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깊이 있는 일본 역사연구가인 이수병이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를 심도 있게 비교 분석하여 국내 처음으로 [고대 일본은 백제가 지배했다]는 파격적인 역사 비교서를 펴냈다.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숙명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문, 소설, 역사, 여행 등등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다각도로 다룬 서적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양이나 질적으로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시중에 있는 일본에 관한 여러 매체를 보면 ‘과거의 상황을 피상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지 어째서,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특히 일본 천황의 존재는 아주 생각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프롤로그에서 적었다. 특히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고서기]를 비교 분석한 역사 고증 서적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백제에서의 권력 부침과 백제와 왜의 관계를 소상하게 알아야 하지만 일본은 과거 독자적 대화조정과 백제, 왜의 통일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역사를 고의적으로 은폐함은 물론, 자기들만 알 수 있도록 난해하게 국신(國神)이라는 말 등을 사용하며 풍가도어로 기록하여 백제와 일본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며 사실 왜곡과 은폐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관성있게 백제, 가야, 신라, 고구려, 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것은 오로지 역사에 충실하지 못하고 역사 왜곡으로 자신들만의 국가와 민족을 우수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숙명적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문, 소설, 역사, 여행 등등 일본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다각도로 다룬 서적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양이나 질적으로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까지 시중에 있는 일본에 관한 여러 매체를 보면 ‘과거의 상황을 피상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지 어째서,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특히 일본 천황의 존재는 아주 생각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프롤로그에서 적었다. 특히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고서기]를 비교 분석한 역사 고증 서적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백제에서의 권력 부침과 백제와 왜의 관계를 소상하게 알아야 하지만 일본은 과거 독자적 대화조정과 백제, 왜의 통일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역사를 고의적으로 은폐함은 물론, 자기들만 알 수 있도록 난해하게 국신(國神)이라는 말 등을 사용하며 풍가도어로 기록하여 백제와 일본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며 사실 왜곡과 은폐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관성있게 백제, 가야, 신라, 고구려, 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것은 오로지 역사에 충실하지 못하고 역사 왜곡으로 자신들만의 국가와 민족을 우수하게 드러내 보이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목차
제1부 일본 역사 공부 서론
