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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중 전략 경쟁 시대의 필독서!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웃한 주요 강대국인 중국에 대한 이해, 특히 중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이해는 매우 필요하며 중요하다. 이 책은 1949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모든 군사전략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다.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두 요인이 작용할 때 새로운 전략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전쟁 수행의 중대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이 단합되어 있다면 군사전략도 크게 변화한다. 전쟁 수행이 크게 변화했지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이 단합을 유지하더라도 군사전략의 변화는 크지 않다. 또한 변화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당이 분열되어 있다면 군사전략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1949년 이후 중국은 모두 아홉 차례의 군사전략 변화를 경험했다. 그중 네 차례(1956, 1964, 1980, 1993년)가 주요 군사전략 변화에 해당한다. 1956, 1980, 1993년은 저자의 주장에 부합한 변화였고, 1964년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군사전략상의 주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웃한 주요 강대국인 중국에 대한 이해, 특히 중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이해는 매우 필요하며 중요하다. 이 책은 1949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모든 군사전략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다.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두 요인이 작용할 때 새로운 전략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전쟁 수행의 중대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이 단합되어 있다면 군사전략도 크게 변화한다. 전쟁 수행이 크게 변화했지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이 단합을 유지하더라도 군사전략의 변화는 크지 않다. 또한 변화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당이 분열되어 있다면 군사전략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1949년 이후 중국은 모두 아홉 차례의 군사전략 변화를 경험했다. 그중 네 차례(1956, 1964, 1980, 1993년)가 주요 군사전략 변화에 해당한다. 1956, 1980, 1993년은 저자의 주장에 부합한 변화였고, 1964년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군사전략상의 주요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목차
제1장 군사전략의 주요 변화에 대한 설명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
제3장 1956년 전략: ‘조국보위’
제4장 1964년 전략: ‘유적심입’
제5장 1980년 전략: ‘적극방어’
제6장 1993년 전략: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
제7장 1993년 이후 중국의 군사전략: ‘정보화’
제8장 1964년 이후 중국의 핵전략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
제3장 1956년 전략: ‘조국보위’
제4장 1964년 전략: ‘유적심입’
제5장 1980년 전략: ‘적극방어’
제6장 1993년 전략: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
제7장 1993년 이후 중국의 군사전략: ‘정보화’
제8장 1964년 이후 중국의 핵전략
책 속으로
적극방어라는 용어는 1935년 12월 와야오부 회의의 당 문건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승인된 결의안의 주 저자는 마오쩌둥이었으며, 이 결의안은 그의 공식 선집에 포함되었다. 결의안에 따르면 홍군은 ‘단순 방어’와 ‘선발제적(先發制敵)’ 행위 모두를 반대해야 한다. (……) 그 대신에 홍군은 ‘적극방어’와 ‘후발제인(後發制人)’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적이 공격하기를 기다려 반격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적극방어는 더 강한 적을 만났을 때 “내선에서 싸우는 데 있어 올바른 원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것들이 홍군이 국공내전의 대부분 기간에 직면한 조건들이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중국의 주요 적이었던 1949년 이후 중국이 직면한 조건들이기도 했다.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중에서
유적심입은 1930년 10월 제1차 포위작전에서 국민당에 맞서기 위한 전략의 한 부분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 개념은 마오쩌둥에게서 기인했는데, 그는 “전선군(Front Army)의 주요 업무는 적을 적색 지대로 깊이 끌어들여 [국민당군을] 지치게 만들어 섬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다음 분석에서도 마오는 제2차와 제3차 포위작전에서의 성공이 유적심입 덕이라고 보았다.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중에서
한반도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 중국은 중국 본토에 대한 미국의 상륙 공격 가능성, 즉 랴오둥반도나 산둥반도에 미국이 상륙해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1956년 전략은 전략적 방어 전략이었다. 미국이 분쟁을 개시해 중국 영토를 공격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기술했다. 1956년 전략의 핵심은 상하이 등 중국의 산업과 경제 지역을 방어하고 더불어 북부의 잠재적인 침공로를 비롯한 중국의 해안 지대에 대한 전진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제3장 1956년 전략」중에서
1964년 전략의 채택은 당의 분열과 지도력의 분열이 어떻게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정치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초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내부의 수정주의 위협에 대해 점차 더 우려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중국 혁명의 지속과 심화가 방해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마오는 중국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3선 건설(三?建設, developing the third line)’로 중국의 내륙 지대를 산업화하기로 결정하는 등 그가 수정주의자로 생각했던 당 지도자들을 향한 광범위한 공격의 일환으로 유적심입 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마오의 노력은 이로부터 2년 후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제4장 1964년 전략」중에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1993년 방침은 전략적 방어 전략을 염두에 두면서, 적극방어에 계속 토대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해야 할 것의 중심은 본토에서 중국의 주변에 이어지는 영토 분쟁과 대만의 통일로 옮겨갔다. 이러한 더욱 제한된 목표들은 침략에 대한 방어와 비교했을 때 공격 능력의 역할을 증가시켰다. (……) 『군사전략학』2001년판에 따르면 “정치적·전략적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것과 전술적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대만을 놓고 보면 “누구든 다른 나라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침해하면 상대방에게 전술적으로 ‘선제타격’할 권리를 주게 될 것이다”.
