨루는 예레미야
제11강. 제2의 천성인 인간의 죄성
제12강. 거부당한 기도
제13강. 사회적 나병환자가 된 예레미야
제14강. 한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예레미야
제15강.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점검하는 예레미야
제16강.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예레미야
제17강. 예레미야의 겟세마네 기도
제18강. 예레미야의 궁전설교
제19강. 거짓 예언자
제20강. 법정에 선 예레미야
제21강. 예레미야 vs. 하나냐
제22강. 예레미야의 편지
제23강. 새 언약
제24강. 불타는 두루마리 책
제25강. 예레미야의 마지막 설교
부록: 초보자를 위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의 개관과 메시지
참고문헌
책 속으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예루살렘을 용서하겠다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처럼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다. 이 장면은 창세기 18:22-32의 사건과 유사하다. 그때에는 소돔성이 멸망을 면하기 위해서 의인 10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단 한 명만이 요구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본성이 진노가 아니고 사랑임을 다시금 발견하고, 하나님의 의도가 처벌이 아니고 용서라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예루살렘 성읍 “전체”를 용서하려고 하신다.
--- 「제4강 “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백성”」 중에서
예레미야는 한편으로는 야웨의 떠나심을 탄식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자신을 떠남에 대해 통탄해하시는 야웨의 울부짖음도 듣는다. 예언자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백성의 말도 들어야 한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업자득으로 겪는 괴로움 앞에서 낙심하는 백성의 탄식과 그 백성에게 분노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야웨의 탄식을 함께 느끼며 탄식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양쪽의 괴로움을 한 몸에 지니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동정과 인간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을 변호했다.
--- 「제7강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중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찾고 계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예배하기”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참조. 삼상 15:22; 암 5:21-24; 호 6:6; 미 6:6-8). 물론 기독교 신앙이 윤리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기독교는 윤리보다 더 높은 가치체계다. 그러나 윤리가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세상이 기대하는 상식 수준의 윤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도덕적인 영성”(ethical spirituality)이 아닐까?
--- 「제8강 “예레미야의 좌절”」 중에서
예레미야는 생명과 풍요로 가는 길(“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으니”)이란 사람의 지혜와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5절),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신뢰를 통하여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막의 떨기나무”(6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8절)가 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죽음과 삶의 운명은 신뢰의 대상에 의하여 결정된다. 야웨가 진정한 웰빙의 근원이다(7절). 이러한 야웨를 거부하고 사람을 신뢰하면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이고(9절), 탐욕스러운 자고새와 같다(11절). 이들의 의지와 감정을 간과하지 않고 늘 주목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10절). 하늘 성소에 계시는 야웨 하나님이 참 소망이다(12절). 생수의 근원, 즉 웰빙의 근원인 하나님을 외면한 자는 졸지에 폭망할 수 있다(13절).
--- 「제15강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점검하는 예레미야”」 중에서
한 공동체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실천하지 않음에 있다. 정의와 공의의 척도는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대우에 달려 있다. 공동체의 필수 구성원인 약자들이 그 공동체 내에서 “우선적인 돌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가 정의의 도(道)와 공의의 도(道)를 재는 지표가 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는 늘 약자들이 한 공동체의 공평과 정의의 정도를 가늠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약자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
--- 「제4강 “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백성”」 중에서
예레미야는 한편으로는 야웨의 떠나심을 탄식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우상숭배로 자신을 떠남에 대해 통탄해하시는 야웨의 울부짖음도 듣는다. 예언자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백성의 말도 들어야 한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업자득으로 겪는 괴로움 앞에서 낙심하는 백성의 탄식과 그 백성에게 분노하시며 괴로워하시는 야웨의 탄식을 함께 느끼며 탄식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양쪽의 괴로움을 한 몸에 지니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동정과 인간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을 변호했다.
--- 「제7강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중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찾고 계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예배하기”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참조. 삼상 15:22; 암 5:21-24; 호 6:6; 미 6:6-8). 물론 기독교 신앙이 윤리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기독교는 윤리보다 더 높은 가치체계다. 그러나 윤리가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세상이 기대하는 상식 수준의 윤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도덕적인 영성”(ethical spirituality)이 아닐까?
--- 「제8강 “예레미야의 좌절”」 중에서
예레미야는 생명과 풍요로 가는 길(“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과 같으니”)이란 사람의 지혜와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5절), 하나님에 대한 복종과 신뢰를 통하여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막의 떨기나무”(6절)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8절)가 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죽음과 삶의 운명은 신뢰의 대상에 의하여 결정된다. 야웨가 진정한 웰빙의 근원이다(7절). 이러한 야웨를 거부하고 사람을 신뢰하면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이고(9절), 탐욕스러운 자고새와 같다(11절). 이들의 의지와 감정을 간과하지 않고 늘 주목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10절). 하늘 성소에 계시는 야웨 하나님이 참 소망이다(12절). 생수의 근원, 즉 웰빙의 근원인 하나님을 외면한 자는 졸지에 폭망할 수 있다(13절).