제2부 일본 역사 공부
신라의 대당對唐 정책 / 나당羅唐 연합군과 백제 멸망 / 백제 부흥군의 전멸과 왜倭의 후속 조치 / 백제 피난민들에 대한 왜의 조치 / 천지天智 천황의 즉위와 일본의 탄생 / 신생국의 국호 제정, 천황제 신설, 천도遷都 / 문무왕 9년(670년) 왜가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꿨다 /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의 뜻 / 역사서(日本書紀) 편찬과 천황제天皇制 도입 / 왜倭의 역사서 발간 / 천황제 도입 / 만세일계萬世一系 / 4곳의 번藩 / 〈일본서기〉 신무기 요약 / 〈일본서기〉 등장인물(신대기→인대기) / 왜로 피난한 사람들의 정체성 인식 / 백제의 왜倭 정벌 시기와 백제 멸망의 진행 과정 / 서기 풍가도어의 의미 / 풍가도어諷歌倒語의 의미 / 편자들이 〈일본서기〉를 조작/왜곡을 하여야 하는 이유 / 근초고의 사돈査頓은 가야계 진정眞井(=眞淨)이다 / 〈고사기〉와 〈일본서기〉 / 담로도淡路島와 백제의 둔창屯倉 / 〈일본서기〉 편찬 시기 및 편찬 방법
제3부 신대기·인대기 설정에 대한 의문점
신대기神代紀 설정과 의문점 / 어째서 초대 천황 즉위를 BC 660년으로 했나? / 어째서 백제 멸망 후에 지통이 문누에게 양위했나? / 어째서 AD 660년 백제 멸망 40년 후인 AD 697년에 문무천황에게 할머니인 지통持統이 양위하는 것으로 서기 기록을 끝냈을까? / 천지, 천무, 지통, 문무의 서기상 출생도표 / 백제 멸망 후 40년 공백 기간의 권력 다툼 / 방어시설 구축과 역사서 편찬 / 〈일본서기〉 편찬 준비와 완성 / 〈일본서기〉 신대기 압축 / 신대기 상上 내용→압축한 가야계 신들의 탄생 설화 / 스사노오(素?鳴尊)에 관하여 / 신대기 하下의 내용 압축→백제계 신들의 탄생 설화 / 신대기의 두목과 인대기의 만 / 신대기의 가쓰라(두목杜木) / 인대기의 가쓰라(만?) / 〈일본서기〉 등장인물(백제계와 가야계) / 인대기人代紀의 천황 연표 / 일본 천황 시호와 재위기간
제4부 백제 왕력표
초대 온조 개국~고이왕까지 백제 역사 요약 / 풍가도어諷歌倒語란? / 8대 고이왕 AD 234~286(52년간 재위) / 12대 비류왕(304~344)의 쿠데타 / 진眞씨는 2부류 / 13대 근초고왕(346~375) / 진정眞淨은 누구인가? / 무내武內의 배반 이유 / 13대 근초고의 2차 공격과 14대 근구수의 3차 공격 / 15대 침류(=중애仲哀)와 〈일본서기〉의 신공神功 / 신공神功에 관한 전설 / 16대 진사의 왕위 찬탈 / 17대 아신과 응신과의 밀약 / 391년 신묘辛卯년의 비밀과 광개토대왕의 신라 파병 / 18대 전지?支 / 19대 구이신久?辛 / 20대 비유毘有 / 비유毘有의 탄생과 쿠데타 / 파벌 투쟁에서 진언珍彦의 승리 요약 / 나제동맹羅濟同盟의 파기 / 21대 개로蓋鹵왕(455~475) / 고구려의 백제 침공 이유는? / 22대 문주文周왕과 23대 삼근三斤왕 / 24대 동성東城왕과 25대 무령武寧왕 / 동성東城왕 즉위 / 479년 백제/일본의 통합국가 탄생 / 규슈 가당도加唐島에서 출생한 무령왕 / 660년 백제 멸망 이후 백성들의 정체성 인식 / 재미있는 일본어 배우기 / 비류왕∼무령왕의 탄생·사망 추정표(삼국사기)
제5부 왜에서 본 백제의 침략
서론 / 진정은 누구일까? / 신대기 천조대신天照大神 서약조 / 황우黃牛 설화 수인기垂仁紀 / 쓰누가都奴我 아라시도와 게이?飯 신사 / 민달기敏達紀 12년 원문 / 근초고와 아라시도阿羅斯等와의 관계 / 근초고가 대륙에 가야 하는 이유 / 백제와 가야 간의 상쟁의 흐름 과정
제6부 백제의 왜 침략(1~3차)
백제의 왜 침략(1~3차) 경로 지도 / 서론:백제의 왜 침략(1차~3차) 역사 요약 / 근구수의 1차 왜倭 정벌과 가야의 규슈九州 포기 / 탐색 단계(백제의 1차 침략을 위한) / 구저, 침류, 무내를 파견 / 규슈의 임나가라 7국 정벌과 무내의 배반(369년) /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 숨겨진 무내의 칠지도와 기타 칠지도의 기록들 / 아와지시마의 다사읍 할양과 신공의 사망 / 다사읍出沙邑은 담로도에 있는 지명 / 침류에게 칠지도 하사下賜 / 진정眞井과 반장희磐長姬의 사망 / 일본무존日本武尊의 동녀童女 변장 / 구누기歷木 사건:경행기 18년 7월조 / 반정磐井의 사망(계체기 22년 12월조) / 반장희磐長姬의 사망→신공 즉위전기 9년 3월 / 백제의 1차 침공과 가야의 후퇴 / 3신神의 섬 / 규슈를 백제가 완전 정복 / 놋도리다荷持田 이야기 / 보식신保食神 /침류는 우사쓰히메와 혼인 / 신공의 다사성 할양 / 천조대신의 삼종신기三種神器 하사 / 장문(長門, 시모노세키 해협)을 경계로 함 / 반정을 참斬하고 반란 평정 / 신공의 사망 암시 / 침류의 죽음 암시 / 진사를 규슈 대재수大宰帥로 임명 / 2차 왜 정벌(근초고왕의 친정親征과 사망에 관한 기록들) / 백제의 가야(倭) 침공 / 이중기履中記 화공火攻 사건 / 화공火攻 사건 / 백조능白鳥陵 능지기 사건 / 인덕 67년 10월조:백설조百舌鳥 사건을 통해 근초고 사망을 표현 / 인덕 38년 7월 도가노?