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과거의 영화를 잃고 퇴락한 도시공간, 제주시 원도심!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오래된 삶의 이야기와
역사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도심!
오래도록 제주시 원도심을 탐구해 온 김태일 교수의 시선을 따라 떠나는 제주시 원도심 건축기행!
여전히 원도심에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많은 이야기와 역사문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자원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태도와 접근방식에 따라 도시계획의 방향성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표면적이고 표피적인 문제에 더 많은 가치와 비중을 두고 원도심을 개발하고 변화시켜 왔다. 그 과정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훼손되어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원도심의 매력적인 도시 건축적 가치도 상실되어 왔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원도심에서의 도시적 건축적 접근방식에 대해 뒤돌아보며 스스로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저자의 글
목차
제1부 삶과 시간의 축적, 원도심의 공간
1장 공간과 옛길로 보는 시간과 기억의 축적
2장 별의 도시 제주읍성과 칠성대
3장 제주목사 노봉 김정과 삼천서당
제2부 제주읍성 해체와 원도심 공간의 근대성
4장 이재수 난과 제주읍성 해체: 식민지 공간의 풍경
5장 도시계획의 도입과 산지천 공간의 변화: 근대건축의 흔적
6장 박판사判事댁 초가와 제주 최초의 상업방송국인 남양방송국(NBS)
7장 제주대학교의 성장과 원도심
제3부 문화공간으로 보는 기억과 삶의 흔적
8장 최초의 문화 주류를 찾아: 다방, 극장, 서점, 호텔과 여관
9장 제주 최초의 기독교 교회 ‘성내교회’와 최초의 천주교 교회 ‘중앙성당’
제4부 개발 중심의 원도심 공간: 패러다임의 전환
10장 사라진 탑동의 풍경과 집단기억의 공간들
11장 원도심 개발의 패러다임 전환
책 속으로
주는 어떤 섬인가? 제주는 어떤 역사의 공간인가? 제주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문화적 가치를 공간단면空間斷面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심이 원도심原都心이다. 원도심原都心은 말 그대로 원래 도시가 형성되었던 중심 지역을 의미한다면 제주읍성과 그 주변을 원도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원도심의 공간적 범위에 대해서는 행정구역이나 도시 공간의 형성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던 도심’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제주읍성을 경계로 읍성 안과 읍성 밖 지역 일대를 포함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원도심原都心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근성을 비롯해 제주 도시의 형성 과정, 곧 ‘공간의 확장성’과 ‘시간의 확장성’ 속에 새겨진 삶의 많은 이야기, 역사·문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제주의 대표 생활 공간이자 제주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볼 때 원도심은 오래된 장소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 흔적과 옛 탐라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통적인 생활 공간 그리고 근현대에 생성된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스며든 생활 공간이 어우러진 장소다. 또한 ‘공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본다면, 원도심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다시 말해 제주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 p.17
장두는 민란이 끝나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자리다. 관노와 화전민인 낮은 신분임에도 민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60년이 지난 신축년辛丑年인 1961년에야 세 장두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을 기리기 위해 대정지역 단체에 의해 대정현성 인근에 삼의사비三義士碑가 세워졌다. 그래서 관덕정과 광장에 담겨진 공간의 가치와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며, 우리가 도시 건축의 공간을 어떠한 태도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p.79
11∼13세기에 유럽 서북부와 북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성곽 도시, 교회와 수도원 중심의 도시를 근간으로 발달했던 중세도시의 광장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또다른 성격을 갖는다. 도시 형성의 주체가 누구였는지에 따라 민중이 주체가 되기도 하고, 권력자가 주인이 되기도 하면서 광장의 성격과 기능은 제각기 달랐다. 제주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민중항쟁의 대표 공간인 관덕정 광장이 그렇다.
--- p.89
1970년대에는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개설되면서 교차로가 확장되고 부분적으로 탑동이 매립되기 시작했고 산지천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탑동 매립 같은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개발이 집중되면서 장기적으로 원도심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1990년 이후 노형과 연동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합주거단지가 조성되면서 원도심의 공동화가 심화되기 시작했고, 시간의 흐름 속에 원도심 공간의 물리적 쇠퇴까지 겹쳐 원도심 재생이 새로운 도시계획의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 p.113
여관과 근대건물을 활용한 산지천 갤러리, 제주사랑방, 케왓과 같은 사례로 서울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옛길의 보존과 아울러 여관, 사진관, 이발소 등 일상적인 우리들의 삶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살아 있는 근대공간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비해 제주의 산지천 갤러리, 제주 사랑방, 케왓과 주변 일대는 작은 규모이지만 산지천에서의 삶과 소박한 역사를 담아내는 근대 역사공간임에는 틀림없다. 시민 참여가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작은 문화공간으로서 주변 문화자원과 잘 연계된다면 크게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공간이다.
