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선시대사 이해 (독서>책소개)/3.조선의전쟁

의역 난중일기(2024) - 이순신이 보고 쓴 임진왜란 7년사

동방박사님 2024. 11.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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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순신 전도사 김종대(전 헌법재판관)의 『의역 난중일기』
50여 년의 공부 내공으로 이순신의 진면목을 더 깊이 찾아내다!

“수많은 난중일기가 세상에 나와 있지만 이순신을 공부하고 그의 정신을 따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순신의 생각에 가장 근접한 난중일기를 세상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나는 난중일기의 새로운 번역판인 『의역 난중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 책의 의역자 김종대(전 헌법재판관)는 인생의 참스승으로 여긴 이순신 공부에 50여 년을 매진했다. 재판관 퇴임 후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을 때 이순신의 내면적 정신가치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결심을 곧바로 실천에 옮겨 서울, 부산, 여수에 ‘이순신 아카데미’를 열어 수많은 사회 지도층을 이순신 전도사로 양성했다. 그 여정에서 그는 난중일기를 사람마다 다르게 번역한 부분과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에 직면하고 ‘보통의 이순신 공부인들이 함께, 쉽게 읽을 수 있는 난중일기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수십 년간 일기를 써 온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이순신 삶의 진면목을 비춰볼 수 있는 난중일기의 의역을 시도했다. 한문에 능통한 한학자도,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도 아닌 그이지만 50여 년간 이순신을 참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한 내공의 깊이로 장군의 행적과 난중일기의 문면적 해석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이다.

『의역 난중일기』의 네 가지 특징

· 난중일기 원문과 함께 홍기문, 이은상, 노승석, 최두환 등이 쓴 번역본.
박기봉 편역의 『충무공 이순신 전서』(전 4권)를 두루 비교·참고해 집필.
· 해당 일기의 머리 부분에 매해, 매달 장군의 행적 간략히 서술.
· 문맥상 해설이 필요한 부분에 의역자 해설 첨가.
· 날짜는 관행대로 음력으로 표기했지만 현대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력을 병기.

목차
머리말 4
발간사 8
- 임진왜란 연표 12
- 이순신 연표 16
- 이순신행적도 18
- 주요해전지 19

임진일기壬辰日記 1592

1월 진중 생활, 정월 첫 일기를 쓰다 27
2월 관할 5포를 순시하며 군비를 점검하다 33
3월 거북선을 진수(進水)하다 41
4월 조선 침공이 시작되다 48
5월 임진년 제1차 출전, 옥포에서 첫 승전하다 54
6월 제2차 출전, 네 번 승리하다 57
8월 부산대첩, 왜적의 본진을 격파하다 61

계사일기癸巳日記 1593

2월 왜적 소탕을 위해 웅천으로 가다 67
3월 한산도로 가 적을 칠 일을 궁리하다 78
5월 왜적, 이순신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83
6월 진주성 함락의 비보를 듣다 96
7월 여수를 떠나 한산도로 이진하다 109
8월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다 120
9월 “견내량을 지켜 바다를 지켜 낼 것이다!” 129

갑오일기甲午日記 1594

1월 설에 곰내로 가 어머니를 뵙다 137
2월 제2차 당항포해전을 준비하다 148
3월 전투를 중지하라는 담종인의 ‘금토패문’에 항의하다 161
4월 진중 과거로 인재를 보충하다 170
5월 장마와 비바람을 견디다 177
6월 군사와 군량 확보에 애를 쓰다 185
7월 외교와 군무 처리에 나라 걱정이 태산이다 192
8월 원균과의 불화가 깊어지다 204
9월 수륙합동작전으로 장문포를 공격하다 213
10월 장문포 패전의 책임을 두고 장수들 간 불신이 깊어지다 222
11월 수군 장수로서의 일상이 지속되다 230

을미일기乙未日記 1595

1월 나라와 어머니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다 241
2월 원균, 충청병사로 전출 가다 246
3월 바다를 지키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다 252
4월 즉각 출동이 가능하도록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다 259
5월 소금을 구워 군자금을 마련하다 266
6월 오랜 진중 생활, 장수와 군사의 건강이 위태롭다 274
7월 전쟁 장기화로 시름이 깊어지다 282
8월 촉석루에 올라 진주성전투 참패를 생각하며 통분해하다 290
9월 충청수사 선거이와 작별의 정을 나누다 297
10월 항왜(降倭)들을 시켜 불탄 대청과 다락방을 수리하다 304
11월 견내량을 지키며 적장의 움직임을 정탐하다 311
12월 청어를 잡아 곡식으로 바꾸고, 체찰사를 만나 군량 확보에 최선을 다하다 317

병신일기丙申日記 1596

1월 군량미를 마련하고 적을 경계하는 일상이 지속되다 325
2월 장기화된 강화협상으로 군기가 어지러워지다 335
3월 불편한 몸만큼 마음도 산란하다 346
4월 적의 우두머리 풍신수길이 사망했다는 헛소문을 듣다 357
5월 강화회담과 관계없이 바다 지키는 데 빈틈이 없다 364
6월 부하들과 매일 활을 쏘고 술도 자주 하다 373
7월 흉흉해지는 민심, 이몽학의 난을 한탄하다 380
8월 아픈 몸으로 전쟁 재발에 대비하다 388
윤8월 체찰사 배려로 어머니를 뵙다 396
9월 전라도를 순시하고 민심을 살피다 403
10월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수연을 베풀어 드리다 410