餓野의 사슴 사건 / 팔전八田 황녀와 팔수八須 황후 / 〈고사기〉:상선喪船과 고사카왕香坂王/인웅왕忍熊王 사건 / 백제의 3차 침략 / 가야에 대한 백제의 3차 공격 / 마늘과 백록(白鹿=근구수) 사망 / 야마토다케루日本武尊(=근구수) 사망과 미야쓰히메宮?媛 / 백조白鳥 3능陵 / 백제 3차 공격에 대항하는 가야 / 백제 공격에 대한 가야의 작전 준비상황 / 팔십외八十?의 의미 / 서기 편찬자의 의도는?
제7부 진사의 쿠데타와 왜5왕의 대화조정
백제의 왜倭 침공 / 왜의 대화조정大和朝廷 탄생과 왜5왕의 등장 / 백제의 왜 직접 통치 / 침류 사망과 진사辰斯의 즉위 / 침류의 사망 / 서기의 침류 모함, 폄하 이유 / 진사의 쿠데타와 응신應神의 즉위 / 진사의 쿠데타와 아신/응신의 밀약 / 광개토왕 비문 기록 / 김부식의 〈삼국사기〉 구원狗原 기록 / 진사 제거를 위한 아신과 응신의 밀약과 성립과정 / 밀약의 제의 / 대화조정 탄생과 응신의 사망 / 신무(초대천황)의 동정東征 국신國神 / 인덕仁德 즉위전기 기록 / 〈일본서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 포인트 / 〈일본서기〉 이해를 위해 〈성씨록姓氏錄〉이 필요한 이유 / 국신國神 진언珍彦과 준인準人 / 예진 사망과 예진가 동성의 백제왕 등극 / 전변사田邊史 백손伯孫 이야기 / 천탕하판거天湯河板擧 등장→동성왕의 백제왕 등극 / 동성왕의 도읍 길지吉地 발견과 전북 익산益山 고분 / 〈일본서기〉 조메이기舒明紀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제8부 무내武內에 관하여
서설序說 / 전반적이라는 뜻 / 역사의 반전의 경우는 언제였을까? / 무내의 이명異名 / 〈일본서기〉에서의 무내의 행적 개요 / 무내의 출생과 유년기, 성장기 / 무내의 배반 / 무내 등장과 사실의 은폐, 〈일본서기〉 / 대래목大來目 / 무내武內와 가야계 대반大伴의 만남 / 사사키??와 쓰쿠木?의 설화 / 무내의 천황 등극 / 가야의 왜倭5왕 / 무내의 인덕仁德천황 등극과 숨겨진 국신 진언계珍彦系 시대 / 무내계의 전횡專橫과 무내 제거 / 서기에 숨겨져 있는 무내계의 막후 통치 / 무내계武內系의 통치 기록 / 안작득지鞍作得志의 뜻 / 진사 제거 밀약과 무네 제거 밀약 / 진사 축출을 위한 응신과 아신의 협력 / 무내 제거를 위한 아신과 응신의 협력 / 무내계 제거에 관한 기타 기록 / 갑신년甲申年 384년과 임신년壬申年 672년 / 서기에 나타난 진사의 성격 / 〈일본서기〉에 나타난 무내의 배반 / 소아입록蘇我入鹿에 관한 설화 요약
제9부 〈일본서기〉 결론(천지/천무에 관하여)
제명濟明 6년 7월 서기 기록과 신공 전기 기록 /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왜의 기대 / 부흥운동의 태동과 왜倭의 지원 / 나당군의 왜 침공 가능성에 대비 / 피난민 숫자 / 피난민에 대한 조치 / 왜의 장래를 위한 여러 조치 / 국호 제정, 천황제 신설 / 역사서 발간(고사기, 일본서기) / 수도를 옮김 / 백성들의‘단일 통합국가’라는 인식 / 천지天智와 천무天武에 관하여 / 천무天武와 무내 / 천무天武와 지통持統 / 천지天智, 천무天武, 문무文武의 출생도표
제10부 〈일본서기〉 연구 후기(서기 황력표 분석)
첫 번째 기간:백제의 왜 침략 기간 / 서기書紀 기년과 서력西曆 기년 조정 / 서기 기년 조정 방법:결사 시대와 백제/왜 상쟁기간 설정 / 두 번째 기간:대화조정大和朝廷 기간 / 자리매김의 예 / 한국 사학계에 의견 제안 / 세 번째 기간:백제의 왜 직할시대 / 만(?, 가쓰라)의 파견 / 네 번째 기간:서기의 결론 부분 / 〈일본서기〉 결론 준비 / 첫 번째 기간:백제의 왜 침략 기간 / 두 번째 기간:대화조정 기간 / 세 번째 기간:백제의 왜 직접 통치 기간-〈고사기〉는 결사시대임 / 네 번째 기간:서기의 결론 부분
제2부 일본 역사 공부
신라의 대당對唐 정책 / 나당羅唐 연합군과 백제 멸망 / 백제 부흥군의 전멸과 왜倭의 후속 조치 / 백제 피난민들에 대한 왜의 조치 / 천지天智 천황의 즉위와 일본의 탄생 / 신생국의 국호 제정, 천황제 신설, 천도遷都 / 문무왕 9년(670년) 왜가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꿨다 /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의 뜻 / 역사서(日本書紀) 편찬과 천황제天皇制 도입 / 왜倭의 역사서 발간 / 천황제 도입 / 만세일계萬世一系 / 4곳의 번藩 / 〈일본서기〉 신무기 요약 / 〈일본서기〉 등장인물(신대기→인대기) / 왜로 피난한 사람들의 정체성 인식 / 백제의 왜倭 정벌 시기와 백제 멸망의 진행 과정 / 서기 풍가도어의 의미 / 풍가도어諷歌倒語의 의미 / 편자들이 〈일본서기〉를 조작/왜곡을 하여야 하는 이유 / 근초고의 사돈査頓은 가야계 진정眞井(=眞淨)이다 / 〈고사기〉와 〈일본서기〉 / 담로도淡路島와 백제의 둔창屯倉 / 〈일본서기〉 편찬 시기 및 편찬 방법
