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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분벽화 연구 (안휘준)

동방박사님 2022. 7. 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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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고분벽화 연구』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아우르는,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고분벽화에 관한 유일한 통시대적 연구서다. 한국미술사에서 유달리 독자적인 양식으로 전개된 고분벽화 장르를 통해 천여 년의 역사를 꿰고 있다. 이 책은 가장 잘 알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출발해 한국 고분벽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가장 편리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목차

『한국 고분벽화 연구』를 내며

Ⅰ. 고구려의 고분벽화
1. 고구려 고분벽화의 변천

1) 머리말
2) 고분벽화의 개관
3) 초기의 고분벽화
가. 안악 3호분의 벽화
나. 덕흥리 고분의 벽화
4) 중기의 고분벽화
가. 각저총과 무용총의 벽화
나. 장천 1호분의 벽화
다. 삼실총의 벽화
5) 후기의 고분벽화
6) 맺음말

2. 고분벽화를 통해 본 고구려의 문화
1) 머리말
2) 고구려 고분벽화의 역사·문화적 성격
가. 기록성과 사료성
나. 종교사상성
다. 과학기술성
라. 국제성
3) 고구려 고분벽화의 미적 특성
가. 역동성
나. 멋과 세련성
4) 맺음말

3.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인물화
1) 머리말
2) 고구려의 인물화
가. 주인공 초상화
(1) 단독상
[1] 안악 3호분 주인공 및 부인의 상
[2] 덕흥리 벽화고분의 주인공 초상
[3] 감신총의 주인공상
(2) 부부병좌상
[1] 약수리 벽화고분의 부부상
[2] 매산리 사신총의 부부상
[3] 쌍영총의 부부상
[4] 각저총의 부부상
나. 주인공 행렬도와 수렵도
(1) 행렬도
[1] 안악 3호분의 행렬도
[2] 덕흥리 벽화고분의 행렬도
[3] 약수리 벽화고분의 행렬도
(2) 수렵도
[1] 덕흥리 벽화고분의 수렵도
[2] 약수리 벽화고분의 수렵도
[3] 무용총의 수렵도
[4] 장천 1호분의 수렵도
다. 주인공과 부인의 생활도
(1) 덕흥리 벽화고분 여주인공의 우교차 및 시녀들, 견우직녀상
(2) 쌍영총 여주인공 불공도, 거마행렬도
(3) 무용총 접객도, 무용도
(4) 수산리 벽화고분 주인공 부부 곡예감상도
라. 투기도
(1) 안악 3호분의 수박도
(2) 각저총의 씨름도
(3) 무용총의 수박도
(4) 장천 1호분의 씨름도
마. 신선도
3) 맺음말

4. 일본에 미친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
1) 벽화의 내용
2) 벽화의 특징
가. 여인군상
나. 남자군상
다. 사신도
라. 일상과 월상

Ⅱ. 백제의 고분벽화
1. 백제의 고분벽화

1) 웅진시대의 고분벽화: 공주 송산리 6호분
2) 사비시대의 고분벽화: 부여 능산리 동하총

Ⅲ. 신라의 고분벽화
1. 기미년명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의 벽화

1) 머리말
2) 벽화의 내용과 특징
가. 동벽의 그림
나. 북벽의 그림
다. 서벽의 그림
라. 남벽의 그림
마. 시상대(屍床臺) 전면의 그림
바. 연도의 그림
3) 맺음말

Ⅳ. 고려의 고분벽화
1. 파주 서곡리 고려 벽화고분의 벽화

1) 머리말
2) 네 벽의 십이지신상
가. 십이지신상의 배치
나. 십이지신상의 화풍
3) 천장의 성수도
4) 맺음말

2. 수락암동 벽화고분·공민왕릉·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의 벽화
1) 머리말
2) 수락암동 벽화고분의 십이지신상
3) 공민왕릉 벽화의 십이지신상
4)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의 인물화

Ⅴ. 고려 말~조선왕조 초기의 고분벽화
1.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 묘의 벽화

1) 머리말
2) 벽화의 내용과 구성
3) 인물풍속화
가. 동벽과 서벽
나. 남벽
4) 묵죽과 묵매
5) 맺음말

Ⅵ. 조선왕조의 고분벽화
1. 노회신(盧懷愼, 1415~1465) 묘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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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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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안휘준
 
현(現)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회 위원장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고고인류학과(문학사)를 졸업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문학석사, 철학박사)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수학하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홍익대학교 박물관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와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
 

