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계여행 (1987~2023) <여행지>/3.동유럽 6개국 59

프라하시내, 카를교야경

카를교중세의 다리는 성과 마을뿐 아니라 삶과 세월을 잇는 통로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까를교)는 보헤미안의 애환과 600년을 함께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블타바강의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하다. 프라하 중심에 놓인 예술적인 다리로 보행자만 다닐수있다. 늘 음악과 마술등의 퍼포먼스를 구경할수 있는 다리로  길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럽중세시대의 건축교량으로 으뜸이다.

체코 프라하 전경

체코정식명칭은 체코공화국이다. 북쪽으로는 독일, 폴란드, 서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동쪽으로는 슬로베니아 국경을 접한다. 체코슬라바키아는 동유럽공산주의 국가중 최고의생활수준과 높은 문화를 유지한 공업국가이었다.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이질감과 경제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1990년 슬로바키아 공화국과 연반제를 구성 하였다가 1993년에 평화적으로 분리 독립하여 체코공화국이 되었다. 행정구역은 13개주와 1개의 특별시로 되어 있다인구 -1000만명  면적 -한반도의 3분의1언어: 체코어 ,영어,독어.정부: 내각책임제

프라하성 황금소로

황금소로16세기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으로 지어진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길에 있는 좁은길이다.동화속에 나올법한 허리를 굽어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잇는길인데 원래 이곳에느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곳이 었으나 이후 연금술사 들이 모여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 대표주의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벌서 500년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낭 모습 그대로의 거리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가게, 기념품가게 들이 드어서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프라하 성비트성당 내부

성 비트성당총길이 124m미터.폭60m, 천장 높이33m, 탑높이 100m의  프리하에서 가장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 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 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것은 600여년전인 1344녀이나 중개축이 계속되어 체코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또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트 성당의 최초 설립자 이자, 보혜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가 사망 1000년이 되는 해이기도한다. 성동 서쪽입구 청동문에  이교회의 역사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처 건축되어서 인지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여러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점차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을 볼수가 있다. 내부의..

프라하 성비트성당 외관

성 비트성당총길이 124m미터.폭60m, 천장 높이33m, 탑높이 100m의  프리하에서 가장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 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 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것은 600여년전인 1344녀이나 중개축이 계속되어 체코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또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트 성당의 최초 설립자 이자, 보혜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가 사망 1000년이 되는 해이기도한다. 성동 서쪽입구 청동문에  이교회의 역사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처 건축되어서 인지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여러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점차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을 볼수가 있다. 내부의..

체코 프라하성

프라하성9세기 중엽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한 성을 14세기에 들어 카를 4세가 지금 모습으로 완성했다. 1918년 체코슬라바키아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대통령 관저로 쓰기 시작했으며, 성의 일부는 지금까지 대통령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한다. 성으로 들어가는 문을 흐라트 차니 광장과 접한 정문, 말라스트라나와 접한 동문, 성 정원 쪽으로 나가는 북문이 있다, 각문에는 위병이 지키고 서 있는데 이들은 1시간에 한번씩 교대한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일12:00 정문에서 화려한 위병교대식이 펴친다, 정문을 들어서면 제1정원이 나온다  국빈이 방문하면 맞이하는 곳이다. 이어 제2정원으로 들어가면 17세기에 만든 바롴크 양식의 분수를 볼수 있다. 제2정원 오른 편에 위치한 건무리 대통령관저다. 제3정원로..

프라하 베들레헴교회

베들레헴교회얀 후스는 1400년에 사제로 인수 받았다. 그다음해는 프리하대학 철학과 학장이 되었다. 1402년에는 대학 전체의 총장이 되었다. 그이 영향력은 그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록 커져갔다. 프라하대학의 새 총장으로서 베들레헴 예배당의 전도자의 책임을 맡았다.1000개이상의 좌석이 있는 이예배당은 프라하에서 가장크고 영향력있는 예배당 이었다. 이 예배당은 특별히 일반적인 라틴어가 아닌 대중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1391년 지어졌다. 그리하여 얀 후스가 에배당에서 말씀을 전했을때,그는 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는 언어로 말을 했다.       후스가 살던 그 시대에는 카톨릭 교회의 불만이 확산되고 증가 했다. 사람들은 이제 까지 생각없이 받아 들이던 것들에 관해 의문을 같기 시작 ..

프라하 광장,틴교회.천문시계

구시가지 틴교회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교회로 세개의 측면복도가 있으며 높이 80m쌍둥이 첨탑이 돋보인다. 이쌍둥이 첨탑이 바로 이건물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곳이다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례 늘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이기도하다, 이곳은 특히 낮과 밤 가릴것 없이 계속되는 활기찬 분위기와 프라하 역사에 기리남을 주요사건들의 발생지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422년 행해진 성직자zelivsky의 처형장소이자 1918년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등을 벌인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집들에 반쯤 가려광장 족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구시가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틴교회이다 또한 광장의 중앙에는 보혜미야 독립운동의 ..