제3부 신대기·인대기 설정에 대한 의문점
신대기神代紀 설정과 의문점 / 어째서 초대 천황 즉위를 BC 660년으로 했나? / 어째서 백제 멸망 후에 지통이 문누에게 양위했나? / 어째서 AD 660년 백제 멸망 40년 후인 AD 697년에 문무천황에게 할머니인 지통持統이 양위하는 것으로 서기 기록을 끝냈을까? / 천지, 천무, 지통, 문무의 서기상 출생도표 / 백제 멸망 후 40년 공백 기간의 권력 다툼 / 방어시설 구축과 역사서 편찬 / 〈일본서기〉 편찬 준비와 완성 / 〈일본서기〉 신대기 압축 / 신대기 상上 내용→압축한 가야계 신들의 탄생 설화 / 스사노오(素?鳴尊)에 관하여 / 신대기 하下의 내용 압축→백제계 신들의 탄생 설화 / 신대기의 두목과 인대기의 만 / 신대기의 가쓰라(두목杜木) / 인대기의 가쓰라(만?) / 〈일본서기〉 등장인물(백제계와 가야계) / 인대기人代紀의 천황 연표 / 일본 천황 시호와 재위기간
제4부 백제 왕력표
초대 온조 개국~고이왕까지 백제 역사 요약 / 풍가도어諷歌倒語란? / 8대 고이왕 AD 234~286(52년간 재위) / 12대 비류왕(304~344)의 쿠데타 / 진眞씨는 2부류 / 13대 근초고왕(346~375) / 진정眞淨은 누구인가? / 무내武內의 배반 이유 / 13대 근초고의 2차 공격과 14대 근구수의 3차 공격 / 15대 침류(=중애仲哀)와 〈일본서기〉의 신공神功 / 신공神功에 관한 전설 / 16대 진사의 왕위 찬탈 / 17대 아신과 응신과의 밀약 / 391년 신묘辛卯년의 비밀과 광개토대왕의 신라 파병 / 18대 전지?支 / 19대 구이신久?辛 / 20대 비유毘有 / 비유毘有의 탄생과 쿠데타 / 파벌 투쟁에서 진언珍彦의 승리 요약 / 나제동맹羅濟同盟의 파기 / 21대 개로蓋鹵왕(455~475) / 고구려의 백제 침공 이유는? / 22대 문주文周왕과 23대 삼근三斤왕 / 24대 동성東城왕과 25대 무령武寧왕 / 동성東城왕 즉위 / 479년 백제/일본의 통합국가 탄생 / 규슈 가당도加唐島에서 출생한 무령왕 / 660년 백제 멸망 이후 백성들의 정체성 인식 / 재미있는 일본어 배우기 / 비류왕∼무령왕의 탄생·사망 추정표(삼국사기)
제5부 왜에서 본 백제의 침략
서론 / 진정은 누구일까? / 신대기 천조대신天照大神 서약조 / 황우黃牛 설화 수인기垂仁紀 / 쓰누가都奴我 아라시도와 게이?飯 신사 / 민달기敏達紀 12년 원문 / 근초고와 아라시도阿羅斯等와의 관계 / 근초고가 대륙에 가야 하는 이유 / 백제와 가야 간의 상쟁의 흐름 과정
제6부 백제의 왜 침략(1~3차)
백제의 왜 침략(1~3차) 경로 지도 / 서론:백제의 왜 침략(1차~3차) 역사 요약 / 근구수의 1차 왜倭 정벌과 가야의 규슈九州 포기 / 탐색 단계(백제의 1차 침략을 위한) / 구저, 침류, 무내를 파견 / 규슈의 임나가라 7국 정벌과 무내의 배반(369년) /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 숨겨진 무내의 칠지도와 기타 칠지도의 기록들 / 아와지시마의 다사읍 할양과 신공의 사망 / 다사읍出沙邑은 담로도에 있는 지명 / 침류에게 칠지도 하사下賜 / 진정眞井과 반장희磐長姬의 사망 / 일본무존日本武尊의 동녀童女 변장 / 구누기歷木 사건:경행기 18년 7월조 / 반정磐井의 사망(계체기 22년 12월조) / 반장희磐長姬의 사망→신공 즉위전기 9년 3월 / 백제의 1차 침공과 가야의 후퇴 / 3신神의 섬 / 규슈를 백제가 완전 정복 / 놋도리다荷持田 이야기 / 보식신保食神 /침류는 우사쓰히메와 혼인 / 신공의 다사성 할양 / 천조대신의 삼종신기三種神器 하사 / 장문(長門, 시모노세키 해협)을 경계로 함 / 반정을 참斬하고 반란 평정 / 신공의 사망 암시 / 침류의 죽음 암시 / 진사를 규슈 대재수大宰帥로 임명 / 2차 왜 정벌(근초고왕의 친정親征과 사망에 관한 기록들) / 백제의 가야(倭) 침공 / 이중기履中記 화공火攻 사건 / 화공火攻 사건 / 백조능白鳥陵 능지기 사건 / 인덕 67년 10월조:백설조百舌鳥 사건을 통해 근초고 사망을 표현 / 인덕 38년 7월 도가노?餓野의 사슴 사건 / 팔전八田 황녀와 팔수八須 황후 / 〈고사기〉:상선喪船과 고사카왕香坂王/인웅왕忍熊王 사건 / 백제의 3차 침략 / 가야에 대한 백제의 3차 공격 / 마늘과 백록(白鹿=근구수) 사망 / 야마토다케루日本武尊(=근구수) 사망과 미야쓰히메宮?媛 / 백조白鳥 3능陵 / 백제 3차 공격에 대항하는 가야 / 백제 공격에 대한 가야의 작전 준비상황 / 팔십외八十?의 의미 / 서기 편찬자의 의도는?