책 속으로

벽화는 묘실의 벽면과 천장에 모두 그리는 것이 상례였는데 대체로 초기와 중기의 경우 벽면에는 무덤의 주인공 초상화 및 주인공과 관계가 깊었던 현실세계의 일들을 기록적, 서사적으로 표현하는 인물풍속이 주를 이루었으나 후기에는 무덤을 지켜 주는 사신(四神)을 그려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천장에는 죽은 묘주의 영혼이 향하게 되는 내세, 즉 천상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일월성신(日月星辰)·신선(神仙)·신수(神獸)·서조(瑞鳥)·영초(靈草)·비운(飛雲) 등을 그려 넣어 하늘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무덤의 내부는 현실을 나타낸 벽면과 내세 혹은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천장이 어우러져 일종의 소우주적인 공간을 형성하였다.--- p.20

고구려와 관련하여 교육받은 일반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광개토대왕(재위 391~413)과 장수왕(재위 413~491), 수나라의 113만이 넘는 대군을 물리친(612) 을지문덕 장군, 당나라 태종의 30만 대군을 격퇴한(644) 안시성주 양만춘, 고구려 말기에 전권을 움켜잡고 다섯 차례나 당나라의 침입을 막아낸 연개소문(?~665) 등 영토를 크게 넓히거나 혁혁한 무훈을 세운 영웅호걸들만을 기억할 뿐, 고구려가 이룩했던 훌륭한 문화적 업적과 기여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곧 고구려가 군사대국이었던 사실은 잘 알면서도 문화 선진국이었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 국민들이 고구려와 고구려사에 관하여 지니고 있는 제일 크고 심각한 오해이자 편견이라 하겠다.--- pp.63-64

문자로 쓰인 기록과 문헌만이 아니라 모든 미술품들은 나름대로의 기록성과 사료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를 위시한 회화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다만 문자가 아닌 조형언어로, 문장이 아닌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림의 주제와 내용과 표현방법을 언어와 글로 풀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포함한 고대의 회화는 거짓 없는 사실적 표현 속에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양상을 담고 있어서 훈련된 눈을 통하여 상당 부분을 신빙성 있게 읽어낼 수가 있다.--- p.67

서기 357년의 절대연대를 지닌 고구려 안악 3호분(安岳三號墳)부터만 따져도 한국 고분벽화의 역사는 최소한 무려 1,100년간에 이르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처럼 노회신의 벽화묘는 한국 고분벽화의 역사를 늘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1,100년의 역사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하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매우 큼을 부인하기 어렵다.
--- p.302
 

출판사 리뷰

2013년 6월 23일 고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한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2004년에 등재된 고구려 고분군에 이어 북한으로서는 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을 지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남한 땅에서 남한 정부의 관리 아래 있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도 수십 년을 반(半)수몰 상태에 있는 마당에, 저 멀리 북한 땅, 중국 땅에 있는 문화재들이야 어떻게 맥을 이어가고 있건 상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저 상투어에 불과하지는 않을 터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으면 그만큼 관심을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안휘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한국 고분벽화’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에는 이렇게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숨어 있다.

손에 닿지 않는 한국 고분벽화

한국 고분벽화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북한의 평양과 중국의 지안(集安)에 몰려 있다. 합당한 고고학적 발굴이 아닌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지적조사 과정에서 무더기로 발굴되었다가 지금은 보존 문제로 일반 접근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사진이나 모사도뿐인데, 적어도 가까운 10년 내에 촬영된 사진은 흔치 않고, 원본의 훼손이 갈수록 심해져 현재 상태를 가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접근이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벌써 10년째에 달하는 동북공정사업으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기 바쁘다. 2013년 5월 1일 중국은 길림성 지안에 고구려박물관을 개관하며 고구려 문화유산을 전시했는데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고구려의 고분벽화 〈수렵도〉 옆에 한나라 고분에서 발견된 〈수렵도〉를 아무 설명 없이 나란히 걸어놓는다거나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이 수도 장안에서 고구려 춤을 보고 지었다는 내용의 시 「고구려」를 소개하는 등 수상쩍은 장치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런 직접 접근성의 문제는 고분벽화 연구에 가장 큰 장벽이 된다. 결국 책이라는 간접 접근만이 현재로서는 가능하다. 그리고 이 책 『한국 고분벽화 연구』는 천 년이 훌쩍 넘는 한국 고분벽화의 전체 흐름을 한 권으로 정리한 종합적인 안내서다. 『한국 회화사 연구』, 『한국 미술사 연구』 두 책에 흩어졌던 글들의 편집 작업인 만큼 새로운 연구라고 보기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닐지라도 ‘한 번 더’, 그리고 ‘조금 더’의 의미에서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한국 고분벽화를 통시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초자료부터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2013년 현재 시점에 맞춰 사실관계가 달라진 부분들을 수정하거나 그 사이 연구성과를 반영했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의 경우 제대로 된 도판 한 점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외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양질의 컬러도판을 싣고자 했다. 한국 고분벽화에 대한 연구성과를 한데 모아, 이제 막 이 분야를 연구하려는 사람들과 문화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의 접근을 돕는다는 것이 책의 일차적인 목표다.

