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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밝히는 한국 회화의 4대가
솔거(率居), 이녕(李寧), 안견(安堅), 정선(鄭?)
4대가는 우리나라 회화사상 최고의 화가들로서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문화융성기를 각기 대표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 시대까지 천수백 년에 걸친 이른바 역사시대에 배출되고 활약한 모든 화가들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인물을 몇 명만 꼽는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저자 안휘준 교수는 고대인 통일신라의 솔거(率居), 중세인 고려의 이녕(李寧), 근세인 조선왕조 전반기의 안견(安堅), 후반기의 정선(鄭?, 1676~1759), 이 네 명을 꼽아야 한다고 말한다. 네 화가의 활동 연대는 솔거가 8세기, 이녕이 12세기, 안견이 15세기, 정선이 18세기이다. 솔거를 거친 후 12세기부터 우리나라의 문화융성이 300년마다 한 번씩 이루어졌으며 네 화가들이 각 문화융성기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재확인하게 된다.
솔거는 사실적이면서도 기운생동하는 [노송도(老松圖)]를 그려 고대 회화의 수준을 현격하게 높였다. 이녕은 [예성강도(禮成江圖)]를 그려 한국의 실경산수화를 발전시키고 산수화를 감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안견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서 보듯이 사의산수화(寫意山水?)의 격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정선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실경산수화(實景山水?)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남종화풍을 활용하여 새로운 실경산수화인 한국적 진경산수화(眞景山水?)를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이 책은 네 명의 화가들에 관한 다각적인 접근과 저자의 견해를 담아서 썼던 여러 가지 글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 회화의 4대가’라는 제목하에 엮은 것이다. 4대가 중 솔거와 이녕은 작품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가로 꼽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들이기 때문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을 염두에 둔다면 두 화가에 대한 사서(史書)의 기록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밝히는 한국 회화의 4대가
솔거(率居), 이녕(李寧), 안견(安堅), 정선(鄭?)
4대가는 우리나라 회화사상 최고의 화가들로서
네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문화융성기를 각기 대표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 시대까지 천수백 년에 걸친 이른바 역사시대에 배출되고 활약한 모든 화가들을 통틀어서 가장 뛰어나고 중요한 인물을 몇 명만 꼽는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저자 안휘준 교수는 고대인 통일신라의 솔거(率居), 중세인 고려의 이녕(李寧), 근세인 조선왕조 전반기의 안견(安堅), 후반기의 정선(鄭?, 1676~1759), 이 네 명을 꼽아야 한다고 말한다. 네 화가의 활동 연대는 솔거가 8세기, 이녕이 12세기, 안견이 15세기, 정선이 18세기이다. 솔거를 거친 후 12세기부터 우리나라의 문화융성이 300년마다 한 번씩 이루어졌으며 네 화가들이 각 문화융성기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재확인하게 된다.
솔거는 사실적이면서도 기운생동하는 [노송도(老松圖)]를 그려 고대 회화의 수준을 현격하게 높였다. 이녕은 [예성강도(禮成江圖)]를 그려 한국의 실경산수화를 발전시키고 산수화를 감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안견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서 보듯이 사의산수화(寫意山水?)의 격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정선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실경산수화(實景山水?)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남종화풍을 활용하여 새로운 실경산수화인 한국적 진경산수화(眞景山水?)를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이 책은 네 명의 화가들에 관한 다각적인 접근과 저자의 견해를 담아서 썼던 여러 가지 글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 회화의 4대가’라는 제목하에 엮은 것이다. 4대가 중 솔거와 이녕은 작품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가로 꼽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들이기 때문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을 염두에 둔다면 두 화가에 대한 사서(史書)의 기록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목차
서언 『한국 회화의 4대가』 출간에 부쳐
제1장 솔거(率居)_8세기 통일신라
솔거(率居): 그의 신분, 활동연대, 화풍
1) 머리말
2) 기록상의 솔거
3) 솔거의 국적과 신분
4) 솔거의 활동연대 및 대표작 노송도의 제작연대
5) 솔거의 화풍
6) 솔거의 노송도가 그려진 위치
7) 맺음말
제2장 이녕(李寧)_12세기 고려
이녕(李寧)과 고려의 회화
1) 머리말
2)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본 이녕
3) 이녕과 고려의 회화
4) 맺음말
제3장 안견(安堅)_15세기 조선 초기
1.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의 대표 화가
2. 안견, 그리고 [몽유도원도]
3. 몽유도원도
4.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
5. 안견파(安堅派)와 그 화풍
6. 현동자 안견 선생 기념비문
제4장 정선(鄭敾)_18세기 조선 후기
1. 겸재 정선의 회화와 그 의의
2. 겸재 정선과 그의 진경산수화, 어떻게 볼 것인가
3. 겸재 정선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4.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정선화첩』의 이모저모