프라하의봄 파츌라브광장

파츌라브광장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구시청사 광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길을 신시가지라고 하며, 이신시가지의 바출라브 기마상이 서 있는곳을 바출라브 광장이라 부른다. 바출라프는 체코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인물로, 10세기경 보혜미안 기사들롸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고한다, 또한 이곳은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현장으로 이곳에서 수많은 젊은이 들이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를 외쳤고 그 흔적으로 당시에 분신한 두 명의 청년 사진과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심어진 나무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 놓여 있다, 그 앞으로 무대가 마련되 있어서 각종 집회나 콘서트등이 열리고 있다

체코 타보르 지하 카타콤베

지하 카타콤베 순례체코의  종교개혁가 얀후스 지지파 들이 신성로마제국 군대의 핍박에 저항하여 싸울때 이용했던 카타콤으로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남쪽으로 80km지점에 타보르시의 주변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카타콤: 나폴리,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아시아 등의 여러지방에서 볼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 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 를 뜻하며 로마 아피아 가도에  세바스찬묘지가 두언덕사이에 있었기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중세까지만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것은 이 묘지뿐이었다 ,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 부터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불리우게 되었다.이와 같이 지하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 전래..

체코 타보르 지스카 광장

타보르 지스카 광장외눈의 영웅 동상이 서있는 지스카광장이다. 지스카 광장의 동상은 전쟁중에 1420년에 카톨릭 교회에서 파견한 십자군을 물리쳐 용맹스러운 이름을 떨쳤으며, 그후에도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여 민중에게 용기와 흐망을 안겨준 영웅이다. 지스카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에전에 유복했던 시민과 상인들의 주거로 후기 고딕에서 르네상스에 걸친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볼수 있다.

체코 스보르노스티 광장

스보르노스티 광장16세기 이래로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는 스보르노스티광장은 이도시 중앙광장으로 1993년 체스키 크롬포프가 유네스코로부터 세게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는 시청과 함께 이 도시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또 광장 한가운데  1715년 추수가묘사절에 matous jackel 에 의해 세워진 marian plague column이라는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을 둘러싸며 후기 고딕양식의 성 비투스 성당과 중세 르네상스 등 유럽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반영된 여러건물들이 서 있어, 마치 중세에 온듯한 기분이 드는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관광들에게 필요한 인포메이션 센터, 레스토랑. 카폐, 유료화장실, 기념뭄가게 등이 있어 페스키 크롬포프를 관광 하면서 여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수 있다

체코 체스키크롬포프성 조망

체스키크롬로프성하늘을 찌를 듯한 둥근 탑과 길다랗게 늘어져 있는 예건물들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옛왕궁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두터운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중세 귀족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방과 식당, 창고, 부엌, 접견실등에 각종공예품과  그림,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보혜미아 성으로서는 프라하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것이며 성을 건설한 비텍가 이후에 14세기에는 보헤미아 대영주 로젬베륵에 의해 도시가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고 이도시는 이후 루돌프2세와 에겐베르그를 거쳐 슈바르젠베르그에게 넘겨졌다.그러나 19세기에 슈바르젠베르그스는 그들의 왕궁이었던 성을 포기 했고, 1947년에 성은 슈바르젠베르그스가 재산의 잔재로서 공산정부에 넘겨졌다. 이후 성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고 몇몇 지역..

슬로베니아 블레드호수

블레드 호수블레드 레이크는 bohinj 빙하의 후퇴이후 형성된 호수로 긴쪽 지름은 2,120m이며 짧은쪽은 1.380m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 깊이는 최고깊이가30.6m를 기록하고 있다. 빙하기 이후 bohinj 빙하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 되었고 호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호수주변에는 몇몇게의 작은 샘이 있으며, 호수 북동쪽에 있는  온천샘은 주변호텔의 온천풀로 쓰이고 있다. 호수중앙에 있는 매우 작은섬은 블레드 섬이라 고 불리우며 이곳에 작은 교회가 있다.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매일 수시로 있으며 약 10분 걸린다. 호수주변은 하이킹 코스로 좋으며 주변의 여행사에서 래프팅등의 스포츠도 참가 할수 있다.

슬로베니아 블레드성

블레드 성블레드성은 1004년 독일황제 henrik2세가 albuin of brixen 주교에게 황제의 선물로 블레드 영토를 하사해 주면서 만들어진 성으로, 처음에는 높은 언덕의 비탈에 성벽과 함께 로마네스크 양식의 탐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후 중세시대 후반에 더울 많은 탑들이 지어지고 요새의 모습을 갖추게 된곳이다.1947년 화재로 인해 성의 지부이 크게 붕괴되었으며 1948년에는 전쟁으로 인해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이에 국립박물관에서는 블레드성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 하였고  1951년부터 1961년까지 건축가tone bitenc의 지도와 플레드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하에 개보수를 진행하였다. 현재 이성은 박물관으로 쓰이며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시실은 예배당과 가까운 곳에 있으..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동굴

포토이나 종유동굴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르스트 동굴계로 길이 20,570m 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긴동굴이며 세게에서 두번째인 관광명소이다. 이동굴은 피브카강의 유수작용에의해 생성되었다. 동굴에는 세게에서 가장큰  혈거 양서류로 토착종인 올름이 웅덩이에 서식한다. 동굴의 발견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문헌 상으로는  17세기 야네츠 바이카르드 발바소르가 최초로 이 동굴에대하여 기술 하였다.1818년 에 새로 발견된 부분은  주민 루카체치 가 오스트리아 최초의 황제인 프라시스 1세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에 알려져 있던 구간을 준비하고 있던중에 우연히 발견하였다. 1819년 이동굴은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체치는 이동굴의 최초 안내자가 되었다. 1884년 전기조명이 설치 되었는데 그것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