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인문교양 (독서>책소개)/2.에세이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 (2024)

동방박사님 2024. 10. 1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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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어떤 아픔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야 배웠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한 사람이 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도리어 약점 잡히는 사회 속에서
아픔을 아픔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종호가 전하는 따뜻한 공감의 말들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가 처음으로 자신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고백하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책. 서울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예일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나종호 교수는 얼핏 걱정할 일 하나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도 사실은 지금의 젊은이들과 똑같은 고민, 아픔을 겪은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막연한 미래로 인해 생긴 불안감은 예고 없이 나타나 온 몸을 고장 냈고, 얼마 안 가 우울증까지 겹치며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다들 비슷하게 사는데, 혼자만 이렇게 아프다는 건 결국 자신이 나약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자책 속에서 그는 끝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고, 도피하듯 미국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와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나종호 교수는 비로소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기 마련’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 자책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아픔을 겪고 있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많은 현대인을 보며 나종호 교수가 ‘이제 자책하는 것은 그만두라’는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는지, 우리 마음을 옥죄는 요소들이 사회 곳곳에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 정신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적확하게 진단한다.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하다고 비난받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도리어 약점 잡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완벽함을 가장할 수밖에 없고,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며 함께 지쳐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아픔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럼으로써 스스럼없이 약점을 내보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과 서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종호 교수는 힘주어 전하고 있다.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 초고속 트레드밀 위에 선 당신에게

1장. 불안감에 빼앗겨버린 내 마음의 운전대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떨던 정신과 의사 지망생
불안감에 점령당한 내 마음
잠시나마 되찾은 평화만일 내가 그때 도움을 청했더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구나 아플 자격이 있다

2장. 트레드밀에서 내려오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가 너였다면, 나라도 그랬을 거야”
누구를 위한 의사가 되어야 할까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볼 수 있다면
비를 맞는 사람과 우산을 나눠 쓰는 것
배반하는 노력에 대하여
Pay it forward

3장. 우리는 어떻게 관대해질 수 있을까

진료실 반대편의 의자에 앉는 일
“도움 필요해”라는 말 한마디
아이로부터 배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
방어막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연결된다
잘못을 받아들이는 태도
내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4장.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하여
“선생님은 왜 사세요?”
감추어야 할 애도는 없다
우리가 서로에게 책이 될 수 있다면
연결됨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다

에필로그 | 가장 좋은 위로를 위해 필요한 것들

저자 소개
저 : 나종호 
마음의 안부를 묻는 정신과 의사.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임상심리학자를 꿈꾸던 심리학도였으나 유학이 좌절된 후, ‘마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신과 의사의 길에 다시 도전했다.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고 메이요 클리닉과 뉴욕대학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거쳐 예일대학교에서 중독 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정신 건강에 ...

책 속으로
정신과 의사로서 일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위로를 꼭 언어로 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위로란 그저 그 슬픔을 함께 느껴주고 자리를 지켜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말이다. 슬퍼하는 사람 앞에 서면 어떤 말이든 건네야 할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위로는 사실 꼭 말로 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옆을 지켜주면서 말없이 있어주는 것이 천 마디의 말보다 나을 때도 있다.

인생이 잘 짜인 각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여러 누더기를 겹겹이 덧대고 우연과 운이라는 실과 바늘로 얼기설기 꿰맨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이야 ‘예일대 정신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함을 갖고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나 역시 꿈꾸던 길에서 미끄러진 후 갈팡질팡하던, 그것도 언제 불안감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나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던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동기들과의 술자리였는데, 유급한 한 동기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 그 친구 멘탈이 강해 보였는데 아닌가 봐’와 같은 대화들이 오갔다. 그 말을 듣자 동기들에게 내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었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주변의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렸고, 이렇게 어린 친구들도 씩씩하게 잘만 지내고 있는데 나는 속으로 이토록 앓고 있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드러내기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사실 잘 알고 있었다. 내 상태가 매우 심각하며, 정신 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 「불안감에 빼앗겨버린 내 마음의 운전대」 중에서

나는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Walk a mile in one’s shoes)’라는 격언을 좋아한다. 언제나 타인의 경험과 관점,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로서 편견 없이 내담자들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려고 애쓰며, 그러한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전속력의 트레드밀처럼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돌아가는, 그래서 내 신발도 벗겨지기 일쑤인 사회에서 살아가며 남의 신발까지 신어볼 여력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람의 인생이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맞닥뜨린 행운이나 불운이 충분히 뒤바꿔놓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다. 노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이룬 사회적 성취들은 어찌 보면 굉장히 많은 행운이 연달아 찾아와 생긴 산물일 수도, 혹은 불행이 비껴간 산물일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환자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겪으며 배운 교훈이다.
--- 「트레드밀에서 내려오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죽겠다’에서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로 넘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 취약성을 나누는 문화일지도 모른다. 나의 힘듦을, 아픔을 우선 털어놓을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도 비로소 공감의 기회가 생기므로. 방어막을 내리는 순간 우리는 연결된다. 결국 취약성이야말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이자 우리가 ‘컴패션’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단초가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우울증이 흔하다는 은유적 표현임을 알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표현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감기는 가만히 두어도 낫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증, 특히 중증 이상의 우울증은 감기보다는 몸 어딘가의 뼈가 부러진 것과 유사하다. 팔이 부러졌을 때 정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아무리 돌려봐도 팔이 다시 붙길 기대할 수 없듯이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의심되면 최대한 빨리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게 좋다.
--- 「우리는 어떻게 관대해질 수 있을까」 중에서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보거나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들이는 노력을 내가 겸상조차 하기 싫은 누군가에게 쏟을 순 없을까. 우리가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쏟는 의지만큼만이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쓸 수 있다면, 그렇게 의지를 가지고 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책이 될 수 있다면.
---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하여」 중에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내 모습을 보여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취약성을 보이면 약점 잡힐 것 같아서 같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그러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완벽한 양 치장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나면 오히려 자신감은 떨어진다. 한국인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일과 내내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기에 혼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에필로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예일대 나종호 교수가 최초로 꺼내놓는 취약성의 기록,
불안감과 우울에 점철되었던 나날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제대 후 복학해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맨 앞줄에 앉아 노트에 빼곡히 필기하며 수업을 들었고, 중간중간 시간이 비거나 수업이 다 끝나면 곧바로 도서관에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다행히 곁엔 친구가 있었고, ‘임상심리학 미국 유학’이라는 확실한 목표도 있었다. 문제없이 평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돌연 엄청난 심장 박동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덜컥’ 하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애써 무시하며 공부에 집중해 보려고 했지만 심박은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지는 것만 같았다. 무심코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제야 깨달았다. 빠른 심박 수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체 모를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마치 대학 축제 때 대형 스피커가 캠퍼스 전체를 크게 울리듯 어느새 마음을 넘어 몸까지 지배하고 있었다.