제7부 진사의 쿠데타와 왜5왕의 대화조정
백제의 왜倭 침공 / 왜의 대화조정大和朝廷 탄생과 왜5왕의 등장 / 백제의 왜 직접 통치 / 침류 사망과 진사辰斯의 즉위 / 침류의 사망 / 서기의 침류 모함, 폄하 이유 / 진사의 쿠데타와 응신應神의 즉위 / 진사의 쿠데타와 아신/응신의 밀약 / 광개토왕 비문 기록 / 김부식의 〈삼국사기〉 구원狗原 기록 / 진사 제거를 위한 아신과 응신의 밀약과 성립과정 / 밀약의 제의 / 대화조정 탄생과 응신의 사망 / 신무(초대천황)의 동정東征 국신國神 / 인덕仁德 즉위전기 기록 / 〈일본서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 포인트 / 〈일본서기〉 이해를 위해 〈성씨록姓氏錄〉이 필요한 이유 / 국신國神 진언珍彦과 준인準人 / 예진 사망과 예진가 동성의 백제왕 등극 / 전변사田邊史 백손伯孫 이야기 / 천탕하판거天湯河板擧 등장→동성왕의 백제왕 등극 / 동성왕의 도읍 길지吉地 발견과 전북 익산益山 고분 / 〈일본서기〉 조메이기舒明紀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제8부 무내武內에 관하여
서설序說 / 전반적이라는 뜻 / 역사의 반전의 경우는 언제였을까? / 무내의 이명異名 / 〈일본서기〉에서의 무내의 행적 개요 / 무내의 출생과 유년기, 성장기 / 무내의 배반 / 무내 등장과 사실의 은폐, 〈일본서기〉 / 대래목大來目 / 무내武內와 가야계 대반大伴의 만남 / 사사키??와 쓰쿠木?의 설화 / 무내의 천황 등극 / 가야의 왜倭5왕 / 무내의 인덕仁德천황 등극과 숨겨진 국신 진언계珍彦系 시대 / 무내계의 전횡專橫과 무내 제거 / 서기에 숨겨져 있는 무내계의 막후 통치 / 무내계武內系의 통치 기록 / 안작득지鞍作得志의 뜻 / 진사 제거 밀약과 무네 제거 밀약 / 진사 축출을 위한 응신과 아신의 협력 / 무내 제거를 위한 아신과 응신의 협력 / 무내계 제거에 관한 기타 기록 / 갑신년甲申年 384년과 임신년壬申年 672년 / 서기에 나타난 진사의 성격 / 〈일본서기〉에 나타난 무내의 배반 / 소아입록蘇我入鹿에 관한 설화 요약
제9부 〈일본서기〉 결론(천지/천무에 관하여)
제명濟明 6년 7월 서기 기록과 신공 전기 기록 / 백제와 고구려에 대한 왜의 기대 / 부흥운동의 태동과 왜倭의 지원 / 나당군의 왜 침공 가능성에 대비 / 피난민 숫자 / 피난민에 대한 조치 / 왜의 장래를 위한 여러 조치 / 국호 제정, 천황제 신설 / 역사서 발간(고사기, 일본서기) / 수도를 옮김 / 백성들의‘단일 통합국가’라는 인식 / 천지天智와 천무天武에 관하여 / 천무天武와 무내 / 천무天武와 지통持統 / 천지天智, 천무天武, 문무文武의 출생도표
제10부 〈일본서기〉 연구 후기(서기 황력표 분석)
첫 번째 기간:백제의 왜 침략 기간 / 서기書紀 기년과 서력西曆 기년 조정 / 서기 기년 조정 방법:결사 시대와 백제/왜 상쟁기간 설정 / 두 번째 기간:대화조정大和朝廷 기간 / 자리매김의 예 / 한국 사학계에 의견 제안 / 세 번째 기간:백제의 왜 직할시대 / 만(?, 가쓰라)의 파견 / 네 번째 기간:서기의 결론 부분 / 〈일본서기〉 결론 준비 / 첫 번째 기간:백제의 왜 침략 기간 / 두 번째 기간:대화조정 기간 / 세 번째 기간:백제의 왜 직접 통치 기간-〈고사기〉는 결사시대임 / 네 번째 기간:서기의 결론 부분
출판사 리뷰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는, 일본 역사의 일반적 이해를 위한 서론으로써 일본 역사의 전체적인 도입 부분이다. 신라의 대당 정책에서 시작하여 백제 피난민에 대한 왜의 조치는 어떠했었는지 등등을 소개하여 일본 역사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제3부에서는, 〈일본서기〉의 신대기神代紀와 인대기人代紀로 나눠 설정한 〈일본서기〉의 의문점으로 가득한 내용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요약하였다. 제4부에서는, 8대 고이왕부터 시작하여 24대 무령왕까지 당시의 백제 왕들과 일본 역사와의 관련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백제의 왕력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제5부에서는, 근초고와 아라시도와의 관계 및 백제와 가야 간에 벌어진 상쟁의 흐름 과정을 왜의 입장에서 바라본 백제의 왜 침략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제6부에서는, 1차·2차·3차에 걸친 백제의 왜 침략을 정리하였다. 백제의 왜 침략과 왜의 저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제7부에서는, 〈일본서기〉의 중심인물인 침류, 진사, 응신, 진언, 예진의 사망을 총체적이고 세밀하게 정리하였으며, 백제 진사의 쿠데타 결과에 따른 왜의 대화조정의 탄생을 소개한다. 제8부에서는, 근구수왕의 장남으로서 백제를 배반하고 가야 세력에 협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 탄생의 주도적 역할을 한, 일본 역사 성립에 중요 인물인 무내를 중점적으로 알아보았다. 제9부에서는, 〈일본서기〉의 결론 부분인 천지와 천무, 지통에 관해 상세하게 살펴보았으며, 백제 피난민에 대한 조치 및 왜의 장래를 위한 조치까지 폭넓게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부분인 제10부에서는, 서기 연구 후기後記로, 천황 황력표를 4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첫 번째 기간인 신무~신공부터 시작해 네 번째 기간의 서명~지통까지 40명에 달하는 일본 천황의 역사적인 기록을 정리하였다.