--- p.130
제주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도립도서관은 기업가 박종실의 삶의 철학이 녹아 스며든 건물이고 최초의 도립도서관이라는 점에서 근대건축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매우 높은 건물이다. 아쉽게도 잘 보존되지 못하고 철거되어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된 것은 매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 p.146
좋은 건축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역시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건축주, 건축주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건축가의 만남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한국건축사에 남는 건축 작품을 탄생시킨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 p.167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문종철 학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김중업 선생께 본관 설계를 의뢰하게 되어 제주대학 옛 본관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건축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 p.166
도시 공간은 우리의 삶의 공간이며 오랜 기간 사람들의 흔적이 쌓이고 쌓여 표출되면서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한다. 무근성, 칠성골, 산지천 일대가 바로 그렇다. 그곳은 제주만의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 원도심에는 탐라의 흔적만이 아니라 근대와 현대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때로는 건축으로, 때로는 장소로 마치 타임캡슐처럼 제주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 p.176
이 무렵 한짓골에 남양문화방송국이 들어서면서 서점, 다방과 함께 원도심 내에 새로운 문화중심지를 형성했다. 대학생과 문인들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 모여 토론했는데, 제주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50~1960년대에는 칠성골이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1970년대에는 한짓골을 중심으로 그 축이 이동한 것이다. 알한짓골에는 남양문화방송국과 그 건너편에 소라다방이 자리하면서 한짓골이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의 거리로 부상했다.
--- p.193
알한짓골의 남양방송국 길 건너에 자리잡은 소라다방 건물의 정면은 가로로 긴 연속 창과 벽면을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서 건물 입면은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측면의 일반적인 창과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2층 소라다방은 언제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북적거리는 70년대 한짓골을 대표하는 다방이었다. 80년대에는 소라다방 3층에 제주도 최초의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었던 사인자 서점이 들어서고, 중앙로의 에덴서점과 함께 대동서점이 웃한짓골에 들어서면서 소위 제주의 사회과학 서점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 p.196
상당히 제주스러운 건축, 제주스러움 이면裏面 속에 담겨있는 제주 최초의 복음을 전파했던 출발점, 유배인과의 인연, 장로의 교회신축 배경, 이런 제주의 역사, 원도심의 이야기들이 함축적으로 응어리져있는 근대종교건축이다. 지금도 성내교회는 이기풍 목사 내외가 파송되어 믿음, 복음을 전파했던 제주도 최초의 기독교 전파의 터로서 성지순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p.216
이런 풍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개발에 대한 강박관념과 정치집단의 개발 논리가 있다. 도로가 좁거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낙후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개발논리가 등장한다. 높고 큰 건축물을 짓고 넓은 도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정치집단 역시 개발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 끊임없이 공약을 남발한다. 새만금과 탑동은 ‘개발=발전’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든 주민과 정치집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만들어낸 개발의 슬픈 풍경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 p.243
풍경이라는 것은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자연과 일체가 되었을 때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인간을 위한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위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p.245
재생에 초점을 둔 활성화의 핵심은 주거환경개선을 통한 삶의 질 개선, 역사문화적 장소의 가치 극대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발을 적용하더라도 블록별 건축물의 노후화 정도와 입지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 환경개선의 적절한 정비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p.248
원도심의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형과 옛길의 흔적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 역사적 문화적 흔적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대규모 개발로 인한 경관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필지의 합필을 규제하고, 부득히 합필이 불가피한 경우 보행통로를 중심으로 건축물을 여러 개의 매스로 분할하는 등 최대한 원래 땅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도 필요하다.
--- p.253
그러나 도시의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귀중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좁고 불편하고 주차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근대건축물과 함께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원도심의 풍경이 크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도시의 전제조건은 오래된 것, 낡은 것, 때묻은 것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 근대건축물과 옛길의 풍경 속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함께 묻어가는 것이다.
--- p.255
출판사 리뷰
도시와 건축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지는 삶의 역사이자 문화의 척도이며, 나아가 삶을 조직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원도심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태일 교수는 제주식으로 말하면 연식이 좀 된 ‘육짓것’이다.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해 오면서 제주에서 생활한 지 20여 년이 넘었으니,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산 만큼 살아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하다. 제주에 교수직을 얻으면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꽤 많다. 하지만 그 많은 교수님 중에 ‘제주’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탐구하고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또한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동원해 지역사회 문제에 전문가로서 개입하는 분들은 손에 꼽을 만하다. 그런 상황에서 김태일의 연구와 저작 활동은 가히 독보적이다. 제주에서는 외방에서 이주해 온 분들을 제주말로 소위 ‘육짓것’이라 하는데 그는 이 육짓것들 중에서는 가장 별난 제주에 대한 애정을 지닌 이방인임을 그의 연구와 저작 활동을 통해 증명한다.