만연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는 것은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마음’이라는 버스 한 구석에 늘 정체 모를 괴물 하나가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 괴물은 어떨 때는 잠잠하게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으나, 언제 깨어나서 버스를 흔들며 나를 괴롭힐지 모르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늘 그 괴물이 깨어날까 봐, 혹은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 본문 중에서

불안감이라는 그림자는 하나하나 몸을 고장 내기 시작했다. 맥박은 심장에 무리를 주는 ‘빈맥’의 기준인 분당 100회를 일상처럼 넘겼고, 대화할 때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 지그시 깨물고 말해야만 했다. 꿈꾸던 임상심리학 유학이 좌절되고 정신과 의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쫓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자 불안감에 더불어 우울감까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강의에도, 책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질문이라도 받으면 머리는 새하얗게 굳었다. 다시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이 들 때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나타났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자책, 자기 검열, 편견을 걷어내고
공감으로 끌어안는 나종호의 따뜻한 말들!

“누구에게나 아플 자격이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는 20대의 자신을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우울감을 동반한 적응장애’로 진단한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 건강 전문가는 물론 주변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정신과 의사의 길을 걷는 의학도였던 그에게조차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이 단단히 자리 잡은 탓이었다.

‘다들 비슷하게 사는데, 심지어 나보다 어려운 상황인 사람들도 잔뜩 있는데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친구에게도 입을 다물게 만들었고, ‘정신 질환은 의지의 문제고 얼마든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선입견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쉼 없이 달리는 와중에 자기만 지친 것 같았다. 이런 초고속 트레드밀 사회에서 자신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생각하며, 나종호 교수는 그렇게 자책을 안은 채 미국으로 도피하듯 떠나왔다.

“내 고통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나를 발견했다. ‘이게 정말 책에 담을 만한 내용일까? 나보다 훨씬 힘들었던 사람들에겐 너무 하찮게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다잡았다.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누군가의 주관적 고통을 비교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한 가지만큼은 배웠으므로. (…) 모든 고통은 주관적이다.”
- 본문 중에서

수많은 사람이 얽혀 살아가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환자를 만나며 그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고통은 주관적이며,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정도의 일들로도 어떤 이는 더 이상 일상을 살기 힘들 만큼 아플 수도 있다는 걸, 마음의 문제는 의지의 차원이 아니기에 20대 때 그토록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는 걸 말이다. ‘아플 자격’은 누구나 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관대해지기 위하여

“진정한 나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해하고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이 책이 정신과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한 인간으로서의 솔직함이 어우러져 있다고 평하며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공감과 연결의 메시지를 전하는 귀중한 선물”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이는 나종호 교수가 자신의 힘든 시절을 고백하며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안는 동시에, 정신과 의사로서의 예리한 시선을 놓지 않으며 우리 한국인들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확하게 진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힘들어도 내색해서는 안 되고,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는 게 성숙한 행동이었다. 마음의 문제를 고백하면 금세 나약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도리어 약점 잡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관대해질 수 없다고 나종호 교수는 지적한다.

우리는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앞다투어 파괴적 수치심을 부여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한다. 그 사실을 다들 모르지 않을 텐데, 타인에게 가하는 무차별적인 비난과 조롱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쩌면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튜 페리의 죽음을 기리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도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를 도덕적인 실패로 여긴다”라며 이를 지적하고 있었다. 그 숨 막히는 전제를 내려놓는다면 스스로의 취약성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또 타인이 털어놓는 취약성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강한 모습이든, 약한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아가 서로의 약한 모습도 감싸 안는 사회가 되기 위해 결국 필요한 것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의 힘듦을 우선 털어놓을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도 비로소 공감의 기회가 생기고, 그렇게 방어막을 내릴 때 우리는 연결된다. 결국 취약성이야말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라는 것이다.

나종호 교수는 취약했던 개인적 기록을 통해 공감과 감동을 전하고, 한 발 나아가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개인의 아픔이 만연한 이유와 이를 해결할 방법까지도 제시한다. ‘어떤 아픔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껏 억눌러 왔던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공감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용기를,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받아들일 관대함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4907806>