정유일기丁酉日記 1597

4월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하던 중 어머니와 영이별하다 417
5월 초계의 권율 원수 막하로 가다 428
6월 모여곡에 거처를 잡고 한결같이 나라를 걱정하다 439
7월 칠천량에서 원균의 조선 수군 대패하다 454
8월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명을 받다 468
9월 명량에서 크게 이기다 484
10월 아들 면을 잃고 절망하며 고하도에 진을 치다 499
11월 명량승첩 포상이 없어도 수군 재건에 최선을 다하다 511
12월 수군 재건에 심혈을 기울이다 519

무술일기戊戌日記 1598

1월 장수들과 모여 새해를 축원하다 529
9월 조명연합의 수군, 육군이 순천왜성을 공격하다 530
10월 뇌물 받은 유정 제독, 군사를 철수하다 534
11월 노량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결심하다 537


저자 소개
저 : 이순신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

책 속으로
1월 12일(3월 3일) 맑음. 아침 식사를 한 뒤에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도록 해라”라고 두 번 세 번 타이르시며 조금이라도 떠난다는 말에 탄식하지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덧붙이는 말]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항상 공(公)을 먼저 생각하고 사(私)를 뒤에 놓는 이순신의 선공후사 정신은 그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날의 일기는 이를 잘 나타내어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갑오일기甲午日記 1594, 1월 설에 곰내로 가 어머니를 뵙다」중에서

7월 1일(8월 6일) 잠깐 비가 왔다. 나라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수루 다락에 기대어 나라의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마치 아침 이슬과 같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棟樑)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柱石) 같은 인물이 없으니! 모르겠다,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어 갈지.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워서 하루 내내 누웠다 앉았다 하였다.

[덧붙이는 말] 나라 사랑은 나랏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라 걱정을 하면서 시작된다. 위 일기는 이순신의 나라 사랑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글귀이다.
---「을미일기乙未日記 1595, 7월 전쟁 장기화로 시름이 깊어지다」중에서

10월 14일(11월 22일) 맑음. 날이 거의 다 샐 녘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달리다가 말이 헛디뎌 내(川)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아들 면이 나를 붙들어 잡을 것처럼 하다가 그만 꿈을 깼다. 이 무슨 조짐일까. 늦게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보러 왔다. 배(裵)의 종이 경상도서 와서 적의 정세를 전하였다. 어제 수색 나간 황득중 등이 와서 보고하기를 내수사(內需司)의 종 강막지(姜莫只)라고 하는 자가 소를 많이 치기 때문에 12마리를 끌어간 것이라고 하였다. 저녁에 천안서 온 사람이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겉봉을 뜯기도 전에 손이 떨리면서 마음이 섬뜩했다. 우선 겉봉을 해치니 속 봉투 위에 열(둘째 아들)의 글씨로 ‘통곡’이란 두 글자가 쓰여 있어 단번에 면(?)이 전사한 줄 알았다. 간담이 떨어져 목을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박절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당연한 일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천지가 캄캄하여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너를 이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한 것이냐. 내가 지은 죄가 화(禍)가 되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하고 산단 말이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또 너의 어머니도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 목숨을 보전해 연명은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서 울부짖고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이날 밤 9시경 비가 내렸다.

[덧붙이는 말]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을 시작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백의종군에서 풀려 다시 통제사가 되어 명량대승첩을 거두자 패전한 적의 보복으로 가장 사랑한 막내아들을 잃는다. 어머니를 잃고 반년 만에 자식까지 잃은 그의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놀라운 것은 이런 기막힌 상황 아래에서도 일기 속 그의 감정 흐름은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 있게 발현되고 있음이다.
---「정유일기丁酉日記 1597, 10월 아들 면을 잃고 절망하며 고하도에 진을 치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는?
‘이순신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록한 임진왜란 7년史!’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는 장군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록한 임진왜란 7년의 생생한 역사이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이제는 세계인의 보고(寶庫)이기도 한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전쟁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정유년에 체포되어 백의종군을 한 약 반년을 빼면, 줄곧 전쟁터였던 바다에서 살면서 그 기간 내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바와 직접 행한 바를 일기로 기록해 후세에 남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를 위한 한마음으로 일기를 썼기 때문에 그의 일기는 정신적 가치 면에서 하나로 꿰어졌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물이 되었다. 그래서 난중일기는 복잡하고 힘겨운 우리 시대에 리더가 직면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뜨겁고 차분하게 보여 준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첫해 설날인 1592년 1월 1일부터 이순신이 전사하기 전달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쓰였다. 일기의 친필 초고는 현재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본래 이 일기에는 어떤 이름도 없었으나, 1795년 정조대왕 때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이 일기를 수록했다. 현재 국보 76호로 지정되어 있고, 역시 국보 132호로 지정된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과 더불어 임진왜란 기록물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진다.

의역자 김종대는 5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내면적 정신가치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배운 바를 다른 이에게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강의를 하다 보니 난중일기가 반드시 등장하는데, 현재까지 번역된 난중일기가 수십 권이지만 서로 다르게 번역된 부분이 많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아 자신이 직접 의역(여기서 ‘의역’이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려 번역함을 말한다.)을 시도했다. 의역은 대상을 깊이 공부해 총체를 파악해야 하며, 의역자 자신의 철학과 사유도 반영되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추천평
『의역 난중일기』는 2023년 4월부터 2024년 8월까지 [국제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을 다시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일기를 직접 읽는 듯한 생생한 경험’이라는 독자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평생 한 사람의 내면세계를 궁구했던 역자가 자신이 만났던 이순신의 면모를 이 한 권의 책 속에 빼곡히 담아 장군의 진정한 목소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용흠 (일신설계종합건축사 회장, (사)부산여해재단 이사장)


의역은 어렵기도 할뿐더러 아무나 할 수도 없다. 의역은 대상을 깊이 공부해 총체를 파악해야 하며, 의역자 자신의 철학과 사유도 반영되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사)부산여해재단 이순신 학교장)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6454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