일본 역사는 일본 열도에 대한 백제의 왜 정복의 역사이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역사를 사실대로, 또 직설적으로 기록할 경우 과거 일본이 백제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므로 이를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따라서 일본은 이를 반어법(도어법)으로 숨기며 기록했는데 그 역사서가 바로 〈일본서기〉인 것이다. AD 660년 나당군의 침략으로 백제는 멸망하였고, 백제 영토의 일부인 왜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살아남은 왜는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과거부터 왜가 백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도어법'으로 숨기며 역사서를 편찬했다. 결론적으로 40명에 이르는 천황들의 재임 기간이 무려 1,320년이 되므로 〈일본서기〉는 허위 기록이 분명하나 내용을 사실대로 환원시키면 결국 고대 일본과 백제는 '단일국가'였음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는 일본 열도에 대한 백제의 왜 정복의 역사이다. 그러나 일본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역사를 사실대로, 또 직설적으로 기록할 경우 과거 일본이 백제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므로 이를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따라서 일본은 이를 반어법(도어법)으로 숨기며 기록했는데 그 역사서가 바로 〈일본서기〉인 것이다. AD 660년 나당군의 침략으로 백제는 멸망하였고, 백제 영토의 일부인 왜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살아남은 왜는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과거부터 왜가 백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도어법'으로 숨기며 역사서를 편찬했다. 결론적으로 40명에 이르는 천황들의 재임 기간이 무려 1,320년이 되므로 〈일본서기〉는 허위 기록이 분명하나 내용을 사실대로 환원시키면 결국 고대 일본과 백제는 '단일국가'였음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일본에 사업상 드나들다 보니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졌으나 점차 가슴속에 의문이 생겼다. 즉 한국과 일본의 사회 밑면에는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나 좀 허전했다. 우선 언어적으로도 영어와는 전혀 다른 친근감이 생겼고, 신사神社나 큰 절의 건축양식이나 정원을 꾸미는 숨결에서도 서구식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러나 일본 속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니 한국과는 다른 삶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식적인 면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들 생활에서도 저항의식보다 순종적인 자세가 엿보여 한국과는 어딘지는 몰라도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럴까?’ 의문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일본에 관련된 각종 책을 읽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현재 우리의 눈에 보이는 부분 즉 피상적인 것만을 나열해 놓은 수준에 그쳐 그 원천적인 것에는 접근하지 않고 ‘왜, 어째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고대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전혀 흐름을 파악할 수 없었고, 백제, 신라, 가야도 나오며 등장인물들이 죽고 죽이는 이야기만 나오니 ‘무슨 공식 역사책이 이런가?’ 하는 의문만 들었고 너무 어려웠다. 역사서라면 〈이조실록〉처럼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그러던 중 1987년의 윤영식의 책과 2005년 네이버 〈고대사 산책, 가야/백제의 30년 전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책도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으나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일본과 백제의 역사 흐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 흐름은 말하지 않고 ‘단편적인 것’만을 이야기하여, 고대 일본[왜倭]과 한반도 특히 백제 간의 관계는 말하지 않아 아쉬웠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대 일본의 역사는 한반도와 따로 독립해서는 실상을 알 수가 없고, 특히 가야와 백제를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나당연합에 의한 백제 멸망을 전후하여 양국은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국제정세란 어느 특정 시점에 갑자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진행되어 온 사건이 후대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사태가 악화 되어 어떤 국가는 그 존재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세기 초 마한이 멸망하고, 199년 김수로왕 사망 후 가야세력이 약해지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는 서로 세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긴장과 알력이 고조되었다. 낙동강 하류의 가야세력들은 일찍이 바다 건너 왜倭에서 나라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제일 활동적인 세력은 아라가야였다. 아라가야는 가까운 규슈와 시마네현 철의 산지인 이즈모出雲에 진출하고 점차 세력을 넓혀 규슈 전 지역과 혼슈 중서부 지역을 석권했다. 이렇게 왜에서는 소국들을 포함하여 300개의 소국이 난립했다.
한편 백제의 근초고왕은 왜에 적극 진출하여 왜에서 이미 기반을 마련한 아라가야 세력을 흡수하였고, AD500년부터는 동성왕/무령왕∼의자왕 대까지 왜와 백제는 ‘통일된 단일국가’였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660년 백제는 멸망하였고 백성들은 왜로 피난을 떠났다. 668년 기대하였던 고구려까지 멸망하니 백제로부터 ‘피난한 백성들’은 왜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이 국가가 바로 ‘일본’이며, 따라서 ‘일본’이란 명칭은 왜에서 백제의 또 다른 국호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는 ‘풍가도어諷歌倒語’ 즉 반어, 은유, 비유법으로 쓰여 있어 ‘전체 흐름’을 모른다면 이해가 무척 어렵다.
왜로 피난한 백제의 유민들은 ‘신생국 왜의 통치 필요 상’, 과거 양국 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절연’하고 ‘독자적인 역사를 가졌던 우수한 민족’ 이었다고 국민을 호도하며 의도적으로 역사를 숨기며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왜곡된 기록이 바로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즉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천조인 닌니키(=근구수)가 강림한 이래 지금까지 179만 24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믿겠는가?
본서의 저술 목적이 위와 같은 〈일본서기〉 자체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도 있지만 ‘그들이 이렇게 기록해야 했던 이유’도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도 고려하며 심각한 추리도 해야 했다. 이제까지 시중에 있는 일본에 관한 여러 매체를 보면 ‘과거의 상황을 부분적으로 간단히 피상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지, 어째서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일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천황天皇의 존재는 아주 생각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일본서기〉 기록을 100% 사실이라고 믿으며 아무리 연구하여 본들 ‘우물 안의 개구리’ 연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본서기〉 첫 부분에는 백제와 가야가 서로 전쟁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에서는 근구수 장남 무내武內의 후손이 정치를 ‘이면에서 간섭/조종’하고 있다. 그러나 무내의 ‘이면 정치’는 ‘철저히 숨겨져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무내계武內系의 ‘이면정치(섭정 정치)’에 반기를 드는 것이 645년의 대화개신大化改新이고 가야계 천지天智의 주동으로 각 호족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672년 임신란으로 무내 후손인 백제계가 다시 가야계 천지를 제거하고 백제계 천무天武가 권력을 잡아 후손 문무文武천황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으로 서기는 대미를 끝낸다. 〈일본서기〉를 읽다 보면 시대에 따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사건들이 전개되는데 이들은 모두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며, 이제 우리는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추적’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 양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를 비방하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이 발표되어 ‘천황의 존재과 직위는 신성’한 것으로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학문적 연구가 금지되었다. 1945년 일본 패전으로 ’일본제국 헌법은 폐기되고 1946년 ‘새 헌법’이 발효되었다. 1942년 소화 17년 5월 21일 와세다대학 역사교수 쓰다(津田左右吉)에게 비공개 법정에서 재판장 나카니시 요이치中西要一는 당시 제국헌법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성은구 책).
