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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tvN 스토리 [어쩌다 어른] 화제의 과학자 백승만
의약품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화학자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의 역사와 숨겨진 뒷이야기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하는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신약 개발 방법과 최신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신약 개발의 과거와 현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생명을 살리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화학자들이 절묘하게 분자를 조각하고 이어붙이는 과정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의약품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화학자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의 역사와 숨겨진 뒷이야기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하는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신약 개발 방법과 최신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신약 개발의 과거와 현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저자는 생명을 살리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화학자들이 절묘하게 분자를 조각하고 이어붙이는 과정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분자를 조각하다/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조각상/ 생명을 조절하는 분자 예술/ 연금술사의 변신
1장. 운으로 찾아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연금술, 과학이 되다/ 생물과 무생물/ 슈퍼스타를 향한 대책 없는 동경/ 19세기 청년 벤처/ 19세기 화학 회사/ 19세기 의약품과 타이레놀/ 준비 끝에 찾아온 행운/ 더 들어가기: 생명의 중심
2장. 자연을 모방하다
품질 개선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 오디션으로 찾은 대형 신인/ 식물에서 답을 찾다/ 친환경 화학 공장/ 차도살인/ 동물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 패싸움에서 살아남는 법/ 도마뱀독/ 더 들어가기: 천연물을 조각하기 위한 화학자들의 경쟁
3장. 사람을 연구하다
불멸의 세포와 인공 혈액/ 암과의 전쟁/ 불굴의 과학자/ 운명의 직장 상사/ 과학을 바꾼 여자/ 20세기 흑사병/ 실패한 유망주/ 에이즈 치료제/ 코로나19 치료제/ 더 들어가기: 에이즈에서 완치되는 법
4장. 물질을 창조하다
반드시 자연을 모방해야 할까?/ 화학계의 거장/ 하얀 가루/ 수면제의 왕/ 더 좋은 수면제를 찾아서/ 진실의 약/ 죽음의 약/ 스타들의 선택/ 또 다른 위험/ 까다로운 신입/ 화려한 귀환/ 다발 골수종/ 뒤늦은 기전 규명/ 조각가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 더 들어가기: 탈리도마이드와 화학 발전
5장. 지금은 어떻게 약을 만들까
생각보다 간편한 화학반응/ 생각보다 귀찮은 분리 과정/ 게으른 화학자/ 불쌍한 화학자/ 발명의 어머니/ 간편해진 화학반응/ 단순 작업의 기계화/ 복권에 당첨되는 법/ 뜻밖의 실패/ 표적단백질/ 화합물 은행/ 선도물질부터 임상시험까지/ 더 들어가기: 두 번의 혁신과 위장약 속 발암물질
6장. mRNA와 분자 조각의 미래
화학자가 없으면 약을 못 만들까?/ mRNA 백신/ 탄소 하나 차이/ 탄소 하나보다도 작은 차이/ 커리코 패러다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만들어진 백신/ 한계를 넘어서/ 더 들어가기: 인공지능과 신약 개발
분자를 조각하다/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조각상/ 생명을 조절하는 분자 예술/ 연금술사의 변신
1장. 운으로 찾아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연금술, 과학이 되다/ 생물과 무생물/ 슈퍼스타를 향한 대책 없는 동경/ 19세기 청년 벤처/ 19세기 화학 회사/ 19세기 의약품과 타이레놀/ 준비 끝에 찾아온 행운/ 더 들어가기: 생명의 중심
2장. 자연을 모방하다
품질 개선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 오디션으로 찾은 대형 신인/ 식물에서 답을 찾다/ 친환경 화학 공장/ 차도살인/ 동물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 패싸움에서 살아남는 법/ 도마뱀독/ 더 들어가기: 천연물을 조각하기 위한 화학자들의 경쟁