《제주건축의 맥》, 《제주도시건축이야기》, 《제주 속 건축》, 《제주근대건축산책》 등 그가 제주와 건축을 맥락 지어서 그동안 펴낸 책들의 목록이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건축을 현재 자기가 살고 있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실제 연구를 통해 이 섬땅에서의 수고로운 삶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도 건축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많다. 그리고 기(技)와 학(學)을 겸비한 분들도 꽤 된다. 하지만, 그분들 중 제주건축사 또는 문화사에 관한 깊은 연구와 지적생산물을 내놓는 분들은 매우 드물다. 그 분들인들 제주건축과 지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리 없으리오만, 책을 낸다는 것은 부지런함에 관한 이야기다. 쉬지 않고 공부하는 학인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제자들을 키우는 것은 교수라는 직업상 가장 본연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갖춘 교수는 가르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하고 그 지적 활동을 통해서든 미디어를 통해서든 끊임없이 사회의 변화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수고로움을 동반하는 지난한 지적노동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을, 그런 삶을 20여 년간 지속해 오고 있는 이가 저자다.
이번 펴낸 이 책 역시 그동안 그가 꾸준히 천착해 온 제주건축, 건축사에 대한 일련의 작업의 연장이다. 특히 이 책은 제주시 원도심에 관한 한 종합 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원도심에 관한 자료를 망라해 저술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원도심에 대한 시선은 ‘안타까움’과 ‘온정 어림’이 서려 있다. 마치 고향 사람이 자기가 나고 자란 생활 터전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안과 밖에서 벼려 온 그의 지적 시선은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선을 동시에 갖춘 안목이기에 원도심을 탐구하는 내내 비판적 시선 또한 놓치지 않는다.
왜 하필 원도심일까? 원도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가 원도심原都心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근성을 비롯해 제주 도시의 형성 과정, 곧 ‘공간의 확장성’과 ‘시간의 확장성’ 속에 새겨진 삶의 많은 이야기, 역사·문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제주의 대표 생활 공간이자 제주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볼 때 원도심은 오래된 장소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 흔적과 옛 탐라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통적인 생활 공간 그리고 근현대에 생성된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스며든 생활 공간이 어우러진 장소다. 또한 ‘공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본다면, 원도심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다시 말해 제주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7쪽)
즉, 그는 도시공간을 정태적인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누적적으로 확장되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외려 이방인이기에 제주 원도심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궁금증을 유발해 연구작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원도심의 매력은 다름 아닌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도시공간은 그저 무기질의 건축적 공간이 아니라 생생한 사람들의 삶이 이루어진 일종의 무대였다.
그 중에서도 관덕정 광장은 가장 중요한 장소다. 이 관덕정 광장은 제주역사의 성쇠를 함께 했던 곳으로 제주섬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장소에서 그는 최후의 민란인 이재수 난 때, 민군의 제주성 진공을 떠올리고 관덕정 광장의 장두를 기억해야 낸다. 서양 중세도시의 광장이 “도시 형성의 주체가 누구였는지에 따라 민중이 주체가 되기도 하고, 권력자가 주인이 되기도 하면서 광장의 성격과 기능은 제각기 달랐음”을 환기하면서 이재수 난 당시의 관덕정 광장은 민중항쟁의 무대였음을 새삼 기억해낸다.
이러한 원도심은 70년대 도시개발로 변화되기 시작하는데, 그 변화가 누적도시 제주시 원도심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고, 원도심 천혜의 자연환경이었던, 탑동의 매립, 산지천의 복개 등으로 악화 일로를 걸어왔으며 급기야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원도심은 공동화의 늪에 빠지게 했다는 데 원도심의 비극과 도시의 잘못 진행되어 온 개발사가 얼켜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직도 원도심이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그릇임을 애써 강조한다.그의 고민은 이러한 공동화의 늪에 빠진 원도심 비상의 날개를 어떻게 달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원도심만의 원도심다운 도시재생이며, 이러한 그의 원도심 재생의 꿈은 “에코뮤지엄”에 닿아 있다.