5. 「겸재 정선 회화 특별전」에 부쳐
6. 겸재 정선 기념비문
부록
1.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인물됨과 문화적 기여
2. 비해당 안평대군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3. 안평대군 탄생 60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의의
제1장 솔거(率居)_8세기 통일신라
솔거(率居): 그의 신분, 활동연대, 화풍
1) 머리말
2) 기록상의 솔거
3) 솔거의 국적과 신분
4) 솔거의 활동연대 및 대표작 노송도의 제작연대
5) 솔거의 화풍
6) 솔거의 노송도가 그려진 위치
7) 맺음말
제2장 이녕(李寧)_12세기 고려
이녕(李寧)과 고려의 회화
1) 머리말
2)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본 이녕
3) 이녕과 고려의 회화
4) 맺음말
제3장 안견(安堅)_15세기 조선 초기
1.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의 대표 화가
2. 안견, 그리고 [몽유도원도]
3. 몽유도원도
4.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
5. 안견파(安堅派)와 그 화풍
6. 현동자 안견 선생 기념비문
제4장 정선(鄭敾)_18세기 조선 후기
1. 겸재 정선의 회화와 그 의의
2. 겸재 정선과 그의 진경산수화, 어떻게 볼 것인가
3. 겸재 정선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4.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정선화첩』의 이모저모
5. 「겸재 정선 회화 특별전」에 부쳐
6. 겸재 정선 기념비문
부록
1.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인물됨과 문화적 기여
2. 비해당 안평대군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3. 안평대군 탄생 60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의의
출판사 리뷰
우리나라 회화사상 누구도 이 4대가의 업적을 능가할 화가는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네 화가들에게서 중요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뛰어난 재주와 부단한 창작활동을 겸비하였으며 평생 화업을 이어갔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 중 정선은 사대부화가로 분류해야 한다는 설도 있고 또 타당성이 있지만 그의 행적으로 보아 직업화가 이상의 전문성을 띠었던 화가임을 부인할 수없다. 결국 이 네 명의 화가들은 한 분야에 전력투구한 프로페셔널만이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4대가 외에 이 책에 실린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에 관한 글들은 독자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평대군은 그림을 그린 여기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초 최고의 회화수집가였다. 안평대군의 소장품과 그 주변인물들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화가가 안견이다. 안견의 출현과 기여에는 안평대군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안평대군과 안견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안평대군의 비중은 너무나 크며, 세종조 문화의 발전에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안평대군에 관한 글 세 편은 부록으로 실어서 독자들이 참고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 솔거와 이녕
고대에 활동했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당연히 신라의 솔거(率居)를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그림 실력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었던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녕(李寧)은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원이다. 이는 그가 화가로서의 능력이나 영향력에서 고려시대 최고의 인물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녕은, 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 게재되어 있는 신라의 솔거(率居)와 비중 면에서 비견될 만한 화가였음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또한 이녕은 조선왕조 초기 화단의 최고 거장이었던 안견(安堅)에 앞서 순수한 감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 놓은 인물로 믿어진다. 그러므로 이녕은 솔거로 상징되는 고대회화와 안견으로 대표되는 근세회화를 이어주는 중세회화의 표상적(表象的)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족히 3대가로 불러도 좋을 이들 중에서 오직 안견만이 작품을 전하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연구되었을 뿐, 솔거와 이녕은 전해지는 작품도 전무하고 기록조차 영성(零星)하여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것 이외에 제대로 조명된 바 없다.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의 대표 화가, 안견(安堅)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창출한 정선(鄭敾)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조선왕조(朝鮮王朝)는 518년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뛰어난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제일 적극적으로 그렸던 분야는 말할 것도 없이 산수화이다. 이 때문에 산수화는 조선시대 회화의 대종(大宗)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 분야의 대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주목을 요하는 인물이 초기의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과 후기의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다. 이들은 분명히 조선왕조 산수화의 양대가(兩大家)임에 틀림이 없다.
