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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애 (2021)

동방박사님 2024. 1. 2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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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톨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엔도 슈사쿠,
슬픈 예수를 말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예수의 생애》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엔도 슈사쿠는 종교와 삶, 죽음, 구원 등의 주제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 낸 작가이다. 특히 그의 문학적 여정의 출발이 가톨릭 신앙에서 시작된 만큼, 그리스도교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번에 개정 출간된 《예수의 생애》는 엔도 슈사쿠만의 하느님 상인 ‘모성적 하느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예수의 삶을 신학적 지식, 깊은 신앙, 작가적 상상력 등을 통해 그려 낸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시대적 배경을 통해 설명하며 한층 깊이를 더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엔도 슈사쿠 특유의 필치를 잘 느낄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고, 2005년 새 번역 성경으로 바꾸는 등의 개정 작업을 거쳤다.

《예수의 생애》는 2천 년 전 인물이었던 예수의 일생을 생생히 재현하여, 우리 앞에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더 깊이 공감하며, 예수의 가르침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예수라는 인물을 신학적·역사적 의미에서 심도 있게 조명하면서도, 작가적 상상력을 더하여 흥미를 더한다.

목차

나자렛 생활을 떠나서 9
사해 근처 25
위험한 초기 시대 41
갈릴래아의 봄 59
첩자들 79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99
무력한 예수 113
유다, 가련한 남자 12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147
체포의 밤 163
재판하는 사람들 185
주님,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205
수수께끼 223
저자 후기 252
역자 후기 254
미주 258

저자 소개 

저 : 엔도 슈사큐 (遠藤周作 )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나 12세 때 세례를 받았다. 게이오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나 결핵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귀국한 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그리스도의 탄생》, 《내가 버린 여자》, 《깊은 강》 등 다수가 있으며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9월 29일 타계...
 
역 : 이평춘
 
필명 이평아. 와세다대학 대학원 일문학 연구생 수료,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 대학 대학원 일문학 석사, 도쿄 시라유리여자대학 대학원「엔도 슈사쿠 문학」으로 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외래교수. 번역서로 엔도 슈사쿠『바다와 독약』가톨릭 출판사, 엔도 슈사쿠『예수의 생애』가톨릭 출판사, 엔도 슈사쿠『그리스도의 탄생』가톨릭 출판사, 엔도 슈사쿠『내가 버린 여자』어문학사, 엔도 슈사쿠『신의 아이(백색인) 신들의...

책 속으로

죽은 듯이 잠잠한 사해와 유다 광야를 보며 예수는 아마도 갈릴래아의 온화한 봄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느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단지 분노하고 벌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애처로운 삶을 영위하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쿰란 공동체나 요한 세례자 공동체가 황량한 사해와 민둥산을 보며 분노의 하느님을 떠올렸다면, 예수는 그와 정 반대의 하느님을 생각했다. 바로 인간의 비애와 고통을 아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해 근처」중에서

예수가 사랑의 하느님에 대해 말한 이 갈릴래아 호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사해 근처의 유다 광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생활은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온화하고 아름답다. 양 떼가 풀을 뜯는 완만한 언덕, 호수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키 큰 유칼리 숲, 그 숲에 바람이 스쳐 간다. 들판에는 노란 국화나 붉은 개양귀비 꽃이 만발해 있고 호수 저쪽의 수면에는 고기잡이배가 떠 있다. 삶은 이렇듯 애처로운데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예수의 이 말에서, 양팔을 벌리고 호숫가에 선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외침은 호수를 스치는 바람결에 실려 호숫가 근처의 가난한 마을과 부락에 전해진다.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이나 여자, 절름발이, 소경이 어두운 집 안에서 나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갈릴래아의 봄」중에서

예수가 관심을 가진 것은 비참한 현실 속에 울고 있는 이들, 가난한 마을과 부락의 낡은 오두막에 사는 병자와 불구자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연민과 사랑의 정을 느꼈다. 인간은 대개 아름다운 것과 매력적인 것에는 마음이 끌리지만, 추하고 더러운 것은 외면한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창녀나 나병 환자들에게 사랑을 느꼈다. ‘기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불행한 사람들, 그들의 고통이 무겁게 예수의 야윈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는 이때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그는 머지않아 십자가 위에서 외칠 시편의 이 구절을 바치며, 갈릴래아의 비참한 사람들을 위하여 수없이 간구했다.
---「첩자들」중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그의 음성은 양 떼가 풀을 뜯는 완만한 언덕, 그리고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숲으로 퍼져 갔다. 숲속의 나뭇가지들이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고, 호숫가에는 붉은 개양귀비 꽃이 만개했고, 햇볕이 내리쬐는 잔잔한 물결 위에는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군중은 술렁거렸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기대에 찬 외침에 대해 예수가 이와 같은 의외의 말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 온 랍비 전통의 유다교의 경우, 사랑이라는 관념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하여 신앙을 북돋아 주지는 않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온유한 사람’, ‘우는 사람’, ‘착한 사람’을 이렇게 높이 여긴 적도 없었다.
---「첩자들」중에서