---「제6장 1993년 전략」중에서
(2014년 전략은) 2015년 11월 발표된 인민해방군의 조직 개혁에 대한 최고 수준의 지원과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2014년 여름에 조정되었을 것이다. (……) 전례 없던 조직 변화가 이루어졌다. 일곱 개 군구를 다섯 개 전구 사령부로 전환하고, 네 개 총부서를 중앙군사위 직속의 15개 소규모 조직으로 세분화하며, 제2포병을 병과에서 군종으로 격상시키고, 별도의 지상군 사령부를 창설하고, 우주와 사이버에 중점을 둔 전략지원군을 창설하며, 30만 명의 군 병력을 감축하는 것 등이었다.
---「제7장 1993년 이후 중국의 군사전략」중에서
재래식 작전을 강조하는 중국의 군사전략은 1949년 이후 아홉 번이나 바뀌는 등 역동적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확증보복을 통한 억지력 달성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핵전략은 1964년 10월 중국이 첫 번째 핵폭발 실험을 한 이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 게다가 중국의 재래식 전략과 핵전략 사이에는 뚜렷한 관계가 전혀 없다. 중국의 핵전략은 ‘적극방어’라는 일반적 원칙과 일치하기는 하지만, 핵무기 사용 계획은 재래식 전력 사용에 관한 계획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국의 선언적 전략과 작전교리는 재래식 분쟁이 아닌 핵 공격에 대응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중에서
유적심입은 1930년 10월 제1차 포위작전에서 국민당에 맞서기 위한 전략의 한 부분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 개념은 마오쩌둥에게서 기인했는데, 그는 “전선군(Front Army)의 주요 업무는 적을 적색 지대로 깊이 끌어들여 [국민당군을] 지치게 만들어 섬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다음 분석에서도 마오는 제2차와 제3차 포위작전에서의 성공이 유적심입 덕이라고 보았다.
---「제2장 1949년 이전 중국공산당의 군사전략」중에서
한반도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이후 중국은 중국 본토에 대한 미국의 상륙 공격 가능성, 즉 랴오둥반도나 산둥반도에 미국이 상륙해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1956년 전략은 전략적 방어 전략이었다. 미국이 분쟁을 개시해 중국 영토를 공격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기술했다. 1956년 전략의 핵심은 상하이 등 중국의 산업과 경제 지역을 방어하고 더불어 북부의 잠재적인 침공로를 비롯한 중국의 해안 지대에 대한 전진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제3장 1956년 전략」중에서
1964년 전략의 채택은 당의 분열과 지도력의 분열이 어떻게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정치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960년대 초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내부의 수정주의 위협에 대해 점차 더 우려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중국 혁명의 지속과 심화가 방해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마오는 중국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3선 건설(三?建設, developing the third line)’로 중국의 내륙 지대를 산업화하기로 결정하는 등 그가 수정주의자로 생각했던 당 지도자들을 향한 광범위한 공격의 일환으로 유적심입 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마오의 노력은 이로부터 2년 후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제4장 1964년 전략」중에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1993년 방침은 전략적 방어 전략을 염두에 두면서, 적극방어에 계속 토대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해야 할 것의 중심은 본토에서 중국의 주변에 이어지는 영토 분쟁과 대만의 통일로 옮겨갔다. 이러한 더욱 제한된 목표들은 침략에 대한 방어와 비교했을 때 공격 능력의 역할을 증가시켰다. (……) 『군사전략학』2001년판에 따르면 “정치적·전략적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것과 전술적으로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대만을 놓고 보면 “누구든 다른 나라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침해하면 상대방에게 전술적으로 ‘선제타격’할 권리를 주게 될 것이다”.