3장. 사람을 연구하다
불멸의 세포와 인공 혈액/ 암과의 전쟁/ 불굴의 과학자/ 운명의 직장 상사/ 과학을 바꾼 여자/ 20세기 흑사병/ 실패한 유망주/ 에이즈 치료제/ 코로나19 치료제/ 더 들어가기: 에이즈에서 완치되는 법
4장. 물질을 창조하다
반드시 자연을 모방해야 할까?/ 화학계의 거장/ 하얀 가루/ 수면제의 왕/ 더 좋은 수면제를 찾아서/ 진실의 약/ 죽음의 약/ 스타들의 선택/ 또 다른 위험/ 까다로운 신입/ 화려한 귀환/ 다발 골수종/ 뒤늦은 기전 규명/ 조각가의 손을 떠나는 작품들/ 더 들어가기: 탈리도마이드와 화학 발전
5장. 지금은 어떻게 약을 만들까
생각보다 간편한 화학반응/ 생각보다 귀찮은 분리 과정/ 게으른 화학자/ 불쌍한 화학자/ 발명의 어머니/ 간편해진 화학반응/ 단순 작업의 기계화/ 복권에 당첨되는 법/ 뜻밖의 실패/ 표적단백질/ 화합물 은행/ 선도물질부터 임상시험까지/ 더 들어가기: 두 번의 혁신과 위장약 속 발암물질
6장. mRNA와 분자 조각의 미래
화학자가 없으면 약을 못 만들까?/ mRNA 백신/ 탄소 하나 차이/ 탄소 하나보다도 작은 차이/ 커리코 패러다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만들어진 백신/ 한계를 넘어서/ 더 들어가기: 인공지능과 신약 개발
책 속으로
나도 조각을 한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조각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조각하는 것은 화합물이다. 주어진 물질에 탄소나 산소, 수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면서, 또는 다른 커다란 분자를 연결하면서 적당한 모양을 완성한다. 내가 만드는 조각품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본질은 비슷하다.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원석을 고르기 위해 로마 근교의 대리석 산지를 돌아다니고 잘 손질한 조각 기구와 함께 작업장에 들어선 것처럼, 나는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시약 회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고 플라스크와 시약을 가지고 실험대 앞에 선다.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분자를 다듬는다. 나는 분자 조각가다.
--- p.9
이 책에서 말하는 분자 조각가는 약을 만드는 화학자다. 보통은 의약화학자(medicinal chemist)라고 부른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연금술사는 분자 조각가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인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우연히 개발된 의약품도 있고, 나와서는 안 될 약이 나와 세상을 어지럽힌 사례도 포함된다. 그리고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화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사례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또한 화학자들의 몇 안 되는 친구인 생물학자나 동식물학자와의 우정도 다룰 예정이다.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까지 수많은 의약품이 좋은 사례로 남아 있다.
--- p.19
퍼킨은 열심히 연구했다. 온도, 시약, 용매, 나중에는 출발물질까지 바꿔가면서 퀴닌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 실패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퍼킨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합성이 안 되는 건 똑같다. 안 되면 다시 해야 한다. 그러려면 플라스크부터 씻어야 한다. 플라스크는 소중하니까. 그런데 플라스크를 다시 쓰기 위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씻던 중 퍼킨은 뜻밖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처음에 그는 당연히 물로 플라스크를 헹궜다. 설거지의 기본이다. 그런데 검은색 찌꺼기는 씻겨 나가지 않고 플라스크에 진득하니 남아 있었다. 물에 불려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세제가 필요했다. 변변찮은 세제 하나 없던 19세기 중반, 그가 사용한 것은 당시 관행처럼 사용하던 알코올이었다. 알코올에는 어지간한 기름때도 다 씻긴다. 그런데 씻겨 나가는 기름때 속에서 퍼킨은 뜻밖에도 선명한 보라색을 관찰했다. 검은색인 줄 알았던 기름때가 희석되면서 본연의 찬란한 보라색을 나타낸 것이다.