한국 역사는 고분벽화부터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미술사, 혹은 한국사에서 고분벽화 연구가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고분벽화라는 장르가 한국 미술문화에서 독자적인 성격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이다. 서화나 공예, 조각 같은 일반적인 미술 장르와 비교해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서화, 공예, 조각은 운반·이동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직접적으로 다른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분벽화는 고분건축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붙박이 장식이므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외래성보다는 지역적 특수성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신도(四神圖)가 고구려 고분에서 점차 벽면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분벽화는 고분건축과 장례문화의 한 산물이기 때문에 당대인의 일상(생활풍습과 사상경향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시대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가장 정확한 ‘기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땅덩이가 좁고 수집된 자료가 빈약한 한국에서 한꺼번에 가장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미술사료가 바로 고분벽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분벽화가 흔히 알듯 고구려에 한정되지 않고, 백제와 신라, 고려, 심지어 조선시대까지 역사를 이어갔다고 하니, 우리 역사를 꿰뚫을 수 있는 귀한 열쇠 하나를 손에 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서화는 남아 있는 것이 시기상으로 고려 이후, 대부분 조선시대까지 내려가야 하고, 불교조각이나 공예는 직접적인 기록의 성격이 약하기 때문에 고분벽화만큼 많은 정보를 주기 어렵다. “이렇듯 고구려 고분벽화들은 기록성과 사료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자로 쓰인 기록이나 문헌과 똑같이 중요함을 인정해야 하며, 그런 전제하에서 문헌기록과의 대조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진실성과 신빙성에서는 종종 거짓이 끼어드는 문헌기록보다도 오히려 벽화가 신뢰성이 더 있을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할 듯하다. 벽화는 시대성, 사실성, 예술성도 갖추고 있음을 유념해야 하겠다.” - pp.69-70

하지만 고분벽화는 미술사료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관람객이 많이 찾는 ‘명품’이 있다. 신라의 금관이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은 것들이 그렇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미적인 것이 우리가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일차적인 기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자주 접하고 눈에 익은 것을 아름답게 여기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접할 기회가 드물고 눈에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어렵고, 점점 눈길을 덜 주어 다른 가치마저도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분벽화가 역사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까닭이, 그 접근성 외에 문화재를 표피적인 감상의 차원에서 보는 데 익숙한 우리의 태도에도 얼마간 기인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를 고민할 때, 저자 안휘준 교수의 최근 활동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안휘준, 문화재를 책으로 돌보다

안휘준 교수는 2006년 정년퇴임하며 한국미술사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 해마다 한 권꼴로 책을 펴내고 있다. 사회평론에서 출간한 책으로는 2010년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이후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책이다. 그런데 그가 펴낸 목록을 훑어보면 ‘필요의 차이’가 느껴진다.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이 한국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데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친절하고 쉽게 한국미술의 성격을 이야기하기 위해 쓰였다면, 『한국 미술사 연구』는 신진 연구자들에게 길을 터주는 의미로 미개척 분야에 대한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쓰였다. 자신의 주 전공인 회화사 분야에서는 최신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해 『한국 그림의 전통』을 내기도 했다. 언제나 ‘지금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염두에 두고, 이미 많은 영예를 가져다주었을 연구성과들을 다시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 노학자의 연구가 지니는 생생한 현재성은 전작들을 통해 다소간 평가를 받았지만, 그가 학문하는 태도, 나아가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는 사회적으로 조금 더 알려질 필요가 있다.

저자는 2012년 9월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막 출범한 기관이니, 박물관이나 문화재청 같이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은 자명하다. 국내 문화재에 대해서도 의식이 미미한데 하물며 국외에 있는 문화재는 없는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판이다. 어떤 일이든 기간을 닦는 작업은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공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안휘준 교수가 이러한 외로운 일을 선뜻 맡은 이유는 오로지 그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시점에서 『한국 고분벽화 연구』를 펴낸 것 또한 우리 시야 바깥에 관심을 필요로 하는 문화재가 있음을 알리고, 시의적이고 피상적인 관심보다는 지속적이고 차분한 관심이 따라야 함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안휘준 교수는 끊임없이 ‘책’이라는 형태로 학계 혹은 학계 밖의 사람들과 만나려고 한다. 책만큼은 단순한 화젯거리에서 벗어나 그것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이들 곁에 언제고 남아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그에게는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10여 권의 책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