---「제6장 1993년 전략」중에서
(2014년 전략은) 2015년 11월 발표된 인민해방군의 조직 개혁에 대한 최고 수준의 지원과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2014년 여름에 조정되었을 것이다. (……) 전례 없던 조직 변화가 이루어졌다. 일곱 개 군구를 다섯 개 전구 사령부로 전환하고, 네 개 총부서를 중앙군사위 직속의 15개 소규모 조직으로 세분화하며, 제2포병을 병과에서 군종으로 격상시키고, 별도의 지상군 사령부를 창설하고, 우주와 사이버에 중점을 둔 전략지원군을 창설하며, 30만 명의 군 병력을 감축하는 것 등이었다.
---「제7장 1993년 이후 중국의 군사전략」중에서
재래식 작전을 강조하는 중국의 군사전략은 1949년 이후 아홉 번이나 바뀌는 등 역동적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확증보복을 통한 억지력 달성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핵전략은 1964년 10월 중국이 첫 번째 핵폭발 실험을 한 이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 게다가 중국의 재래식 전략과 핵전략 사이에는 뚜렷한 관계가 전혀 없다. 중국의 핵전략은 ‘적극방어’라는 일반적 원칙과 일치하기는 하지만, 핵무기 사용 계획은 재래식 전력 사용에 관한 계획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국의 선언적 전략과 작전교리는 재래식 분쟁이 아닌 핵 공격에 대응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제8장 1964년 이후 중국의 핵전략」중에서
출판사 리뷰
현대 중국의 군사전략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1949년부터 오늘날까지 70여 년간 중국 군사전략의 형성을 살펴본다
이 책은 1949년 이후 발표된 중국의 모든 군사전략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다.
중국의 1956년 ‘조국보위(祖國保衛)’ 전략은 미국의 침공을 막거나 무디게 하기 위해 진지전과 고정방어를 강조했다. 그리고 1980년 ‘적극방어(積極防禦)’ 전략을 통해 소련의 침략에 대항할 목적으로 진지전을 다시 강조했다. 이 전략은 마오쩌둥이 채택해 문화대혁명 기간 내내 사용한 1964년의 ‘유적심입(誘敵深入, 깊은 곳으로 적을 끌어들임)’ 전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유적심입’은 침략자의 영토 점령을 용인하고, 기동전, 분산된 작전 등을 강조했다.
1993년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은 외부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어떻게 방어할지에서 주변 지역에 대한 제한된 목적, 특히 영토와 주권 분쟁을 둘러싼 국지전에서 중국이 어떻게 승리할지로 방점이 옮겨갔다. 끝으로 1993년 이후 ‘정보화’와 통합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중심으로 한 두 차례(2004, 2014년)의 전략 조정과 중국의 역대 군사전략과는 분리해서 운영된 중국의 핵전략에 대해 다루었다.
중국의 군사전략을 결정짓는 두 요인: 전쟁 수행의 변화 + 당의 통일성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을 역사적인 변화를 통해 접근한다.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국제 체제에서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두 요인이 작용할 때 새로운 전략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전쟁 수행의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으로 주요 전략 변화를 발생시키는 필요조건이다. 당의 통일성은 중국 군부가 외부의 자극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내부의 충분조건이다.
전쟁 수행 방식의 중대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이 단합되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군사전략도 크게 변화한다. 반면에 전쟁 수행 방식에서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당이 단합을 유지하더라도 군사전략의 변화는 크지 않다. 또한 변화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당이 분열되어 있다면 군사전략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두 요인에 맞추어 중국의 아홉 차례 군사전략 변화를 살펴보면 1956, 1980, 1993년이 두 요인을 모두 충족하며 전략상의 중대 변화를 달성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반면에 1964년에는 두 요인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으나 당 최고 지도자(마오쩌둥)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중대한 전략 변화가 발생했다. 그 밖에 1960, 1977, 1988, 2004, 2014년에는 두 요인 중 하나만 충족한 상황에서 사소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21세기 중국의 군사전략은 또다시 변화할 것인가?