쓰다 교수 연구는 양 역사서에 나오는 신화 전설이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기록이 아니고 당시의 조정朝廷 지식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술했다는 것을 논증했다는 점으로 당시의 명치明治 헌법과는 대립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후 다이쇼大正∼소화昭和 시대에 발표된 〈신대사 연구〉 등은 발매 금지되었고 황실 존엄을 침범했다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즉 명치시대에는 양대 고전 역사서를 일본의 국체國體 존재의 근거로 삼아 국가 성립의 중심적 원리가 되어 자유롭게 학술 토의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풍조는 오늘날의 일본인들 정서에도 남아있어 한반도의 영향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사사건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학자들의 역사연구가 명치시대의 군국주의자들에게는 정치이념(?)에 맞지 않고 국가 이념에 배치되며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고 과거 역사연구가 자기들의 국가 경영목표에 어떤 점에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으로 과거 그들의 진실된 역사를 국민들이 알면 그들의 국가 경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거 한반도와 일본과의 관계에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진다.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려 하는 것이 본 저서의 목적이다.
660년 백제 멸망 40년 후 697년 왜(일본)는 국호를 ‘일본’으로 새로 제정하고 백제계 아신/침류계(=후지와라藤原)가 권력을 잡았고 과거 적국이었던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고 20여 년간 새롭게 변신한다. 왜는 13세기 말 고려, 몽고 연합군(징기스칸)의 왜에 대한 집요한 침입이 실패로 끝나고, 사무라이[武士]시대를 거쳐 16세기 말 일본은 ‘무력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려는 하극상 풍조로 바뀌어 풍신수길豊臣秀吉은 한반도를 침략하고 중국(명나라)를 정복한 후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다. 이러한 풍조는 결국 일본의 한반도 침입으로 이어지고(임진왜란, 정유재란), 풍신수길과의 내전에서 도쿠가와德川家康가 승리하였다. 도쿠가와는 조선과 강화교섭을 추진하여 왜구 문제와 기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목적의 이유로, 조선통신사파견을 요청했고, 1811년까지 왜에 통신사를 12회나 파견했다. 이렇게 일본과 조선은 지리적, 문화적 이해관계에 서로 얽혀있고, 고대 일본(=왜倭)의 성립과정에서 백제가 왜를 침입하여 직할통치를 하기도 했다. 왜는 과거 백제가 왜를 직접 통치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대사 연구를 금지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영원히 숨겨질까? 이러한 일본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배타적 혐한론은 양국의 장래에도 좋지 않다. 그러니 ‘현대 일본’의 성립이 과거 백제와 가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함께 〈일본서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고대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전혀 흐름을 파악할 수 없었고, 백제, 신라, 가야도 나오며 등장인물들이 죽고 죽이는 이야기만 나오니 ‘무슨 공식 역사책이 이런가?’ 하는 의문만 들었고 너무 어려웠다. 역사서라면 〈이조실록〉처럼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그러던 중 1987년의 윤영식의 책과 2005년 네이버 〈고대사 산책, 가야/백제의 30년 전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책도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으나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일본과 백제의 역사 흐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 흐름은 말하지 않고 ‘단편적인 것’만을 이야기하여, 고대 일본[왜倭]과 한반도 특히 백제 간의 관계는 말하지 않아 아쉬웠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대 일본의 역사는 한반도와 따로 독립해서는 실상을 알 수가 없고, 특히 가야와 백제를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나당연합에 의한 백제 멸망을 전후하여 양국은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국제정세란 어느 특정 시점에 갑자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진행되어 온 사건이 후대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사태가 악화 되어 어떤 국가는 그 존재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세기 초 마한이 멸망하고, 199년 김수로왕 사망 후 가야세력이 약해지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는 서로 세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긴장과 알력이 고조되었다. 낙동강 하류의 가야세력들은 일찍이 바다 건너 왜倭에서 나라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제일 활동적인 세력은 아라가야였다. 아라가야는 가까운 규슈와 시마네현 철의 산지인 이즈모出雲에 진출하고 점차 세력을 넓혀 규슈 전 지역과 혼슈 중서부 지역을 석권했다. 이렇게 왜에서는 소국들을 포함하여 300개의 소국이 난립했다.
한편 백제의 근초고왕은 왜에 적극 진출하여 왜에서 이미 기반을 마련한 아라가야 세력을 흡수하였고, AD500년부터는 동성왕/무령왕∼의자왕 대까지 왜와 백제는 ‘통일된 단일국가’였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660년 백제는 멸망하였고 백성들은 왜로 피난을 떠났다. 668년 기대하였던 고구려까지 멸망하니 백제로부터 ‘피난한 백성들’은 왜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이 국가가 바로 ‘일본’이며, 따라서 ‘일본’이란 명칭은 왜에서 백제의 또 다른 국호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는 ‘풍가도어諷歌倒語’ 즉 반어, 은유, 비유법으로 쓰여 있어 ‘전체 흐름’을 모른다면 이해가 무척 어렵다.