안견이 북종화(北宗?)를 수용하여 높은 경지의 이상적인 산수화를 개척했던 반면에 정선은 남종화(南宗?)를 받아들여 독보적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를 창출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조선시대 산수화의 두 가지 대조적인 측면에서 시대를 달리하여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안견의 이념적 산수화도 우리의 산천을 토대로 하고 있었고 정선의 진경산수화도 실경을 바탕으로 이념적, 사의적(寫意的) 세계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상반된다고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그들은 ‘조선적 산수화’의 창출에 다같이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화풍 면에서는 서로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정선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승경을 주제로 하고 새로이 수용된 남종화법과 화론(?論)을 소화하여 전에 없이 파격적인 ‘동국진경(東國眞景)’을 창출함으로써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의 말대로 우리나라 산수화의 ‘개벽(開闢)’을 이루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네 화가들에게서 중요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뛰어난 재주와 부단한 창작활동을 겸비하였으며 평생 화업을 이어갔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 중 정선은 사대부화가로 분류해야 한다는 설도 있고 또 타당성이 있지만 그의 행적으로 보아 직업화가 이상의 전문성을 띠었던 화가임을 부인할 수없다. 결국 이 네 명의 화가들은 한 분야에 전력투구한 프로페셔널만이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4대가 외에 이 책에 실린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에 관한 글들은 독자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평대군은 그림을 그린 여기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초 최고의 회화수집가였다. 안평대군의 소장품과 그 주변인물들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화가가 안견이다. 안견의 출현과 기여에는 안평대군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안평대군과 안견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안평대군의 비중은 너무나 크며, 세종조 문화의 발전에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안평대군에 관한 글 세 편은 부록으로 실어서 독자들이 참고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 솔거와 이녕
고대에 활동했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당연히 신라의 솔거(率居)를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그림 실력이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었던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녕(李寧)은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올라 있는 유일한 화원이다. 이는 그가 화가로서의 능력이나 영향력에서 고려시대 최고의 인물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녕은, 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 게재되어 있는 신라의 솔거(率居)와 비중 면에서 비견될 만한 화가였음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또한 이녕은 조선왕조 초기 화단의 최고 거장이었던 안견(安堅)에 앞서 순수한 감상화의 수준을 한껏 높여 놓은 인물로 믿어진다. 그러므로 이녕은 솔거로 상징되는 고대회화와 안견으로 대표되는 근세회화를 이어주는 중세회화의 표상적(表象的)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족히 3대가로 불러도 좋을 이들 중에서 오직 안견만이 작품을 전하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연구되었을 뿐, 솔거와 이녕은 전해지는 작품도 전무하고 기록조차 영성(零星)하여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것 이외에 제대로 조명된 바 없다.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의 대표 화가, 안견(安堅)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창출한 정선(鄭敾)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조선왕조(朝鮮王朝)는 518년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뛰어난 화가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제일 적극적으로 그렸던 분야는 말할 것도 없이 산수화이다. 이 때문에 산수화는 조선시대 회화의 대종(大宗)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 분야의 대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주목을 요하는 인물이 초기의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과 후기의 겸재(謙齋) 정선(鄭敾)이다. 이들은 분명히 조선왕조 산수화의 양대가(兩大家)임에 틀림이 없다.
안견이 북종화(北宗?)를 수용하여 높은 경지의 이상적인 산수화를 개척했던 반면에 정선은 남종화(南宗?)를 받아들여 독보적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를 창출하였다. 이처럼 이들은 조선시대 산수화의 두 가지 대조적인 측면에서 시대를 달리하여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안견의 이념적 산수화도 우리의 산천을 토대로 하고 있었고 정선의 진경산수화도 실경을 바탕으로 이념적, 사의적(寫意的) 세계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상반된다고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그들은 ‘조선적 산수화’의 창출에 다같이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화풍 면에서는 서로 현저한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정선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승경을 주제로 하고 새로이 수용된 남종화법과 화론(?論)을 소화하여 전에 없이 파격적인 ‘동국진경(東國眞景)’을 창출함으로써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의 말대로 우리나라 산수화의 ‘개벽(開闢)’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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