그는 이 서른 닢이라는 대가가 예수의 생애를 얼마나 치욕스럽게 하는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단돈 몇 푼에 자신의 영혼이 팔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열한 행위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며, 대사제가 멸시하듯 건네준 돈을 받았던 것이다. 돈을 받아 쥔 유다의 일그러진 표정과 자학의 심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은돈 서른 닢이라는 복음서의 기술에는 유다의 고통, 자학, 그리고 그의 고독이 배어 있다.
다음 날 유다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욕설과 치욕을 당할 예수를 생각했다. 한편, 변절자로서 영원히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욕설과 치욕을 당할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배신당한 이와 배신자의 불가사의한 상관관계를 그가 이때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번 예수와 마주친 사람은 평생 그를 잊을 수 없게 된다.
---「체포의 밤」중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메마른 예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이 말을 살펴보면, 예수는 사랑이 결핍된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두둔하려 한다. 예수의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투를 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이다.
---「주님,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중에서

그들은 생전의 스승의 얼굴과 모습을 떠올렸다. 매우 지치고 쑥 들어간 눈매, 그 눈매에 슬픔의 빛이 떠오른다. 그리고 미소를 띤 그 눈에는 순박한 빛이 머무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 이 세상에서 무력했던 사람, 야위고 볼품없던 사람, 그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것을 못 본 체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울고 있는 여자들과 고독한 노인 곁에 묵묵히 머물렀다. 기적 같은 것은 행하지 않았지만, 기적보다도 훨씬 깊은 사랑이 그 휑한 눈에 흘러넘쳤다. 그는 자신을 저버린 이, 자신을 배신한 이에게 원망의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슬픔의 인간’으로, 제자들의 구원만을 간구했다.
예수의 생애는 그뿐이었다. 그것은 하얀 종이 위에 쓰인 글자 하나처럼 간단하고 명료했다. 너무 간단하고 명료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수수께끼」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자 갈망했던 한 인간의 초상

소설은 예수가 고향 나자렛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고, 금욕 생활을 하는 에네세파 공동체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 예수가 쿰란 공동체에 머무르며 40일간 단식과 기도로서 자신의 소명을 찾게 되었다는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진다. 예수는 이 시기를 보내고 난 후, 마침내 자신만의 ‘사랑의 하느님’을 찾는다. 예수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제자들과 함께하며 ‘사랑의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기적을 베풀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구제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예수도 자신이 말하는 ‘사랑’이 현실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이런 스승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간극 속에 예수는 고독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묵묵히 병자와 가난한 이, 소외받은 이들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지며 친구가 되고자 한다. 소설은 성경 속 인물들인 죄 많은 여자와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을 등장시키며, 예수의 이러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여자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었을까? 어째서 그를 찾아보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지만, 단지 그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화함’을 느꼈으리라. 자신의 비참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멸시에 익숙해져 있던 여자는 어떤 사람이 온화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 여자의 눈물에서 예수는 모든 것을 알았다. 이제껏 이 여자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멸시받았는지, 그리고 홀로 자신의 비참함을 되씹었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 눈물로 충분했다. 하느님이 그를 기쁘게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했다.
― 본문 중에서

현실에서 무력하게 보였던 예수의 이런 ‘사랑’은 겁쟁이였던 제자들을 훗날 사도로 변모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예수가 말했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권력과 영광보다도 더 강력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인물, 예수가 남긴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로써 이 소설의 테마는 예수가 행한 기적이 아닌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의 사랑이 그가 행했던 어떤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본 적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로 남은 인물, 예수의 삶을 다각도로 추적하다

이 소설은 예수라는 한 인물의 삶을 성서적·역사적 배경을 통해 심도 있게 조명하면서도, 소설이라는 장르를 활용하여 상상력을 더한다. 그래서 나자렛에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청년 예수의 모습부터,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제자들과의 공생활, 유다 의회와 헤로데 안티파스의 음모,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는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담담한 듯 건조하게 예수의 삶을 묘사함에도 불구하고 흡입력 있게 그려진다. 성경의 문장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소설 속 상황에 맞게 다르게 표현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내용의 풍성함을 더했다. 또한 훗날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소설 속 유다는 예수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다른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스승의 진심을 유일하게 깨달았던 인물로 그려진다.
이 책만의 이러한 특징은 독자들이 예수라는 인물과 삶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껴안아 주시는 모성적인 모습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한다. 이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던 ‘동반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약하고 볼품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고결했던 인간 예수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다.

“이 예수야말로 ‘나의 예수’가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예수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서양인이어야 예수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일본인으로서도 알 수 있는 예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교를 살펴보며 나는 일본인과도 친숙해질 수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예수야말로 나의 예수가 되었다. 그러한 나의 예수를 이 책에서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 나는 예수의 인간적인 생애의 한 단면에 접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인인 내가 언급한 예수상이 그리스도교와 무관했던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실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작업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 본문 중에서

엔도 슈사쿠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로써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우리도 누군가 “당신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 같은 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두려운 존재이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역사 속의 예수나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그려내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나아가 독자들이 각자만의 예수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는 엔도 슈사쿠가 자신의 문학 세계에서 궁극적으로 찾고자 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인들에게는 자신만의 신앙과 종교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신앙인이 아닌 이들에게도 순수한 이상을 품고 고뇌하는 예수의 모습은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 그리던 삶의 궁극적인 지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종교 작품이라는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예수라는 인물과 그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가톨릭 신자는 물론, 그리스도교와 예수라는 인물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흥미롭게 읽으리라 기대한다. 또한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집약한 작품이기도 한 만큼, 그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