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근대건축을 통해 바라본 제주의 어제와 오늘!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에는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들어섰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만 이들 건축물은 당시 제주도민의 생각과 제주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은 제주에 남아 있는, 혹은 철거되어 사라진 근대건축물의 자취를 찬찬히 살피면서 그 안에 담긴 제주만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목차
들어가는 말_제주 근대건축에 관하여
1부 일제강점기의 삶을 반영하는 근대건축물
1장 근대 등대의 등장과 도대불
2장 제주 속 일식주택
3장 제주의 전략적 중요성과 군사기지화
2부 해방 전후 혼란기에 탄생한 근대건축물
4장 제주4·3사건이 남긴 흔적
5장 한국전쟁이 남긴 군사전적지
6장 전란기 제주와 주거
3부 재건에서 발전으로, 사회 안정기에 구축된 근대건축물
7장 하와이식 발전을 꿈꾼 이승만 대통령과 국립제주목장
8장 제주의 근대공공시설
9장 대형 문화공간의 등장
4부 근대건축가와 제주
10장 해방 이후 최초로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설한 김태식
11장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중업
12장 건축의 지역성과 기능성에 충실했던 김한섭
주·이미지 출처·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김태일
국립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일본 효고현 장수사회기구 연구원, 경남기업 실버사업부 과장으로 근무했다. 전공 분야는 고령자시설계획이며, 지역사회 기반의 고령자 정주 환경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또한 제주 지역 연구자로서 제주라는 땅 위에 축적된 흔적과 가치, 더 나아가 공존하는 도시 건축의 지향점을 지속적으로 탐색 중이다. 다수의...
책 속으로
한국에서 이른바 서양식 유인등대有人燈臺가 처음 건설된 것은 대한제국의 초청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기사技師 이시바시 아야히코石橋絢彦가 건축한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침략의 유산이지만 1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재로 변모한 이들 등대는 대부분 콘크리트조였지만 목조, 석조, 벽돌조, 철제구조물로 된 등대도 전해진다. 등대는 고유의 기능과 목적을 위해 보통 지대가 높은 벼랑이나 곶, 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가장 높은 지대에 들어섰다. 아울러 염분이나 거센 파도에도 버텨내야 했기에 당시 건축 여건이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최고 수준의 기술이 집약된 건축물이었다. 팔미도등대를 건축한 이시바시가 정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해 각국의 등대를 견학한 뒤 일본 등대 건설에 공헌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제주 우도등대는 1905년 목재를 이용해 약 한 달 만에 완공되었는데, 기둥을 세워 등불을 달았던 등간燈竿이 먼저 건축되었다. 서둘러 목조 등간을 완공해야 했던 것은 러일전쟁(1904~1905년)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 때문이었다.
_19-21쪽(1장 근대 등대의 등장과 도대불)
군사요충지였던 알뜨르 지역에 1926년부터 약 20만 평 규모의 비행장이 들어섰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오무라大村 해군 항공기지가 이곳으로 이동했는데, 군인 2500명이 주둔했고 25기의 전투기가 배치되었다. 이후 1937년까지 알뜨르비행장은 약 40만 평으로 확대되었다. 1937년 8월 이후에는 중국 남경을 본격적으로 폭격하기 위해 중간 기착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 역할이 1937년 11월 상해 인근으로 옮겨가면서 알뜨르비행장은 훈련용 비행장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그러다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에 접어들면서는 이른바 결7호작전에 따라 비행장과 그 주변이 대대적인 방어를 위한 요새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1944년에는 약 66만 평까지 부지가 확장되었고 격납고도 38기로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송악산 해안가에 특공기지가 건설되었고, 송악산 능선과 산방산, 단산, 수월봉으로 이어지는 동굴진지도 구축되었다. 본토 방어를 위해 확장된 알뜨르비행장의 규모는 일본 해군항공본부가 작성한 ‘항공기지일람 별지자료’에 잘 나와 있다. 이 자료에는 격납고 위치와 수, 유도로, 지하벙커 지휘소, 관제소, 연료 저장고만이 아니라 섯알오름과 셋알오름의 고사포진
지 그리고 항공 관련 각종 지원시설의 위치까지 정확히 표시되어 있다.
_78쪽(3장 제주의 전략적 중요성과 군사기지화)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긴박한 상황에서 전선에 보낼 군인이 더 필요했다. 이에 육군은 1950년 8월 14일 대구의 제25연대를 모체로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그런데 1951년 1?4후퇴로 전세가 또다시 급박하게 돌아가자 1월 21일 제1훈련소를 모슬포로 이전한다. 당시 모슬포에는 해방 이후 창설된 국경경비대인 제9연대가 주둔 중이었다. 1951년 11월에는 논산에 제2훈련소를 창설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연무대鍊武臺라는 휘호를 부여하기도 했다. 당시 육군은 거제도의 제3훈련소를 비롯해 제7훈련소까지 창설해 운영했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2훈련소를 제외한 다른 훈련소는 모두 폐쇄했다. 논산의 제2훈련소는 1999년 2월 육군훈련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슬포 제9연대 자리에 제1훈련소가 설치되면서 야전병원인 육군 98병원과 공군사관학교도 함께 이전되었다. 제1훈련소는 약 10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고 한다.