--- p.35
이 고차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뜬금없이 아메리카독도마뱀에게서 나왔다. 힐라 몬스터(Gila monster)라고도 불리는 이 도마뱀은 미국 남서부의 사막 지대에 주로 서식하는데, 사막의 특성상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심할 때는 1년에 세 번 정도만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루 세 번이 아니라, 일 년에 세 번이다. 간헐적 단식이 유행이라지만 이 정도면 심하다. 결국 독도마뱀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진화를 했는데, 바로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진화시킨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들어오는 먹이에서 얻은 양분을 두고 1년 내내 생활하기 위해 자체적인 글루코오스 조절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이 도마뱀은 자신만의 GLP-1, 즉 식후호르몬을 만들어서 영양분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 p.96
연구진은 수백 개의 화합물을 만들고 활성을 검색하던 중 DNA를 이루는 핵심적인 분자들 중 하나인 아데닌의 구조 유사체인 ‘2,6-디아미노퓨린(2,6-diaminopurine)’이란 물질에 주목했다. 이 물질은 비교적 균을 죽이는 효과가 좋았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이 물질을 이용해 균의 성장을 억제시킨 다음, 아데닌을 다시 넣어주면 균이 자라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이 물질과 아데닌이 서로 경쟁한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히칭스의 가설이 맞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균이 아닌 동물실험으로 들어갔을 때 이 물질은 심각한 골수 독성을 보였기 때문에 후속 개발을 진행할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바이러스를 잘 죽인다는 것도 실험으로 확인했지만 독성이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동물에게는 안전하지만 균에게는 강한 독성을 보이는 물질이 필요했다. 역설적이다.
--- p.128
20세기 초반부터 화학자들이 순수하게 개발한 물질이 의약품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천연물에 기반해서 개발한 의약품보다 수는 적었지만 확실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 약들은 체계적인 분자 설계에 기반해서 효소와 모양을 맞추는 방식으로 개발된 화합물이 아니었다. 효소의 기능과 모양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던 시절, 화학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분자를 조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의외로 먹혀 들어 개발되는 약들이 종종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우연한 발견, 즉 세렌디피티의 사례였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발굴한 물질은 다시 새로운 의약품 개발의 출발이 되어 더 좋은 물질로 변신했다. 우연에만 의존하지 않았던 것은 화학자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 p.9
이 책에서 말하는 분자 조각가는 약을 만드는 화학자다. 보통은 의약화학자(medicinal chemist)라고 부른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연금술사는 분자 조각가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인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우연히 개발된 의약품도 있고, 나와서는 안 될 약이 나와 세상을 어지럽힌 사례도 포함된다. 그리고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화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사례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또한 화학자들의 몇 안 되는 친구인 생물학자나 동식물학자와의 우정도 다룰 예정이다.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 개발까지 수많은 의약품이 좋은 사례로 남아 있다.
--- p.19
퍼킨은 열심히 연구했다. 온도, 시약, 용매, 나중에는 출발물질까지 바꿔가면서 퀴닌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 실패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퍼킨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합성이 안 되는 건 똑같다. 안 되면 다시 해야 한다. 그러려면 플라스크부터 씻어야 한다. 플라스크는 소중하니까. 그런데 플라스크를 다시 쓰기 위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씻던 중 퍼킨은 뜻밖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처음에 그는 당연히 물로 플라스크를 헹궜다. 설거지의 기본이다. 그런데 검은색 찌꺼기는 씻겨 나가지 않고 플라스크에 진득하니 남아 있었다. 물에 불려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세제가 필요했다. 변변찮은 세제 하나 없던 19세기 중반, 그가 사용한 것은 당시 관행처럼 사용하던 알코올이었다. 알코올에는 어지간한 기름때도 다 씻긴다. 그런데 씻겨 나가는 기름때 속에서 퍼킨은 뜻밖에도 선명한 보라색을 관찰했다. 검은색인 줄 알았던 기름때가 희석되면서 본연의 찬란한 보라색을 나타낸 것이다.