--- 「제15강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를 점검하는 예레미야”」 중에서
한 공동체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실천하지 않음에 있다. 정의와 공의의 척도는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대우에 달려 있다. 공동체의 필수 구성원인 약자들이 그 공동체 내에서 “우선적인 돌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가 정의의 도(道)와 공의의 도(道)를 재는 지표가 된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는 늘 약자들이 한 공동체의 공평과 정의의 정도를 가늠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약자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
--- 「제18강 “예레미야의 궁전설교”」 중에서
추천평
차준희 교수의 영성 시리즈 가운데 출간 기대를 가장 많이 한 책이 바로 『예레미야의 영성』이다. 예레미야서 전공자인 저자가 여기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21세기 한국 성도에게 예레미야의 영성은 꼭 주목해야 할 분야다. 신앙하는 인간의 내면이 갈등과 우울함에 유독 시달리는 오늘날 우리는 예레미야의 고백을 통해 치유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악덕 고용주로 보이는 하나님께 예레미야가 예언자직 파업으로 맞서려 했다고 흥미롭게 서술한다. 탁월하게 독자의 시선을 주도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우리는 소명을 두고 벌인 개인적 사투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시적인 구속사에 동참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 기민석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구약학 교수)
- 기민석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구약학 교수)
『예레미야의 영성』은 한국 구약학 장인(匠人)이자 예레미야 전공학자인 차준희 교수의 농익은 주석학적 열매다. 저자는 예레미야서의 격정적인 메시지를 영성의 은쟁반에 정갈하게 담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최신 학문적 논의를 업데이트함으로써 메시지의 시대적 적실성을 명증하게 제시한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파토스가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파토스와 격하게 부딪히면서 진정한 영성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저자의 재치 있고 유려한 글솜씨는 예레미야의 영성의 깊이와 높이를 한껏 풍성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학문의 고수와 같은 자세로 예레미야서의 가르침을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이 책은 구약전도사라는 저자의 별칭에 딱 맞게 쓴 예레미야 해설서다. 성경을 알고 싶은 진지한 교인들,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와 설교자들, 예레미야서의 전모를 보고 싶은 신학생들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추천한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처음 나왔을 때부터 신세를 크게 진 책이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대는 더 사나워졌고 어두워졌다. 기준은 모호해졌고 상식은 무너졌다. 교회는 핍진해졌고 설교는 파리해졌다. 그러는 사이에 저자는 깊어졌고 그윽해졌다. 글은 단단해지고 튼실해졌다. 그래서 책은 더 선명해졌고 묵직해졌다. 참 다행이다. 제 역할을 찾을 듯하다. 제 할 일을 잘할 것 같다. 예언자와 함께 우는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도처에서 일어나리라 기대한다.
-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묵상과 설교」 책임 편집)
-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묵상과 설교」 책임 편집)
예레미야서는 읽기도 설교하기도 어려운 성경책 중 하나다. 반복되는 심판의 선포에 설교자들은 본문을 기피하거나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교하곤 한다. 독자들이 읽어내기도 쉽지 않은 책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한 유다의 멸망을 직접 경험한다. 그는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심판을 선포하며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적 의무를 다하라고 권면했다. 또한 참과 거짓을 대조하며 진정한 진리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이 책은 예레미야 전문가인 차준희 교수의 인생에 걸친 연구 결과물이다. 예언자적 선포를 찾기 힘든 한국교회 현실 가운데서 예레미야의 소명과 선포를 들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설교하고 깨닫고자 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본서는 역사적 사실(fact)과 신앙적 진실(truth)을 치우침 없이 다룬다. 예레미야 시대의 역사적 격랑 속에서 어떠한 믿음의 영성이 하나님과 잇닿고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일관성 있게 증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동시에 느꼈던 예언자의 “공감의 영성”이었다. 여전히 고립된 영혼들이 방랑하고 있는 21세기 “초연결 사회”에서 차준희 교수는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눈물 흘릴 수 있는 한 사람을 말씀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 안근조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회 회장)
- 안근조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회 회장)
저자의 표현처럼 예레미야서는 저자나 독자 모두 고통으로 외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눈물로 쓴 책이기에 눈물로 읽어야 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예언자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그의 눈물과 불타는 심장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이 『예언자들』에서 “선지자란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습격하는 자”라고 했던 정의에 따른다면 그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다. 예레미아서를 읽을 때마다 기록된 메시지보다 기록한 메신저가 늘 궁금했다. 이 예언자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리 담대한가? 왕 앞에서 나라의 멸망을 외치는 담력은 어디서 나오며, 미래를 과거형으로 볼 줄 아는 밝은 영안은 어디서 빚어진 것인가? 『예레미야의 영성』이라는 제목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주석서에 가깝지만, 예레미야의 영성을 기반으로 그의 메시지를 친절하게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다. 이런 책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예레미야 전공자의 손에서 탄생한 본서가 부디 읽는 이들의 마음과 양심을 습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최병락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월드사역연구소 소장, 『바람을 잡는 그대에게』, 『신의 성품』 외 다수의 책 저자)
- 최병락 (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월드사역연구소 소장, 『바람을 잡는 그대에게』, 『신의 성품』 외 다수의 책 저자)
예언서는 난해하다. 읽기도 공부하기도 가르치기도 벅차다. 내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전하는 것이 예언이고, 내 생각을 접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 예언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메시지가 나의 민족을 겨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친일파, 매국노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하나님의 뜻은 나라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감히 외칠 수 있을까? 여기 눈물의 예언자가 있다.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몸소 겪어내야 했던 사람, 항복은 생명이요 결사항전은 죽음이라 외쳐야 했던 사람 예레미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겪은 우리에게 그 사명은 무겁고 그 눈물의 의미는 또렷하다. “야웨는 높으시다”로 풀이되곤 하는 그의 이름 뜻이 참으로 얄궂다. 그분의 높음을 위해 그는 얼마나 낮아져야 했던가. 저자는 눈물의 사람 예레미야의 메시지와 삶을 통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한국교회, 통회와 자복으로 이끄는 “메시지”보다 평안과 안락을 주는 “마사지”에 탐닉하는 성도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분의 높음을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통곡과 탄식을 넘어 새언약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꼭꼭 눌러 쓴 스물다섯 장의 강의는 우리를 이 짐스러운 질문 앞에 다시 불러 세운다.
- 홍국평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구약학 교수)
- 홍국평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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