_119-120쪽(5장 한국전쟁이 남긴 군사전적지)
국립제주목장에 건설된 대통령 전용 특호관사는 흔히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불린다. 일부에서는 귀빈사貴賓舍라 일컫기도 하는데 1957년 4월에 수립된 초기 건설계획에 따르면 대통령 전용 특호관사, 귀빈용 갑호관사, 을호관사를 짓기로 되어 있어 아마도 귀빈용 갑호관사와 혼돈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 귀빈용 갑호관사는 1차 공사 때는 건설되지 못했고 특호관사와 을호관사만 들어섰다. 1967년 항공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호관사 주변을 나무로 둘러싸 내부를 마치 정원처럼 꾸민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무에 둘러싸인 관사와 넓게 조성된 목장을 오름 기슭에서 내려다보면 풍광이 상당히 멋지다. 관사에서는 국립제주목장 운영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승만이 꿈꾸던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특호관사를 이승만이 실제로 사용한 것은 1957년 12월 6일과 1959년 8월 4일 단 이틀뿐이지만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공식 행사에서 국립제주목장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다른 숙박시설을 마다하고 그곳으로 향한 것을 보면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_184-186쪽(7장 하와이식 발전을 꿈꾼 이승만 대통령과 국립제주목장)
제주도청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18일 착공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도청사를 착공한 것이 좀 의아할 수 있는데 사실 배경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당시 제주도가 도청 건물 없이 관덕정에 칸막이를 치고 불편하게 업무를 봤기에 신축이 추진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산까지 북한군에게 내줄 경우 임시 정부청사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설계는 당시 전라남도청 공무원이던 주명록이 맡았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돼 착공 일 년여 만인 1952년 12월 16일에 준공되었다. 준공식에 이승만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 참석할 정도로 당시 제주도청사는 상징적인 공공건축물이었다. 제주도청사는 한국 고유의 기와지붕을 얹은 근대식 슬라브 건축물로 건물 주출입구 돌출 부분의 처마 끝을 코니스cornice로 장식하는 등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자 했다.
_196-197쪽(8장 제주의 근대공공시설)
1964년 건축된 제주시민회관은 한국 대표 건축가인 김태식이 설계했다. 문화시설을 건립할 여력이 없었던 당시 제주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시설이었을 것이다. 1967년 항공사진을 보면 주변 건축물과 비교될 만큼 그 규모와 형태가 웅장하다. 제주시민회관 로비에 새겨진 정초定礎에는 1963년 7월 22일 착공해 1964년 6월 30일 준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설계자와 감독자가 모두 서울특별시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서울시의 재정 지원 아래 공사가 진행되었던 듯하다. 또 공사감독자가 두 명이었던 것을 보면 당시로서는 무척 큰 공사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시민회관은 정면과 후면이 모두 평지붕으로 된 라멘구조(수직으로 힘을 받는 기둥과 수평으로 힘을 받는 보가 강하게 결합된 구조)이고, 주요 행사가 열렸던 중앙 부분은 철골조의 경사지붕으로 마무리되었다. 건축물의 기본 구성은 무대와 객석 그리고 중앙의 경기장으로 되어 있다. 다목적 문화시설이었던 것이다. 제주시민회관은 제주 최초의 철골조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은 철골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건축 예산과 기술력이 부족해 벽돌이나 변변찮은 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려야 했던 50여 년 전에는 무척 혁신적인 공법이었다.