왜로 피난한 백제의 유민들은 ‘신생국 왜의 통치 필요 상’, 과거 양국 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절연’하고 ‘독자적인 역사를 가졌던 우수한 민족’ 이었다고 국민을 호도하며 의도적으로 역사를 숨기며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왜곡된 기록이 바로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즉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천조인 닌니키(=근구수)가 강림한 이래 지금까지 179만 247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믿겠는가?
본서의 저술 목적이 위와 같은 〈일본서기〉 자체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도 있지만 ‘그들이 이렇게 기록해야 했던 이유’도 함께 알아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도 고려하며 심각한 추리도 해야 했다. 이제까지 시중에 있는 일본에 관한 여러 매체를 보면 ‘과거의 상황을 부분적으로 간단히 피상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렀지, 어째서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일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천황天皇의 존재는 아주 생각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일본서기〉 기록을 100% 사실이라고 믿으며 아무리 연구하여 본들 ‘우물 안의 개구리’ 연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일본서기〉 첫 부분에는 백제와 가야가 서로 전쟁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에서는 근구수 장남 무내武內의 후손이 정치를 ‘이면에서 간섭/조종’하고 있다. 그러나 무내의 ‘이면 정치’는 ‘철저히 숨겨져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무내계武內系의 ‘이면정치(섭정 정치)’에 반기를 드는 것이 645년의 대화개신大化改新이고 가야계 천지天智의 주동으로 각 호족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672년 임신란으로 무내 후손인 백제계가 다시 가야계 천지를 제거하고 백제계 천무天武가 권력을 잡아 후손 문무文武천황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으로 서기는 대미를 끝낸다. 〈일본서기〉를 읽다 보면 시대에 따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사건들이 전개되는데 이들은 모두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며, 이제 우리는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추적’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 양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서로를 비방하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이 발표되어 ‘천황의 존재과 직위는 신성’한 것으로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학문적 연구가 금지되었다. 1945년 일본 패전으로 ’일본제국 헌법은 폐기되고 1946년 ‘새 헌법’이 발효되었다. 1942년 소화 17년 5월 21일 와세다대학 역사교수 쓰다(津田左右吉)에게 비공개 법정에서 재판장 나카니시 요이치中西要一는 당시 제국헌법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성은구 책).
쓰다 교수 연구는 양 역사서에 나오는 신화 전설이 민간에서 전해 내려온 기록이 아니고 당시의 조정朝廷 지식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술했다는 것을 논증했다는 점으로 당시의 명치明治 헌법과는 대립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후 다이쇼大正∼소화昭和 시대에 발표된 〈신대사 연구〉 등은 발매 금지되었고 황실 존엄을 침범했다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즉 명치시대에는 양대 고전 역사서를 일본의 국체國體 존재의 근거로 삼아 국가 성립의 중심적 원리가 되어 자유롭게 학술 토의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풍조는 오늘날의 일본인들 정서에도 남아있어 한반도의 영향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사사건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학자들의 역사연구가 명치시대의 군국주의자들에게는 정치이념(?)에 맞지 않고 국가 이념에 배치되며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고 과거 역사연구가 자기들의 국가 경영목표에 어떤 점에서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으로 과거 그들의 진실된 역사를 국민들이 알면 그들의 국가 경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거 한반도와 일본과의 관계에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진다.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려 하는 것이 본 저서의 목적이다.
660년 백제 멸망 40년 후 697년 왜(일본)는 국호를 ‘일본’으로 새로 제정하고 백제계 아신/침류계(=후지와라藤原)가 권력을 잡았고 과거 적국이었던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고 20여 년간 새롭게 변신한다. 왜는 13세기 말 고려, 몽고 연합군(징기스칸)의 왜에 대한 집요한 침입이 실패로 끝나고, 사무라이[武士]시대를 거쳐 16세기 말 일본은 ‘무력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려는 하극상 풍조로 바뀌어 풍신수길豊臣秀吉은 한반도를 침략하고 중국(명나라)를 정복한 후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다. 이러한 풍조는 결국 일본의 한반도 침입으로 이어지고(임진왜란, 정유재란), 풍신수길과의 내전에서 도쿠가와德川家康가 승리하였다. 도쿠가와는 조선과 강화교섭을 추진하여 왜구 문제와 기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목적의 이유로, 조선통신사파견을 요청했고, 1811년까지 왜에 통신사를 12회나 파견했다. 이렇게 일본과 조선은 지리적, 문화적 이해관계에 서로 얽혀있고, 고대 일본(=왜倭)의 성립과정에서 백제가 왜를 침입하여 직할통치를 하기도 했다. 왜는 과거 백제가 왜를 직접 통치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대사 연구를 금지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영원히 숨겨질까? 이러한 일본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배타적 혐한론은 양국의 장래에도 좋지 않다. 그러니 ‘현대 일본’의 성립이 과거 백제와 가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함께 〈일본서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40.한일관계사 연구 (전공분야>책소개) > 9.고대한일교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2019) - 날조된 천황 37명과 일본고대사 (0) | 2024.08.17 |
---|---|
백제의 마지막 왕은 누구인가? (2024) - 역사의 대척점에 선 형제, 부여융과 부여풍 (0) | 2024.08.17 |
스러져간 백제의 함성 (2020) - 한국사 최초의 국권회복운동 ‘백제부흥운동’ (0) | 2024.08.17 |
한류 열풍의 진앙지 (2016) - 일본 가와치 河內 (0) | 2024.08.17 |
고대 한류 열풍의 중심지 아스카 (2021) (0) | 2024.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