현재 중국은 군사전략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먼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존과는 상이한 전쟁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등 각국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 발전을 국방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달성한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공산당 내에서 그의 지위는 확고한 듯하며 당이 분열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두 요인, 즉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중국 군사전략의 또 다른 변화를 목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제1장에서는 한 나라의 군사전략에서의 주요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 군사전략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인 두 변수를 기술한다. 첫 번째 변수는 국제 체제에서 전쟁 수행의 변화이며, 두 번째 변수는 중국공산당의 통일성이다.
제2장에서는 국공내전 시기(1927~1949년) 중국공산당이 채택한 군사전략을 검토한다. 이 시기 대부분의 전략은 정규 부대의 기동전 수행을 강조하지만, 일부 전략은 비정규 부대를 이용한 게릴라전을 중시한다.
제3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채택된 첫 군사전략인 1956년 ‘조국보위’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가 주장하는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은 ‘조국보위’ 전략의 채택 시점과 이유를 매우 적절히 설명한다. 이 시기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의 교훈을 배우는 데 노력했으며, 아울러 중국공산당 내의 유례없는 단결은 군부 주도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제4장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1964년 ‘유적심입’에 대해 살펴본다. ‘유적심입’은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 때 쓴 전략으로, 통일 중국의 상황에는 맞지 않았지만 마오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진)을 위해 밀어붙인 경우다. ‘유적심입’은 군부가 아닌 당 최고 지도자로부터 비롯된 유일한 전략이며, 당의 분열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5장에서는 1980년에 채택된 ‘적극방어’에 대해 살펴본다. ‘적극방어’ 전략은 아랍 · 이스라엘 전쟁(1973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문혁에 따른 당의 분열 탓에 전략 변화가 늦어지다가 당의 통일성이 복구된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채택되었다.
제6장에서는 1993년에 채택된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에 대해 살펴본다. 1993년 전략은 걸프 전쟁(1990~1991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 상황과 비슷하게 톈안먼사건(1989년)에 따른 당과 군부의 갈등 탓에 다소 지체되다가 1993년 초에 채택되었다.
제7장은 1993년 이후 ‘정보화’를 중심으로 한 전략 조정 등 중국 군사전략의 최근 전개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이에는 2004년 ‘정보화 조건하 국지전 승리’ 전략과 2014년 ‘정보화 국지전에서의 승리’ 전략이 있다. 2004년 전략은 코소보 전쟁(1999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하며, 2014년 전략은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변화로 인민해방군의 통합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제8장은 중국 핵전략의 진화를 알아본다. 앞서 다룬 다른 군사전략들과 다르게 핵전략만큼은 당의 최고 지도자들이 군부에 권한을 결코 위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의 핵전략은 다른 군사전략들에 통합되지 않은 채 확증보복을 달성하는 데 집중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1949년부터 오늘날까지 70여 년간 중국 군사전략의 형성을 살펴본다
이 책은 1949년 이후 발표된 중국의 모든 군사전략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다.
중국의 1956년 ‘조국보위(祖國保衛)’ 전략은 미국의 침공을 막거나 무디게 하기 위해 진지전과 고정방어를 강조했다. 그리고 1980년 ‘적극방어(積極防禦)’ 전략을 통해 소련의 침략에 대항할 목적으로 진지전을 다시 강조했다. 이 전략은 마오쩌둥이 채택해 문화대혁명 기간 내내 사용한 1964년의 ‘유적심입(誘敵深入, 깊은 곳으로 적을 끌어들임)’ 전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유적심입’은 침략자의 영토 점령을 용인하고, 기동전, 분산된 작전 등을 강조했다.
1993년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은 외부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어떻게 방어할지에서 주변 지역에 대한 제한된 목적, 특히 영토와 주권 분쟁을 둘러싼 국지전에서 중국이 어떻게 승리할지로 방점이 옮겨갔다. 끝으로 1993년 이후 ‘정보화’와 통합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중심으로 한 두 차례(2004, 2014년)의 전략 조정과 중국의 역대 군사전략과는 분리해서 운영된 중국의 핵전략에 대해 다루었다.