--- p.35
이 고차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뜬금없이 아메리카독도마뱀에게서 나왔다. 힐라 몬스터(Gila monster)라고도 불리는 이 도마뱀은 미국 남서부의 사막 지대에 주로 서식하는데, 사막의 특성상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심할 때는 1년에 세 번 정도만 식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루 세 번이 아니라, 일 년에 세 번이다. 간헐적 단식이 유행이라지만 이 정도면 심하다. 결국 독도마뱀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진화를 했는데, 바로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진화시킨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들어오는 먹이에서 얻은 양분을 두고 1년 내내 생활하기 위해 자체적인 글루코오스 조절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이 도마뱀은 자신만의 GLP-1, 즉 식후호르몬을 만들어서 영양분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 p.96
연구진은 수백 개의 화합물을 만들고 활성을 검색하던 중 DNA를 이루는 핵심적인 분자들 중 하나인 아데닌의 구조 유사체인 ‘2,6-디아미노퓨린(2,6-diaminopurine)’이란 물질에 주목했다. 이 물질은 비교적 균을 죽이는 효과가 좋았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이 물질을 이용해 균의 성장을 억제시킨 다음, 아데닌을 다시 넣어주면 균이 자라기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이 물질과 아데닌이 서로 경쟁한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히칭스의 가설이 맞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균이 아닌 동물실험으로 들어갔을 때 이 물질은 심각한 골수 독성을 보였기 때문에 후속 개발을 진행할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바이러스를 잘 죽인다는 것도 실험으로 확인했지만 독성이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동물에게는 안전하지만 균에게는 강한 독성을 보이는 물질이 필요했다. 역설적이다.
--- p.128
20세기 초반부터 화학자들이 순수하게 개발한 물질이 의약품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천연물에 기반해서 개발한 의약품보다 수는 적었지만 확실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 약들은 체계적인 분자 설계에 기반해서 효소와 모양을 맞추는 방식으로 개발된 화합물이 아니었다. 효소의 기능과 모양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던 시절, 화학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분자를 조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의외로 먹혀 들어 개발되는 약들이 종종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우연한 발견, 즉 세렌디피티의 사례였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발굴한 물질은 다시 새로운 의약품 개발의 출발이 되어 더 좋은 물질로 변신했다. 우연에만 의존하지 않았던 것은 화학자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 p.161
출판사 리뷰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창조하는 분자 예술의 세계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이야기!
○ 황금을 추구하던 연금술사들은 어떻게 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로 탈바꿈했을까?
○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왜 개발 초기에는 사장되었을까?
○ 아메리카독도마뱀의 호르몬은 어떻게 비만 치료제가 되었을까?
○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은 어떻게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을 앞당겼을까?
○ 기형아들을 탄생시킨 의약계 최대의 흑역사, 탈리도마이드는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했을까?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약에 관심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같은 다양한 방안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이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레이스로 쏠렸고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주식 시장도 요동쳤다. 대중의 머릿속에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생소했던 제약회사들의 이름이 각인되었고, 각 회사에서 개발된 백신의 특징과 장단점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신약은 왜 그토록 개발하기 어려운 것일까? 약이 될 수 있는 후보 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후보 물질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이 되는 것일까? 약의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의 이면에는 묵묵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어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자 조각가들이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했던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분자 조각가들이 있고,
그들이 만드는 물질은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백승만 교수는 신약 개발 방법과 최신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신약이 개발된 역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분자 조각가들』은 화학자들이 어떻게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연금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초기의 화학자들은 우연에 기대거나 동물이나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신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번의 우연한 사건을 겪었다. 타이레놀의 선조 격 의약품인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잘못된 약물이 전달되면서 해열 효과가 발견되었다. 아세트아닐라이드를 발전시킨 4-아세트아미노페놀은 뛰어난 해열진통 효과에도 불구하고 개발 당시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되어 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 부작용이 발견된 실험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오늘날의 타이레놀이 탄생했다.