_217-218쪽(9장 대형 문화공간의 등장)
제주대학교 옛 본관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김중업의 대표 작품이다. 각 층의 평면은 기둥으로부터 벽체가 분리된 자유로운 구성이다. 또 부분적으로 분절된 형태이긴 하지만 3층의 연속적인 창, 기둥과 분리된 2층과 3층의 외부 벽체, 필로티 기능을 갖는 우측면 돌출 부분은 이 건축물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옥상의 노천 스탠드는 옥상정원의 변용이다. 김중업은 르코르뷔지에의 기능주의적 철학을 적용하면서도 지역 풍토를 배려한 조형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1층과 2층을 기둥과 벽체가 분리된 단순한 형태로 구성함으로써 교수연구실로 사용했던 3층을 마치 날아갈 듯한 비행기 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을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제주대학교 옛 본관 터는 바다에 인접한 들판이었고 한때는 일본군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조개껍질을 펼쳐놓은 듯한 현관, 2층과 3층으로 연결되는 후면 경사로의 기하학적 곡선은 해초류가 생각나게 하며, 바다의 생명력과 함께 제주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_262쪽(11장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중업)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여기, 제주 역사의 굴곡을 말해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국내 대표 관광지로 사랑받은 제주. 제주만의 독특한 풍광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만큼 무척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복잡한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큰 쉼을 주기에 계절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 제주는 그 아름다움과 별개로 억압과 저항 그리고 침탈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기도 하다. 한동안 제주는 ‘고립’을 통해 누군가의 숨을 옥죄는 유배지였으며, 조선의 인조 시대에서 순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1629~1830년) 동안은 ‘도민출육금지령島民出陸禁止令’으로 육지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군사 요충지이자 태평양전쟁 최후의 방어진지로 이용되었고, 해방 뒤에는 4·3사건이라는 비극을 겪어야 했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포로 수용과 군사 지원을 담당해야 했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관광개발 정책은 지난 아픔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제주를 앞으로 내달리게 만들었다.
이런 역사를 지녔기에 누군가는 제주를 ‘고난과 고통의 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주는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극복하고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에 적응하면서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이는 건축 영역에서 잘 드러나는데, 제주석을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알았던 제주도민들은 올레담, 축담, 밭담 등을 쌓아 거센 바람으로부터 가옥이나 밭을 보호했으며, 제주 기후나 지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초가나 와가 같은 전통 주택을 발전시켰다. 제주만의 건축 문화는 근대화라는 흐름에 발맞춰 더욱 진화했다. 제주색이 짙게 배어 있는 근대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채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제주도민의 애환을 지켜봤다.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은 이 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에서 제주도민과 오랜 기간 함께해온 근대의 건축 유산들(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건축 유산들까지)을 그동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제주의 근대를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70년대까지로 넓게 구분 지었다는 점인데, 지은이는 그 이유를 1980년대 이후 추진된 개발 정책에 따라 그 이전과 이후의 제주가 크게 달라진 탓이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건축물 가운데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있지만,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제주대학교 옛 본관’이나 제주 최초의 시멘트 벽돌조 건물이었던 ‘옛 제주시청사’처럼 관리가 어렵거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철거된 유산도 있다. 지은이는 이런 건축물들에는 그 시대 제주도민의 생각이나 사회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면서 그 안에 내재된 이야기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적 사료로서 세심하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제주에서만 발견되는 민간 등대인 도대불,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알뜨르비행장 같은 군사 유적들, 4·3사건이나 한국전쟁과 관련한 가슴 아픈 흔적들,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된 1960년대에 건축된 행정건축물, 학교건축물, 상업건축물, 서민주택 들이 그렇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제주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일제강점기의 삶을 반영하는 근대건축물’에서는 우도등대나 산지등대 같은 근대 등대와 함께 민간 등대인 도대불을 자세히 소개한다. 아울러 일본인의 주거 편의를 위해 계획된 일식주택과 일제강점기 후반에 건설된 알뜨르비행장, 동굴진지, 고사포진지 같은 군사 유적들도 돌아본다. 2부 ‘해방 전후 혼란기에 탄생한 근대건축물’에서는 제주4·3사건과 관련한 유적들, 이를테면 4·3성이나 학살터, 토벌대 주둔지 등을 둘러보고, 육군 제1훈련소와 중공군 포로수용소 유적, 제주에서만 유행했던 이시돌식 주택의 자취를 차례로 찾는다. 3부 ‘재건에서 발전으로, 사회 안정기에 구축된 근대건축물’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애착을 가지고 조성했던 국립제주송당목장 이야기를 비롯해 제주시청·제주도청 같은 공공시설물, 옛 현대극장, 제주시민회관, 보훈회관, 동문시장+동양극장 같은 대형 문화공간들의 건축 배경과 그 특징을 알아본다. 4부 ‘근대건축가와 제주’에서는 제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대표 건축가인 김태식, 김중업, 김한섭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이 제주에 남긴 건축물들과 함께 풀어낸다.
지은이 김태일은 ‘들어가는 말’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관광지로서 제주를 방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제주만의 이야기가 깃든 근대 유산들을 기억하고 따라가본다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제주의 속살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제안처럼 이 책과 함께 제주 곳곳을 여행한다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제주의 또다른 얼굴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5814481>
'22.역사이야기 (관심>책소개) > 8.제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원도심으로 떠나는 건축기행 (2021) (4) | 2024.11.07 |
---|---|
제주문화 키워드(2024) - 제주기독신문에 3년간 연재된 제주 인문학의 주제 (7) | 2024.09.08 |
이승만과 하지 장군 (2015) (0) | 2023.04.04 |
서북청년회 (2015) (0) | 2023.04.04 |
탐라에 매혹된 세계인의 제주 오디세이 (2015) (0)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