중국의 군사전략을 결정짓는 두 요인: 전쟁 수행의 변화 + 당의 통일성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을 역사적인 변화를 통해 접근한다. 저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국제 체제에서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두 요인이 작용할 때 새로운 전략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전쟁 수행의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으로 주요 전략 변화를 발생시키는 필요조건이다. 당의 통일성은 중국 군부가 외부의 자극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내부의 충분조건이다.
전쟁 수행 방식의 중대한 변화를 인식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당이 단합되어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군사전략도 크게 변화한다. 반면에 전쟁 수행 방식에서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당이 단합을 유지하더라도 군사전략의 변화는 크지 않다. 또한 변화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당이 분열되어 있다면 군사전략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두 요인에 맞추어 중국의 아홉 차례 군사전략 변화를 살펴보면 1956, 1980, 1993년이 두 요인을 모두 충족하며 전략상의 중대 변화를 달성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반면에 1964년에는 두 요인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으나 당 최고 지도자(마오쩌둥)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중대한 전략 변화가 발생했다. 그 밖에 1960, 1977, 1988, 2004, 2014년에는 두 요인 중 하나만 충족한 상황에서 사소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21세기 중국의 군사전략은 또다시 변화할 것인가?
현재 중국은 군사전략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먼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존과는 상이한 전쟁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등 각국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 발전을 국방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달성한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공산당 내에서 그의 지위는 확고한 듯하며 당이 분열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두 요인, 즉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이라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중국 군사전략의 또 다른 변화를 목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
제1장에서는 한 나라의 군사전략에서의 주요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 군사전략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인 두 변수를 기술한다. 첫 번째 변수는 국제 체제에서 전쟁 수행의 변화이며, 두 번째 변수는 중국공산당의 통일성이다.
제2장에서는 국공내전 시기(1927~1949년) 중국공산당이 채택한 군사전략을 검토한다. 이 시기 대부분의 전략은 정규 부대의 기동전 수행을 강조하지만, 일부 전략은 비정규 부대를 이용한 게릴라전을 중시한다.
제3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채택된 첫 군사전략인 1956년 ‘조국보위’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가 주장하는 전쟁 수행의 변화와 당의 통일성은 ‘조국보위’ 전략의 채택 시점과 이유를 매우 적절히 설명한다. 이 시기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의 교훈을 배우는 데 노력했으며, 아울러 중국공산당 내의 유례없는 단결은 군부 주도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제4장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1964년 ‘유적심입’에 대해 살펴본다. ‘유적심입’은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 때 쓴 전략으로, 통일 중국의 상황에는 맞지 않았지만 마오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진)을 위해 밀어붙인 경우다. ‘유적심입’은 군부가 아닌 당 최고 지도자로부터 비롯된 유일한 전략이며, 당의 분열이 전략적 의사결정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제5장에서는 1980년에 채택된 ‘적극방어’에 대해 살펴본다. ‘적극방어’ 전략은 아랍 · 이스라엘 전쟁(1973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문혁에 따른 당의 분열 탓에 전략 변화가 늦어지다가 당의 통일성이 복구된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채택되었다.
제6장에서는 1993년에 채택된 ‘첨단 기술 조건하 국지전’에 대해 살펴본다. 1993년 전략은 걸프 전쟁(1990~1991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 상황과 비슷하게 톈안먼사건(1989년)에 따른 당과 군부의 갈등 탓에 다소 지체되다가 1993년 초에 채택되었다.
제7장은 1993년 이후 ‘정보화’를 중심으로 한 전략 조정 등 중국 군사전략의 최근 전개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이에는 2004년 ‘정보화 조건하 국지전 승리’ 전략과 2014년 ‘정보화 국지전에서의 승리’ 전략이 있다. 2004년 전략은 코소보 전쟁(1999년)과 이라크 전쟁(2003년)에서 나타난 전쟁 수행의 변화를 반영하며, 2014년 전략은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변화로 인민해방군의 통합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제8장은 중국 핵전략의 진화를 알아본다. 앞서 다룬 다른 군사전략들과 다르게 핵전략만큼은 당의 최고 지도자들이 군부에 권한을 결코 위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의 핵전략은 다른 군사전략들에 통합되지 않은 채 확증보복을 달성하는 데 집중하는 선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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