당뇨병 치료제인 엑세나타이드의 개발 과정은 동물에서 유래한 물질이 약으로 개발된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미국 남서부의 사막 지대에 서식하는 아메리카독도마뱀이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도마뱀은 엑세나타이드라는 자신만의 특이한 혈당 조절 호르몬을 이용해서 먹이가 적은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었다. 분자 조각가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인간의 몸에서도 비슷한 작용을 하면서도, 기존에 연구되고 있던 당뇨병 치료제보다 지속 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약으로 개발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학자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소화관에도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을 이용해서 포만감을 늘리고 최종적으로는 살을 빼는 용도로 개량했다. 독도마뱀의 호르몬에서부터 이어진 분자 조각가들의 연구는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삭센다로까지 이어졌다.
화학이 발전하고 인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화학자들은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넘어서서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교한 기술을 동원해서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19세기에 개발된 바르비투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수면제 개발의 역사다.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를 만들기 위해 분자 조각가들은 수백 년 동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었다. 바르비탈, 페노바르비탈, 부토바르비탈, 펜토바르비탈로 이어진 역사는 의약계 최악의 흑역사인 탈리도마이드를 낳았다. 수면 효과와 진정 효과가 강했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발견되어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다.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탈리도마이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1만 2000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그리고 그 탈리도마이드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치료제의 재료로 활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리도마이드가 신생아에게 기형을 유발하는 작용 기전이 밝혀지면서, 그 작용을 역으로 이용해서 악명 높은 다발 골수종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위험한 물질이 더 위험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변신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의약품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는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된 과정이다.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DNA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암세포의 DNA나 바이러스의 RNA를 노리는 약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지도부딘은 처음에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화합물이었다. 연구진은 지도부딘이 DNA의 복제 과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분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미미한 효과로 인해 실패한 화합물로 간주했다. 하지만 실험실 냉동고에서 잠자고 있던 지도부딘은 세기말의 대역병인 에이즈의 치료제로 개발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지도부딘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억제한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공략해서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었던 경험은 고스란히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에 쓰였다. 지도부딘을 처음 합성했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렇듯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약 개발 과정이 치밀한 계획과 우직한 끈기가 끝내 빛을 보는 환희의 순간과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저자는 의약품 개발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업인 의약화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 분자 조각가들이 어떻게 분자를 조작하는지 알려준다. 분자는 너무나도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존재다. 조각가들은 끌과 정으로 대리석을 조각하지만, 분자는 그렇게 조각할 수 없다.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바로 화학반응이다. 화학자들은 약이 될 수 있는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에 이를 수 있는 반응 경로를 계획한다. 단지 원하는 물질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안전한 약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고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자 조각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영역이며, 이는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화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화학 지식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동원해 능수능란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스토리텔링과 화학 지식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인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책 후반부에서는 최근에 유행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를 다룬다. 화학자들이 생물학자, 동식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와의 협업으로 이루어낸 성과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된 과정에서 어떻게 최신 의약화학 기술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미래의 신약 개발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이야기!
○ 황금을 추구하던 연금술사들은 어떻게 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로 탈바꿈했을까?
○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왜 개발 초기에는 사장되었을까?
○ 아메리카독도마뱀의 호르몬은 어떻게 비만 치료제가 되었을까?
○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은 어떻게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을 앞당겼을까?
○ 기형아들을 탄생시킨 의약계 최대의 흑역사, 탈리도마이드는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했을까?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약에 관심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같은 다양한 방안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이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 레이스로 쏠렸고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주식 시장도 요동쳤다. 대중의 머릿속에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생소했던 제약회사들의 이름이 각인되었고, 각 회사에서 개발된 백신의 특징과 장단점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신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신약은 왜 그토록 개발하기 어려운 것일까? 약이 될 수 있는 후보 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후보 물질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이 되는 것일까? 약의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질문의 이면에는 묵묵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어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분자 조각가들이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했던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분자 조각가들이 있고,
그들이 만드는 물질은 환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백승만 교수는 신약 개발 방법과 최신 트렌드에 정통한 의약화학자인 동시에 약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의 역사를 다루는 인기 교양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신약이 개발된 역사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분자 조각가들』은 화학자들이 어떻게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가졌는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연금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초기의 화학자들은 우연에 기대거나 동물이나 식물에서 영감을 얻어 신약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번의 우연한 사건을 겪었다. 타이레놀의 선조 격 의약품인 아세트아닐라이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잘못된 약물이 전달되면서 해열 효과가 발견되었다. 아세트아닐라이드를 발전시킨 4-아세트아미노페놀은 뛰어난 해열진통 효과에도 불구하고 개발 당시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되어 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 부작용이 발견된 실험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오늘날의 타이레놀이 탄생했다.