아울러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한정되어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져 왔던 지역사회의 공간 속에서 전시되고 소개되어야 함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러한 개념이 “에코 뮤지엄”이다. 에코박물관 Eco-Museum은 그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자연 요소와 문화적 자원을 찾아내어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제주지역, 마을에는 과거 역사와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제주 목관아를 둘러싼 지역 역시 제주지역의 주요한 역사문화 공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 요소와 역사 흔적들이 재발견되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55쪽)
이 책에는 그가 꿈꾸는 에코뮤지엄으로서의 제주시 원도심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건축적 안목과 테마들을 매개로 풀어나가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칠성대, 전근대시기 읍치으로서의 제주성의 역사문화유산들과 성내 옛길들, 일제를 거치면서 주체성을 상실한 채 변모한 제주성 안과 밖의 식민지도시의 경관, 해방 후 원도심의 변화와 원도심 내 다방과 영화극장, 여관과 과거 젊은이들의 도심을 이루는 핵심이었던 구 제주대학이야기, 종교건축물인 중앙성당과 성내교회, 서점과 갤러리 이야기 등 원도심 주민들의 삶을 함께했던 건축물과 장소들을 일일이 꿰어 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제주시 원도심에 대한 엄청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수집해 온 원도심의 각종 자료가 망라되어 볼거리를 제공해 책장을 넘기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점 또한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많지 않은 원도심에 대한 자료들은 그의 열정이 있기에 수집된 것들로 이번에 실인 도판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진 것이 없지만, 독자들은 일본 강점기 때부터 90년대 어간 원도심의 진기한 사진들과 도판들을 만나는 눈 호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기간에 걸쳐 원도심에 쏟은 애정의 결과물이다. 쉽지 않은 건축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으로 이루어진 제주시 원도심 기행의 본격적이고 수준 높은 안내서이다. 원도심 답사에 여러 기회를 통해 참여했던 분 중 답사안내자의 뻔한 소개에 질릴 법한 경험을 한 분들은 이 책을 통해, 깊이 있는 원도심 알기의 지적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저자의 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화ㆍ근대화 과정 속에 제주시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3월 내무부 고시 제26호로 최초로 도시계획을 결정, 고시하게 된다. 1952년 수립된 제주시 시가지계획을 보면 기존도로 폭의 확대, 신규도로의 개설, 그리고 사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도로망 구축이 눈에 띈다. 이 시가지계획은 착실히 추진되어 지금의 도로체계로 이어지고 있다. 도로망 구축과 거주지의 신규조성을 통한 외연적 확산은 일정 부분 도시의 성장 틀을 마련한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나 제주읍성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원도심 공간구조와 역사문화자원들이 훼손되거나 소멸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남문사거리와 중앙사거리 조성과 이를 연결하는 직선화된 도로, 동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도로폭 확대 등이며, 원도심의 공간구조와 질서가 크게 변형되었고 게다가 거주지 확산으로 남아 있었던 성곽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도시공간의 훼손은 정신세계의 훼손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시와 건축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지는 삶의 역사이자 문화 척도이며, 나아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원도심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여전히 원도심에는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많은 이야기와 역사문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자원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태도와 접근방식에 따라 도시계획의 방향성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표면적이고 표피적인 문제에 더 많은 가치와 비중을 두고 원도심을 개발하고 변화시켜 왔다. 그 과정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훼손되어 제주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원도심의 매력적인 도시 건축적 가치도 상실되어 왔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원도심에서의 도시적 건축적 접근방식에 대해 뒤돌아보며 스스로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과거 도시계획이 확대발전 지향적이었다면 이제는 축소 집적화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이 크게 전환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도시재생이 진행되고 있으나 원도심에 녹아 스며든 가치와 장소의 본질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정책과 사업으로 치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서는 제주 원도심이 왜 중요한가, 어떠한 매력적인 요소가 있으며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를 건축공간에 초점을 두고 시대별로 정리해 보고자 했다. 흩어져 있었던 이야기를 원도심을 주제로 하나로 묶어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원도심의 도시계획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시각에서 구상해 보고, 정책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작은 근거가 되었으면 한다. 장기적으로는 100주년 제주도시계획의 구상을 위해 새롭게 제주 원도심의 건축공간을 생각해보고 고민하며 도시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2021년 8월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3710913>
'22.역사이야기 (관심>책소개) > 8.제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근대건축 산책 (2024) - 제주만의 이야기가 깃든 근대 유산을 찾아서 (1) | 2024.11.07 |
---|---|
제주문화 키워드(2024) - 제주기독신문에 3년간 연재된 제주 인문학의 주제 (7) | 2024.09.08 |
이승만과 하지 장군 (2015) (0) | 2023.04.04 |
서북청년회 (2015) (0) | 2023.04.04 |
탐라에 매혹된 세계인의 제주 오디세이 (2015) (0)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