당뇨병 치료제인 엑세나타이드의 개발 과정은 동물에서 유래한 물질이 약으로 개발된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미국 남서부의 사막 지대에 서식하는 아메리카독도마뱀이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도마뱀은 엑세나타이드라는 자신만의 특이한 혈당 조절 호르몬을 이용해서 먹이가 적은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었다. 분자 조각가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인간의 몸에서도 비슷한 작용을 하면서도, 기존에 연구되고 있던 당뇨병 치료제보다 지속 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약으로 개발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화학자들은 엑세나타이드가 소화관에도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을 이용해서 포만감을 늘리고 최종적으로는 살을 빼는 용도로 개량했다. 독도마뱀의 호르몬에서부터 이어진 분자 조각가들의 연구는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삭센다로까지 이어졌다.
화학이 발전하고 인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화학자들은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넘어서서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교한 기술을 동원해서 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19세기에 개발된 바르비투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수면제 개발의 역사다.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수면제를 만들기 위해 분자 조각가들은 수백 년 동안 분자를 조각하고 다듬었다. 바르비탈, 페노바르비탈, 부토바르비탈, 펜토바르비탈로 이어진 역사는 의약계 최악의 흑역사인 탈리도마이드를 낳았다. 수면 효과와 진정 효과가 강했던 탈리도마이드는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발견되어 많은 임산부들이 복용했다. 탈리도마이드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탈리도마이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1만 2000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뒤였다.
그리고 그 탈리도마이드는 현재 혈액암 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치료제의 재료로 활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탈리도마이드가 신생아에게 기형을 유발하는 작용 기전이 밝혀지면서, 그 작용을 역으로 이용해서 악명 높은 다발 골수종을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위험한 물질이 더 위험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변신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의약품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시는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된 과정이다.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DNA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서 암세포의 DNA나 바이러스의 RNA를 노리는 약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지도부딘은 처음에는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화합물이었다. 연구진은 지도부딘이 DNA의 복제 과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분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미미한 효과로 인해 실패한 화합물로 간주했다. 하지만 실험실 냉동고에서 잠자고 있던 지도부딘은 세기말의 대역병인 에이즈의 치료제로 개발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지도부딘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억제한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를 공략해서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었던 경험은 고스란히 코로나19 치료제의 개발에 쓰였다. 지도부딘을 처음 합성했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렇듯 좌충우돌하는 분자 조각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약 개발 과정이 치밀한 계획과 우직한 끈기가 끝내 빛을 보는 환희의 순간과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저자는 의약품 개발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재밌게 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업인 의약화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 분자 조각가들이 어떻게 분자를 조작하는지 알려준다. 분자는 너무나도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존재다. 조각가들은 끌과 정으로 대리석을 조각하지만, 분자는 그렇게 조각할 수 없다. 분자 조각가들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조각할까? 바로 화학반응이다. 화학자들은 약이 될 수 있는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에 이를 수 있는 반응 경로를 계획한다. 단지 원하는 물질을 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안전한 약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고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자 조각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영역이며, 이는 의약품을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화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화학 지식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동원해 능수능란하게 설명한다. 저자의 스토리텔링과 화학 지식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의 기본적인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책 후반부에서는 최근에 유행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를 다룬다. 화학자들이 생물학자, 동식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와의 협업으로 이루어낸 성과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된 과정에서 어떻게 최신 의약화학 기술이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미래의 신약 개발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약을 먹을 때마다 한 알의 약 뒤에 숨은 분자 조각가들의 치열한 고민에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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